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54)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54화
광전사 (2)
주먹을 누구에게 배웠냐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건 당연히 무각이었다.
“쯧쯧, 배은망덕한 놈.”
자칭 권신(拳神), 만술 노인이 혀를 찼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주먹은 무각(武脚)과 진권(進拳)의 스승으로부터 파생된 것.
무각이 발을 쓰는 묘리에서, 주먹도 깨달음을 얻은 거니까.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요. 대신 어르신은 다른 좋은 걸 많이 알려주셨잖아요.’
“개똥이다, 이놈아.”
노인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획 돌렸다.
삐진 걸까?
저렇게 나이가 많이 드셨는데도 귀여우신 건 여전하다.
하여튼.
내가 장대웅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왜 묻습니까?”
본래 같았으면 크하하! 하며 호탕하게 물었을 법한 걸, 의외로 진지하게 묻는 모습에.
우리의 전투는 잠깐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 주먹, 어디서 많이 본 주먹이거든.”
“예? 이 주먹을요?”
내가 주먹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원래 동생은 주먹을 안 쓰지 않았나?”
“음, 그랬었죠.”
내 답에 장대웅이 주먹을 내리더니, 내 근처로 걸어왔다.
우우웅!
그의 몸에서 피어나오는 기운이 주변에 막을 형성했다.
다른 랭커들이 듣지 않도록 차단하는 기술일까?
“동생.”
그가 나를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동생의 주먹은 내 것과 비슷해.”
아?
내 주먹이 장대웅과 비슷하다?
‘음.’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근데 뭐.
주먹으로 극(極)에 오를 수준이면, 다 비슷한 거 아닐까?
“으음.”
옆에 있던 노인이 팔짱을 풀었다.
“네놈은 근접해서 싸우느라 큰 흐름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너희 둘. 좀 비슷하긴 하다. 내 주먹과는 조금 결이 달라.”
‘그래요?’
그렇다면, 뭘까.
혹여 같은 뿌리에서 나온 주먹이라도 된다는 말일까?
“나도 착각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가 없어. 왜 그런 줄 알아, 동생?”
“왠데요?”
“사실 동생에게 처음 말하는 건데, 내 옆에 유령이 하나 있거든? 나에게 주먹을 가르쳐 준 아주 소중한 유령이야. 뭐, 자신을 유령 같은 수준 낮은 언어로 부르지 말라고 난리 치고 있지만.”
“……예?”
내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어허?”
노인 역시 놀란 듯 일어섰다.
‘유령이라면…….’
내가 노인을 슬쩍 보자.
“이놈이?”
노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유령이란 말을 듣고 날 쳐다본 것이더냐?”
확실했다.
광전사에게도 노인 같은 존재가 있다.
‘유령’이란 말에 격하게 반응하는 것까지 완전하게 똑같은 존재가!
“하여튼.”
장대웅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존재가 아까부터 동생의 주먹을 보면서 말하고 있어. 그건 내 거라고.”
“…….”
“그리고 동생의 발을 보면서도 말하더군. 그건 사형의 발인데,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고. 내가 이놈이랑 그래도 꽤 오래 알고 지내면서 도움도 받았는데, 흰소리하는 녀석은 아니거든? 나보다 싸움에 미쳐 있어서 그렇지.”
아아.
충격이었다.
저 말은.
진권(進拳)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들이잖아?
그렇다는 건.
“끌끌.”
노인이 혀를 차며 웃었다.
“아무래도 네놈과 비슷한 종자가 하나 더 있었나 보다. 그래, 그때 충왕, 당휘평. 그 벌레 놈처럼.”
‘당휘평이면…….’
맞네.
내가 죽였던 하이 랭커, 충왕(蟲王) 안드레이.
그 녀석도 유령을 끌고 다녔었지?
소름이긴 했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많은 하이 랭커들이 각자의 유령을 끌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이 바닥에서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은 금물이니까.
사실, 노인도 던전에서 얻은 보상이잖아?
“그 표정은.”
장대웅이 눈을 깜빡였다.
“정말 진권의 말이 맞다는 건가?”
진권.
정말 장대웅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고야 말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각.”
[스킬, ‘로드&킹 소환’(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을 사용합니다.] [‘무각’이 등장합니다.]후두두둑!
내 부름에 무각이 등장했다.
등장한 무각은 내 감정을 읽음과 동시에 사태를 파악했다.
“주인, 정말…… 정말, 저자가 진권이란 말을 했나?”
무각의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게 느껴졌다.
투신의 세계에서 마지막 승부를 가렸던 둘.
결국, 둘은 어떻게든 다시 만날 운명이었던 걸까?
“맞나 보군. 후우.”
장대웅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주먹에 힘을 꽉 주었다.
“동생.”
“예.”
“동생도 분명 지금의 랭킹을 무시할 만한, 비장의 무기 몇 개쯤은 숨겨 두었겠지?”
쿠구구구…….
잠잠했던 그의 몸에서 지금과는 다른 거친 기세가 피어올랐다.
“예, 있죠. 말해드릴 순 없지만.”
본래 랭커에게 비장의 한 수란 여분의 목숨과도 같은 것.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신살(神殺)급 무기나 노인의 존재 등, 내 비기를 알려줄 순 없다.
“미리 양해를 구해도 되겠나? 내가 현재 내 랭킹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보여줘도.”
“…….”
장대웅이 하는 말의 요지는 간단했다.
혹여, 지금의 한 수로 다칠 수도 있는데 괜찮냐는 것.
“아무렴요. 제가 괜히 랭킹 10위겠습니까?”
나는 호기롭게 답했다.
그가 숨겨 둔 것이 진권(進拳)이라면, 내 비장의 수에 비해서는 한참 아래일 테니.
“그럼 보여주마.”
쿠과가가가!
땅이 흔들림과 동시에, 펼쳐졌던 장벽이 사라졌다.
“나의 비기를…….”
아니, 사라졌다기보다는.
그 기운의 한 톨마저도 장대웅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고 보면 되었다.
이윽고.
번쩍!
그의 눈에 광휘가 터짐과 동시에.
광전사(狂戰士).
비기(祕技).
진권강림(進拳降臨).
콰가가가가!
광전사가 변했다.
한때 투신의 세계에서 1세대 최강자를 다퉜던 사내.
무각의 사제, 진권으로.
* * *
진권.
주먹으로 온 우주에서 최상위 자리까지 올라섰던 남자.
쿠오오오……!
확실히 기운 하나만큼은 사도의 그것과 비슷했다.
“미, 미친?!”
“기운이 너무 거세요!”
“다들 뒤로 물러서!”
팝콘을 튀기며 구경하던 랭커들이 서둘러 자세를 잡았다.
쐐애애액!
앉아 있던 백돈이 뒤로 나뒹굴 정도로 강력한 풍압이 공간을 뒤덮었다.
“엄청나긴 하네요!”
이선아가 검으로 공기를 가르며 외쳤다.
“저 무거운 백돈이 뒤로 구를 정도니 말이죠.”
“젠장, 시끄러!”
미간을 찌푸린 백돈이 이선아의 뒤에 섰다.
확실히 뒤바뀐 광전사의 기운은 대단했다.
여기 있는 헌터들 중 약한 자가 하나 없는데, 그 모두가 뒷걸음질 칠 정도니 말 다 했지.
“씨벌, 이거 구경하는 게 맞는 거야? 구경하다 골로 가겠는데?”
백돈이 투덜거리자, 이선아가 픽 웃었다.
“보통 하이 랭커끼리 결투에도 도시 하나가 붕괴할 수 있다는데, 그보다 더한 자들 둘이 싸우는 거잖아요.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죠.”
“각오는 했는데,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게다가 저것 보라고!”
백돈이 손가락으로 광전사를 가리켰다.
“너 대웅이 형 저런 모습 본 적 있어?”
“……없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네요.”
이선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뭔데.”
“지금부터 하는 전투가 인생에 있어 다시는 볼 수 없는 소중한 공부가 될 거라는 것.”
* * *
“주인.”
무각의 부름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내가 나서도 되겠나?”
비록 폴리모프 없는 스켈레톤의 모습이었지만, 흥분하고 있는 녀석의 표정이 느껴졌다.
“위험할지도 몰라. 알다시피, 지금의 네 몸은 전성기의 그것과 달라.”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진권 역시 마찬가지겠지.”
“…….”
신기했다.
정말, 광전사는 본인의 유령을 몸에 빙의시킨 것일까?
그런 게 된다면 진짜 사기일 수밖에 없었다.
진권은 사도급(SS급) 전력.
그 실력은 진짜일 테니까.
‘난 왜 그런 거 없지?’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나는 광전사가 살짝 부러웠다.
나도 노인 빙의 같은 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내 몸에 어르신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묘하긴 했다.
아, 싫은 건가?
팔뚝에 살짝 소름까지 돋는 거 보니, 몸이 거부하는데?
“이놈이! 떡 줄 놈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느냐?”
노인이 핀잔하며 웃었다.
“아무튼 한번 보자꾸나. 재밌겠구나. 무각과 진권, 그 둘이 하필 이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재미있지 않으냐?”
‘예, 일단 보죠.’
이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내가 보고 싶었던 광경이었다.
“사형. 정말 사형이 맞나?”
장대웅이 본래의 그와 다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권.”
무각이 잠시 생각하더니 긴 숨을 흘렸다.
“어쩌다가 거기 있는 게냐?”
죽은 자가 유령의 모습으로 다른 세상을 배회하는 것.
그것은 이전 삶에 ‘한’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할 터.
“무엇이 그렇게 아쉬웠길래, 그런 모습으로 배회하고 있냐는 말이다.”
“왜겠어, 사형.”
장대웅.
아니, 진권이 빙긋 웃었다.
“이 주먹.”
그러고는 주먹을 쥐어, 말아 올렸다.
“이 주먹으로 최강이 될 수 없었던 한이지. 그것도 사형 덕에 말이야. 흐흐, 사형은 내가 지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를 거야.”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진권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저, 나는…….”
진권이 계속해서 말했다.
“여기 있는 장대웅을 최강으로 만들 생각뿐이었어. 나를 대신해서.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그러나.
“하지만, 사형이 여기에 있다면? 이러한 순간으로나마 만날 수 있다면? 그건 또 얘기가 달라지지.”
“…….”
“사형.”
그가 가진 욕망이 기세가 되어 무각에게 쏘아졌다.
동시에 분위기가 일변했다.
막대한 투기(鬪氣)가 그의 몸 주변으로 솟구쳤다.
스윽.
무각은 그 기세를 담담히 받으며 조용히 자세를 취했다.
진권이 말했다.
“다시 한번 싸우자. 그때의 상태, 그때의 환경에 맞추어, 똑같은 조건으로 싸워보자.”
그의 제안.
여기서의 힘 차이는 버리고.
정말 실력과 실력으로 붙어보자는 뜻.
“…….”
무각은 침묵했다.
한참을 침묵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진권.”
“말해라, 사형.”
“정말 내가 싸워주면, 네 한이 풀리겠느냐?”
진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죽어서도 잊지 못했다.
무각의 발에 무너지던 날.
그 때문에, 사도가 되지 못했던 날.
그는 무각의 발에 망령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객사했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있다가 눈을 떠보니, 이러한 세상이 있었던 거다.
“물론, 내가 이겨야겠지.”
진권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쿠아아아!
다시금 막강한 기세가 무각에게 쏟아졌다.
“이 주먹으로. 사형의 발을 말이야.”
그 기세를 받은 무각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냐? 뭐, 그럴 수 있겠구나.”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장내에는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지만, 미안하다.”
무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무각. 스켈레톤 엠페러를 섬기는 종이자, 그의 사도.”
“사도……?”
“아쉽지만, 사제의 한은 영영 이뤄질 수 없을 것 같다.”
스윽!
무각이 발을 들었다.
동시에, 주먹도 말아 쥐었다.
권과 각을 동시에 쓰겠다는 의지.
“주인을 위해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니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일이지. 예전의 나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 역시 그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야, 사형!”
파즈즈즉!
찌릿한 자극이 공간을 휘감았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기세가 절정에 달했을 때.
쿠과가가가!
각자를 향해 내달린 무각과 진권이 부딪혔다.
그렇게.
무려 100년 만의 형제 대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