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51
그간 공포를 조장하며 악의적으로 퍼트린 소문이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가신들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줄을 잘 서야 한다.’
로이뎅과 키르젠.
몬테이로 백작과 디트리오 공작 중, 누굴 택하느냐에 따라 앞날이 좌우되므로.
그들은 선택의 기로 앞에 놓여 있었다.
“크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거 같소. 기부라도 크게 해야지.”
“동감하오. 개선식이 결정된 이상 일단 따르는 수밖에.”
그런 가신들의 저울질에 로이뎅은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놈들은 쳐 내야겠군.’
제 안위만을 위해 움직이는 이들은 어차피 다시 배신할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굳이 자신의 길에 데리고 갈 필요는 없었다.
로이뎅이 여상히 입을 열었다.
“공작이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보게 하면 될 일입니다. 저는 일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보지요, 저와 뜻을 함께할 분들은 이미 정해진 것 같으니.”
이만 자리를 파하자는 말이었다.
그는 이 영양가 없는 모임을 더는 이어 가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을 빚던 몇몇 가신들은 속내를 들킨 것처럼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로이뎅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뒤늦게 저울질하던 가신들이 부랴부랴 그를 따라나섰다.
하지만 얼굴에 긴 흉터를 가진 사내가 그들의 움직임을 가로막았다.
“감히 누구의 앞을 막는 건가? 저리 비키게!”
“자네. 실수하는 걸세. 백작이 우릴 막으라고 하던가?”
가신들이 멀어지는 로이뎅을 눈으로 좇으며 사내를 질책했다.
하지만 사내는 들은 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전달받은 지시사항을 입에 올릴 뿐이었다.
“백작님의 전언입니다. 더는 얼굴 붉히고 싶지 않으니 알아서 판단하길 바란다고.”
사내는 그 말을 끝으로 로이뎅을 뒤따랐다.
* * *
로이뎅은 수도에 있는 공작저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개선식 철회는 물 건너갔으니 다른 대책을 세워야 했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체이스 후작의 행동이었다.
‘의중을 모르겠어.’
무슨 생각으로 기부까지 선언한 건지.
의도를 알 수 없어 로이뎅은 골머리를 앓았다.
제노바의 민심을 노렸다기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로이뎅이 그렇게 생각하며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데 때마침 초대한 손님이 방문을 알렸다.
“들어오게.”
로이뎅의 허락에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불법적인 사업으로 가문을 빠르게 부흥시킨 야비핼 자작이었다.
야비핼 자작이 인사 대신 고개 숙이며 물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개선식을 진행하기로 했다지요?”
로이뎅이 성가시다는 어투로 답변했다.
“그뿐인가. 벌써 줄타기가 시작됐더군.”
“혜안이 부족한 것 아니겠습니까. 썩은 동아줄이 금싸라기처럼 보였나 봅니다.”
“쯧. 조만간 정리할 예정이니 잠자코 있게.”
행동에 주의하라는 말이었다.
야비핼 자작이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뎅이 확인하듯 말을 던졌다.
“그건 어떻게 돼가고 있지?”
“일단 지시하신 대로 채권은 전부 제 앞으로 돌렸습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나?”
“졸타 자작의 반발과 몇 군데 정리된 곳이 있긴 합니다만, 진행에 문제는 없을 겁니다.”
“좋군. 그놈이 수도에 발 들이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하게.”
“한데 이 방법이 정말 통하겠습니까? 저야 여러모로 좋긴 합니다만…….”
그 순간 얼굴에 흉터가 새겨진 사내가 끼어들었다.
“통할 겁니다.”
가신들을 막은 사내이기도 했다.
“근거가 있나?”
야비핼 자작이 의문을 담아 물었다.
흉터가 새겨진 사내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사람을 매수해 알아낸 정보입니다. 아직도 그 계집을 잊지 못한 건지 소문에 관여한 흔적이 있더군요.”
“공작이 마음에 두고 있다는 소린가?”
“예. 아마 끔찍이 여길 겁니다. 음침하게 뒤에서 수작을 부릴 정도로.”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얼굴에 새겨진 흉터를 가볍게 쓸어내렸다.
욱신거리는 감각이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게 했다.
‘하인켈 마르쿠스.’
자신을 딱 죽기 직전까지 몰아세웠던 남자.
라울은 그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해 마지않았다.
* * *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
에밀리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왕실 직인이 찍힌 초대장을 보았다.
‘이걸 불태워 버릴 수도 없고.’
디트리오 공작의 승전 기념 무도회.
개선식 다음 날 열리는 행사로 수도에 사는 모든 귀족이 참석해야 했다.
키르젠과 마주치길 원치 않는 에밀리나로선 피하고 싶은 자리라 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으므로.
운명이란 게 어떻게 엮일지 모르니 가급적 사전에 차단하고 싶었다.
“하아…….”
“그렇게 가기 싫으니?”
“네에…… 꼭 가야 할까요?”
에밀리나가 울상을 짓고서 케이티를 바라봤다.
어머니한테 털어놓으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케이티는 곤란한 미소로 에밀리나의 생각을 막았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래야겠지.”
“왕명이니까요?”
“그래.”
“차라리…… 이사를 가는 건 어때요? 아버지가 일하는 곳으로요. 수도에서 지내는 것도 솔직히 불편하잖아요.”
멀린과 계약도 잘 끝마쳤고, 이젠 자신이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으니.
수도를 떠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에밀리나는 생각했다.
물론 해결해야 할 일이 아직 많기는 했지만.
그거야 수도를 방문하면 될 일이니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케이티는 단호했다.
“다 너를 위해서란다. 수도에서 한번 벗어나면 쉽게 돌아올 수 없어.”
귀족의 삶이란 게 그런 것이었다.
허울뿐인 작위라도 체면은 중요하니.
수도 사교계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수도에 산다고 다 같은 귀족도 아닌데.
오죽하면 중앙 사교계로 구분 두어 배척하기까지 하겠는가.
에밀리나는 그들의 고매한 친목질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어머니. 전 사교계에 관심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너는 그럴지 몰라도 나중에 네 자식들은? 그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 확신하니?”
“거기까진 너무 이른 생각이 아닐까요? 전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정작 필요한 순간에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후회로 남을 거란다.”
결론은 안 된다는 뜻이었다.
에밀리나가 아무리 떼를 써도 케이티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 터였다.
에밀리나는 케이티를 설득하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무도회까진 한 달가량 남았으니…… 그사이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에밀리나는 애써 희망적으로 생각하며 고민을 잠시 묻어 두기로 했다.
* * *
에밀리나는 무도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현실을 회피하기에 바빴다.
그도 그럴 게 딱히 방법이랄 게 없었으니까.
참석이 불가피한 우환이라도 생기지 않는 이상 꼼짝없이 무도회에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 부작용으로 에밀리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멀린이 걱정스럽게 건넨 말에 에밀리나가 시선을 들었다.
“무리는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에요. 열심히 해야 할 이유도 있고요…….”
에밀리나는 현재 매일같이 삐르제과에 들러 신메뉴 연구에 힘쓰고 있었다.
일에 집중하다 보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잠시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숨만 쉬어도 불어나는 빚의 해결이었다.
그동안 에밀리나는 멀린에게 받은 계약금과 초콜릿으로 발생하는 수익금 전부를 빚 갚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빚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파르게 오르며 클라인 남작가를 옥죄었다.
더는 여유 부릴 수 없을 만큼 저택으로 찾아오는 사채업자도 있었다.
빚 독촉을 하는 과정에서 무뢰배 같은 짓도 서슴지 않았다.
에밀리나는 경각심을 느끼며 일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