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89
88화 예언의 대적자(2)
다음 날 수업이 끝난 후.
재현은 AR 전투 시스템장을 들러 훈련에 매진했다.
약 다섯 시간의 사투 끝. 자정에 가까워진 시각.
―AR 전투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현재 기록은 45단계입니다.
재현은 지금까지 기록했던 것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강화된 《매직 애로우》의 성능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다.
글레이프니르의 모조품을 착용해 스탯이 깎였음에도 이 정도 화력을 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재현은 여전히 만족할 수 없었다.
어제 헬라가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퀘스트 때문이었다.
―메인 퀘스트 진행도(1/5): 남은 시련은 앞으로 네 개입니다.
(퀘스트를 무사히 클리어하고 신살자가 되기 위한 육체를 만드십시오.)
[메인 퀘스트]신살자(神殺者)의 길.
사용자는 오딘과 아스가르드에 대항하는 대적자의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오딘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반(反) 에시르 신좌의 힘을 이어받으십시오.
헬의 시련: 1/1
□□□□□의 시련: 0/1
□□의 시련: 0/1
□□□의 시련: 0/1
□□□□□의 시련: 0/1
난이도: ???
보상: 반 에시르 신좌의 가호
재현은 시스템장 밖으로 나온 뒤 의자에 걸터앉아 어제를 회상했다.
헬라가 떠나기 전 해 주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두 번째 라그나로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종말이 다가오면 모든 굴레와 속박이 사라지게 됩니다.쉽게 말해, 당신을 지키고 있는 예언의 힘 역시 소멸한다는 뜻이죠.] [다음 시련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 안에 최대한 빨리 강해지세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헬헤임에서 만나게 될 테니.]
재현은 잠시 고민했다.
‘헬라의 말에 따르면, 예언의 힘이 오딘과 후긴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
하지만 그들은 이번 일로 내가 대적자로서 반 에시르 신좌에게 힘을 이어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거다. 어떻게 해서든 날 처리하려고 하겠지.’
헬라는 말했다.
라그나로크가 앞당겨지면 재현 역시 예언의 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
하루빨리 강해지지 않으면 10년은커녕 채 몇 년이 되지 않아 죽임 당하게 될 터.
허나. 재현은 선명히 되뇌었다.
“나도 거기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어.”
재현은 에시르 신과 후긴에게 더 놀아나고 싶은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어제 헬라는 다음 시련이 준비되면 다시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말하며 사라졌다.
떠나며 그녀는 말했다.
[시간을 돌리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재현은 피식 웃었다.
노르니르 시스템.
그것은 재현을 가장 소망하는 시절로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헬라는 반 에시르 신좌가 재현의 회귀를 위해 거의 모든 신력을 소모했으며, 더는 이와 같은 기연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래도 괜찮다.
재현은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이 두 개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언제나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뿐.
두 번째 시련은 아직 멀었으나, 재현은 더 강해질 것이었다.
재현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우선, 그는 증폭부터 마스터할 계획이었다.
* * *
지난 밤.
유선재가 민성오의 연락을 받은 것은 새벽 세 시 경이었다.
당시 그는 채권자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 중이었다. 유성은이 죽을 거라 생각하고 빌렸던 사채 때문이었다.
으득-.
생각만 해도 이가 갈렸다.
원래라면 지금쯤 이미 제 누이는 병에 걸려 죽고, 연화 길드 역시 자신의 손안에 들어왔어야 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일이 꼬이게 된 거지?
유선재는 울화가 치밀어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이었고. 덕분에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곧바로 받을 수 있었다.
발신인을 확인한 유선재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민재현. 그놈은? 처리하셨습니까?”
[죽이지 못했다. 배후에 강한 존재가 있더군. 나도 손을 쓸 수 없었다.]“젠장…… 그 새끼. 그래서 그렇게 날뛰고 다니던 거였나?”
유선재는 일그러진 표정을 한 채, 민재현의 싹수없는 얼굴을 떠올렸다.
연화 길드 본관에서 처음 그를 마주쳤을 때 당한 창피와 분노.
생각해 보면 그와의 악연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별안간 전화기 너머로부터 민성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네가 대답할 차례다. 어째서 아직 연화 길드를 삼키지 못한 거지? 분명 시간은 넉넉히 줬을 텐데.]“아, 그건…… 예상과 다른 변수가 생겨 어쩔 수 없이…….”
[그 변수라는 것. 그게 민재현과 관련이 있나?]뜻밖의 물음이었다.
하지만 유선재는 그 물음이 곧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제 누이가 죽지 않은 것과 민재현이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큼은 명확했다.
물론 재현이 확실히 그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첫 만남 당시 그는 분명히 말했다.
―유성은 대표님은 죽지 않을 겁니다.
유성이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외비였다.
한데, 어째서 재현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고작해야 생도인 유성은이 재현을 그토록 감쌌던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 틀림없이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게 유선재의 생각이었다.
때문에 민성오에게 그를 처치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고.
유선재는 전화기를 고쳐 쥐며 빠르게 대꾸했다.
“그, 그렇습니다! 민재현…… 그놈이 유성은과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알겠다. 그 건은 어떻게든 손을 써 보지.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해라.]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민성오의 목소리는 매우 무거웠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유선재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렇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처음 그들과 접촉했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그는 특히 위험하다.
민성오.
마치 인간이 아닌 마수를 마주하는 것과 같은 감각.
적어도 유선재가 알기로, 그보다 강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령, 대한민국 최초의 S급 레이더인 이재신과 맞붙는다 해도. 그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인물이었다.
허나, 조금 전 민성오는 직접 말했다.
자신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강한 존재가 민재현의 배후에 존재한다고.
유선재는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그토록 강한 민성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한 걸까?
그리고 재현은 어떻게 그런 거물과 접점이 있는 걸까?
* * *
그로부터 다시 며칠간은 이론 수업이 진행되었다.
당연한 일이다.
언제나 이벤트 며칠 전은 이처럼 이론 수업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밀레스 학원 측에서도 큰 이벤트에는 많은 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한동안은 어수선하고 정신없어진다.
교관이든 학생이든 서로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 실기 수업까지 겸할 여유는 없는 셈이다.
덕분에 재현은 최근 반복되는 이론 수업에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도서관에 있는 마도서란 마도서는 죄다 읽어 버렸으니…….’
실제로, 재현은 밀레스 아카데미의 부지 시설에 있는 도서관을 모두 찾아다니며 마도서란 마도서는 모두 읽어댔다.
애초에 귀한 물건인지라 몇 권 없었던 것도 있고, 재현이 사전에 찍어 둔 지구력 스탯 덕분에 지치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책을 모조리 탐독한 것도 모자라 교과서를 싹 다 외워 버렸다.
이후 따로 공부하는 게 귀찮기도 했고, 이왕 의자에 앉은 김에 해치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재현은, 실전 경험에서도 눈에 띄는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매직 애로우》를 한 차례 격상시킨 뒤, 다음과 그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하급 스킬 몇 개도 레벨을 조금씩 올려 두는 데 성공했다.
아마 이와 같은 성취는 다음 이벤트에서 그를 더 안전하게 만들어 줄 터.
마법을 반복해 사용한다.
식을 분석하고, 마력을 불어넣어 구현한다.
깨닫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재현은 한 단계 벽을 넘어섰다.
‘좋아. 이대로 순조롭게 간다.’
재현은 만족했으나, 아쉬운 마음 역시 감출 수 없었다.
‘4성 마도서에 적혀 있던 세 가지 개념. 창조, 파괴, 증폭 중 나는 고작 증폭, 파괴. 두 개만을 익혔을 뿐이다.
그마저도 파괴는 《절대 연산》으로 인해 거저먹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어.’
그렇게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4성 마도서를 다 떼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보면 기겁할 만한 성장 속도지만 재현에게는 부족한 시간일 뿐이었다.
헬라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신살자가 되어야 하며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남은 네 개의 시련.
어떻게 생각해도 쉽지 않은 미래가 예정되어 있었다.
재현이 가만히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별안간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하여…… 태평양 한가운데서 이그드라실이 솟아오르게 된 것입니다…….”
지루한 목소리.
다른 곳에서는 깨나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을 법도 하나, 이처럼 수업시간에서는 그저 졸음이 몰려오는 목소리일 뿐이다.
실제로 재현은 졸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레이더의 천부적인 신체에 고작 목소리만으로 졸음을 몰려오게 하다니.
‘《슬립》이라도 사용하는 건가?’
재현이 실없는 생각을 하는데. 불시에 교관이 물어 왔다.
“민재현 생도. 마법의 역사와 출몰에 대해 설명해 보겠나?”
너무 크게 한숨을 쉰 탓일까?
교관은 정확히 재현을 콕 집어 질문을 던졌다.
재현은 뜨끔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답했다.
“마수가 창궐한 지 약 10년. 에시르 시스템을 얻은 각성자가 등장하면서 룬어라고 불리는 마법의 언어가 세간에 등장했습니다.
이는 연산식에 마력을 흘러 넣어 하나의 현상을 이끌어내는 학문으로…….”
“됐네. 그만하면 훌륭한 답변이야.”
아무래도 교관은 재현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 확인한 것뿐인 듯했다.
하긴. 한숨만 푹푹 내쉬는 생도가 공부를 하고 있다 생각할 리 없지.
허나 그와 별개로 재현의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쪽지 시험이나, 실기에서도 늘 만점.
아직 정규 고사는 치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마 최상위권 성적은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을 터.
이곳 밀레스의 방침.
강자 독식.
재현은 이곳에서 명백한 강자였다.
그리고 밀레스는 이런 강자들의 실수를 대부분 눈감아준다.
‘이용해먹지 않을 이유가 없지.’
재현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이번엔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조용히 수업을 듣는 척하며 다른 책을 펼쳤다.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관이 일찍 수업을 마치며 운을 뗐다.
“자,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졸던 생도들은 모두 눈을 뜨십시오.”
그 말에 풀려 있던 분위기의 강의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제 이들 역시 알고 있었다.
이처럼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으며, 심할 경우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특히 모의 던전 이후부터 이런 기조는 더 심해졌다.
멍하니 샤프를 돌리던 재현 역시, 시선을 앞으로 고정했다.
‘드디어 다음 이벤트의 시작인 건가…….’
교관은 설명을 이어갔다.
“3일 후. 금요일은 길드 체험이 있는 날입니다. 길드 체험이란 여러분이 실제 활동하고 있는 레이더 길드가 어떻게 움직이며, 마수를 사냥하는지. 전반적인 것들을 직접 체험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구자인 이사장님께서 특별히 여러분을 위해 기획한 것이죠.”
구자인과 관련한 마지막 줄은 듣지도 않고 그냥 흘려버렸다.
어차피 이번 이벤트 역시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생도들을 적당히 솎아낼 뿐.
다른 의도 따윈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와 별개로, 재현은 매우 기쁜 얼굴이었다.
길드 체험.
이는 조금 전 교관이 설명한 대로, 다른 길드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며 활동하는지. 그 운영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회귀 전에는 E급 신생 길드에 가서 곰팡이 나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왔지…….’
재현은 과거를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쉬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그의 상황은 당시와 명백히 다르다.
재현은 밀레스 아카데미 이벤트에서도, 다른 테스트에서도 죄다 1위를 싹쓸이하고 있는 괴물 신인.
얼마 전 TV에서 방영된 신입생 사냥의 유튜브 조회수는 무려 천만이 넘었다.
어떤 길드든 골라 갈 수 있는, 말하자면 자유이용권을 끊어 둔 셈이다.
‘역시 《해신》 길드가 좋겠지? 회귀 전에 대한민국 전체 1위를 기록했던 길드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소중한 기회다. 놓칠 수는 없지.’
해신 길드는 유선재가 대표로 앉은 연화가 패퇴의 길로 접어선 이후 가장 먼저 수면위로 떠오른 길드다.
성품이 일품인 것으로 유명한 안지석이 길드 마스터로 있는. 그야말로 무투계, 마법계 가릴 것 없이 첫손에 꼽히는 길드.
재현이 무투계 시절 가장 가고 싶었던 길드가 바로 해신이다.
‘물론 지금은 초짜가 설립한 길드이니만큼 그 규모는 작겠지만. 적어도 구축된 인프라나 인적 자원들을 어떻게 굴려 먹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야.’
물론 연화가 싫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현재 연화는 대한민국 명실상부 최고의 길드고, 유성은도 뛰어난 레이더니까.
하지만 다른 길드의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재현은 싱글벙글 웃음을 띤 채 어떤 길드로 향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아, 그리고 길드 우선 지명이 들어온 생도들이 몇 명 있습니다.”
“……응?”
재현으로서는 과거 받아 본 적조차 없는 과분한 제안이라 망각하고 있었다.
길드 우선 지명.
다른 길드에서 특정 생도를 눈여겨보고 자신의 길드에 체험을 오라고 제안을 넣는 것을 이와 같이 부른다.
여기에 응하게 되면 길드 측에서 생도에게 특별 포인트를 지급하게 되고.
재현은 교관의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재현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교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정확히 자신이 예상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생도 민재현, 생도 서이나, 생도 김유정 이하 세 명은 연화 길드에서 우선 지명이 들어왔습니다.
오늘 자정까지 결정하고 서류 정리 후 제게 파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재현은 한숨을 쉬며 스승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긴…… 선생님이 날 다른 길드로 체험을 보내 주실 리가 없지…….’
유성은은 인재에 관해서 만큼은 탐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할 때, 미래에 가장 가치가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민재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