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52
“그보다 소문 수습은 어떻게 됐나요?”
“잘 처리됐어요. 안정성 판단 심사에 귀족도 동행했거든요.”
“검사 결과에 승복하던가요?”
“물론 승복하지 않았죠. 하지만 제 단골손님이 워낙 유능하신 분인지라 가볍게 처리했어요.”
멀린이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하도 음흉하여 에밀리나는 깊게 묻지 않기로 했다.
왠지 좋은 방향은 아닐 것 같기에.
어쨌든 내내 걸리던 문제 중 하나가 해결됐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될 거 같았다.
“그런데 마담 에밀리.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혹 질문해도 괜찮을까요?”
멀린이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로 에밀리나의 의중을 물어 왔다.
에밀리나는 무슨 질문일까 싶어 일단 긍정적으로 답했다.
“무슨 질문이길래 그렇게 조심스러워하나요?”
“당신의 정체와 관련된 질문이에요.”
“네……?”
에밀리나가 조금 당황하여 되물었다.
“제 정체가 왜요?”
멀린이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제가 우연히 들은 말이 있어요. 마담 에밀리의 정체가 어떤 남작 가문의 영애일 거란 소문이죠.”
“…….”
에밀리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서 멀린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눈치였다.
‘어떻게……?’
에밀리나는 사업 계약상 어쩔 수 없이 멀린한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뿐, 정확한 신분을 알려 주진 않았다.
신원 보증인이 있다 보니 계약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따로 알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말이 새어 나갈 우려도 있어 입을 다문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이 에밀리나가 가장 고민한 부분이기도 했다.
신분을 숨겼을 때 멀린이 이를 악용하고자 하면 에밀리나로선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사업을 뺏겨도 증명할 길이 없어 법적 효력이 미비했다.
익명 계약은 그만큼 위험도가 높았고 상대의 양심에 따라 거래가 책정되었다.
하지만 멀린은 갑질은커녕 에밀리를 제대로 지지하고 대우해 주었다.
에밀리나는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마음 놓고 정체를 숨길 수 있었으니까.
해서 에밀리나는 멀린을 만날 때를 제하면 모습을 꼭꼭 숨기고 다녔다.
삐르제과를 방문할 때도 마차를 바꿔 타고 중간에 내려 길을 돌아오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그렇게 나름 철저하게 숨기며 움직였는데…… 기껏 숨겨 온 신분이 허탈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클라인 남작 영애가 맞나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려 줄 수 있을까요?”
에밀리나가 의심을 담아 그렇게 물었다.
멀린이 뒷조사를 한 걸까 싶어 배신감이 들었기에.
이를 눈치챘는지 멀린이 난감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최근 마담 에밀리의 정체와 관련된 소문이 귀족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거든요. 플랑시에 쪽에서 정보를 판 모양이에요. 전 그걸 조사하다가…….”
멀린이 미안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유추하게 됐어요. 정말 미안해요.”
멀린이 그렇게 말하며 편치 못한 얼굴을 했다.
사정을 들은 에밀리나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하기로 했다.
멀린의 탓도 아니고 순전히 플랑시에가 퍼트린 소문이니.
그곳과 거래하려 한 자신의 업보라 할 수 있었다.
에밀리나가 작게 한숨을 쉬고서 입을 열었다.
“할 수 없죠. 멀린의 말이 맞아요. 다시 한번 인사할게요. 에밀리나 클라인이에요.”
에밀리나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멀린이 얼떨떨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짐작이 맞았군요. 그럼 제가 정말 귀족 아가씨를…… 지금까지 멋대로 부려 죄송해요.”
멀린이 송구스러운 얼굴로 사과를 건넸다.
에밀리나는 당황해 서둘러 만류했다.
“아니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사과할 필요 없어요.”
하지만 멀린은 여전히 불편한 모양인지 좋지 못한 안색을 띠었다.
에밀리나는 화제를 돌리고자 플랑시에 일을 물었다.
“그보다 플랑시에도 그럼 제 정체를 알고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뒷조사를 하긴 한 모양이지만 소득은 없었나 보더라고요. 보증인이 클라인 남작님이니 그걸로 정보를 판 것 같았어요.”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많은 걸 짐작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에밀리나는 다시 한번 거한 속 쓰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플랑시에를 찾아간 게 너무나 후회됐으므로.
자신을 호구 취급한 것도 모자라 이젠 발목까지 잡으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때 멀린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전에도 말했지만 조심하도록 해요. 특히 졸타 자작은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구길래요?”
에밀리나가 의문을 담아 묻자 멀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플랑시에의 주인이죠. 일전에 사람을 푼 것도 졸타 자작이더라고요. 질 나쁜 귀족이니 가급적 엮이지 않는 게 좋아요.”
“알겠어요. 주의할게요.”
에밀리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가볍게 웃어넘길 뿐이었다.
졸타 자작과 마주칠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으니까.
아직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으니 접점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 *
무도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에밀리나는 무척 바빠졌다.
신메뉴 완성과 동시에 왕실에서 무도회에 제공할 디저트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디저트인 만큼 에밀리나는 심혈을 기울였다.
신메뉴는 초코 브라우니로 가볍게 집어 먹을 수 있어 무도회의 취지와 딱 알맞기도 했다.
‘이걸 개발하기까지 시간을 잡아먹은 게 문제지만.’
브라우니 자체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파야를 사용한 브라우니였다.
에밀리나는 좀 더 특별한 맛과 차별성을 두고자 파야를 사용해 브라우니를 만들었다.
하지만 파야 열매와 초콜릿이 잘 융합되지 않아 좀처럼 틀 잡힌 브라우니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구워도 푹 퍼지며 형태가 갖춰지지 않았다.
에밀리나는 이걸 해결하고자 끈질기게 연구했고, 마침내 7대3이라는 황금 비율을 찾아 브라우니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코 브라우니는 에밀리나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
이걸 맛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 기대가 될 정도였다.
빚도 수월하게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그런 기대감으로 집과 가게를 전전하고 있을 무렵 맥트런이 에밀리나를 찾아왔다.
“밀리.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니?”
그는 어딘가 초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에밀리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왕실 납품으로 시간에 쫓기고 있어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어…… 꼭 지금이어야 하나요? 제가 바로 가게에 가 봐야 해서요.”
“아주 중요한 일이야. 하루 정도도 안 되겠어?”
“하루는 어려워요.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무도회 준비로 바쁘다고.”
“그럼 내일은 어떠니. 나도 정말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맥트런이 간절한 얼굴로 부탁했다.
하지만 에밀리나 역시 곤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번 주는 정말 어려워요. 이게 별일 아니면 상관없는데, 왕실에 납품하는 거라 실수하면 안 되잖아요. 무도회 끝나고 이야기해요.”
“그래…… 일단 알겠다. 그래도 시간 나면 꼭 이야기해 주렴.”
맥트런은 그 말을 끝으로 허둥지둥 자리를 비웠다.
에밀리나는 급하게 사라지는 맥트런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건 금방이었다.
납품 준비로 바빠 신경 쓸 틈이 없었기 때문에.
해서 그날 저녁 맥트런을 찾았지만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낮에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려 케이티에게도 물었지만 그녀 역시 정확한 행방을 알지 못했다.
에밀리나는 아버지한테 무슨 일 있는 걸까 싶어 걱정하다가도 이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맥트런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우는 건 종종 있는 일이므로.
그렇게 무도회를 일주일 앞둔 날, 맥트런은 자취를 감췄다.
* * *
맥트런이 집으로 돌아온 건 무도회 바로 전날인 아주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에밀리나와 케이티는 밤늦게 찾아온 부산한 기척에 기겁하며 거실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발견한 맥트런의 추레한 몰골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오는 길에 강도라도 만난 건지. 그는 상당히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신…… 꼴이 대체 왜 그래요?”
먼저 입을 연 것은 케이티였다.
그녀는 놀라 하는 건지 기막혀하는 건지 모를 탄식을 흘렸다.
맥트런이 앓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오는 길에 일이 좀 있었소. 그보다 두 사람한테 할 말이 있는데…….”
그 순간 맥트런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에밀리나는 재빨리 맥트런을 부축했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게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에밀리나는 일단 그에게 휴식을 권했다.
“아버지.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아요. 일단 좀 쉬고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