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84
292화.
쾅! 쾅! 콰르르르!
호수 위를 가득 메운 수증기 속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앙!
이어서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왔다.
수증기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끓어오르는 물이 사방으로 치솟았다.
흩어지는 수증기 사이로, 물과 용암을 내려치는 바위 거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려치는 거인의 팔 위를 달려가는 경훈의 모습도 보였다.
“맙소사! 내가 타이탄하고 제우스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는 건가? 저 무지막지한 몬스터는 둘째치고, 차원 이동자는 우리 같은 각성자가 맞는 거야?”
각성자 하나가 질린 얼굴로 둘의 싸움을 바라보았다. 놀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저 정도로 싸우는 건 처음 보네요. 그동안 제한을 두고 싸웠었나.”
“그게 아니라 본래 실력을 발휘할 몬스터가 없었던 거겠지.”
“제길, 싸움에 끼어들어 이름이나 날려보려고 했는데, 병신같은 생각이었잖아.”
다른 각성자들도 입을 딱 벌린 채로 싸움을 지켜보았다.
“끼기는 뭘 끼어요. 이쪽 일도 만만찮아 보이는데?”
각성자 한 명이 한심하다는 듯이 모두를 바라보았고,
“모두 엉뚱한데 신경 쓰지 말고, 서두릅시다! 장비가 세팅될 때까지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이어, 환웅 길드장이 넋이 나간 사람들을 재촉했다.
이들이 모여있는 곳 뒤에는 커다란 검은 구멍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막히지 않은 차원 문이었다.
아직 새로운 몬스터가 넘어오지 않고 있었지만, 이대로 열어놓은 채 놓아둘 수는 없었다.
경훈이 바위 거인과 싸우는 동안에 차원문을 막아야 했다.
“그런데, 이거 막아봤자 차원 이동자가 지면 소용없는 일이잖아요.”
“그렇게 되면, 바로 도망갈 겁니다. 난 방어막을 뚫기는커녕 흠집도 못 낼 게 뻔해요.”
안 좋은 말이 더 나오기 전에 길드 장이 말을 끊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합시다. 그전에 저런 놈이 더 넘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우선 문을 막아야 합니다.”
그의 말에 불안해하던 각성자들은 정신을 차렸다. 역시 한국 최고 길드의 길드장 다웠다.
우우우웅.
그 순간, 검은 구멍이 부르르 떨렸다.
“말이 씨가 된 거야? 뭔가 다가오고 있어!”
감각이 예민한 각성자 한 명이 질겁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젠장!”
각성자들은 자신의 무기를 쥐고 검은 구멍 앞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 남은 사람도 있었다. 환웅 길드장과 왜소해 보이는 각성자였다.
왜소한 각성자는 등에 메고 온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의 체격처럼 작은 가방이었다.
그는 가방을 열고,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꺼낸 물건은 예상외로 컸다. 가방보다 훨씬 큰 쇠공이었다.
쇠공은 표면에 문양이 가득 그려져 있었고, 버튼과 제어장치가 곳곳에 달린 전자 장비였다.
그가 쇠공을 꺼내는 순간, 아래로 푹 꺼졌다.
쇠공이 가방에서 벗어나자 원래 무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아공간이 장착된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수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만 처음 보는 것이 아니었다. 이 가방은 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아공간 가방이었다.
쿵.
다행히 놓치지는 않았지만, 쇠공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쳤다.
“망가진 것은 아니겠지?”
그는 진땀을 흘리며 쇠공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가 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어차피, 기회도 한번, 장비도 하나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길드장이 그가 꺼낸 장비를 가리켰다.
“그게 그 차원 문을 막는다는 물건입니까? 그걸로 막을 수 있긴 합니까?”
길드장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차원문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젠장! 나왔어! 투헤드 스콜피온이다!”
“그 뒤에 거미 여왕!”
“이게 뭐야! 여긴 나왔다 하면 대장급이냐!”
“막아! 차원문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시펄! 이 구멍은 뭐야! 들어갈 수도 없고, 부서지지도 않아!”
“이 멍청이가! 그게 그냥 부서지면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 있겠냐!”
차원문 밖으로 대장급 몬스터들이 빠져나왔다.
머리 두 개 달린 전갈 몬스터와 배가 가득 부푼 거미 몬스터가 차례로 차원문을 나섰다.
각성자들은 몬스터들이 차원문을 벗어나지 못하게 밀어붙였고, 일부 각성자는 구멍 자체를 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차원문은 요동도 하지 않았다.
“이걸로 안되면 답이 없겠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왜소한 각성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어떻게 차원문을 막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포탈 개발 중에 우연히 만들어진 장비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는 문양이 가득 그려진 쇠공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포탈은 또 뭡니까?”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공간이동에 관련된 거라는데,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저도 이 장비의 가동법만 들었습니다.”
각성자가 쇠공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우우우웅.
쇠공 표면을 덮은 문양이 환한 빛을 뿌리고, 땅바닥에 같은 문양이 넓게 펼쳐졌다.
마치, 쇠공 표면의 마나진을 바닥에 뿌리는 것 같았다.
우우우웅!
이들은 모르지만, 바닥에 펼쳐진 문양은 경훈이 그동안 보아왔던 차원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쇠공에 마나를 밀어 넣는 왜소한 각성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싸움을 위해 뽑은 각성자는 아니었다.
나름 등급도 높고 전투도 가능했지만, 그는 이 장비를 사용하기 위해 뽑은 각성자였다.
기계장비에 마나를 흘려 넣어 장비를 통제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각성자로, 아직 미완성인 장비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밖에 없었다.
그가 장비를 활성화하는 동안, 싸움은 더욱 거칠어졌다.
“염병! 한국 최고의 각성자들이 모였는데, 오히려 밀리냐!”
낫으로 전갈의 앞다리를 후려치며 마녀가 소리쳤다. 방어막이 깨지고, 전갈이 뒤로 물러섰지만, 두꺼운 껍질에는 흠집만 났을 뿐이었다.
마녀는 화가 났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각성자들이 모였는데, 대장급 몬스터 하나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대장급은 여러 개 길드가 모여 몇 개월에 걸쳐 준비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
하지만, 눈앞에 군주급 이상의 몬스터와 일대일로 싸우는 각성자가 있는데, 다구리쳐서 대장급도 못 잡고 있으니 화가 뻗칠 수밖에 없었다.
낫질 마녀는 화를 냈지만, 전갈 몬스터와 싸우는 각성자들은 그나마 잘 싸우고 있었다.
거미 여왕과 싸우는 각성자들은 그만 몬스터를 놓쳐 버렸다.
“박형이 당했어! 놈이 빠져나간다!”
각성자 하나가 거미줄에 휘말려 버렸다.
그는 거미줄에 묻어있는 독에 온몸이 녹아내렸고, 거미 몬스터는 그가 막아섰던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마나진이 펼쳐진 방향이었다.
마나진 중앙에서 강렬한 마나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쇠공에서 흘러나오는 마나향이었다.
몬스터를 놓친 각성자들은 거미 여왕을 추격했고, 길드장은 양 주먹을 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긴 제가 막겠습니다. 서두르십시오.”
“네!”
각성자는 쇠공 안으로 마나를 마구 밀어 넣었다.
우우우웅.
쇠공이 떨리고, 바닥에 펼쳐진 마나진의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부르르르.
검은 구멍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소한 각성자의 말대로 이 구 모양의 장비는 포탈을 제작하다가 만들어진 장비였다.
경훈의 제안으로 포탈을 만들려다가 실패한 장비. 포탈이 가동되는 대신에 부작용이 생겨버린 장비였다.
이 장비는 좌표를 흔들어, 차원문을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경훈이 테스트하다 차원문에 끼어 사고가 날뻔한 장비였다. 봉인해놓다시피 한 장비였지만, 이번에 위성 사진을 보고 다시 꺼내온 것이었다.
케에에엑!
쿠엑!
차원문이 계속 흔들리는 사이, 각성자들은 몬스터들을 쓰러뜨릴 수가 있었다.
독침에 당하고, 거미줄에 당해 여러 명이 죽고 말았지만, 그래도 모두 쓰러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각성자들은 기뻐할 수가 없었다.
차원문에서 또 다른 몬스터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먼저 나온 몬스터들과 차원이 다른 몬스터였다.
척.
검은 팔이 튀어나와 흔들리는 차원문을 붙잡았다.
풍선을 닮은 다른 팔이 나와 반대편 모서리를 붙잡았다.
드드드.
마구 흔들리던 차원 문이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풍선을 닮은 검은 몬스터. 그런 몬스터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 차원 문을 만든 차원 대군주였다. 멸망한 세상에 있던 대군주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차원문이 흔들리는 중이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차원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만으로도 각성자들은 겁에 질려버렸다.
퍽!
길드장이 거미줄에 감겨 녹아내리고 있는 팔을 다른 쪽 손을 휘둘러 잘라버렸다.
잘린 팔이 타는 것 같았지만, 그는 마나를 보내 머리를 감쌀 수 있었다.
다행히 그것만으로 공포는 사라졌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고함을 질렀다.
“몬스터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모두 달려들어요!”
그는 한팔을 휘두르며 차원문으로 달려갔다.
모두 그의 고함을 들었지만, 그를 따라 달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낫을 든 여자 각성자와 도끼를 든 덩치 큰 각성자.
마녀와 벌목꾼만이 차원문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이제, 할만큼은 한 거야!”
“개죽음당할 수는 없어! 난 돌아갈 거야!”
“…”
나머지 각성자들은 몸을 돌려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보다 강한 각성자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차원 대군주의 기세에 휩쓸려 버린 것이다.
다른 각성자들은 도망치고 있었지만,
캉! 캉!
벌목꾼은 말없이 검은 팔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고,
“캬캬캬, 잘려라! 잘려! 잘린 목으로 내 낫 아래 조아려라!”
마녀는 낫을 들고 날뛰었다.
길드장도 뛰어들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들은 검은 팔의 방어막조차 뚫지 못했다.
다만, 대군주의 관심을 돌릴 수는 있었다.
흔들리는 차원문을 잡고 있던 팔 하나가 불쑥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팔에 마나가 모여들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리고, 세상이 갈라져 나가기 시작했다.
“컥.”
무뚝뚝하던 벌목꾼이 처음으로 신음을 흘리며 허물어졌고,
“이뻐…”
마녀가 자신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를 보며 숨이 끊어졌다.
남은 주먹을 들어 갈라지는 세상을 막아섰던 길드장은 몸이 반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고, 도망치던 각성자들도 대부분 대군주의 공격에 휘말려 버렸다.
“조금 남았는데….”
아쉽게도 쇠공에 마나를 불어넣던 각성자도 차원 절단에 걸치고 말았다.
서걱.
잘려나간 그의 얼굴은 아쉬운 표정만이 가득했다.
한순간이었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각성자들을 쓰러뜨린 차원 괴수는 다시 차원문을 잡고 벌리기 시작했다.
흔들리던 차원문은 다시 멈추었고, 환하게 빛나던 마나진도 점차 어두워졌다.
주입되는 마나가 멈추자, 쇠공의 표면에 빛나던 문양이 점점 빛을 잃었다.
이제, 차원 괴수가 넘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슈우우우! 푹!
검 하나가 날아와 쇠공에 박혔다.
환하게 빛나는 검. 이순신 장군의 말씀이 검날에 쓰여있는 삼정검이었다.
검에 실린 마나가 쇠공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화아아악!
쇠공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하얗게 불타올랐다.
마나진도 함께 타올랐다.
마나가 출렁거렸고, 공간이 흔들렸다.
크아아아아아!
차원문 속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차원문을 붙잡고 있던 팔들이 급하게 모습을 감추었다.
차원괴수가 달아난 것이다.
이어서 차원문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검은 구멍이 일그러지고, 허물어졌다.
구멍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연기가 되어갔다.
푸아아아악!
그리고, 호수 위에 피어오르던 수증기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더는 끓어오를 물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닥에는 용암만이 남았고, 용암 위에는 용암에 반쯤 몸을 담근 거대한 바위 거인과 용암을 밟고 선 피투성이 각성자가 보였다.
딱 보아도 승패가 한눈에 들어왔지만, 둘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멀쩡해 보이는 바위 거인은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고, 피투성이 각성자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훈은 우울한 얼굴로 용암 호수 밖을 쳐다보았다.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차원 괴수가 넘어오기 전에 검을 날릴 수 있었지만, 사람들을 구할 수는 없었다.
“너무 늦은 회복인가.”
경훈이 주먹을 쥐었다. 마나가 막히는 곳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용암을 밟고 섰지만, 옷도 타지않고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드디어, EX급으로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