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71
제71화
18. 차태양과 지옥나무 (4)
“나도, 나도! 김 서방, 소리도 도와줄게!”
조성현의 곁에서 촐랑거리던 도깨비까지 데구르르 내 곁으로 굴러왔다. 둘 다 신기한 것을 좋아하니 아마 즐거워할 것이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여기에 주목해 주세요.”
검지만 세운 오른손을 흔들어 보였다.
“인챈트 7, 18, 23번을 세트.”
이어 검지로 직선을 긋자 궤적을 따라 세 장의 카드가 나타났다. 그려진 그림은 제각기 달랐으나, 군데군데 금박이 들어간 검은 프레임은 동일했다.
“김 서방, 김 서방! 이게 뭐야?”
“제가 스킬 사용하는 걸 본 적 있으시죠? 어떤 카드를 고르느냐에 따라서 그 속성이 결정됩니다.”
“진짜요? 전혀 몰랐어요.”
“보통은 미리 밑 작업을 해 두니까요.”
차태양에 카드에 들어갈 것처럼 바짝 얼굴을 붙였다. 도깨비 역시 카드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럴만한 외관이긴 하지.’
얼핏 보면 타로카드처럼도 보이는 카드에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스킬의 등급이 올라가며 열 장 남짓했던 카드가 스물네 장으로 늘어났는데, 새롭게 생겨난 카드들은 유난히 더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카드의 예술품 같은 외양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여기에 마도식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나도 근래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겹겹이 섬세하게 그려진 선 사이 마도식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마도공학이 맥락 없이 튀어나온 게 아니었어.’
카드에 정신을 빼고 있던 차태양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언니! 전 뭘 도와드리면 돼요?”
“괜찮으시다면 차태양 헌터께서 마지막 슬롯에 넣을 카드를 결정해 주시겠어요?”
“그런 중요한 걸 저한테 맡기신다고요?”
차태양이 펄쩍 뛰며 손을 저었음은 물론이요, 도깨비까지 진심이냐며 법석을 떨었다.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했는데.’
막간에 작은 재미를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도와달라 말하기는 했으나 정보가 없는 지금, 무엇을 고르든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어느 카드가 나오든 괜찮으니, 편하게 골라 주세요.”
“으, 좀만 더 고민해 봐도 돼요?”
“네. 그럼 전 다른 슬롯을 채우고 있을 테니 결정이 끝나시면 불러 주세요.”
차태양과 도깨비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시작했다. 흐뭇한 광경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빨리 끝내자.”
왼손으로 미리 정해 두었던 카드 네 장을 꺼냈다. 왼쪽부터 응집, 북풍, 산개, 구사일생의 카드였다. 가장 먼저 무르익은 열매가 그려진 응집을 집어 카드에 새겨진 마도식을 따라 적은 양의 마력을 흘려보냈다.
‘마도식에 대해서 몰랐을 때는 무식하게 마력을 들이부었었지.’
효율이 나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도식의 형태도 모르고 무작정 스킬만 사용했으니 시간과 마력이 많이 들 수밖에.
미리 바닥에 내려 둔 활에 마도식이 활성화된 카드를 얹자, 카드가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스르륵 녹아 사라졌다.
“결정 끝났어요!”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카드를 손에 쥔 차태양이 다가왔다. 차태양은 후, 크게 심호흡하고는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걸 고를 줄이야.’
달빛 아래서 제 몸만 한 크기의 열쇠를 품에 안은 여인이 그려져 있는 카드였다. 미지의 필드에 입장하는 지금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내 어깨로 자리를 옮긴 도깨비가 재잘거렸다.
“이 그림패에 있는 사람 까만 김 서방이랑 닮지 않았어? 그래서 고른 거야!”
“저랑요?”
“응!”
까만 머리라는 것을 빼면 별로 닮은 게 없는 것 같은데. 아래로 내려간 눈매를 보면 오히려 차태양과 닮지 않았나?
차태양과 카드를 번갈아 바라보다 시간이 없단 것을 상기하고 서둘러 마지막 슬롯을 채웠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차태양이 내 어깨에 턱을 괴며 물었다.
“있죠, 언니. 이 카드 이름은 뭐예요?”
“‘갈피’입니다.”
“무슨 효과가 있는 카든지 말해 줄 수 있으세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선배! 저 왔습니다.”
‘갈피’의 효과에 설명하려던 찰나, 홍윤재가 풀숲을 헤치고 나타났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차태양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뭐, 필드에 가면 다 알게 되실 겁니다.”
차태양과 도깨비를 데리고 홍윤재 쪽으로 향했다. 대기실에서와 달리 홍윤재는 장비를 모두 착용한 상태였다. 대충 걸친 남색 장포가 그의 등에 메인 언월도와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근거리만 넷이라. 썩 좋은 조합은 아닌데.’
원거리 딜러가 C급인 나 하나라니. 신주와 차태양에게 이동기가 있더라도 상성이란 게 있지 않은가. 공중형 마수라도 마주쳤다간 고생깨나 할 것이다.
“내놔.”
한발 앞서 홍윤재에게 간 신주가 껄렁한 자세로 선 채 손바닥을 내밀었다. 익숙한지 어깨를 으쓱한 홍윤재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포션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기이한 광택이 도는 것이 못해도 B급은 되어 보였다.
“이런 건 영화에서나 봤는데.”
“이런 거?”
“삥 뜯는 불량배…… 악!”
다시금 정강이를 걷어차인 조성현이 비명을 질렀다. 체면이고 뭐고 없이 차태양의 뒤로 뛰어가 숨은 것을 보니 이번에도 역시 인정사정없이 걷어찬 모양이었다.
조성현의 발언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신주는 연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그래도 애를 저렇게 막 때리면 안 되지.
“사람을 때리긴 왜 때려. 각성자라 튼튼하다지만 그래도 안 아픈 건 아니잖아.”
“헛소리하니까 그렇지. 하늘같은 선배님한테 불량배가 뭐야? 거기다 삥은 무슨. 굳이 따지자면 이쪽이 착취당하는 중이잖아.”
“신주야, 단어 선택 좀…….”
“아닙니다.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허리 숙여 사과하는 홍윤재를 일으켜 세웠다. 조기 퇴근한 사람도, 양성소 상부도 아닌 이 사람에게 사과받을 일이 아니었다.
신고를 운운하며 필드 입장을 요구한 양성소가 괘씸하기는 했으나, 범람이 일어나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일이 끝나면 길드를 통해 제대로 된 항의를 넣을 생각이지만.’
아이들이 동요할까 싶어 내내 표정을 가다듬고 있었지만 사실 상당히 언짢았다. 홍윤재도 시말서 정도는 쓰게 될 테지만 거기까진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10분 후에 게이트가 닫히니, 빠르게 브리핑합시다.”
그새 구석에서 입씨름을 벌이던 차태양과 조성현을 손짓으로 불렀다. 긴 이야기가 아니라 서서 진행하려고 했건만 신주가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자, 다들 동그랗게 앉아.”
“수련회도 아니고…….”
습관처럼 툴툴거리던 조성현이 신주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먼저 상황 정리하겠습니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낼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총대를 멨다.
“지옥나무 아래에서 클리어 발생한 이 필드는 최소 B급으로 예상되나, A급 이상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발생한 장소의 특성으로 미루어 볼 때 암속성 필드일 가능성 역시 크고요.”
“여태껏 발견된 하위필드가 모두 레이드형이었으니, 아마 이것도 레이드형이겠지?”
“그게 정론이긴 하지. 아, 그리고 홍윤재 헌터?”
“네, 윤가호 헌터. 말씀하세요.”
뒷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게 있었다. 만난 적은 없지만, 대충 보기에도 양성소 ‘윗분’이란 분들 견적이 딱 나오니 말이다.
“저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탐색조, 맞습니까?”
‘기껏 다녀왔는데 왜 탐색만 하고 왔냐고 난리 칠지 누가 알아?’
내 질문을 듣자마자 킬킬대던 신주가 엄지를 척 들자 그 옆에 앉은 차태양과 도깨비가 신주를 따라 엄지를 세웠다. 쟤네 무슨 뜻인지는 알고 따라 하는 건가?
“네. 이것만큼은 확언드리겠습니다. 윤가호 헌터의 말씀대로 어디까지나 탐색조 맞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다시 브리핑으로 돌아가서, 조성현 생도, 탐색조의 가장 큰 목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 필드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야.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가장 중요한 건…….”
신주가 나를 대신하여 대답했다. 여기선 나보다 탐색조 경험이 많은 신주가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 살아서 돌아오는 거야.”
“예? 그건 당연한 거잖아요. 파티의 목적으로 보기엔…….”
“당연?”
조성현의 말을 낚아챈 신주가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시종일관 가볍게 굴던 신주의 변화에 당황한 조성현이 눈을 껌벅였다.
“이봐, 후배님. 그게 정말로 당연한 일 같아? 정보가 없다는 건 네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일이야.”
“그,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목숨 챙기려면 정신줄 잘 잡아야 할 거다.”
분위기가 지나치게 가라앉는 것 같아 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 그렇지만 여기엔 탐색조 경험이 많은 박신주 헌터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겁을 주려던 것은 아니었다며 신주가 제 머리를 헤집었다. 알고 있다는 의미로 신주의 무릎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드렸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퇴각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찬성. 욕심 부리다 목 날아가는 법이지.”
“음음, 예로부터 과유불급이라고 했지!”
신주의 말에 호응한 도깨비가 까치집이 된 신주의 머리 위로 데굴 굴러갔다.
“필드가 A등급 이상인 경우, 보스의 위치만 확인하고 즉시 복귀하겠습니다. 그보다 낮을 때는 속성과 대략의 특성까지를 파악하는 것으로 하고요. 이견 있으십니까?”
모두가 동의한 것을 확인한 뒤, 브리핑을 마쳤다.
“시간이 없으니 더 할 얘기가 있다면 필드에서 하죠.”
“휘유, 팀 윤가호 출격인가.”
“그게 뭐야.”
“브리핑 진행해 놓고 무슨 딴청이래. 원래 팀명은 리더 이름 따라가는 거라고.”
동의 없이 나를 파티장으로 만든 신주가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쌩 사라졌다.
“쟤는 정말…….”
작아지는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