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87
387화 미미스브룬느(1)
재현이 향하고자 하는 곳은 지혜의 거인 미미르가 있는 샘, 미미스브룬느였다.
오딘이 자신의 눈 한쪽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혜를 얻고자 했던 장소이자, 자신이 ‘오딘의 잃어버린 눈’을 얻게 된 발생지가 된 장소.
재현은 그곳으로 향해 몇 가지를 얻을 계획이었다.
…김유정은 졸지에 스킬 덕분에 함께 가게 된 입장이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표정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재현은 그게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왜 위험한 곳에 가는데 그렇게 웃고 있냐? 파피랑 떨어지는 거 엄청 싫어하더니만, 이번에도 그래서 그러냐?”
가벼운 물음에 김유정은 전혀 고민도 않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용용이도 좋긴 한데, 사실 그거 때문만은 아니야. 난 그냥….”
그때, 재현은 어째서일까. 자신이 물으면 안 되는 것을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수습하려던 때, 이미 김유정의 이어지는 말이 선명히 그의 귓가에 떨어졌다.
“너랑 같이 있으니까 좋은 거지.”
재현은 헛숨을 들이키며 기침을 했다. 역시 이런 건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김유정은 이런 말을 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대체 언제 이렇게 뻔뻔해진 걸까.
재현이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야, 상황이 상황인데. 그런 말이 나오냐?”
그릉!
재현은 어떻게든 그녀 쪽을 보지 않으며 그렇게 답했지만, 파피가 김유정의 편을 든다는 든 손을 번쩍 들고 제 주인에게 사과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걸까.
최근 파피의 살이 조금 찐 것을 보아, 아무래도 김유정이 자기가 한 요리를 많이 먹인 게 원인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었다.
하나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상태. 어쨌든 증거가 없기에 재현은 한숨을 쉬는 것 외에 다른 건 할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지 뭐.”
“당연하지! 너 엘프 마을에서도 걔들 홀리고 왔다면서. 너 그거 나쁜 버릇이야. 아무 여자나 막 그렇게 홀리는 거!”
“그, 그건 걔가 갑자기 그런 이야길 한 거고 나랑은 상관이 없는 거잖아.”
재현은 왜 자신이 말까지 더듬으며 그 이야기를 해명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쩔 수 없다 생각해 그렇게 말했다.
사실, 김유정은 진심으로 그를 질책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녀의 마음은 순수했다. 걱정하는 마음.
당연하게도 서이나 역시 그랬다.
때문에 재현은 이 상황이 영 달갑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이 최대의 효율을 발휘하기 위해 그녀를 데리고 왔지만….
마음 한편의 자리한 미안함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이용해 두려울 텐데 억지로 이런 위험한 곳에 끌고 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자신이 못된 놈이 맞았다. 욕먹어도 싸지.
재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김유정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개월 전.
시그룬과 로키와 조우했던 그날. 미래에 자신의 죽음이 예견돼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김유정의 표정이 어땠던가. 두려움, 공포에 떨고 있던 그녀의 표정을 그는 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희생했다. 김유정에게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김유정은 그렇게 한 것이다.
재현으로서는 자책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그렇게 의식하지 마.”
그런 고민에 빠져 있던 때, 김유정이 갑자기 그렇게 말해왔다.
재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김유정이 싱긋 웃으며 재현의 어깨에 붙어 있는 먼지를 털어주었다.
“나는 내가 오고 싶어서 네가 한 제안에 긍정적으로 답해준 거거든.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그렇게 꿍하게 있으면 나까지 기분이 나빠지니까.”
“……그래. 고맙다.”
재현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답이 석연찮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후라면, 조금 더 명쾌한 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어쩔 수 없다는 이름에 가려져 버린 우유부단함도, 거기서 끝나지 않을까.
사고가 가지를 치고 이어갈 때쯤 김유정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 나중에 대답이라도 좋은 쪽으로 들려주면 되겠네. 안 그래?”
* * *
김유정은 말한 뒤, 재현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싱긋 웃었다. 언제나처럼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등이었다.
‘민재현… 아마 나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내가 억지로 자기 때문에 위험한 곳에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 거야.’
하여튼, 사람은 잘 이용하는 주제에 항상 서투른 사람이었다.
사실 김유정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재현이 왜 자신과 함께 가기로 했는지. 자신에게 효용 가치가 있으니까. 그가 싸울 때 그녀가 힘이 될 수 있으니까.
그게 전부였다. 스킬이 재현과 궁합이 잘 맞고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자신과 함께 아스가르드로 향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슴 속에 피어나는 작은 불씨와 같은 열망이 계속 크기를 키워가는 것은, 그녀로서도 불가항력이었다.
누군가 말했던가, 사랑은 열병처럼 앓다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놔야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김유정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마음을 전달했고, 그 마음이 재현에게 조금이나마 닿았다는 것은 이미 깨달았다. 자신은 재현을 진심으로 아끼고 있고, 그것은 재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면, 그때 그처럼 자신을 위해 울어줄 수 있었을까.
재현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충격에 눈물을 보였다. 그 강하던 아이가. 언제나 단단하던 등이 허물어졌다.
결단코 그것은 거짓된 감정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시그룬을 처치하고 돌아온 텅 비어있던 재현의 표정을, 김유정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땀 냄새가 섞여 있는 따뜻했던 품도 그랬다.
모든 것이 그 순간에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 김유정은 재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이나.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위해서 털어내기로 했던 결정이 무색해질 만큼 재현을, 그녀는 사랑하고 있었다.
그 감정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세계가 무너지고 있고, 라그나로크가 미드가르드 전역을 찢어버릴 것이다. 자신도, 가족도 모두 죽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 솔직하게 답하며 조금씩 나아가 보자고.
그게 마지막 순간까지 할 수 있는 자신의 최선이 아닐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그러고는 재현의 어깨에 붙어 있지도 않은 먼지를 털며 가볍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새하얀 목선이 드러나며 뿌려둔 향수의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번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그 역시 이 향을 자주 썼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현은 그렇게 안 생겨서는 의외로 독한 향수에 내성이 없다.
오히려 이런 상큼한 향을 좋아하면 훨씬 더 좋아했지.
‘이나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이번에는 내가 민재현을 좀 빌릴 타이밍이니까.’
아마 피차 불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김유정의 입에는 여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재현과 김유정은 두 명이 족히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텐트와 갖은 물건들을 잔뜩 가져와 바닥에 죽 내려놓았다.
처음 게이트를 열고 미미스브룬느가 있는 거인의 세계. 요툰헤임에 온 것까지는 꽤 좋았지만, 길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애초에 요툰헤임을 방문할 거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반 에시르 세력에 도움을 청할 수도, 지도를 받아 올 수도 없었다.
그저 미친 듯이 찾아다니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미스브룬느의 위치를 얼추 짐작할 수 있다는 건가.’
미미스브룬느. 미미르의 샘 위치는 신화 속에서도 간략히 서술돼 있기에 대충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위치는 이그드라실의 세 뿌리 중 요툰헤임을 향해 뻗은 뿌리의 가장 아래. 정확히 그로 통하는 길은 찾지 못했어도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과거에 헬라에게도 한번 확인받은 적이 있기에 확실했다.
타박. 타박.
그런 생각을 하며 찾아 나서길 수 시간이 지났고, 재현과 김유정은 어두운 동굴을 뒤적이며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고대 던전인 듯 보였다. 다만, 레이더들이 공략하던 던전의 개념이 아닌 진짜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던전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키에에엑!
퍼엉!
지금 나타난 것처럼 신화급에 도달한 마수가 등장할 리가 없으니까.
재현과 김유정이 상대하고 있는 이들이 만약 미드가르드의 던전에서 발견되었다면 세계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신만큼 그 격을 지닌 이들은 아니었다. 다만, 그 파편 정도는 되는 녀석들이 타락해 자신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것은 꽤 참기 어려웠다.
재현은 덕분에 주변을 싹 다 정리하며 나아가야만 했다.
김유정 역시 서포터 역할을 확실히 했다. 이제 그녀는 웬만한 서포팅 스킬은 캐스팅 없이도 발동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히 성장해 있었다.
물론 그 효율이 약간은 떨어지나, 그것을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판단력과 타이밍, 전장을 읽는 능력은 우수했다.
재현이 김유정을 데리고 온 이유가 빛을 발한 셈이었다.
그렇게 전투를 마친 뒤, 재현은 길을 찾던 일을 잠시 멈추고 쉬기로 했다. 자신의 경우야 상관없지만, 김유정은 아직 온전히 신격을 얻지 못했다.
해방 3단계. 그곳에 다다라야만 헬의 회의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진다.
반면, 나인의 멤버들은 서이나를 제외하고는 이제 겨우 1단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마저도 헤임달을 상대하며 스스로의 격을 꽤 끌어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휴식 없이 전투를 속행하는 것은 영 좋지 않았다.
재현 역시 격을 얻었다고는 해도 마력과 체력을 비축하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었고.
“텐트는 하나밖에 안 가져왔어?”
재현이 김유정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김유정이 텐트를 치며 약간 음 이탈을 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뭐 그렇게 두 개나 갖고 올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다른 것들 챙겨오기도 정신없고. 정리할 때도 귀찮잖아.”
“뭐 그런 거라면.”
재현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쩐지 검은 속내가 드러나는 듯했으나 티는 내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타나는 마수들의 수와 그 종류, 또한 앞으로 나타날 녀석들의 정체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신격 해방 4단계에 있는 자신이라도….
“역시 그건 아닌가.”
재현이 피식 웃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마수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를 귀찮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이룬 경지는 이미 세계 다섯 손가락 안이니까.
“자, 그럼 좀 쉴까?”
재현의 말에 김유정이 약간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