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53
“밀리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요.”
케이티가 그렇게 말하며 에밀리나한테 눈짓했다.
에밀리나는 뜻을 알아채곤 맥트런을 방으로 이끌었다.
맥트런은 어쩔 수 없이 모녀의 도움을 받아 침실로 향했다.
그렇게 침대에 몸을 누이자 그간 참아 왔던 피로가 터져 버렸다.
안락한 이부자리가 눈꺼풀에 졸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맥트런은 수면에 들지 않으려 끈질기게 인내했다.
“이제 내 말을 들어주시오. 그간 내가 집을 비운 이유와 관련된 거요.”
“나중에요. 우선 한숨 자도록 해요.”
“지금 꼭 들어야 해. 내일이면 무도회에 가야 하지 않소.”
“당신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거면 된 거예요. 무도회는 신경 쓰지 말아요.”
“부인…….”
맥트런이 침음을 흘리며 케이티를 바라봤다.
하지만 케이티는 완고했다.
에밀리나도 나서 설득했다.
“아버지. 이야기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시간도 늦었으니 지금은 몸을 돌보도록 해요.”
맥트런은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 무척 많았지만 이제 한계이기도 했다.
그렇게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맥트런이 끝내 눈을 감아 버렸다.
무도회 당일. 에밀리나는 심란을 감추지 못했다.
그간 피해 왔던 무도회 참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므로.
몸을 뺄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어머니. 전 이걸 꼭 입고 싶다니까요?”
“안 돼. 허락할 수 없어.”
그렇다. 에밀리나와 케이티는 무도회에 입고 갈 드레스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에밀리나가 선택한 드레스를 케이티가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걸 입고 싶어 하는 거니? 다른 드레스도 많잖니.”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와서 그래요. 어머니가 이해해 주세요.”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니. 하다못해 적당히 꾸미기라도 하든가.”
“제가 주목받으려고 가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저는 이걸로 만족해요.”
“내가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래. 차라리 다른 걸 고르렴. 그것까진 반대하지 않으마.”
케이티가 단호할 정도로 에밀리나의 선택을 거부했다.
에밀리나는 한숨을 삼키며 자신이 가져온 드레스를 보았다.
화려함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칙칙한 고동색 드레스.
보석과 레이스가 없는 것은 물론 그 흔한 자수조차 놓이지 않았다.
밋밋할 정도로 수수한 드레스라 에밀리나가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무도회 참석이 불가피하니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싶어서였다.
남자 주인공의 첫 등장인 만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겸사겸사 영애들의 시선도 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 목적으로 심사숙고해 고른 것인데, 케이티가 극구 반대하고 나서니.
에밀리나로선 곤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실례합니다! 혹시 클라인 남작님 댁이 맞을까요?”
목청 큰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저택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설득할 말을 고르고 있던 에밀리나는 긴장감 어린 표정으로 케이티를 바라봤다.
케이티도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입을 다문 채 시선을 교환하고 있는데, 저택 밖에서 다시 한번 방문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클레 의상실에서 왔어요! 아무도 안 계시는가요?”
저택을 방문한 손님은 다름 아닌 의상실 주인 에클레였다.
사채업자를 떠올리고 있던 클라인 모녀는 안도하는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에클레 의상실이라고?’
‘수도에서 손꼽는 디자이너가 왜…….’
“왜 우리 집에 온 거지?”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말을 뱉으며 어리둥절했다.
마담 에클레.
수도에서 가장 잘나가는 디자이너로 드레스만 만들었다 하면 유행을 이끌었다.
게다가 사용하는 원단도 고급만을 취급해 그녀가 만드는 드레스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마담 에클레가 손님을 가려 받는 점이었다.
평소 명문가로 자자한 귀족 아가씨를 손님으로 받아 주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가세가 기울만큼 기울어진 귀족 부인의 드레스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 기준이 상당히 제멋대로라 단순히 돈이 많다고 해서 그녀의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탓에 예약도 쉽지 않아 귀족 여성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다.
그런 마담 에클레가 자신들의 집으로 직접 찾아왔다니.
클라인 모녀는 솔직한 심정으론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어머니가 부른 건가요?”
“내가 부른다고 그녀가 올 사람이니? 더구나 우리 형편에 어떻게 드레스를 맞추니.”
케이티의 대답에 에밀리나는 수긍하고 말았다.
그녀 말대로 지금은 빚 갚기도 힘든 상황이라 드레스를 맞출 여력조차 없었다.
해서 이번 무도회는 가지고 있는 드레스를 수선해 참석하는 거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다면 마담 에클레가 왜 방문한 것인지.
에밀리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찜찜하기만 했다.
케이티도 복잡한 건 마찬가지인지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마담 에클레가 다시 문을 두드렸으므로.
두 사람은 우선 그녀를 맞이하기로 했다.
손님을 계속 밖에 세워 두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클라인 남작 부인. 그리고 클라인 남작 영애. 아무도 안 계신 줄 알고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답니다.”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마담 에클레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치맛자락을 펼쳐 공손히 인사했다.
케이티가 얼떨떨한 얼굴로 용무를 물었다.
“어서 오세요, 마담 에클레. 이 집엔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요?”
케이티의 물음에 에클레가 뒤쪽으로 눈짓했다.
짐을 한가득 실은 마차와 일꾼 서넛이 대기하고 있었다.
클라인 모녀는 더욱 영문을 알 수 없어 에클레한테 시선을 주었다.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목적을 말했다.
“두 분이 오늘 참석할 무도회 준비를 도우러 왔어요. 이만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시간이 무척 촉박하거든요.”
에클레가 그렇게 말하며 바로 행동에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일꾼들에게 짐을 나르라 지시했고, 가져온 보석 상자와 드레스를 진열하며 거실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모녀가 말릴 새도 없었다.
그렇게 무도회 준비를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케이티가 에클레를 막아서며 물었다.
“마담 에클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요? 저는 당신에게 드레스 의뢰를 한 적이 없어요. 값을 치르기도 어렵고요.”
“부인.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드레스에 대한 대금은 이미 값을 치렀어요.”
“그게 무슨…….”
“클라인 남작님도 알고 계신 일인데. 이야길 전혀 못 들으신 건가요?”
에클레의 되물음에 케이티는 난감한 얼굴을 했다.
어젯밤 할 말이 있다던 맥트런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이티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의 몸 상태가 걱정돼 대화를 나중으로 미루었으니까.
케이티는 작게 한숨을 흘리곤 양해를 구했다.
“잠시 기다려 주겠어요? 그이한테 확인 좀 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얼마든지요. 그동안 전 아가씨 치수를 재고 있을게요.”
에클레가 그렇게 말하며 줄자를 꺼내 들었다.
케이티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끝내 몸을 돌려 맥트런을 찾았다.
그렇게 에밀리나만 남게 되었을 때 에클레가 다가와 말했다.
“그럼 아가씨. 팔 좀 들어 볼까요?”
“좀 기다려 보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직 확실한 게 아니잖아요.”
“그럴 일은 없답니다. 설령 남작님이 모르신다 해도 전 제가 받은 몫을 해야만 해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절 고용하신 분이 따로 있다는 소리예요.”
에클레가 그렇게 말하며 이만 팔을 들어 달라 눈짓했다.
에밀리나는 더 묻고 싶었지만 에클레가 줄자를 들이민 탓에 대화를 이어 가긴 힘들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케이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가면 다시 물을 기회가 생길 테니.
조금 기다려 보자 생각하며 순순히 팔을 들어 주었다.
* * *
케이티가 침실에 들어섰을 땐 맥트런은 이미 잠에서 깨어나 있었다.
“당신. 일어나 있었어요?”
“조금 전에 일어났소.”
“몸은 좀 어때요. 아침에 로딘이 다녀가긴 했지만 도통 일어나질 못했잖아요.”
“걱정할 정도는 아니오. 푹 쉬면 괜찮아질 거라 했고.”
“그렇담 다행이네요.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밖이 소란스러운 이유와 관련된 거요?”
맥트런이 문으로 눈짓하자 케이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담 에클레가 찾아왔어요. 당신이 아는 일이라 하던데. 어제 하려던 말이 이거였나요?”
“마담 에클레?”
맥트런이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이티가 한숨 쉬며 말을 뱉었다.
“모르는 일인가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