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1
10화 길드 던전 (3)
“너로구나.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난 아이가.”
재현은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고혹적인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아름다운 동시에 흉측한 형상을 하고 있다.
반은 백골이 되어 문드러지기 직전의 해골, 남은 반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고운 미색을 띤 얼굴.
실로 기이하다고밖엔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여자는 대체…… 누구지?’
피가 쏟아짐에 따라 점차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일시 정지해 놓은 것처럼 그대로 멈춰 버린 마수의 주먹.
나이트 셰이드의 공격은 자신에게 닿기 직전, 몇 센티미터 앞에서 멈춰 있었다.
“……당신이 한 겁니까?”
두려움을 이겨낸 물음이었으나,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흥미로운 눈으로 재현을 바라보며 작게 웃을 뿐이었다.
여자는 기다랗게 뻗은 검은 손톱으로 그의 목을 겨눈 채, 앞에 쪼그려 앉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의 품에서 아찔한 사혈(死血)의 잔향이 풍겨 왔다.
곧이어 매혹적인 보랏빛 입술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고, 재현은 그녀의 말을 듣기 위해 몸을 좀 더 앞으로 기울였다.
“음…… 그를 죽일 ‘대적자’라더니. 완전 애송이잖아? 골격도 평범하고…… 마력은 쓸 만하지만 에시르 신들에 대적할 정도는 아니야.”
여자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반대 손으로 가볍게 턱을 괴었다.
“로키는 어째서 이런 아이를 대적자로 선택한 거지?”
서늘한 말투. 재현의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휘몰아쳤다.
이 여자는…… 적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나이트 셰이드에게서 날 구해 준 거지?
그리고 대적자라는 말…… 어디선가 분명 들어 본 적이…….
‘……젠장. 피를 너무 흘린 탓인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후우우웅…….
바람이 불어온다.
여자는 재현에게 겨누고 있던 손톱으로 그의 목젖을 쿡, 찔렀다.
가느다란 선혈이 목을 타고 아래, 쇄골로 흘러 들어간다.
라인에 깊숙이 고인 피를 보며, 여자의 입꼬리가 서서히 휘어지기 시작했다.
아찔한 향기에 자꾸만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아 힘에 겨웠다.
그러나 재현은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허벅지에 쑤셔 넣은 스태프에 묵묵히 힘을 주었다.
여기서 무너지게 되면 자신의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도, 마법사로서의 성공에 대한 열망도.
모든 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견뎌야 했다.
“그래도.”
여자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재현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을 거의 밀착시켰다.
“눈빛 하나는 마음에 드네.”
여자는 그를 보며 쿡쿡 웃어댔다.
재현은 급박하고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겁에 질리기보다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이런 인간에게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야. 넌 너무 약해. ‘종말’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 넌 더 빨리 강해져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다시 그 지옥이 되풀이된다면.”
재현은 뭔가 묻고 싶었지만,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목젖을 찌른 손톱을 거두어들이더니, 이번엔 목을 움켜쥐며 옅게 웃었다.
“내가 먼저 널 죽이겠다.”
“크헉!”
그렇지 않아도 많은 피를 흘린 재현에게 여자의 압도적인 힘을 저항할 수단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전부.
‘젠장…….’
재현은 공포에 질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중이었다.
‘뭐지? 대체 뭐야? 이 여자는……!’
“커헉!”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이 재현을 닥쳐올 즈음, 여자는 목을 움켜쥔 손을 놓았다.
그녀는 재현을 향해 웃으며, 선심 쓰는 얼굴로 말했다.
“너는 우리에게 중요한 말. 그러니 기회를 주마.”
여자는 섬짓한 미소를 지으며 이었다.
“강해지거라.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이 앞의 나이트 셰이드를 쓰러뜨리렴. 그럼 내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줄 테니까.
허나. 아까도 말했지만 네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어. 두 달. 그 안에 이 녀석을 쓰러뜨리도록 해.”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재현의 머릿속에 청량한 시스템 음이 들려왔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헬의 시련》이 수주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헬의 시련
헬헤임의 지배자 헬이 당신에게 시련을 내립니다. 기간 안에 나이트 셰이드를 쓰러뜨리고 헬의 인정을 받으십시오.
난이도: C
보상: 헬의 선물(퀘스트 클리어 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59일 23:59
실패 페널티: 사망
정신을 잃어 가는 와중에 떠오른 시스템 창에 재현은 당혹감을 느꼈다.
여자의 말 한 마디에 시스템이 새로운 퀘스트를 자신에게 주었다. 심지어 메인 퀘스트라고 불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퀘스트를.
‘이 시스템과…… 여자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합당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스스스…….
여자의 옅은 미소와 함께 재현의 몸 아래서 무수한 수의 검은 손이 올라오더니, 그의 몸을 붙잡아 아래로 서서히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재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이건…… 대체?!’
기괴하고도 흉측한 모습을 한 검은 손에 재현은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손이 재현의 몸을 휘감아 올 때마다, 그의 정신이 조금씩 현실과 멀어졌다.
동시에, 잃어 가는 정신 속에서 여자의 희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명심해라. 그 안에 성장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넌 내 손에 죽을 터이니.”
어둡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속. 땅의 심연으로 끌려가는 재현을 보며, 여자는 뒤돌아섰다.
“노르니르의 선택을 받은 아이야. 부디 무운을 빌어 주지.”
* * *
파지지지직― 쿵!
마력이 연쇄 충돌하며 고압적인 파열음을 쏟아낸다. 거의 동시에 나무로 된 거대한 문이 쿵, 하고 닫히며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이 던전 입구에 터져 나온다.
“커헉!”
조금 우스꽝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재현은 불시에 눈을 떴다.
“하아…… 하아…….”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호흡이 가빠 왔다.
마치 수면 아래에 오래 잠영해 있다가 올라온 잠수부처럼, 귀가 먹먹해 잘 들리지 않고 시야가 불분명했다.
어지럽고 정황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여긴…… 던전 입구?”
눈이 가늘어지며 정신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한다.
재현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푸른 게이트를 보는 동시에, 자신의 복부를 더듬거리며 두어 차례 쓸어 보았다.
곧 그의 입술이 떨려 왔다.
“이건…….”
조금 전 나이트 셰이드에게 입었던 상처가 말끔히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아 있다. 그 여자가 한 짓인가?’
언제든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상처였다.
나이트 셰이드의 주먹은 재현의 연약한 피부를 정확히 뚫어내다시피 했고,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채로 그는 많은 피를 쏟아내야만 했다.
‘대체 뭐지? 그 여자…….’
재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청량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를 수주하였습니다. 정보를 표시합니다.
[메인 퀘스트]보상: 헬의 선물(퀘스트 클리어 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59일 23:34
실패 페널티: 사망
퀘스트 창을 보던 재현의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꿈이 아니었어.”
재현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조금 전, 자신과 조우했던 여자가 바로 이 ‘노르니르 시스템’과 관련이 있으며, 자신이 회귀한 것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재현의 시야가 머문 곳은 다름 아닌, 메인 퀘스트의 이름이 적힌 칸.
―헬의 시련.
헬. 익숙한 이름이었다.
신화의 아홉 세계 중 헬헤임을 관장하는 죽음 세계의 신이자, 모든 것의 끝.
“내가…… 신을 만났다는 건가?”
터무니없는 일이었지만,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가 덧씌워진 지금의 세계다.
또한, 신화의 주인은 오딘을 주축으로 한 에시르 신들. 결코 이 이야기의 주인은 인간이나 미드가르드의 약해빠진 피조물 따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도 신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히 옳을 터.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가능성은 높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재현은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조금 전. 나는 노르니르 시스템의 부름으로 원래의 E급 던전이 아닌 헬헤임 던전으로 전이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나이트 셰이드의 공격을 받고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지.
거기서 나타나 날 살려 준 게 바로 헬.’
그렇다는 건, 헬은 적어도 자신을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그녀는 재현을 대적자라고 불렀다.
또한 ‘로키’가 자신을 에시르 신들의 대적자로 선택했다고 했다.
“예전에 회귀하기 전에…… 노르니르 시스템을 얻은 직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었지.”
―사용자는 드높은 에시르 신좌의 대적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게 불명확해. 어째서 내가 회귀하게 되었는지.
또 헬이 말했던 ‘대적자’라는 게 무슨 말이고 그들이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하지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재현은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강해져야 한다.
재현은 그렇게 되뇌었다.
“만약 헬이 했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면…… 난 두 달 안에 나이트 셰이드를 쓰러뜨려야만 한다. 그러지 못하면 틀림없이 헬에게 죽을 테니까.”
헬은 분명 재현의 목숨을 살려 주며 기회를 주었다.
허나, 이는 두 달의 유예 기간 동안 재현이 나이트 셰이드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안이다.
재현은 곧바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달 안에 나이트 셰이드라…… 쉽진 않겠지만 목표가 생겨서 좋은데?”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재현은 중얼거렸다.
재현은 차분히 자신의 현 상황을 분석하며 부족한 점을 파악했다.
“기본적인 전투 방식부터 모든 게 다 문제야. 난 아직 마법계로서의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낮은 등급의 마법조차 다 익히지 못한 상태니까.
여기서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기초만큼 중요한 게 없어.”
재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그리고 문자를 보내려던 순간.
때마침 상대에게서 먼저 문자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박성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유성은 대표님께서 민재현 군을 직접 뵙고자 하십니다. 혹시 내일 시간 괜찮으십니까?] [제안 드린 계약 건에 대한 답변도 함께 듣고 싶다고 하십니다.]“때마침 좋은 타이밍인데?”
재현의 입가에 탐욕 어린 미소가 번졌다.
그는 재빨리 답신을 작성해 전송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계약 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안을 더 들어주실 수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