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25)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25화
모이는 정령사들
바람 구역을 지나, 중앙 구역에 도달한 이후.
정령왕들은 모두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 정령왕은 중앙 구역에 들어서지 않아. 우리끼리의 암묵적인 규칙이거든. 여기부터는 너희끼리 가야 해.
중앙 구역.
4대 정령들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정령계 중앙에 위치한 지역이다.
정령왕이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은 일종의 배려였다.
불의 정령왕 샐리온이 뜨면, 물의 정령들이 고통받는다.
물의 정령왕 엘라임이 뜨면, 불의 정령들이 고통받는다.
상극(相剋)의 원리.
아랫것들끼리 전쟁은 하더라도, 정령왕은 참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과 같은 개념이었다.
– 그때 말했던 정령사들은 구해두었다.
– 외형 설명을 해뒀으니, 금방 만날 수 있을 거예요.
– 큼큼, 최대한 빨리 중앙 구역으로 이동하라고 해뒀어.
정령왕들은 친절했다.
그 자리에서 각자 최상급 정령들에게 소식을 전달했고.
그 결과, 각자 1명씩의 정령사들을 지원받아 차출할 수 있었다.
물론.
제아의 요청으로 바람 쪽은 둘이었지만.
“언니.”
수아가 신경 쓰이는지 자꾸만 제아를 찾았다.
그러고는 속닥였다.
“……생각해 보니까 말이야.”
제아가 귀를 기울였다.
“그 전설의 정령사, 유이사가 그 토룡인가 뭔가한테 죽었다고 했잖아.”
“그치?”
“그 당시 유이사는 정령왕과 계약을 한 상태였고 말이야.”
“……그렇지?”
“근데 괜찮을까? 기연이니 뭐니 해도, 일단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
정령왕도 안 되는 걸.
고작 최상급 정령 몇 마리로 해결이 되겠냐는 뜻.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누칼협?
누가 가라고 칼 들고 협박했어?
물론, 자기들끼리 속닥거릴 수는 있다.
문제는 내 발달한 청각에 그게 다 들린다는 거지.
“수아 씨?”
내가 수아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예, 옙?”
화들짝 놀란 그녀가 당황하며 고개를 쳐든다.
내가 말을 이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요.”
“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예요. 안 가도 됩니다. 애초에 지원받는 거라고 했었잖아요.”
“아뇨!”
옆에서 듣고 있던 제아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녀가 노기 띤 낯으로 수아를 한번 쓱 훑었다.
마치 [소중한 기연을 그렇게 박차 버리면 어떻게 해?] 하는 표정으로.
“가야죠! 무조건 갈 거예요!”
“아뇨, 아뇨.”
내가 고개를 저었다.
“제아 씨한테 한 말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언니가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내가 말을 끊었다.
“제가 제대로 도전해보기도 전에 부정적인 소리부터 들으면, 뼛속까지 부정 타는 스타일이라서요.”
“그, 그래도…….”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자신이 있는 내가, 굳이 ‘수아’에게 ‘심원의 수정’을 만질 기회를 준다?
날 죽이려고 했던 앤데?
‘턱도 없지.’
물론, ‘제아’는 인정이다.
그녀는 어떻게든 날 살리려 했으니까.
인과응보(因果應報)!
원래 행한 대로 업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역시, 결정 내려야겠네요. 불안한 수아 씨는 그냥 여기 남으세요. 중앙 구역 깊은 곳에 들어가는 것은 언니뿐입니다.”
“…….”
듣고 있던 수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
막상 가지 말라고 하니까, 심경이 복잡하지?
무언가 지는 느낌 + 정말 기연을 놓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절묘하게 뒤섞였을 거야.
그리고.
본래 느꼈던 두려움은 천천히 사라질 테지.
“누, 누가 안 간대요?”
이윽고 수아의 입이 열렸다.
“저도 갈 거예요! 그냥 괜찮을까 물어봤던 것뿐이라고요…….”
참, 사람의 심리라는 게 웃기다.
가자니까 가기 싫고, 가지 말라니까 가고 싶지?
어찌 예상을 벗어나질 않냐.
하지만.
이미 늦었단다, 수아야.
내가 아무리 뒤끝이 없고 쿨한 사람이라 해도, 원한 있는 자에게 무언갈 떠먹여 주긴 싫거든.
“아니에요. 수아 씨는 가지 마세요.”
“간다니까요?!”
“아니, 가지 말라니까요?”
화르륵!
내 손아귀에서 불꽃이 튀기더니, 시뻘건 몽둥이가 등장했다.
“말귀를 못 알아먹으시는 건가?”
“…….”
말문이 막힌 수아가 입을 뻐끔거렸다.
설마 가지 말라고 몽둥이까지 꺼내 들 줄은 몰랐다는 표정.
내가 제아를 돌아봤다.
“언니 쪽도 정하세요. 같이 안 가실 거예요? 혼자라도 가실 거예요?”
“…….”
멈칫한 제아가 입술을 오물거리며 날 응시한다.
고민하는 눈빛.
하지만, 그 고민은 굉장히 짧았다.
주먹을 질끈 쥐고, 내 옆쪽으로 찰싹 달라붙었으니까.
“어, 언니……?”
“잘됐네요. 그래도 언니니까 동생보다는 더 나아야죠. 심원의 수정도 만지고, 정령 친화력도 늘리고. 맞죠?”
픽, 웃은 내가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걸음을 지속했다.
근데 참 이상하다.
황당한 표정으로 아무 말 못 하는 수아를 보니, 왜 이리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한 걸까?
‘아.’
어쩌면.
나 뒤끝이 좀 있는 걸지도?
* * *
깊은 곳 입구까지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중앙 구역에 도달한 이후로부터,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입구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목적지 주변은 갈색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대한 갈색 포탈 같은 것이 바닥에 연못처럼 깔려, 천천히 흐르고 있는 광경.
그 주변으로는 정령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정령왕께서 말한 자인가?”
“…….”
“……맞네. 저기 뒤따라오는 여자 정령사. 제아 실프리온이잖아. 세페우스 세계의 자매.”
놀랍게도 세 명은 나보다 먼저 도착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묵묵히 지켜보는 자, 은연중에 경계하는 자, 느긋한 자.
“정말 듣던 대로군.”
먼저, 느긋한 자가 앞으로 나섰다.
특이하게 생긴 갑옷에 붉은 머리칼을 허리까지 기른 남성.
화(火) 속성 기운이 느껴지는 게.
불의 최상급 정령, 셀레아나와 계약한 정령사인 듯하다.
“정말 정령 친화력이 하나도 없는 자가 정령계에 있었어. 너는 어느 세계의 존재지?”
어느 세계?
“지구.”
“처음 듣는 세계로군.”
“그쪽은 어느 세계인데요?”
“나?”
남자가 싱글벙글 웃었다.
“비에이-12.”
?
꽤나 신기한 이름이다.
옆에 숫자가 붙어 있는 건 또 뭐지?
“다들 처음 우리 세계의 이름을 들으면 그런 표정들 해. 후후. 우린 행성을 점령할 수 있는 문명이거든. 난 비에이 제국의 12번째 행성 출신이야.”
미친.
나는 속으로 기겁했다.
행성을 점령할 수 있는 문명?
적어도 지구보단 훨씬 앞서 있는 문명이란 뜻이잖아?
그야말로 외계인.
‘사실, 뭐.’
지금 만나고 있는 애들이 다 외계인들이긴 하지.
내 수하인 뼈다귀들도 그렇고.
‘그래도.’
행성 점령이라는 소리를 막상 눈앞에서 들으니까 충격이긴 했다.
어쨌든 남자의 이름은 이스타였다.
다음은 묵묵하게 지켜보는 자.
단정한 생머리가 어깨에 살짝 닿아있는 여성의 이름은 케린.
‘오시로툼’이라는 세계의 랭커란다.
그녀는 물의 최상급 정령, 엘레스트라와 계약한 정령사였다.
마지막으로 링링.
살짝 경계하는 표정의 황토색 머리, 키 작은 소녀는 ‘탕타라’ 세계의 랭커.
땅의 정령사였다.
“후.”
내가 짧게 호흡했다.
이거 참.
다양한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 버렸네.
“그래.”
붉은 머리 남자, 이스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령왕께서 말하길, 네가 토룡을 토벌할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던데?”
그가 혀를 입술로 핥았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어떤 자신감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들어볼 수나 있을까?”
“자신감이요?”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들 이거.
수아랑 비슷하게 일종의 착각을 하는 거 같은데.
“뭔가 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나 본데요?”
“뭐?”
이스타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러분이 저기 깊은 곳에 들어가고 말고는 자유예요.”
내가 지켜야 할 사람?
아니, 지킨다는 표현도 너무 갔고, 조금 신경 써줘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오직 ‘제아’뿐이다.
나머지는 그냥 혼자 들어가기 애매하니, 함께 힘을 맞춰보는 방파제에 불과할 뿐.
요컨대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 던져보는 돌멩이랄까?
“자신감?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더 강해지기 위해 도전할 뿐인 거죠. 내가 당신들의 목숨을 챙기는 일도 없을 거고, 당신들에게 제 목숨을 맡기지도 않을 거예요. 그냥 상호 거래. 같이 싸워서 토벌에 성공하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어이쿠, 정말 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나 보네?”
픽.
남자가 실소를 흘렸다.
“난 또 무슨 기상천외한 방법이라도 있는 줄. 그냥 무식하게 들이받아 보자는 거지?”
“전 오히려 좋은데요?”
땅의 최상급 정령 노에아넨과 계약한 소녀, 링링이 나섰다.
“왜 우릴 불렀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왔었는데,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까고 가는 게 낫죠. 뒤통수치는 것보단.”
쿠구구구……!
그녀가 작은 골렘, 노에아넨을 불러냈다.
대략 5m 정도 크기의 골렘이 손을 내밀어 소녀를 어깨 위에 태웠다.
“저는 준비됐어요. 누구 하나라도 먼저 들어가면 따라 들어갑니다. 노아스랑 계약하려면 이 정도 시련은 있어야겠죠.”
호오.
링링은 의외였다.
과연, 다른 세계라도 랭커는 랭커인 걸까?
굉장히 똑 부러진 애였다.
‘근데.’
문득, 궁금해진다.
쟤, 아무리 봐도 미성년자 같은데…….
저쪽 세계는 성인 때부터 고유 능력을 얻는 게 아닌 건가?
내가 빤히 링링을 쳐다보고 있자, 옆에서 제아가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그러고는 속삭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링링 저분, 127살이에요.”
“…….”
헉?
마탑주보다 더 오래 산 할머니셨네?
“저쪽 세계 인류는 평균 수명이 좀 길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그래그래.
행성 침공을 하는 문명도 있는데, 수명이 긴 문명이라고 없을까.
저쪽 세계는 우주과학보다 생명공학이 더 발전했나 보지.
그렇게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
저벅, 저벅.
말없이 걸어가는 자가 있었다.
묵묵하게 지켜보던 케린.
그녀가 가는 곳은 바로 중앙 구역 깊은 곳, 입구.
계속 걸음을 지속하던 그녀는 이내, 쏙! 먼저 입구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와우.
저 사람은 진짜 쿨한데?
말도 없이 저렇게 먼저 진입한다고?
“케린이 먼저 갔네요. 그럼 저도 갑니다.”
쿵! 쿵!
노에아넨을 끌고 링링도 걸음을 지속했다.
“하, 하하!”
남자, 이스타가 웃었다.
“그래, 우리가 뭐 소풍이나 친목 도모하러 모인 것도 아닌데, 결심을 내렸으면 바로 행해야지. 그래, 자기소개는 이쯤 하고 들어가 보자고!”
먼저 들어간 두 여자에게 지기 싫었는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같이 들어가는 게 더 안전할 거라 판단한 건지.
이스타도 재빨리 따라 들어갔다.
난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알아서 대화하더니 쓱 들어가 버리는 정령사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우리도 가야 하는 거 아녜요?”
제아가 입을 달싹거렸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안 들어간다고 하면 어쩔까 고민했는데,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먼저 들어가 준다니, 나야 고맙지.
“가죠.”
토룡 잡으러.
스슷!
나 역시 그림자를 밟아, 입구로 향했고.
내 뒤를 제아가 따랐다.
동시에.
사방을 뒤덮고 있는 갈색 기류를 향해 몸을 던졌다.
[던전에 입장합니다.]쿠구구구!
시야가 혼돈으로 뒤집혔고.
마침내.
내 사랑스러운 수하.
뼈구의 전생.
위대한 정령사, 유이사 스톰트리를 죽였던 존재, 토룡(土龍)이 존재하는 곳에 입장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