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53)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53화
광전사 (1)
휘이잉!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친다.
툭, 투욱!
딱딱한 흙바닥의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이곳은 바로.
별천지(別天地)의 진정한 본진, 무릉도원.
나는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 뒤, 무각의 훈련장 위에 서 있었다.
“크하하, 동생. 이런 멋들어진 곳에서 혼자 훈련하고 있었나? 역시! 빠른 성장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구만!”
그리고.
툭, 툭!
내 맞은편에서 주먹과 손바닥을 부딪치며 싸울 준비를 하는 사람.
‘장대웅.’
그를 소개하는 문장들은 너무나도 많다.
세계 랭킹 20위, 였지만 이제는 17위.
대한민국 2위, 였지만 이제는 3위.
유일한 무소속 하이 랭커.
건물 브레이커.
그리고 가장 유명한 말은…….
‘미친놈.’
하지만, 미친놈은 이제 익숙했다.
투신 세계에서 반년 동안 지겹도록 만났다.
걔네들에 비하면 우리 대웅이 형은 순하디순하다.
거기였으면 이미 주먹부터 들이밀었지, [동생!] 하면서 한 수 부탁한다는 표현도 쓰지 않았을 테니까.
“끌끌, 좀 쉬나 했더니 바로 훈련인 게냐?”
나는 간만에 노인도 소환했다.
유령도 신선한 공기를 느끼는 것일까?
오랜만에 등장한 노인이 허공에 떠 빙그르르 돌았다.
‘훈련은 아니고 놀이죠, 어르신.’
나 역시 장대웅과 비슷한 포즈로 몸을 풀었다.
훅, 후욱!
주먹과 발을 짧게 휘두르며 스트레칭했다.
“오호, 동생! 주먹 쓰는 게 예사롭지 않은걸?”
“그럼요. 이제 주먹 하나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허어? 동생? 농담이 좀 심한데? 크하하하!”
장대웅이 허연 이를 드러냈다.
후우웅!
그에 맞추어, 그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일었다.
“나를 상대로 주먹을 들다니. 동생의 주특기는 스켈레톤 아니었나? 아무리 랭킹이 높다 해도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지금껏 랭킹 높은 사람들만 격파하면서 올라왔거든.”
오직 기세만으로 피워낸 바람.
나와 장대웅의 대치.
우리는 서로 열 발짝씩 물러난 채,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인물이 모여 있었다.
플로아, 막시, 카푸 등의 별천지의 멤버들은 기본이요.
“광전사와 스켈레톤 엠페러의 싸움이라니, 이건 못 참죠.”
이번에 랭킹 360위로 올라선.
흑검(黑劍) 이선아가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워허! 아무리 길드 일이 바빠도 이런 명장면은 또 놓칠 수 없지. 안 그래?”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돼지.
백돈(白豚) 유상돈도 구경 왔다.
그리고.
별천지의 멤버이자, 서울 오성(五星)의 일인.
게다가 이번에 하이 랭커로 편입하면서 또 한 번의 국뽕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
“동훈 씨, 파이팅입니다.”
세계 랭킹 95위.
암제(暗帝) 기소율이 미소 지으며 간결하게 외쳤다.
“뭐야.”
그 모습을 보던 백돈이 픽 웃었다.
“이제 별천지 멤버라고 주동훈을 응원하는 거야? 우리 서울 오성의 우정은 어디다 팔아먹고 온 거야?”
“둘 다 제겐 소중한 인연이지만, 왠지 오늘은 이쪽이 더 끌리네요.”
가볍게 대꾸한 기소율이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그러고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집중했다.
상위 랭커들의 대련.
앞으로의 성장에 좋은 공부가 될 싸움을 1초라도 놓치기 싫은 그녀였다.
* * *
결투의 시작.
먼저 움직인 것은 광전사였다.
“그래, 네크로맨서인 동생이 주먹을 든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얕보이고 있다는 것. 보여주마.”
그가 무릎을 살짝 굽히는 동시에, 폭발적인 속도로 질주했다.
“내가 왜 상위 랭커라 불리는지! 크하하!”
나는 장대웅의 접근을 바라보며 담담히 서 있었다.
자세를 낮춘 채, 그저 장대웅의 눈동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 움직임도 없었지만.
그 사이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목이 탈 정도로의 신경전이 있었다.
고수의 싸움은 여러 번 부딪히지 않는다.
서로 수를 읽고, 읽히고.
짧은 시간에 무수한 생각과 감각들을 처리한 뒤 움직이기에, 생각보다 결과가 빨리 나오기도 한다.
‘장대웅의 주먹.’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의 주먹에 담긴 진심을.
과거, 하늘에 떠서 건물을 뭉개버렸던 그 주먹.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었다.
하지만.
‘할 만해.’
사도들의 주먹도 무진장 빠르고 강했다.
나는 그런 주먹을 무려 몇 달 동안 맞아야 했다.
스슷!
내가 그림자를 밟았다.
허리를 왼쪽으로 숙여, 내 이마를 향해 다가오는 주먹을 살짝 흘려냄과 동시에.
「친다.」
후웅!
왼쪽 손으로 장대웅의 턱 아래를 올려쳤으나.
장대웅 역시 알아채고 허리를 뒤로 틀었다.
내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장대웅의 턱 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쉬웠다.
0.5㎝만 더 들어갔어도 치명타였는데.
후웅, 후웅!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대치가 시작됐다.
잠깐 당황했다는 표정을 짓던 장대웅이 다시금 주먹을 내 아래 복부를 향해 휘둘러 왔으며.
스슷!
나는 그림자를 밟아 뒤로 이동했다.
동시에.
「찬다.」
주먹보다 조금 더 긴 거리감의 발차기.
허리를 비튼다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이미 발등이 장대웅의 턱에 근접해 있었다.
퍼어억!
“허?”
순간적인 발차기에 턱을 허용한 장대웅의 다리가 풀렸다.
엉덩방아를 찧은 장대웅이 넋 놓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뭐야, 동생. 무슨 속도가 이렇게…….”
하지만, 고작 한 방으로 끝낼 순 없다.
곧바로 뒤구르기를 함과 동시에 자세를 잡은 장대웅의 눈이 부릅떠졌다.
“크하하! 확실히 달라졌군, 동생! 예전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야! 그럴만한 실력이 있었단 거지?”
“별말씀을요, 형님.”
다시 한번 수 싸움이 시작됐다.
약 3초라는 시간 동안 열 번의 주먹과 발이 오갔고.
결국, 한 걸음씩 장대웅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공격을 피하고, 중심을 잡기 위해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이미 공격을 허용한 순간부터 기세를 뺏긴 상태였다.
* * *
장대웅.
주먹에 한하여, 지구에서 가장 강한 남자.
하지만, 이제는 그 칭호를 떼버려야 할지도 몰랐다.
‘뭐야.’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장대웅은 계속해서 경악하고 있었다.
주동훈의 주먹과 발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고 강해서.
단순히 속도와 힘만 강한 게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벅찬데.
거리감이나 움직임, 반응 속도 등의 전투 센스가.
마치 수천 번 이상은 싸워본 베테랑의 냄새가 났다.
장대웅이 아무리 많이 싸워봤다지만, 비슷한 실력끼리 싸워본 건 손에 꼽는다.
반면에 주동훈은 본인보다 높은 실력의 사도들과 밤새워서 목숨 걸고 싸워본 이력이 있다.
장대웅이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
‘미쳤는데, 이거.’
하지만 장대웅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가까운 거리에 자신이 진심으로 덤벼도 받아줄 인재가 있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흐아아압!”
기술과 실력이 안 되면, 믿을 수 있는 것은 깡뿐.
광전사가 기합을 내질렀다.
콰앙! 쾅!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주동훈을 맞추려 해선 안 돼.’
그렇게 해서는 게임이 안 된다.
차라리 그 밑바닥을 쳐, 스플래시 데미지를 주어야 한다.
아무리 빠르다 해도, 튀는 파편까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피어오르는 흙먼지로 시야를 방해하는 것도 좋은 수였다.
그리고.
“으음.”
장대웅의 입가가 비틀렸다.
주동훈의 움직임이 본인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흙먼지를 해치고 정면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게 곧 패인이 되겠지.’
자신의 주먹이 제대로 꽂히면, 아무리 하이퍼 랭커급 헌터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장대웅은 집중했다.
자세를 낮추고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모든 기운을 주먹에 담아서.
쐐애액!
주동훈이 접근하는 방향을 향해 날렸다.
하지만.
‘무슨…….’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승리를 확신하던 그의 주먹으로 주동훈의 똑같은 주먹이 날아왔기 때문.
힘, 그리고 자세까지 비슷한 주먹.
‘설마, 이 주먹은?’
콰아아아앙!
두 주먹이 부딪히자, 다이너마이트라도 터진 듯한 폭음이 훈련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부딪힘만으로, 살갗이 벗겨지고 뼈가 욱신거릴 정도의 힘!
콰가가가!
몇 걸음씩 밀려난 둘이 서로를 바라봤다.
장내에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와우.”
“미친,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이게 천상계의 전투?”
별천지의 랭커들이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잡는 주동훈을 향해.
“동생, 그 주먹.”
조용히 읊조렸다.
“혹시 누구에게 배웠나?”
* * *
그 시각.
부르릉!
따로 주동훈의 명을 받은 김진아는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바로 경기도 의왕시.
그곳에 땅을 사기 위해서였다.
의왕이 좋은 이유는 그나마 살 수 있는 거대 부지가 있고, 그걸 이용할 수 있다는 점.
이미 서울과 그 근처 근교들은 대다수 땅이 기업이나 개인, 길드 집단에 먹혀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이 의왕.
‘여긴 입지가 좋은 것에 비해 주변 성남이나 과천, 수원, 용인 등에 완전히 밀려 있어.’
그녀가 땅을 고르는 기준은 딱 세 가지였다.
1. 서울과 적당히 가까울 것.
2. 넓은 부지를 살 수 있을 것.
3. 근교지만, 사람이 적을 것.
그리고 그 모든 곳을 충족하는 곳이 바로 의왕이었다.
어차피 별천지의 개발은 무릉도원에 이루어진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그 포탈을 숨기기 위한 거대한 성.
동시에, 전 세계에서 찾아올 수 있는 「드미르 공방」의 전시장과 판매점.
‘물론.’
별천지가 부지를 샀다는 소식이 시장에 퍼지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 소식 하나만으로 의왕시가 다른 주변 시들을 다 잡아먹을 수도 있는 일.
그렇기에, 김진아는 시장에게 다이렉트로 컨택을 넣었고.
시장은 두손 두발 뻗고 나서서 일정을 잡았다.
‘광전사와 길마님의 싸움이라.’
사실 김진아라고 그 희귀한 전투를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가 비랭커라 한들, 일단은 헌터다.
또한 헌터라면, 하이 랭커들의 대련 소식에 심장이 뛰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겐 별천지가 더 중요했다.
무너진 「드미르 공방」, 복귀한 드미르.
밀린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하하하, 부길마. 오랜만이군. 가끔은 주인보다 그대가 더 정겹다니까.”
김진아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는 드미르가 타 있었다.
폴리모프로 드워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땅딸보.
김진아가 픽 웃었다.
“저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먼! 하하, 누군가가 필요로 하고 찾는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지.”
“목걸이는 잘 챙기셨죠?”
“고럼.”
드미르의 목에는 ‘델라일라의 던전 아티팩트’가 걸려 있었다.
예전처럼 다시 드미르가 관리하는 것.
김진아가 관리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렴 드미르가 더 나았다.
주동훈이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게 바로 드미르니까.
“후, 정비가 시급하긴 해요. 그동안 너무 쉬었거든요.”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나. 나도 얼마나 좀이 쑤신 줄 아나? 반년간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네.”
“예, 이제 팍팍 일하셔야죠.”
“이번에 그대가 위험할 뻔했다며? 이번에 확실히 느꼈으니, 기대하게나. 엘드린과 합작해서 보안도 확실한 걸작을 만들어 볼 테니.”
조수석에 앉아 파이팅하는 드미르의 모습이.
김진아는 너무도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