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27)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27화
헝가리 (2)
압구정, 드미르 공방 3층.
스윽, 스윽.
회의실에 앉은 내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내렸다.
[헝가리, 하루아침에 초토화, 접경국들 비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대급 던전 브레이크에 긴급 회동!] [세계 협회도 현상 파악 중, 우선은 국가 궤멸급 존재의 등장에 최초로 ‘SS급’ 부여.] [헝가리 정부, TOP3에 지원 요청, 아직은 묵묵부답.]…….
“으음.”
이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세계 협회가 SS급을 판정한 것도 최초이며.
무엇보다 너무나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거의 전쟁과 비견될 정도로.
인터넷 어디를 둘러봐도, 어떤 커뮤니티를 가도.
다 헝가리 얘기로만 도배되고 있는 상황.
▶ 아니, 쟤네 진짜 어떡하냐?
▶ 이거 세계 협회에서 나서줘야 하는 거 아님?
▶ 맞아, 우리나라도 이런 일 생기리란 보장 없잖아.
▶ 그래도 우리나라는 헌터 강국이잖어. 헝가리는 약소국이고. 우리나라에 저런 거 뜨면 하세라가 바로 출동하지.
▶ 근데 이번 건 조금 다르지 않나? 소문에는 랭커도 당했다던데?
▶ 헝가리 국민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 아아, 주여……. 아미타불.
갑작스러운 참사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갈 찰나.
덜컹!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길드 마스터님, 나오셨어요? 지금 완전 난리인데.”
내가 나왔단 소식을 들었는지, 곧바로 달려온 김진아였다.
“네, 보고 있었죠.”
“안 그래도 길드 마스터님 찾고 있었어요. 협회 쪽에서 공문이 왔거든요.”
“협회에서요?”
“예.”
드륵.
의자를 끌어낸 김진아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길게 길게 왔는데, 용건은 간단해요. 웬만하면 나서지 마라.”
“……오?”
의외였다.
러시아 사태 때도 먼저 도움을 요청했던 협회가 참여를 만류한다고?
“협회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보는 거죠. 괜히 자국의 랭커가 갔다가 국가 전력이 손실될 수도 있는 거니까. 게다가 혜택도 별로 없어요.”
“…….”
“보상을 줄 헝가리 정부는 이미 붕괴 상태고, NATO나 EU, 아니면 그 접경국들의 보상을 끌어내야 하는데 사실…… 알잖아요.”
김진아가 씁쓸하게 웃었다.
“협회로선 그 어떤 보상을 주더라도, 자국 랭커의 희생을 감수할 만큼의 매력을 못 느끼겠죠.”
랭커가 곧 국력.
국가 산하 기구인 협회는 무조건 나를 감싸려 들 거다.
“때문에 마탑이나 마왕군, 천마신교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고요.”
정확히는 ‘못’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안’ 움직이는 거다.
저 TOP 3의 수장들은 국가 그 위에 있는 존재들이니까.
“세계 협회는요?”
“음, 원래 세계 협회라는 게 말이 세계 협회지…… 아홉 국가의 동맹 체제나 마찬가지거든요.”
“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인 아이즈(9 EYES).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독일, 대한민국.
이 아홉 국가의 긴밀한 동맹 체제를 뜻하는 말.
해당 국가가 직접적으로 타격받지 않는 이상, 세계 협회의 엉덩이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면 손해 볼 가능성이 높으니까.
요컨대, 이런 느낌이다.
친구 아홉이 큰돈을 모아 공동으로 쓸 백만 원짜리 재료를 하나 구매했는데.
100원 정도 낸 다른 친구가 그것 좀 쓸 테니 달라고 하면?
도의적으로 도와줄 순 있으나, 누구 하나가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그런 이치였다.
“큼큼.”
김진아가 주먹으로 입을 가린 후, 목을 가다듬었다.
“어쨌든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예요.”
“뭔데요?”
“괜히 또 말없이 헝가리로 떠나지 마실 것!”
그녀가 날 응시했다.
무언가 심히 걱정된다는 눈빛.
내가 답했다.
“어허, 절 뭐로 보시는 겁니까?”
누군가는 나를 히어로물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내 목표와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일 뿐이다.
던전이 아니니, 보상도 없을뿐더러.
굳이 나 말고도 다른 랭커가 많은 상황에서, 이 한 몸 희생하겠다 외칠 만큼의 성인군자는 아니란 말이다.
‘애꿎은 사람들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이미 벌어진 일.
게다가 같은 국가도 아니고 같은 길드도 아니다.
“뭐로 보긴요?”
김진아가 눈을 흘겼다.
“협회장 한마디에 러시아까지 가서 세계 최대 범죄집단이었던 「고담」을 청산하고 러 대통령을 바꿔버린 세계적인 영웅이시죠. 조금 나쁘게 말하면 세계적인 오지라퍼.”
“아니, 언제는…… 잘했다고 칭찬해 줘놓고는…….”
“물론, 잘하신 거지만, 이제는 좀 안전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솔직하게 말할게요. 이 부길마, 이제 좀 마음 좀 그만 졸이고 싶어요.”
맞지.
우리 부길마가 항상 고생이 많다.
“걱정하지 마세요.”
혹여 가더라도.
꼭 말하고 갈 테니.
“아 참, 영상 보셨어요?”
“영상?”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 괴물들 미쳐 날뛰는 거요. 막 S급도 한 방에 죽고. 랭커들도 비명 지르고 그러던데.”
“…….”
“이따 링크 보내드릴 테니, 한번 봐보세요.”
* * *
다시 무릉도원.
“음.”
태양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등 뒤에 펼쳐진 검은 날개가 품위 있게 꿈틀거렸다.
현재 폴리모프를 펼친 상태.
“별것도 아닌 것들입니다, 주군!”
후우웅!
태양이가 창을 정갈하게 떨쳤다.
녀석의 눈에는 호승심 섞인 광기가 흘러나왔다.
이야…….
이제는 저런 것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명만 내려주신다면 당장 저것들의 중앙에 구멍을 뚫어놓겠습니다. 게다가 딱 봐도 시커먼 놈들이라, 태양 빛을 쬐는 순간! 그냥 녹아버릴 겁니다!”
태양이의 창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교수님. 드디어 공부만 하던 제게 첫 임무가 떨어지는 건가요?”
옆에서는 아린이 눈을 반짝였고.
“확실히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 속도가 빠르며, 움직임 또한 까다롭습니다.”
턱에 손을 짚은 카덴이 눈앞의 영상을 바라보며, 상대를 평가했다.
“하지만 주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놈들이라면, 당연히 척살해야겠지요.
그렇다.
나는 뼈다귀들과 함께 대형 스크린으로 영상을 보는 중.
부다페스트의 참상이 먼 거리를 거쳐 송출되고 있었다.
– 싸우자…….
– 더… 더… 강한 자…는 없는가…?
– 시시하구나…….
주먹과 발을 쓰며,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검은 괴수의 모습이.
으음.
참으로 그로테스크했다.
생김새도, 목소리도.
무언가 털이 살짝 솟는 느낌?
마치 공포영화 속 기괴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런 거 아니다.”
심기가 불편한 건 아니고.
그냥 나도 최신 정보를 너희와 나누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러자.
“넵, 주군.”
어느새 태양이의 낯빛에 광기가 사라져 있었다.
넘실거리던 투기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사연 있어 보이는 소년으로 변신해 옆 벽면에 등을 기댄다.
“척살해야 할 존재가 아니었군요.”
카덴도.
“교수님, 그럼 저 다시 번역하러 가도 돼요?”
아린도.
뜨거운 태양 아래 얼음 녹듯, 흥미가 사라져 있었다.
“어…….”
이것들, 뭐지?
싸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식은 거야?
아니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열 받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흥미가 식은 거야?
“끌끌.”
그 모습에 노인이 옆에서 웃었다.
“뭐겠느냐, 이놈아. 저들은 네 수하. 그냥 네 말이라면 껌뻑 죽는 상태인데, 당연히 후자겠지.”
그런 거라면 참 감동인데.
‘그나저나 어르신은 어떻게 봅니까?’
“뭐, 저 검은 괴물들 말이더냐?”
‘예.’
“음…….”
노인이 잠깐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절정급은 되는 놈들이다.”
‘절정급이요?’
“저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라 열 이상이라면, 생각보다 심각한 게지. 네놈도 방심할 수는 없는 수준?”
‘허어.’
하긴.
그러니까 한 국가가 궤멸했겠지.
그래도.
이젠 내가 진다는 소리는 안 하신다.
노인도 알겠지.
내 앞에 말도 안 되는 상대를 가져다 놔도 결국 내가 이긴다는 걸 몇 번이고 증명해 냈으니까.
“왜, 싸우고 싶으냐?”
‘…….’
“싸우고 싶으면 싸우거라. 네놈은 이제 강자의 반열에 들어섰다. 네가 볼 때 거슬리는 게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 상대에게 재앙이 될 수 있는 게지.”
그것이 바로 강자존(强者尊).
노인이 살던 세계의 법칙이다.
하지만.
‘아닙니다.’
이번엔 묘하게 끌리지 않았다.
명분도 동기도 없는 싸움.
‘훈련이나 하시죠.’
“끌끌, 네가 원한다면, 그리하거라.”
* * *
그 시각.
접경국 회의실.
헝가리를 제외한 일곱 국의 대통령이 모인 곳에서.
“이걸 도대체 어찌한단 말입니까.”
크로아티아의 원수 조란 밀라노비치가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우리도 다 멸망할 수 있겠어요. 힘을 합쳐서 빨리 저 검은 괴수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소! 다들 나 몰라라 하고 세계 협회는 한 발짝 발을 떼고 있는데.”
“제기랄.”
조란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이게 바로 약소국의 위치였다.
세상이 이 모양이 된 이후, 랭커급 헌터들을 보유하지 못한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줄 수가 없었다.
이런 던전 브레이크 하나에도.
그저 손가락 빨며 아무것도 못 하고 있지 않던가.
“혹시 다른 원수들께서는 도움을 요청할 만한 랭커가 있습니까? 아니면 하다못해 일면식이 있는 랭커라도…….”
“우리 루마니아는 이미 투입했소. 그리고 어제 죽었지. 그래도 랭킹 800위대였소.”
“슬로베니아도 마찬가지예요.”
“하긴, 그런 게 있었다면 이미 연락 돌렸겠지요. 후우.”
조란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헝가리를 궤멸시킨 검은 괴수. 그들의 행방이 어디로 향할지 미지수인데……. 정말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겁니까?”
“핵을 쏘는 건 어떻소?”
루마니아 원수가 답답한 듯 물었다.
“핵이요?”
조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립니까. 헝가리에 방사능이 뿌려지면 결국 피해 입는 건 우리라는 걸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게다가 핵은 미국이나 세계 협회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방법이 없지 않소! 방법이!”
루마니아 대통령이 가슴을 두들겼다.
“지들이 허락 안 해주면 어쩔 건데! 아니면 뭐 도와주든가! 우리보고 그냥 가만히 있다 뒈지라는 거야? 뭐야?”
그의 발언으로 회의실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워어, 워어. 진정하세요, 루 대통령.”
이번에 나선 것은 세르비아의 원수 부치치였다.
“핵을 사용하는 것은 저도 추천하지 않아요. 그 작은 개체 10구를 잡겠다고 핵을 쓰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며, 핵을 쓴다고 무조건 잡는다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그럼 어쩌자는 거요?”
“이건 어떻습니까?”
부치치가 쓰고 있던 안경을 치켜세웠다.
“랭킹 1위부터 100위까지 싹 다 연락을 돌리는 겁니다.”
“지금껏 안 돌려봤겠소? 아예 각 국가에서 못 가게 차단하고 있는 상황에 무슨……!”
“그러니, 모두가 만족할 만한 대안을 짜야지요.”
“대안? 그게 뭔데요!”
“그걸 의논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치치가 빙긋 웃었다.
“어디 각자 꺼내놓을 수 있는 보상이 있으면 우선 털어놓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