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86
제86화
22. 결초보은 (3)
“고양이 알레르기요?”
“예에. 킁, 그만큼 멀리 있었는데도 코가 간지러워서 혼났어요.”
“김 서방은 바보구나? 사로뫼는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잖아!”
부정 탄 영물이라면 관심을 가지고도 남을 사람이 왜 천산에서 가만히 있었나 했더니만.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었나 싶어 물어봤는데 전혀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코도 없는 방울이 뭘 안다고 그러세요?”
“뭐어? 이런 고얀 김 서방 같으니라구!”
“먼저 시작한 게 누군데요!”
잠시 눈을 뗀 사이 밥상머리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급기야는 삿대질까지 해대니 가뜩이나 숙취로 지끈거리던 머리가 더욱 아파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음식을 남길 순 없으니 그릇을 싹싹 비운 뒤, 이강토의 얼굴 앞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덤벼들던 이강토가 순간 몸을 주춤댔다.
‘오, 이게 먹히네?’
한차현을 따라 해 본 것인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단호한 표정 때문일까 종알대던 도깨비까지 입을 합 다물었다. 이때다 싶어 일부러 탕, 소리를 내며 숟가락을 소반에 내려놓았다.
“유, 윤가호 헌터?”
“싸우시는 걸 보니 식사는 다 하신 모양이군요. 이만 일어납시다.”
“김 서방아, 소리한테 화났어?”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는 것을 못 본 체하며 먼저 방을 나섰다. 둘이서 어떻게 하면 내 화를 풀 수 있을까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을 목 뒤로 꾹 넘기고 짐짓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그렇게 계실 겁니까?”
“지, 지금 일어나려고 했어요!”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소리도, 소리도 갈게!”
도깨비와 이강토가 동시에 툇마루에서 내려와 새끼오리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둘이 순순히 구니 이처럼 편할 수가 없었다.
“저, 그 귀신 들린 집으로 가는 거 맞죠?”
“그럴 겁니다. 다만.”
“다만?”
주막을 빠져나온 이래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으레 그렇듯 얼빠진 얼굴을 한 이강토가 꼴깍 침을 삼켰다.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강토 헌터는 거기 가지 않습니다.”
“예? 그럼요?”
“저잣거리로 가주세요.”
이강토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내가 무엇을 시키려는지 단번에 알아챈 것이다.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이강토가 자기만 두고 가지 말라 매달렸다. 반대로 도깨비는 신이 나선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왜요? 우렁이가 있는 곳은 이미 찾았잖아요!”
“저희가 찾은 건 귀신 들린 집이지, 영물이 아니잖습니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정보를 긁어모아야죠.”
“그건 그렇지만…….”
‘사실 다른 이유 때문이지만.’
우렁이 영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선뜻 이강토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차분하고 숨는 것을 좋아한다는 우렁이 영물이 이강토를 보고 질겁해서 도망가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돌발 행동을 못 하게 아예 떼어 놓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저, 저도 그 영물이란 걸 보고 싶은걸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강토를 혼자 둬야 하는 내 마음도 썩 편치 않았다. 정 그렇다면 싶다면 정오에 다시 합류하자며 이강토를 어르면서도 걱정이 치밀었다.
‘어디 가서 이상한 사고라도 치진 않겠지?’
***
일찍 출발하려 새벽밥을 먹었건만, 대화가 길어져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어느덧 환해진 하늘 아래 이강토가 손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영물을 만나면 꼭 연락해 주셔야 해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찌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지, 뒷모습이 성냥개비처럼 보일 정도로 멀어졌을 때는 속이 다 후련해졌다. 정말이지 집념 하나는 대단한 이였다.
손목을 따라 벌겋게 남은 뼈마디 모양의 자국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며 이강토가 들러붙는 통에 생긴 것이었다. 도깨비 역시 이를 보았는지 요란하게 쩔렁대며 성을 냈다.
“그 망측한 꼬리를 왜 달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니깐!”
“다 취향 아니겠습니까.”
“흥, 난 그런 취향 존중 못 해!”
펄펄 뛰는 도깨비를 달래며,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폐가 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화강에서 뻗어 나온 개울이 졸졸 흐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김서 방들은 모두 서쪽으로 도망갔댔지?”
“예, 동쪽 동네는 모두 이렇답니다. 요괴도 요괴지만…….”
‘나라님도 무서워서 도망갔는데 오죽하겠어?’
주모의 말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혼란을 잠재워도 모자랄 판국에 칩거라니. 와중에 세금은 세금대로 꼬박꼬박 거둬 간단다.
“상제와 언약을 맺은 이의 후손이라 들고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하고.”
숨만 쉬어도 감사하단 소리를 듣다니. 상팔자도 이런 상팔자가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표정이 어둡던 npc들을 보아서일까, 본 적도 없는 왕에게 적대감이 들었다.
‘아니,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히든퀘스트를 파기 시작한 이래로 자꾸만 npc들을 사람처럼, 그리고 이곳을 진짜 세계처럼 대하게 되었다. 이입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이 약해졌다. 내 앞가림도 급한 이 판국에 말이다.
고개를 탈탈 털며 과잉된 감정을 떨쳐냈다.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있는 집이라고 했지.”
“김 서방, 김 서방. 그런데 감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니?”
“예, 이파리가 둥그렇고 진녹색인…….”
할머니 댁 마당의 감나무를 떠올리며 말하던 중,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파리도, 열매도 안 달리는 겨울에 어떻게 감나무를 찾지?’
당황하여 입을 꾹 다문 나를 보고 도깨비가 데굴데굴 굴렀다. 내 곤란이 퍽 즐거운 듯했다. 금속음과 뒤섞인 까랑까랑한 웃음소리는 곧 멎었다.
“아이참, 김 서방은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방법이 있습니까?”
“있긴 한데…….”
도깨비가 보기 드물게 말꼬리를 흐렸다. 그새 신주의 말버릇이 옮기라도 한 건가? 사람 모습으로 변한 도깨비가 내 눈앞에서 입을 우물거리며 뒷말을 내뱉었다.
“내 부탁 들어주면 알려 줄게.”
“부탁이요?”
“으응. 그러니까…… 김 서방, 나 그냥 이름으로만 불러 주면 안 돼?”
무슨 부탁을 하나 했더니. 차태양을 ‘저희 태양이’라고 불렀던 게 부러웠단다. 어려운 일도 아니겠다,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보는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도와주시겠어요, 소리?”
“응! 소리가 도와줄게!”
“감사합니다.”
재주를 넘으며 기쁨을 표현한 도깨비가 실개천 근처를 가리켰다.
“저기, 저어쪽이야! 그 영물, 우렁이치고는 덤벙거리는 녀석인가 봐. 기운이 풀풀 풍겨, 풀풀!”
“원래는 이렇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이지. 코앞에 두고도 못 찾는 녀석이 태반인걸?”
과연 그의 말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장 안에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있는 너와집이 보였다. 강변 가에 외따로 위치한 이 집은 동네의 다른 집들과는 사뭇 달랐으니.
“……저거 빨래 아니야?”
감나무 가지에 고정한 빨랫줄에 옷가지들이 널려 있었다. 어찌나 엉망으로 널었는지 바닥에 떨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처마에 대롱대롱 달린 곶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루 가득 널브러진 세간살이, 디딤돌 위에 삐뚤빼뚤 놓인 신발까지. 멀리서 보기에도 생활감이 물씬 느껴졌다.
‘사람이 사는 게 분명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귀신이 들렸다는 집에 사는 거지? 집주인의 담력에 감탄하던 그때, 도깨비가 단풍잎 같은 손으로 내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불이야, 불! 김 서방, 불났다구!”
“예? 갑자기 웬…….”
“에잇, 답답한 김 서방 같으니라고! 꾸물대다가 홀랑 다 타 버려도 난 몰라!”
콧등을 찡그린 도깨비가 나를 두고 휭 너와집으로 날아갔다. 콩알 같은 뒷모습을 보며 눈을 깜박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를 따라 달렸다.
“소리, 어디 계세요?”
집 마당에 들어서니 희미하게 타는 냄새가 났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여기라며 소리치는 도깨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문에 매달려 낑낑대는 그를 발견했다.
“여기야! 부엌에서 불이 났나 봐.”
“제가 하겠습니다. 물러나세요.”
“응!”
나무로 된 문짝을 열어젖히자 매캐한 냄새가 훅 끼쳤다. 냄새의 발원지는 활활 불이 타오르는 아궁이 위의 솥. 그 안에 무언가의 요리였던 것이 졸아붙다 못해 시꺼먼 숯이 되기 직전까지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아궁이 앞에 간장 종지를 꼭 쥔 채 단꿈에 빠진 여자가 앉아 있었다. 뺨에 묻은 검댕까지 수묵담채화처럼 보이게 할 만큼 단아하게 생긴 이였다.
“얘, 얼른 좀 일어나 봐!”
도깨비가 열기로 발갛게 달아오른 여자의 뺨을 꾹꾹 눌렀다. 하지만 그는 이 지경까지 일어나지 않은 사람답게 쉽사리 눈을 뜨지 않았다. 빠르게 그를 깨우는 것을 포기하고 바닥에 놓인 들통을 들었다.
“일단 불을 끄는 게 우선이니 전 물을 떠 오겠습니다.”
“물? 저도 물……. 흑, 너무 건조해요.”
내내 미동도 하지 않던 여자가 ‘물’이란 말을 듣자마자 잠꼬대를 시작했다. 입을 달싹이는 와중에도 두 눈은 고집스럽게 닫혀있었다.
‘자는 척하는 건 아니겠지?’
스멀스멀 피어오른 의심은 도깨비 덕분에 금방 해소되었다.
“우렁이 주제에 불 앞에 있으니까 그렇지!”
한심하다는 듯 호통 친 도깨비가 길게 늘어진 여자의 다갈색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그의 머리가 힘없이 당기는 대로 기울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이 사람, 아니 이 영물이 우리가 찾던 우렁이? 내 상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혼란스러워할 틈도 없이 우렁이 영물이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으윽, 제발 물, 무울…….”
“이러다 우렁이 잡겠다! 김 서방, 얘 머리 위에 물 한 바가지만 끼얹어 줘.”
“아,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도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 집 앞의 개울에서 떠온 물로 아궁이의 불을 진화했다. 남은 물을 바가지에 덜어 조심스레 우렁이의 얼굴에 흘렸다.
우렁이의 손끝이 파르르 떨린 것은 얼굴은 물론, 그가 입은 의복까지 모두 흠뻑 젖었을 무렵이었다. 그는 눈을 뜨기도 전에 내 손의 바가지를 낚아채 제 입 앞으로 가져갔다.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모습이 퍽 절박해 보였다.
제 얼굴보다 커다란 바가지를 바닥까지 비우고서야 그의 눈꺼풀이 들렸다. 그는 저를 도와준 우리는 안중에도 없이 곧바로 가마솥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윽고 새까만 구슬 같은 눈동자에 송골송골 눈물이 맺혔다.
“흐어엉- 또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