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30)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30화
너를 위해 싸울 거야
바람궁 내부.
휘이잉!
선선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속에서.
“그래서, 같이 가려던 걸 그냥 버려두고 갔다니까요?”
수아가 억울하게 비틀린 얼굴로 이빨을 꾹 문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두려워도 가겠다니까 무슨 시뻘건 몽둥이를 들이밀면서……! 어떻게 그렇게 황당한 사람이 다 있는 거죠?”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는지, 바람궁에 있는 실피드에게까지 와서 열변을 토하는 그녀.
원래 같았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허허, 그랬느냐?”
실피드 역시 제정신은 아니었다.
정신이 완전 다른 곳에 팔려 버린 바람의 정령왕은 수아의 토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네가 잘못했나 보구나.”
“정령왕님?!”
“으음……. 과연 어떻게 됐으려나. 아아, 궁금하도다.”
동동.
발을 구르며, 중앙 구역에 시선을 두는 실피드.
그녀는 오랜만에 가슴의 떨림을 느꼈다.
자신이 사랑했던 최초의 계약자.
유이사 스톰트리의 향기를 가진 남자.
‘그자가 과연.’
꿈에 그리던 유이사를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유이사…….’
실피드가 괴로운 듯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그녀를 괴롭혔다.
– 실피드 미안…….
자신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지막 유언을 남겼던 그녀.
실피드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유이사는 그 괴수 앞에서 자신을 놓은 걸까?
도대체 토룡의 눈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
휘이잉!
바람궁의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저, 정령왕님? 갑자기 왜?”
“아.”
수아의 부름에 실피드가 퍼뜩 정신 차렸다.
“미안하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운을 폭주시킬 뻔했다.
유이사.
실피드도 모르는 그녀의 한.
과연 남자는 그 한을 풀어낼 수 있을까?
자신의 힘 없이 토룡을 처리할 수 있을까?
만약.
그 남자 역시 토룡의 이빨에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영영 유이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건가?
싫다.
그건 싫은…….
실피드의 감정이 끓어오르려 할 찰나였다.
휘이이잉!
그녀의 앞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든 것은 그때였다.
“음?”
실피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바람궁 안에 자신의 허락 없이 바람이 분다는 것은…….
“엉?”
그녀의 입이 슬며시 벌어졌다.
쿵쿵!
가슴이 뛰었다.
“이, 이건……?”
목소리도 떨렸다.
아.
아아.
이 익숙한 기운, 그 아련한 향이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다.
“설마……!”
쿠구구구구……!
바람궁 전역에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신의 계약자가 간절하게 본인을 부를 때 나타나는 현상.
조금 지나면.
바람은 압축되고 압축되어 하나의 소환진을 만들어내겠지.
“유, 유이사? 정말이야?!”
그리고.
이러한 향에, 이러한 소환진을 불러낼 수 있는 존재는 실피드가 알기로 단 하나뿐.
유이사 스톰트리.
정말.
죽은 그녀가 살아 돌아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유이사아아아아아!”
실피드가 유이사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휭! 하고 소환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저, 정령왕님?”
아까부터 애타게 실피드만 부르던 수아는.
[이게 뭔 일이지?] 하는 표정으로 멍하니 소환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 *
정령계 깊은 곳.
쿠콰가가가가가가……!
유이사가 불러낸 네 가지 문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화르르륵!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근육질 불꽃 남성.
불의 정령왕, 셀리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유이사를 살려낸 거야? 진짜로?”
뾰륵!
문에서 머메이드 몸매를 뽐내는 엘라임도 등장했다.
“진짜 유이사가 맞아요. 어떻게 이럴 수가! 대단하잖아요!”
쿠구구구구……!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토룡과 비슷한 크기의 골렘.
– 그워어어어어어어!
땅의 정령왕, 노아스도 흥분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이사.”
휘이이잉!
광풍의 소환진에서부터 등장한 실피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바라봤다.
“실피드.”
유이사가 애틋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 보았다.
“……진짜야? 진짜 유이사야……?”
휘잉! 휘이잉!
그럴 리가 없다.
죽었던 존재가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살아나는 경우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성좌급 위 성운급 존재라 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단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실피드.”
토룡의 모성애를 지켜준 것은 오직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 대가는 죽음.
물론, 그 당시에는 죽고 싶어서 죽은 건 아니다.
그저.
급박한 순간에, 본인이 살기 위해서는 토룡을 죽여야 했고.
그것을 회피했을 뿐이다.
“…….”
자신의 죽음이 선택의 결과라 한다면, 달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실피드는?
남은 그녀는 어떤 고통을 받아야 했겠는가.
“…….”
실피드가 가슴을 추스른 후, 주변을 돌아보았다.
살아 있는 토룡.
거둬진 광풍의 흔적.
그리고.
그 토룡 위에 올라와 있는 두 마리의 새끼들.
‘아.’
실피드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유이사가 마지막 순간에 본 것이 무엇인지.
“그랬던 거야?”
과연, 그랬던 것인가.
실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이사의 착한 심정은 둘째치고, 그녀는 살아생전, 미혼모였다고 들었다.
그것도 자식을 잃었던 미혼모.
– 붸붸붸붸!
– 안뇽, 유이사!
– 꺄르르, 꺄르르를!
유난히 하급 정령인 실프들을 귀여워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지.
그런 그녀가 토룡의 새끼 둘을 두고 토룡을 죽일 수 있었을까?
혹여 죽였다 하더라도.
그 덕에 힘을 얻었다 하더라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겠지.
천성이 선한 그녀는 분명히 그랬을 거다.
‘어쨌든.’
잘되었다.
잘 풀렸다.
그 결과, 정령 친화력에도 완전한 성장을 보인 것 같고.
또.
슬쩍.
실피드가 유이사의 왼쪽 구석을 바라봤다.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남자.
‘좋은 주인도 얻은 것 같으니.’
“난, 이해해. 유이사.”
실피드는 울지 않았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온전히 그녀의 귀환을 기뻐했다.
“이제 나 말고 다른 정령왕들이랑도 계약하는 거야?”
그녀가 질문하는 순간.
“……!”
정령사들.
이스타, 케린, 링링, 제아가 입을 떡 벌렸다.
4대 정령왕과 모두 계약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본인들의 눈앞에 있는데, 어찌 놀라지 않으랴.
‘미친 정령왕 넷이랑 계약? 말도 안 돼.’
‘혹시나 했는데.’
‘진짜란 말이야?’
믿을 수밖에 없다.
그 말을 꺼낸 자가, 정령왕 중 하나이니.
“크하하하,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 건가?”
“그럼 저도 실피드처럼 유이사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샐리온과 엘라임이 환하게 웃었고.
– 그워워워어어어어어워워워워!
쿵쿵쿵쿵!
노아스가 핑그르르 도는 팔로 신나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흥분했다는 방증.
“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이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왕님들 모두, 저 유이사와 계약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 * *
4대 정령왕과의 계약.
그것은 간단했다.
이미 유이사는 정령왕을 불러내었다.
그 이후, 본인이 가진 친화력에 따라 계약 의사를 확인하면 끝.
그리고 각성한 그녀에겐 충분한 친화력이 있었다.
[위대한 정령사, ‘유이사 스톰트리’가 불의 정령왕 ‘샐리온’과 계약합니다.] [위대한 정령사, ‘유이사 스톰트리’가 물의 정령왕 ‘엘라임’과 계약합니다.] [위대한 정령사, ‘유이사 스톰트리’가 땅의 정령왕 ‘노아스’와 계약합니다.]실피드는 원래 계약이 되어 있으므로 패스.
그에 따라.
[축하합니다!] [4대 정령왕과 모두 계약합니다!] [‘유이사 스톰트리’의 기력이 400 증가합니다!] [‘유이사 스톰트리’의 등급이 SSS급으로 상향됩니다!] [‘유이사 스톰트리’의 모든 스탯이 20 증가합니다!]‘미친.’
내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4대 정령왕과 모두 계약한 데다가 성좌급으로 오르다니.
그럼 내 소환수가 나보다 등급이 높은 꼴이잖아?
‘게다가.’
유이사는 자신보다 아래 등급의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 있다.
그 스켈레톤이 모두 정령을 부린다면?
‘이건 진짜 사기 아니야?’
그것만으로 지구로 복귀했을 때, 바로 랭킹 1위 찍어버릴 수준인데.
혹여 모종의 이유로 랭킹 1위가 안 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지기 힘들 수준으로 올라선 느낌이다.
‘다만.’
걱정되는 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이사의 성격.
그녀는 너무 착하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과 싸워야 할 순간이 수없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머뭇거리거나, 불만을 품는다면……. 낭패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건 한번 잡고 넘어가 줘야 한다.
“유이사.”
내가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더니,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 부르셨나요, 주인님.”
4대 정령왕과 계약한 정령사가 날 이토록 공손하게 모시다니……. 이건 진짜 감회가 새롭긴 하네.
공손한 유이사를 보자, 샐리온이 픽 웃었다.
“뭐야, 이거. 족보가 어떻게 되는 거야?”
“흐응, 어떻게 되긴요, 멍청한 샐리온.”
엘라임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계약자의 주인이면, 우리의 주인 아니겠어요?”
촤르륵!
물결과 함께 움직인 엘라임이 유이사가 아닌 나에게 달라붙었다.
“후훗, 똑똑한 정령왕이라면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하는지 딱 각이 나오는데.”
다가온 그녀가 물의 손길로 내 뺨을 쓸었다.
맞지.
이전에 정령왕들에게도 말했었다.
– 유이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토룡을 토벌해야 해요. 하지만, 그 토룡이 만만치 않은 건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겠죠? 그러하니, 같이 싸울 정령사를 구해주세요. 각자. 구해오는 만큼, 제 점수를 따는 겁니다.
내 점수를 따라고.
그게 더 많은 세상을 구경하는 방법이라고.
내 눈 밖에 나면?
정령계에서 썩어야지 뭐.
내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엘라임이 똑똑하네요. 누구랑은 다르게.”
“헤헤, 그렇죠?”
촤르륵! 촤르륵!
엘라임이 기쁘게 물줄기를 뿌려댔다.
[수(水)의 정수가 눈살을 찌푸립니다.] [그 누구가 누구냐? 설마 나?]오.
확실히 물 쪽이 똑똑하긴 한가 보네.
– 그워어어어어어어!
쿠우웅!
노아스가 나를 향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동훈.”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
“난 네게 감사해.”
휘이잉!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건 네가 유이사의 주인인 것과는 별개야. 넌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고, 슬픔을 행복으로 바꿔줬어.”
휘잉!
그녀에게 부는 바람이 기분 좋게 내 머리칼을 휘날렸다.
“그러므로 나 정령왕 실피드는 계약 없이도 네 명을 따르고 너를 위해 싸울 거야. 이건 내 진심이야.”
정령왕의 결연한 선언.
“그 말은……?”
나는 그 선언의 진의를 물었다.
실피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계약자와 정령왕의 관계는 동급이지. 즉, 내가 네 명을 따르겠다는 말은……. 유이사의 말보다 너의 말을 우선하겠다는 말이야. 물론, 네가 유이사의 주인이니 의미 없는 말이긴 하지만.”
와.
내가 입을 멍하니 살짝 벌렸다.
이건.
생각보다 개이득인데?
정령왕과 계약하는 것보다 더 좋은 거잖아?
자발적인 수하라니.
물론, 정령왕들을 부르려면 유이사가 필요하겠지만.
그건 내가 매번 할 수 있으니 아예 상관이 없다.
“…….”
정령왕들의 반응을 들은 내가 다시 유이사를 바라봤다.
– 예. 부르셨나요, 주인님.
그렇게 말한 이후로.
반응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아직도 내 말을 기다리는 그녀.
그녀에겐 어떠한 불만도, 의문도 없어 보였다.
내가 입을 열었다.
“나와 지내다 보면 네가 가진 사상과 다르게 힘을 쓰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야.”
“예, 주인님.”
“그래도 괜찮아?”
즉.
토룡과 같이 또 모성애를 자극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불만 없이 내 명을 이행할 수 있냐는 질문.
“물론이어요, 주인님.”
유이사가 부드럽게 웃었다.
“이미 제 삶은 한 번 끝났어요. 마지막 순간, 저를 괴롭혔던 후회를 주인님께서 해결해 주신 순간부터……. 이미 제 새 삶은 주인님의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러하니.”
그녀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마주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저는 변함없는 당신의 칼이자 도구입니다.”
아아.
정령왕들도, 유이사도.
이렇게 듬직한 순간이 있을 수 있을까?
가슴이 벅차오를 찰나.
반짝!
토룡이 지키던 ‘심원의 수정.’
그 사이에 있던 작은 파편이 빛을 발한 것은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