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56
외전 14. 신화의 종막(終幕)(1)
태어나서 처음 겪는 숙취에 재현은 기겁하며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기억이란 게 순식간에 증발하지?
스무 살의 신입생 환영회라도 다녀온 것처럼 재현은 크게 당황 중이었다.
회귀 전에는 이 나이 때 바로 일선에서 일했고, 각성자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없었다.
회귀 전에도 재현은 어쨌든, 각성자였다.
레이더로서 활동을 7년이나 해왔던 그에게 숙취로 인한 고생 따윈 없었다는 뜻.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상황을 몸소 겪으니 괜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동료들이라 해도, 결코 추태까지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애석하게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재현의 물음에도 그들은 서로 잠시 눈을 맞춘 뒤, 피식 웃을 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밤에 도대체 난 무슨 짓을……!’
재현이 기겁하며 얼굴을 양손으로 짚은 채 쭈그려 앉아 있는데, 김유정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어제는 뭐 이것저것… 여러모로 굉장했지. 그치 이나야?”
“……응.”
서이나마저 그렇게 말하자, 재현은 거의 나라를 잃은 얼굴이 되었다.
어쩔 수 있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그리 많지 않았다.
“제발 무슨 짓을 했는지라도 알려줘라. 지금 나 심란해.”
“어제의 재현 군은…… 여러 의미로 어마어마했죠. 저희끼리는 말씀드리지 않기로 정했지만요! 하아~ 어쩔 수 없죠. 너무나 말씀드리고 싶지만, 동료들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으니까!”
헬라는 재현을 명백히 놀리고 있었다.
하지만 재현으로서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재현의 고민과는 달리.
재현의 주사는 매우 별것 아닌 편이었으며 다른 이들을 오히려 과하게 챙겨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재현에게 평소 과하게 시달리던 이들에게는 지금이 그를 놀리기 적합한 타이밍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그… 너무 걱정하지 않……읍!”
루이나가 측은한지 뭔가 말하려 했으나, 어렵지 않게 곧 입이 틀어막혔다.
다른 세 명이 그녀의 입을 꽉 쥐어 버린 것이다.
허망한 재현의 눈이 눈에 들어왔다.
그로서는 이제야 뭔가 듣나 했지만, 결국 또 입을 닫아 버린 것이다.
안호연과 이재상, 권소율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 역시 뭔가 말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않고 있었다.
이재상은 우물거리는 것이, 어쩐지 다른 이들의 압력을 받은 듯 보였고.
이는 안호연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쨌거나.이들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던, 그렇지 않던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진 않았다.
재현과 동료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고 즐거웠기 때문에.
재현도 내심 미소를 지으며 이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약간의 허탈감과 레이더로서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모두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재현은 이게 평화로운 일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나의 신화는 태동하게 되었다면, 언젠가 종막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신화라는 것에 열광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신의 이야기이지만, 가장 인간적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북유럽의 신과 교류하고 경험을 쌓아온 재현은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사실 그들이 인간과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하나의 신화는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수많은 사람들의 이제는 아릿해진 기억과 파편을 불쏘시개로써 타올라 화한다.
* * *
이후, 재현은 네 여자와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여전히 최고신의 자리를 지켜내며 제 위치를 올곧이 했다.
이제는 그들과 함께하는 것 역시, 서로에게 감정을 주는 것에도 익숙해진 재현이었기에 다른 문제는 없다고 판단되었다.
격을 얻고 가장 드높은 자리에 오른 그이기에 사실 어떤 논리나 법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기도 했고, 놀랍게도 김유정의 부모님은 딸이 좋다면 뭐든 괜찮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문제없이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승낙받을 수 있었다.
“의외지?”
김유정이 자신의 집에 함께 다녀오느라 식겁한 재현을 흘깃 바라보며 말했다.
재현으로서는 아마 뺨 수십 대 정도는 내주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딸을 금지옥엽으로 키우신 분이다.
어쩔 수 없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현은 나름의 희생(?)을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김유정이 결정한 문제라고 해도, 이건 상황이 심각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김유정의 아버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하하! 나도 그렇게 인기가 있던 시절이 있었지! 괜찮아, 걱정 마라. 재현아. 난 솔직히 네가 진작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게 남자로서 의심스러웠으니까!
-이제는 네가 남자라는 걸 믿는다! 하긴 내 딸 정도면 어마어마한 미인이지.
-나도 소싯적이었으면 당장…….
-당장 뭐요?
도중에 김유정의 아버지가 식은땀을 흘리게 된 계기는 한 마디였다.
나도…….
이를 시작으로 김유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직감적으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았기에 그녀가 재현의 손을 깍지끼며 맞잡고는 말했다.
“우린 튀자!”
“……어? 그래도 돼?”
“당연하지! 저러면 밤새 싸우실걸? 여기 있는 게 더 손해야!”
김유정은 너무 당당히 말했고, 재현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움직였다.
이어 한참을 김유정과 재현이 밤거리를 내달렸다.
이들은 각성자였기에 전혀 지치지 않았고, 빠르게 주위 풍경이 훅 들어왔다가 멀어지는 것이 눈에 선연히 보였다.
이제 격을 얻은 김유정과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젠 신격을 얻은 시점에서 신이나 다름없고, 죽고 싶다 하여 쉽게 소멸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들은 어쩌면 재현과 영원히 함께해야 하는 셈이다.
‘소율 선배가 이걸 듣고 한 말이 가관이었지.’
-…내가 너 시다 짓을 펴, 평생 해야 한다고?
-나, 나는 괜찮아!
거기서 이재상이 눈치 없이 끼어든 덕분에 권소율의 주먹을 한 대 맞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현이 픽 웃자, 안호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조각나지 않아서. 나는 내 친구가 조각 케이크가 되는 걸 원하진 않았거든.
-??
재현은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어쨌거나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충고임을 새겨들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안호연이라고 해도, 뒤에서 자신을 오래 지켜봐 오지 않았나.
그의 충고는 새겨들어 나쁠 게 없었다.
“이나야. 루이나, 헬라 당신까지.”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고 있자니, 어느새 깨진 가로등 아래로 다섯 사람이 모두 모였다.
“…유정이네 아버지나 어머니는 뭐라고 하지 않으셨어?”
“일단은.”
“…다행이다.”
서이나가 입가에 은은한 웃음을 띄웠다.
사실 그녀 역시 다른 친인척들에게 관련해 말을 전해야 하나 했지만, 서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할 뿐이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인 길드의 멤버들 뿐이야.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써.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할 거야.
의지마저 가득 찬 얼굴로 그렇게 말한 서이나였다.
때문에 재현은 곧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달이 참 맑아요! 몬스터 웨이브가 지나가서일까요?”
루이나가 사근사근하며 팔짱을 끼며 말을 붙여왔다.
김유정과 서이나의 표정이 잠시 굳더니, 스멀스멀 재현과의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서이나는 조심스럽게 반대쪽 팔을 쟁취했고, 김유정은 뒤에서 와락 재현을 껴안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
“이런 복에 겨운 놈을 봤나……! 이렇게 예쁜 네 명한테 어떻게 한꺼번에 사랑을 받을 수 있지? 너 우리한테 세뇌라도 건 거 아냐?”
“……내가 그런 놈으로 보….”
“히히, 당연히 장난이지.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못… 생기진 않고 잘은 생겼는데, 아! 어쨌든 못생겼다고!”
“…….”
김유정은 여전히 제멋대로였다.
자신을 좋아하며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주춤거리던 모습이 아니라, 원래 그녀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에 뭇내 재현은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은 신격을 얻고, 수많은 존재와 싸우며 너무 많이 바뀌었는데 아직 과거의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게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 말이다.
“너는 그대로여서 다행이다.”
“엉?”
김유정이 약간 상기된 볼을 한 채 재현의 뒤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힌다.
붉어졌던 얼굴이 더 빨갛게 타오른다. 재현은 그대로 잠시 가만히 있었으며, 정적이 잠시 흘렀다.
물론 이를 깬 것은 서이나였다.
“……독점이 너무 길어.”
“아! 미안… 이나야. 그치만 쟤가 나 먼저 노려봐서…….”
“네가 간지럽힌 건 생각 안 하고?”
재현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김유정은 어버버 거리더니.
이내 귀를 꽉 막은 채 아아아아, 안 들린다는 말을 반복했다.
서이나는 재현에게 가까이 붙으며 김유정이 떨어진 자리에 섰다.
“…나는 어때?”
“응?”
“지금의 나는 처음 봤던 나랑 비교해서 어떤 것 같아?”
서이나의 맑은 두 헤이즐넛 색 동공에 재현이 담겼다. 그곳의 제 모습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더는 망설이지 않고, 이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재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은 결국 이토록 돌고 돌아도 결국, 제자리로 오기 마련이다.
재현은 서이나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너는 변한 게 더 좋아.”
“좋다…고…?”
어쩐지 서이나가 고장이 났다.
이런 포인트에서 왜 갑자기?
재현은 의문을 가졌으나, 뒤편에서 헬라가 한숨을 쉬었다.
루이나가 으으, 하는 소리를 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에도 뺏겼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린데?”
“재현 님한테 누가 먼저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는지 저희끼리 내기했거든요! 그런데 첫 키스도 모자라서 좋아한다는 이야기까지 빼앗기다니……!”
“잠깐.”
재현은 의아해서 이들을 잠시 멈춰 세웠다.
“루이나, 너 내가 이나랑 키스한 건 어떻게 알고 있어!?”
“아니 뭐… 들었으니까……?”
루이나가 어물쩍거렸고, 그 사이 서이나가 슬쩍 팔을 빼며 도망가려 했다.
재현이 그녀의 어깨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죽은 눈으로 웃었다.
“어딜 도망가.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은 해주고 가야지?”
“…그, 그게…….”
드물게 볼 수 있는 서이나의 당황한 표정.
애석하게도 재현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아무래도 나랑 키스한 걸 자랑하고 싶어서 말한 것 같은데…….’
그럴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서이나였기에 재현의 배신감은 두 배가 되었다.
헬라가 붙잡힌 서이나, 그리고 여전히 팔에 붙어 있다가 말실수를 한 루이나. 발치에서 구경하다 슬금슬금 자리를 피할 준비를 마친 김유정을 보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길겠는데요…?”
재현이 최근에 좀 잠잠했었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꽤 오래 시달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라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도와 도망치던 김유정을 붙잡았다.
김유정이 갸악 소리를 내며 기겁했다.
“헤, 헬라!?”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재현 군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거라서. 어차피 재현 군이 종속이라도 쓰시면 그대로 스톱이잖아요. 저렇게 보여도 뒤끝 기신 거 아시죠? 포기하시고 대기하세요.”
혹시 알아요?
헬라가 웃으며 이었다.
“재현 군이 한 번쯤은 봐주실지도…….”
“뒤끝이 길어 죄송하네요. 헬라, 당신도 남아요.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드장 알기를 너무 쉽게 아는 거 아냐!?”
재현이 그렇게 말하며 동료들과 함께 실랑이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로키는 그저 작게 웃을 뿐이었다.
그래, 이거면 됐다.
“헤니르. 네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수고했다.
그렇게 말하며, 로키는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처음 보는 작은 크기의 검은색 게이트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재현은 아직 모르겠지만, 로키는 알았다.
종막(終幕).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무언가, 사건이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