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90
89화 길드 체험(1)
‘어쩐지. 그날 눈에 띄는 생도가 누구인지 묻더라니…….’
재현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과거를 회상했다.
일전에 신입생 사냥의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연화 길드를 방문했던 때, 유성은과 박하나는 재현에게 물었다.
혹시 이번 신입생 사냥에서 눈에 띈 생도가 있었는지.
또 연화가 직접 나서서 스카우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들인지.
당시 재현은 계약을 갱신하며 네 사람의 이름을 전달했다.
안호연, 김유정, 서이나, 이재상.
재학생인 이재상을 제외하면 모두 재현과 같은 또래의 생도들이었다. 함께 신입생 사냥을 치른 생도들이자, 전체 랭킹 1에서 4위를 기록한 천재들.
연화 길드에서는 이 네 생도의 활약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덕분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재현의 파벌들이 모두 연화에서 길드 체험을 받게 된 것이다.
정확히는 그 기회를 얻게 된 것이지만……
아마 거절할 이는 없을 터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현존 최강 길드.
연화가 가진 명성이란 실로 어마어마했으니까.
‘아마 안호연도 분명히 지목됐겠지. 한 사람이라도 놓치실 성격이 아니니.’
재현은 의자를 약간 뒤로 젖힌 뒤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다른 길드의 구조와 시스템이 어떻게 돼 있는지 두 눈으로 볼 기회가 날아갔다.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선생님이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나로선 별 방법이 없긴 하지만.’
재현으로서는 별수 없는 일이었다.
무려 연화 길드의 길드 체험 제안이다. 거절했다간 한동안 유성은의 얼굴을 보기 껄끄러워질 게 분명했다.
아마 유성은 역시 이를 알고서 은근히 압박을 주는 것일 테고.
“선생님도 좀 치졸하시네. 이런 비겁한 수를 쓰시다니.”
뭐, 따지고 보면 마법 스승인 유성은이 재현을 다른 길드로 보내 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언질은 좀 주시지. 그냥 실력 있는 애들 이름을 죽 읊었을 뿐인데. 그걸 이런 식으로 사용하실 줄은 또 몰랐네.’
재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얼얼함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지.”
명료한 결론이었다.
물론 억지로라도 다른 길드로 가겠다고 하면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최근 공방 엘릭시르를 오픈하면서 유성은과 연화 측에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계약을 새로 갱신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여기서 우선 지명을 거절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었다.
“하…….”
재현이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교관은 계속 호명을 이어갔다.
“그럼 다음으로는 생도 이수혁. 《해신》 길드에서 우선 지명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류 정리 후 자정까지 관련 자료 메일로 넘겨 주시기 바랍니다.”
가고 싶었던 해신 길드에는 이수혁이 가게 됐다.
일전에 체력 테스트에서 재현과 마찰이 있었던 생도.
아무래도 운이 좀 따라 준 모양이었다.
‘칫.’
재현은 짧게 혀를 찬 뒤 턱을 괬다.
“다음은…….”
교관은 계속해서 지명을 이어나갔다.
하나같이 전도유망한 생도들의 이름이 호명된다.
재현은 이제 교관의 목소리가 얄밉게 들릴 지경이었다.
“후…….”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정신을 차렸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재현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어차피 연화 길드 시설이 좋은 건 두말할 것도 없고…… 해신 길드에 가보고 싶긴 했지만, 이수혁과 얽히는 건 또 사절이니까.’
보나 마나 이수혁과 함께 갔다간 또 시비를 걸어올 게 분명하다.
회귀 전과 달리 힘을 갖추고 있기에 큰 문제는 없겠지만, 굳이 번거로운 일에 휩쓸리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한 게 더 나았다.
잠시 후.
교관의 호명이 모두 끝나며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현은 잠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사람이 좀 빠진 뒤 몸을 일으켰다.
뒤를 도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민재현! 같이 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김유정과 서이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재현은 두 사람을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화 길드로 간다면 적어도 이번 이벤트에서 내 동료들이 죽을 일은 없다.’
하지만 그 말인즉슨.
길드 체험에서 반드시 죽어 나가는 무고한 생도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안호연으로부터 아지트에서 모이자는 긴급 연락이 왔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온 연락이었다.
* * *
몇 시간 전.
오후 여섯 시 경. 밀레스 아카데미의 개인 훈련장.
검술 훈련을 끝마친 안호연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으으……. 재상이 형한테 피로 회복 포션이라도 좀 달래야 하나. 요새 영 뻐근한 게 몸에 피로가 누적된 것 같단 말이야.”
안호연은 근래 매일같이 이론 수업이 끝난 후 검술 특훈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검에 쏟는 시간만 약 여섯 시간에 다다르는 살인적인 스케줄.
덕분에 온몸이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고, 특히 훈련을 막 마친 지금은 움직이는 게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물론 노력한 덕분에 새로운 스킬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새롭게 익힌 스킬이 신체에 적잖은 데미지를 입히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무려 S급 스킬.
아직 생도 신분인 안호연이 다루기에는 적어도 몇 년은 더 걸릴 기술이었다.
‘지금은 한계까지 노력한다고 해도 고작 6~7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데 그치겠지…….’
하지만 안호연은 개의치 않았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아직 내가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스킬은 아니야.”
그래도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그는 《무의 극의》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신입생 주제에 A급 스킬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허나, 안호연은 이에 만족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재현이는 이미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어. 밀레스 학원제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라.”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털어냈다.
물론 조급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 휴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신체는 무너진다.
지금은 쉬어야 할 때다.
안호연은 생도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려다. 문득, 자신을 호명하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발원지는 훈련장 상단에 비치된 스피커였다.
[아아…… 안호연 생도. 구자인 이사장님의 호출입니다.] [듣는 즉시 옥상의 이사장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안호연이 의아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사장이 왜 날 찾는 거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밀레스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구자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다.
구자인 역시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유인물이나 메시지를 애용하는 편.
굳이 직접 대면하고 대화를 나눌 이유는 없을 텐데.
곰곰이 생각하던 중.
문득 불안한 상념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재현이 일전에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때는 신입생 사냥 당시였다.
[별거 아냐. 정신 조작계 마법에 걸려서 그렇게 된 거지.] [……내가 마법에 조종당해서 널 공격했다는 거야? 하지만…….] [다른 존재가 이번 신입생 사냥에 개입한 거다. 생도들은 감히 어떻게 해볼 수조차 없는 거물이 이 게임을 조작한 거지. 뭐, 목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어떤 존재인지. 어째서 신입생 사냥에 개입했는지. 넌 알아?] [아니.]안호연은 재현과 나누었던 대화를 상기하며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신입생 사냥에 개입한 걸까.
왜 하필 자신에게 정신 조작을 사용해 재현과 맞붙게 만든 거지?
고민 끝에, 안호연은 한 가지 확신을 했다.
‘신입생 사냥 당시의 사건은 구자인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쉽게 사건을 묻어버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사건 직후.
아공간에서 벌어졌던 일은 단 한 마디도 뉴스에 실리지 않았다.
모의 던전에서 있었던 일 역시 마찬가지.
명백히 위험한 사건이었음에도 신문에는 그저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라는 정도로 기술되고 넘어갈 뿐이었다.
이게 우연일까?
애초에 아공간 필드를 구축한 것도.
모의 던전을 비롯한 모든 이벤트를 주관하는 것도 구자인이다.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답은 나와 있었다.
구자인.
그는 이벤트로 하여금 생도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물론 어째서 그런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번이나 우연이 겹칠 리는 결코 없었다.
구자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
이벤트는 그를 위한 초석.
그게 안호연의 생각이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안호연은 짐을 챙겨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부딪히고, 구자인이 자신을 호출한 목적을 알아내는 것.
당장은 그게 최선이다.
잠시 후.
안호연은 이사장실로 향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심호흡을 하며 앞의 거울을 바라봤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침을 꿀꺽 삼킨 뒤 마음을 다잡았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 * *
구자인 이사장실.
방 내부로부터 통화하는 구자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필요 없는 쓰레기들은 이번 기회에 모두 솎아내려고 합니다. 애초에 재각성을 노릴 수준도 못 되는 바닥들에게 매년 지원금을 쏟아붓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요.”
[상위권 생도들의 지원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그야, 하위권 버러지들을 여럿 불구로 만들고 나면 상위 1퍼센트에게 돌아갈 자원이 풍족해지지 않겠습니까?
뭐, 들려오는 잡음이야 박 의원님께서 어련히 잘 막아 주실 테고요.”
구자인은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스마트폰 너머 상대의 비위를 맞추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말투만 공손할 뿐, 그 태도는 건방지기 짝이 없지만.
[하지만 어떻게 할 생각이지? 한 달 전. 모의 던전에서 일을 너무 크게 벌였어.]박 의원은 걱정스러운 어투로 이었다.
[‘레이더 관리 본부’. 녀석들도 슬슬 움직이기 시작할 거다. 이미 밀레스 내부에 첩자를 심어 뒀을지 모르는 상황이지.그놈들, 다른 건 몰라도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놈들이거든.]
구자인은 박 의원의 말에 코웃음 치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래 봐야 국가의 녹을 먹는 개일 뿐이지요. 그리고…… 준비라면 이미 모두 끝내 두었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준비라면?]“며칠 뒤에 있을 ‘길드 체험’. 그 이벤트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구자인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는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수차례 이벤트를 터뜨려 생도들을 시험해 왔다.
구자인은 지금껏 정·재계 고위 인사들에게 뇌물을 먹여 사건의 보도를 막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 시민들을 세뇌했다.
자신에게 들려오는 잡음을 막고,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구자인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었다.
“이번 길드 체험. 거기서 인위적으로 게이트를 터뜨릴 겁니다.”
[……게, 게이트를?! 그런 게 가능한 일인가?]“물론이죠. 어떻습니까? 잘만 하면 제 손을 직접 더럽히지 않고도 쓸모없는 것들을 죄다 쓸어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잠시 후. 전화기 너머의 박 의원이 결심한 듯 덧붙였다.
[알겠네. 그럼 전에 말한 대로 밀레스 측에 국가 지원금을 전달하는 걸로 하지.지금부터는 구체적인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눠 볼까 하네만…….]
“물론입니다. 얼마든지요.”
구자인과 박 의원은 그로부터 한참이나 길드 체험과 버려질 하위권 생도들의 처분에 대해 논의했다.
전화기 너머의 박 의원은 구자인의 계획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구자인은 치밀하게 하위권 생도들을 묻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각성조차 기대할 수 없는 바닥.
박 의원과 구자인에게 그들은 전혀 쓸모가 없는. 그저 고혈을 빨아먹는 모기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처분하기로 했다.
그들을 죽이면 다른 상위권 생도들에게 돌아갈 자원이 그만큼 풍족해진다.
뿐만 아니라, 중간 단계에서 적당히 자신들의 배를 채울 수도 있을 테고.
구자인의 계획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지금 바깥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한 소년이 아니었다면.
잿빛 머리칼을 지닌 소년.
안호연은 바깥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이게 대체 무슨……!’
통화 내용을 엿들은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다.
마침 문밖에서 대기하던 김석기 교관이 자리를 비웠고, 구자인에게 불려왔다.
노크를 하려던 순간, 박 의원과 구자인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연이 겹친 대가로 안호연은 구자인의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젠장……! 이제 알겠어. 그날 신입생 사냥에서 누가 내 정신을 잠식했는지. 모의 던전 사태를 누가 일으켰고, 관망했는지 모두!’
구자인.
밀레스의 이사장은 생도들을 죽음의 문턱에 밀어 넣고 있었다.
중하위권 생도들에게는 재각성을 종용해 더 나은 레이더를 양성하기 위해.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최하위권 생도들은 자금을 아끼기 위해.
‘역겨운 인간이……!’
안호연은 이를 악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모두에게 구자인의 악행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었다.
허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저 인간을 끌어내릴 수 있을까?
‘아니. 지금 섣불리 나서는 건 위험해.’
안호연은 일개 생도에 불과하고, 이곳은 밀레스 아카데미다.
구자인은 아카데미 내 최고 권력자.
여기서 섣불리 나서서는 승산이 없다.
‘다른 심복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게다가 밀레스 아카데미는 건물 전체에 강도 높은 마법이 둘러져 있어 녹음도 불가능하다.
사관 학교인 만큼 군 관련 기밀이 외부에 노출될 위험을 배제한다는 게 명목상 이유였다.
안호연은 차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차분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동시에.
‘막아야 한다.’
한 가지 생각만이 선연히 뇌리에 박힌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안호연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할 수 있다. 최대한 태연하게 해내야 의심받지 않아.’
안호연은 모든 결심을 마쳤다.
잠시 후.
박 의원과의 통화가 끝난 것인지, 내부에서 더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안호연은 그로부터 정확히 5분 후.
이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이사장님. 안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