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19. 잠자는 굴 속의 죄수 (1)
“홍윤재, 네가 제일 먼저 들어가. 너 튼튼하잖아.”
게이트로 직진하던 신주가 가만히 있던 홍윤재를 제 앞으로 떠밀었다. 굳이 따지자면 여기서 가장 튼튼한 것은 근접형 중의 근접형 딜러인 차태양일 것이다.
‘신주 나름의 배려겠지.’
홍윤재 역시 신주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순순히 일행의 선두에 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조성현이 나서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저, 선배님!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성큼성큼 게이트로 향하는 조성현의 옷깃을 잡아챈 신주가 그를 뒤로 보냈다.
“아아, 생각이 변했어. 내가 선두로 들어간다.”
“예?”
“그편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자, 다들 이 몸 잃어버리지 않게 바짝 따라오라고.”
언제나처럼 가볍게 지껄인 신주가 게이트 안쪽으로 사라졌다. 조성현, 홍윤재, 차태양이 그의 뒤를 따라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게이트 앞에 섰다.
‘이전 같았으면, 주변에서 아무리 떠밀더라도 포기했을 텐데.’
그만큼 아흔아홉 번째 굴의 발견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도 어쩐지,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최근 겪어 온 비상식적인 일에 나까지도 이상해져 버린 걸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게이트로 발을 내디뎠다.
***
[필드, ‘최후의 굴, 푸르가토(S)’에 입장합니다.– 현재 입장 인원 : 4
※ 필드효과, ‘죄와 벌(S)’이 상시발동 중입니다.] [퀘스트, ‘계의 경계(A)’가 시작됩니다.
– 클리어 조건 : 지옥공작 모트 처치
– 잔여 시간 : 71:04:01
※ npc 그레고리를 통해서만 포기 가능한 퀘스트입니다.] [13번 감방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윤가호, 피해!”
까강!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고개를 들자,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내리꽂힌 거대한 팔을 신주가 가로막고 있었다.
“왜 여기에…….”
[(○` 3′○)]13번 굴에서 상대했던 장난감 병정이었다. 색감이 바랬을 뿐, 주변 환경 역시 13번 굴과 동일했다. 당혹스러움에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아앗!”
번쩍 나타난 차태양이 병정의 얼굴을 후려쳤다. 야무진 일격에 액정에 파지직 금이 갔다.
[(X_X ;;)]난색을 표한 병정이 손을 뻗어 블록 미사일을 발사했다. 뒤로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 조성현이 미사일을 검기로 잘라냈다.
눈인사로 감사를 표한 뒤, 곧장 시위를 메겨 금이 간 액정을 향해 화살을 쏘아 냈다. 흰 화살은 노렸던 자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나이스 샷!”
왼눈에 화살이 박힌 병정이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렀다.
어느새 스피커를 작동시킨 신주가 차태양과 함께 병정의 상체를 공격하고, 홍윤재는 조성현과 하체를 노렸다.
‘뭔가 좀 다른데?’
3페이즈 전투 중 내 화살이 박힌 것은 고작 두 번. 그것도 전부 스킬로 강화된 화살이었다. 금이 가 있었다고는 하나, 저렇게나 깊숙이 화살이 박히다니.
“아까 그 녀석이랑 다른 개체인 건가. 아니, 그렇다기엔 또…….”
[동심 지킴이, 솔다티노]시스템에서 알려 준 이름이 같지 않은가. 꺼림칙한 기분에 탐색자의 눈을 켰다. 아까 만났던 병정과 약점도 같았다,
팅!
튕겨 나온 블록이 발치를 맞추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A급이 넷이나 있다고 방심하기는. 생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자.”
신주가 만든 리듬 노트를 맞추며 외쳤다.
“13번 굴의 마수와 약점이 동일합니다. 정수리를 노리세요!”
팡팡 터지는 이펙트 사이에서 날뛰던 신주가 내 외침을 듣고 차태양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고개를 끄덕인 차태양이 팟 사라지더니 홍윤재를 안은 채 나타났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홍윤재를 위로 집어 던졌다.
“다녀오세요!”
“선배! 제 언월도는 창이 아니라 검이라니까요!”
얼떨결에 높게 떠오른 홍윤재가 붕붕 언월도를 든 팔을 휘둘렀다. 병정의 왼팔을 두들겨 패던 신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시키면 잘하면서.”
한없이 치솟던 몸이 추락을 시작했을 무렵 홍윤재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언월도를 고쳐잡았다. 그와 동시에 언월도에 빛이 어리고 날의 모양이 창날처럼 바뀌었다.
“……!”
스킬을 사용한 듯, 홍윤재가 입을 벙긋거렸다. 그의 무기에 스파크가 일더니 그대로 한 줄기 번개처럼 병정의 정수리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콰과광! 쾅!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섬광이 일고, 그 뒤를 따라 지천을 울리는 굉음이 터졌다. 한 박자 늦게 귀를 틀어막은 통에 귓전이 얼얼했다.
‘게이트 관리자들 수준이 대단하다는 게 정말이었어.’
일격 만에 그로기 상태에 빠진 병정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슴의 완장을 꾹 눌렀다. 이것이 무엇의 징조인지 아는 홍윤재가 연기가 오르는 병정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다들 긴장하세요! 다음 페이즈로 넘어갑니다!”
“태양이 넌 탱크 처음 보려나?”
“네! 근데 탱크가 뭐예요?”
페이즈가 전환될 때는 보스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못하기에 막간을 이용해 확인하지 못한 시스템 메시지를 다시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필드 등급.
“S급?”
작전을 선회해야겠다.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았다. 퀘스트와 필드의 등급이 다른 것도 이상한데다가 뭔지 모를 S급 효과도 적용 중이라지 않은가.
“바로 퇴장해야…….”
말을 미처 맺기도 전, 퀘스트 창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입을 다물었다.
[※ npc 그레고리를 통해서만 포기 가능한 퀘스트입니다.]가지가지 하네. 얼굴도 위치도 모르는 npc를 찾아야 한다고? 퀘스트를 포기하지 않으면 필드에서 나갈 수 없다.
답답한 심정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나저나 저 병정 녀석은 아직인가?’
아깐 금방 변신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블록이 무너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굴을 덮고 있던 손을 치우고 고개를 들자 씩씩대며 제 가슴께를 연타하는 병정이 보였다.
이어 새롭게 뜬 시스템 메시지.
[필드효과, ‘죄와 벌(S)’의 효과로 ‘동심 지킴이 솔다티노’의 스킬 발동이 취소됩니다.]플레이어가 아니라, 필드 보스를 억압하는 필드효과라니.
우리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으나, 영문을 몰라도 너무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주어진 찬스는 집어먹고 봐야 하는 법.
“공격합시다.”
황당한 얼굴로 병정을 바라보던 일행이 정신을 차리고 태세를 가다듬었다.
[XOX;;;]지친 병정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스킬의 격류가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액정의 불이 꺼졌다. 뒤이어 병정을 이루고 있던 블록들이 와르르 분해되어 쏟아졌다.
봉분처럼 쌓인 블록 더미가 어딘가 찜찜하게 느껴졌다.
‘13번 감방이라는 말도 걸려. 여기 혹시 아흔아홉 갈래 굴 내의 다른 굴들과도 연결된 거 아니야?’
시스템 메시지를 뜯어보던 중, 문득 죄와 벌이라는 필드 효과와 ‘감방’이라는 수식어가 한 세트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각 굴의 마수는 죄수, 그리고 이 필드 효과가 그를 억제하는 강제력인 거라면?
“뭐, 다 내 추측일 뿐이지만.”
어쩐지 자꾸만 초조함이 밀려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우리를 둘러싸고 위협하는 것만 같았다.
“예감이 안 좋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여기 좀 이상한걸요.”
“차태양 헌터?”
기척 없이 다가와 매미처럼 달라붙은 차태양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마치, 꼭 오면 안 될 곳에 온…….”
“다들 이리 좀 와 봐!”
전투가 끝나자마자 블록 더미를 뒤지던 신주가 일행을 불러 모았다. 얼른 오라 우리를 재촉하면서도 신주는 블록을 파헤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원목 소재의 프레임 같은 것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파티원들과 함께 달라붙어 정체불명의 아이템을 발굴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원형 거울. 연식이 제법 되어 보이는 아이템으로, 우리 중 가장 키가 큰 홍윤재도 전부 비출 수 있을 만큼 커다랬다.
“어이, 홍윤재. 13번 굴에서 이런 아이템이 나온 적이 있었나?”
“아뇨, 없습니다. 확언할 수 있어요.”
“그치? 변신 로봇이 이런 걸 떨어뜨리면 컨셉 붕괴인 거지.”
샐쭉 웃은 신주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넘겼다. 당장이라도 손을 뻗을 기세이기에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경고했다.
“확인하기 전까지 함부로 손대지 마.”
마법사의 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한 것인지 조성현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랐다, 파티원들을 한발 뒤로 물린 뒤, 탐색자의 눈을 켰다.
‘내가 오길 잘한 걸지도.’
만월을 떠올리게 만드는 금안이 거울에 비쳤다. 그리고 서서히 거울에 새겨진 마도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나 모르는 것이면 어쩌나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칼리아가 만든 회로가 규격 외였던 거지.’
찬찬히 해석해 보니 어딘가로 통하는 이동술식이었다. 황금 산호 가지의 열화판 정도나 되려나. 어디로 통할지 모른다는 점을 제외하면 별달리 위험한 요소는 없었다.
일행에게 이 정보를 알려주려 고개 돌리다 미묘한 표정을 한 신주와 눈이 마주쳤다.
“너, 그거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