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26)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26화
헝가리 (1)
펄럭!
책이 넘어간다.
우리나라 말로 친절하게 적혀 있는 마도서.
“으음.”
아린이의 훈련장 건물 옥상 의자에 앉은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아, 이거.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분명 이해하기 쉽게 적어놨다고 했는데.
보이는 것은 몇 번이나 읽어봐야 하는 까만 글씨뿐이었다.
“역시.”
글을 읽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노인의 마사지도 육체적인 것에만 효과 있다 하지 않던가.
“그냥 나중에 아린이가 마법 쓰는 거, 보고 따라 해야겠네.”
“교수님!”
덜컹!
그때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린 아린의 모습!
“아린이냐?”
“예, 교수님! 또 번역해 왔어요. 이번엔 100권이에요! 여기 놓으면 되죠?”
“……100권? 벌써?”
“흐흣!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당장 저 방 바깥으로 나가면.
약 1,110구의 스켈레톤이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고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진짜 돌았어.’
무슨 스켈레톤이 머리를 쓴단 말인가?
웃기게도 아린이 소환한 마법사 군단은 이해력이 굉장히 빨랐다.
복잡한 룬어를 보던 애들이라 그런지.
지구의 영어나 국어 정도는 일주일 만에 익히는 기염을 토했다.
룬어 또한 수준급이었다.
아린이까지는 아니어도, 중급 어휘 정도는 구사하는 정도?
덕분에 번역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그러면 여기다 놓을게요!”
후두두둑!
아린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번역된 서적이 바닥에 쏟아졌다.
번역 후, 한 권당 총 두 권을 새로 필사한다.
그중 한 권은 아린이의 훈련장 한쪽에 신설한 서고에 보관되고.
다른 한 권은 잘 모았다가 주에 한 번씩 마탑의 서고로 보내진다.
“그……래, 네가 고생이 많다.”
저기 널브러진 100권의 책이 얼만 줄 아는가?
마탑주가 1권당 2백만 달러(한화 약 25억 원) 쳐준다고 했으니…….
‘허.’
방금 아린이가 던져놓고 간 물량이 대략 2,500억이었다.
이는 마탑주가 얼마나 마법 정보에 진심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며.
드미르 공방 말고도 돈이 들어오는 거대 루트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매주 보내는 양만큼, 마탑에서는 또 서적을 실어 올 테고.
마탑의 두 개 층을 장식하는 서고의 양은 정말로 방대할 테니까.
‘물론.’
마탑 판단하에, 저기서 중복되는 서적이나 파본.
아니면, 부실 번역본은 제외된다.
‘그걸 참작해도.’
엄청난 돈임에는 틀림없지.
“별말씀을요, 교수님.”
아린이 빙긋 웃었다.
“아시잖아요. 저는 책 읽는 시간이 가장 즐거운걸요.”
“그래?”
“게다가 요즘은 속독하는 요령도 생겨서 더 빨리 읽을 수 있어요!”
아린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아, 맞다.”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알지? 금서가 발견되면…….”
“예, 알죠!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는 사악한 마법들은 딱 한 권만 번역해서 우리 쪽으로 빼놓을게요.”
“굿, 좋아!”
내가 미소 지으며, 엄지를 척 올려 보이자.
찡긋.
그 엄지에 윙크로 화답한 그녀가 발랄하게 밖으로 나섰다.
밀실에만 박혀 있던 소녀.
그 음습했던 히키코모리가.
이제는 그 누구보다 밝은 아이가 되었다.
“암.”
아린이 나간 것을 확인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금서는 안 되지.”
마탑주가 돈을 준다고 모든 정보를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내 목표가 세계 랭킹 1위인 이상.
나름의 견제는 해둬야 했다.
그것이 바로 금서 정보의 제한.
좋거나 위험한 건, 나만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으음.
엘드린한테 우리 쪽 서고 보안은 확실하게 지켜달라고 해야겠네.
이렇게 몇 년만 흘러도.
뼈오의 훈련장이 마탑의 서고보다 더 가치가 높아지는 순간이 올 터.
“흐흐.”
그 모습을 상상하며 나는 즐겁게 웃었다.
* * *
화르륵!
내 손아귀 위에 불꽃이 피어났다.
겨울의 동백보다.
여름의 수국보다 아름다운 게 바로 이 불꽃이다.
아린이의 봉인을 해제한 나는.
온종일 주술 훈련만을 반복했다.
하루에 약 3시간 정도는 노인의 만술을 배우고.
나머지 시간엔 오직 독서와 주술을 병행했다.
“역시, 교수님! 대단해요! 속성 마법 하나만큼은 정말 말도 안 돼요. 어쩜 이렇게 빨리 성장하시는지!”
저녁에는 아린의 시간도 뺏었다.
독서했던 것을 기운의 흐름으로 보기 위해서는 아린이 꼭 필요했다.
“마도 세계의 그 어떤 천재가 와도 교수님보다는 못할 거예요.”
그녀는 내가 주술을 펼칠 때마다 칭찬했는데.
그 모든 게 바로 정수 때문이었다.
[목(木)의 정수, 효과를 얻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강해집니다.] [화(火)의 정수, 효과를 얻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강해집니다.]…….
각 속성 스킬을 쓸 때마다, 신살(神殺) 무기의 효과가 발동되었기 때문.
‘정수…….’
화륵!
불꽃을 다시 한번 튕긴 내가 눈을 감았다.
‘정수는 아직도 답이 없어.’
델라 일가의 시련 기여도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정수들.
요새 그들이 도통 나타나지 않았다.
왜 그런 걸까.
나한테 삐진 게 있는 걸까?
아니면.
워낙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라 한 번 잠에 빠지면 엄청 오래 자는 걸까?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요새는 물어봐도 대꾸조차 없었으니까.
“후.”
사실 요새 드는 추측은…….
아직 자격이 되지 않아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 마법’(SSS급)조차 머리를 조아리는 존재들.
내 몸을 잠깐 빌린 것만으로도, 용족인 아란발론을 완전히 불태워 버릴 수 있을 만큼 막강한 자들.
“…….”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처럼.
이 신살(神殺)급 아이템이 내게 너무도 과하다는 말일까?
‘웃기네.’
내가 코웃음 쳤다.
과하긴 개뿔.
이건 내 무기다.
내가 정당한 시련을 거치고, 정당한 과정을 겪어서 얻어낸 보상이다.
‘그깟 자격.’
이뤄주면 되지.
세계 1위 한번 찍어보고.
그걸로 안 되면, 우주의 다른 존재를 먹어서라도.
그 자격이 되어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화르르륵!
그게 내가 요즘 들어 훈련을 더욱 열심히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띠링!] [띠링! 띠링!]“음?”
그때였다.
약 하루 정도 조용하던 채팅방에 녹색불이 들어온 것은.
[물의 마녀(Water Witch) : 으음, 다들 잘 지내요?]‘드래곤 슬레이어 동기방’의 멤버 올레나였다.
[물의 마녀(Water Witch) : 아이고, 바빠라. 다른 나라는 별일 없죠?] [봄사도(春使徒) : 저야, 잘 지내는데. 무슨 일이시죠?] [절대무쌍(絶對無雙) : 난 길드 차원에서, 동남아 던전으로 파견 가는 중일세.] [공간술사(Spacian) : 여, 또 무슨 일인데?]올레나의 물음에 대화에 자주 참여하는 자들이 등장해 대꾸한다.
이들은 신기하다.
MBTI 중 ‘I’ 나오는 나는.
저런 대화에 끼는 게 참 어색할 때가 많은데…….
[물의 마녀(Water Witch) : 그게 전 방금 마탑 나왔어요, 후.] [공간술사(Spacian) : 엥? 마탑을 나와? 설마 잘림?] [물의 마녀(Water Witch) : 잘리긴 뭘 잘려요. 조국에서 국가비상사태 선언하는 바람에, 복귀 중인 거죠.] [공간술사(Spacian) : ……우크라이나가?] [물의 마녀(Water Witch) : 아니 무슨. 러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런 것도 몰라요? 그것도 접경국인데……?] [공간술사(Spacian) : 하하하, 여기서 내가 바지 대통령인 거 모르는 사람 있냐?] [물의 마녀(Water Witch) : 랭커가 바지 대통령은 무슨요. 그냥 근무 태만이지.]올레나와 블라디미르는 이렇듯.
자주 티격태격하곤 했다.
[봄사도(春使徒) : 그래서 무슨 일인데요? 국가비상사태라니.]그래, 뭐가 문제인데?
나도 호기심이 생겨, 채팅창을 열어둔 채.
화륵, 화르륵!
계속 불줄기를 돌렸다.
[물의 마녀(Water Witch) : 헝가리 쪽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나 봐요.]던전 브레이크(Dungeon Break)란.
몬스터가 던전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현상.
나도 과거 저것 때문에 공터에서 오크를 만났었지.
[공간술사(Spacian) : 엥? 던전 브레이크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다고?] [공간술사(Spacian) : 게다가 헝가리라며?] [물의 마녀(Water Witch) : 아시잖아요. 헝가리는 총 일곱 개의 나라를 국경에 두르고 있어요.]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물의 마녀(Water Witch) : 저희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죠. 근데 그 던전에서 나온 놈이 보통이 아닌가 봐요. 거의 헝가리가 궤멸 직전까지 갔다는데요?] [공간술사(Spacian) : 어? 잠깐. 나도 지금 보고 들어왔다. 이 새끼들. 빠졌네? 정보가 왜 이리 느려?] [물의 마녀(Water Witch) : 그거야, 당신이 맨날 일 안 하고 던전에나 다니니까…….] [공간술사(Spacian) : 맞네, 이 쉐이들! 자기들끼리 이미 긴급회의 조지고 있었잖아?! 짜식들이 대통령을 빼놓고 회의를 해?!]“…….”
과연, 러시아 국민들은.
대통령의 이러한 민낯을 알까?
‘하여튼.’
국가 궤멸이라고?
얼마나 대단한 놈이길래?
스릇!
손바닥에 불을 끈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는데.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아무래도 무릉도원 밖으로 잠깐 나가봐야겠다.
* * *
헝가리 최대도시.
수도, 부다페스트.
“끄아아악!”
“꺄아악!”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도시 곳곳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화륵, 화르륵!
어떤 건물은 불에 활활 타고 있었다.
도망가는 시민들과 대치하는 헌터들.
협회의 지원과 군대의 사격.
콰가가강!
그야말로 전쟁터와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
“다들 위치로!”
한 S급 헌터가 고함을 질렀다.
“탱커들은 최대한 앞으로 가서 딜을 받아라! 최대한 버텨! 힐러, 버퍼는 온 힘을 다해 탱커를 지원해!”
“그, 그게 탱킹이 아예 안 됩니다!”
어떤 한 헌터가 커다란 방패를 내밀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 죽… 어… 라…….
퍼어억!
약 3m 크기의 커다란 괴수.
검은 그림자로 일렁이는 존재가 내지른 주먹에.
콰앙!
방패에 구멍이 뚫렸으며.
그 탱커 헌터의 복부에도 같은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미, 미친……!”
탱커가 그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주륵.
이내 입가에 피를 흘리며, 털썩 쓰러졌다.
단 한 방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
헌터들 사이에 이는 묘한 침묵.
문제는.
저런 괴수들이 한 마리가 아니라는 것.
보고된 것만으로 열 마리가 넘었다.
“……튀어.”
한 탱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바지는 이미 축축이 젖어 있었고,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기랄, 튀어! 튀라고! 너네 몰라? 저 탱커! S급이라고、S급!”
“S, S급?!”
“그럼 S급이 한 방에 뒈진 거야? 그것도 탱커가? 씨발, 그러면 가망 없는 거잖아!”
“모, 몰라! 난 일단 살래! 죽기 싫어!”
공포에 질린 헌터들이 사냥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다.
“어딜 움직이나! 뭉쳐라! 흩어지면 다 죽는 거야!”
지휘관이 고래고래 소리 질렀지만, 공포는 그 무엇보다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한 탱커가 가져온 공포는 순식간에 전파되어 모든 헌터들의 뇌를 잠식했고.
– 크… 크크…… 약하…군.
그런 헌터들을 바라보는 괴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냥의 시작.
부다페스트가 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