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62)
한정판 무기 1호
은은한 조명길.
사람들로 북적한 고투몰 내부.
“으음.”
기소율은 근처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굉장히 마음이 심란한 상태였다.
‘……주동훈.’
그 사람이 딱히 신경 쓰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열 받았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없었다기보다는 모르겠다는 말이 더 와닿을 수도 있겠다.
‘어떻게 연락 한 번이 없을까?’
사내가 여태껏 보호해 줘서 고마웠다며, 이제는 오롯이 홀로 서고 싶다 했을 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랑이 찾아낸 던전의 보상을 가져갔지만, 그것 역시 쿨하게 인정했다.
훈련만 참관하게 해달라 했을 뿐, 별다른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뿐이랴?
터무니없이 저돌적인 게 걱정이라며, 언제든 위기가 닥쳤을 땐 파랑에 도움을 청하라고도 했다.
그는 그렇게 매개체 던전으로 떠났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오고 나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소식이 없었다.
그가 도착했다는 사실도 신문에 나 있는 「드미르 공방」이라는 기사 때문에 알았다.
[특이한 스켈레톤들이 직접 인테리어한 이색 공방! 그 주인은?] [최근 경매장에서 화젯거리였던 ‘드미르 보급 세트’를 만든 드미르 공방! 새로운 아이템은 언제 출시할까?] [소식 없는 드미르 공방, 이주가 넘도록 망치질 소리만 들려. 누리꾼들의 기대감 증폭!]‘스켈레톤을 저렇게 쓰는 남자.’
그녀가 알기로는 적어도 국내엔 주동훈 밖에 없다.
세상 그 어떤 네크로맨서도 ‘스켈레톤’을 주로 사용하진 않으니까.
“쓰읍.”
그래서 뭔가 속이 상했다.
나름 걱정했는데.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 정도만 넌지시 보내도 괜찮았을 텐데.
“후.”
왜 이렇게까지 심란해야만 하는지, 본인의 감정에 짜증이 나려 할 찰나.
“어이, 암제.”
누군가가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서울 오성 중 하나.
랭킹 829위, 백돈(白豚)이었다.
“청승맞게 거기 앉아 뭐 하고 있냐? 너답지 않게.”
“유상돈? 당신이 여긴 어떻게 알고……?”
“고투몰이잖냐. 내 나와바리에 세계에서 가장 은밀한 암살자가 등장했다는데, 관리해 줘야지 않겠어? 부하들이 불안해한다고.”
유상돈이 씩 입꼬리를 들었다.
“그래, 암제께서 친히 여기까지 행차하신 이유는 역시 그놈 때문이겠지?”
“네? 그놈이라뇨?”
“드미르 공방주.”
“…….”
“뭐, 뻔하지. 나도 참 놀랐다니까. 네가 소개해 준 그 청년이 설마 요즘 핫한 신생 공방의 주인일 줄이야. 뭐, 원래였다면 우리 백돈 측에서 견제가 들어갔겠지만…….”
“저 때문에 관둔 건가요?”
“그렇지, 하하. 아무리 돈이 좋다 해도 목숨만큼 중한 건 아니니까.”
유상돈이 장난식으로 본인의 목을 쓰다듬었다.
“농담도 참…….”
기소율이 픽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백돈 정도면, 본인의 호위 하나쯤은 무조건 대동하고 다닌다.
그의 재산으로 해외 100위권 랭커들을 영입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게다가.
서울 오성(五星)은 굳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 긴밀한 관계다.
던전 메이커, 델라일라(Delilah)를 통해 랭커가 된 동기이자.
그 추천권을 위한 동맹 관계.
현재 기소율이 가장 믿고 있는 인간관계이기도 했다.
“여어, 친구. 그래서 왔으면 후딱 가보지, 왜 여기 앉아서 시간 뽀개고 있는 거냐고. 설마 천하의 암제가 자존심 때문에 먼저 갈까 말까 고민하는 건 아니겠지?”
“…….”
“어엉? 뜨끔 하는 표정 보니 진짠데? 이거 백 퍼센튼데?”
“……후, 말을 마시죠.”
기소율이 한숨을 내쉬며, 답을 피했다.
눈도 피했다.
사실.
백돈의 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
그 모습을 본 유상돈이 혀를 찼다.
“쯧, 그러지 말고 먼저 찾아가 보라고. 사실 난 그 친구 이해하거든?”
“그 친구를 이해한다고요?”
“봐봐. 우리야 동기기도 하고, 같은 랭커라 좀 편하다 쳐도…… 일반 사람들이 널 얼마나 어려워하는지 아냐?”
“저를요?”
“허어, 이거 봐라? 진짜 모르는 거야?”
“…….”
“암살 고유 능력으로 세상에서 제일 척 지면 안 되는 인물 1위로 등재된 데다가, 오빠가 기파랑이야, 기파랑! 무려 명궁이라고! 랭킹 58위 말이야! 게다가 성격도 얼마나 까칠한지. 매스컴에도 안 나오고, 말수도 적고, 시크하고. 표정 좀 봐.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모가지를 썰어버릴 것처럼 도도해가지고…… 오?”
말하던 유상돈이 찔끔 물러섰다.
기소율의 눈이 좁아져 있었기 때문.
“유상돈 씨?”
“으힉?”
“설마 당신의 평소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아니겠죠?”
“아하하하, 어쨌든, 그렇다는 거지. 난 조언해 줬으니까 그럼 즐거운 고투몰 여행 되라고! 난 일이 있어서 이만.”
그러고는 재빨리 군중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기소율이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계속 백돈의 말이 맴돌고 있었다.
‘정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녀 본인이 생각해도 자신이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니.
‘게다가.’
애초에 자신에게 접근할 만한 깜냥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상황 자체를 원천 차단했기도 하고.
‘그래, 가보자. 뭐, 무기 하나 맞추러 왔다 하면 되는 거잖아?’
벌떡.
그녀가 일어섰다.
아무래도 여기서 고민해 봐야 답은 안 나온다.
직접 만나서 인사하고, 넌지시 물어봐야 심란한 마음이 좀 해결될 것 같았다.
스슷!
순식간에 사라진 신형.
그 벤치 위에는 피오니 향만 남아 있었다.
* * *
까앙! 까앙!
드미르 공방 앞에 도착한 기소율은 청량한 망치 소리를 들었다.
“…….”
원래는 기척을 숨기고 다녔었는데.
이번엔 굳이 그러지 않았다.
두건만 쓴 채로 휘적휘적 다녔다.
어차피 고투몰의 터줏대감, 백돈이 인지하고 있는 이상 자신을 건들 헌터는 없다.
까앙! 까앙!
문밖에서.
그녀는 아까부터 들려오는 망치 소리를 들었다.
‘거의 2주 동안 나오지도 않고 망치만 휘둘렀다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평소 좋아하던 훈련도 마다하고 저기 틀어박혀 있는 걸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옆집 상점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중년으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쯧, 아가씨도 저 집 청년 보러 왔구만?”
“네?”
“아서라, 돌아가는 게 좋을 거여. 저 친구 저 안에 박혀서 꿈쩍도 안 해. 도대체 뭘 만들고 있는 건지. 기자들이 문을 두들겨도 응답 하나 안 한다니께?”
“아하하, 그런가요?”
기소율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젠 괜찮을 것 같네요.”
“으잉?”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기소율이 두건 속에서 픽 웃었다.
굳이 문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
태청심법을 운용하던 그가 방금 딱! 가부좌를 끝냈다.
“보세요. 망치 소리. 이제 안 들리잖아요.”
“오오? 정말이네?”
“그럼 들어가 볼게요.”
기소율은 걸음을 옮겼다.
킁킁.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냄새를 맡았다.
무언가, 자신과 비슷한 향이 났다.
차갑고, 날카로운 향.
똑똑!
일단 문을 두들겼다.
동시에 말했다.
“여기 요즘 핫한 공방이던데. 의뢰받나요?”
본심을 숨긴 질문이었다.
“오, 암제님?”
사내가 굉장히 반가운 표정으로 기소율을 반겼다.
“…….”
그녀는 입을 삐죽였다.
저 반가운 표정이 본인에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기 때문.
‘그럴 거면 진즉에 연락이나 해줄 것이지.’
그래, 뭐.
별 상관 없다.
어차피 크게 기대했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저 자신은 이곳에 새로운 무기를 의뢰하러 온 것일 뿐이다.
“네. 오랜만이네요, 주동훈 씨.”
“와, 마침 잘 오셨어요. 근데 진짜 엄청 신기하네요. 마침 딱 찾아가려 했었는데 어떻게 알고.”
마침 찾아가려 했다?
퍽이나.
삐죽인 그녀의 입술이 더욱더 비틀어졌다.
하지만.
“여기 받으세요.”
“예?”
그가 내미는 무언가에 기소율의 동공이 커졌다.
“방금까지 제작했던 단검이에요. 사실, 암제님께는 굉장히 도움 많이 받았었잖아요. 무언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시죠? 제 신조. 은혜도 원수도 무조건 두 배 이상으로 갚는 거.”
“……예?”
당황스러웠다.
‘설마.’
이 주 동안 망치를 두들겼다는 게…….
잠도 안 자고 미친 듯이 만들었다는 그 무기가…….
‘이거? 나를 위한 무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라고?’
넋 놓은 기소율이 단검을 건네받았다.
검면에서 흐르는 어두운 빛깔이 굉장히 세련된 무기.
각인된 문양과 디자인은 절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마치, 이 세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냉기였지만, 그 속에는 분명 따스함이 있었다.
‘뭐야…….’
손바닥에 식은땀이 흘렀다.
진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
선물을 몇 번 받기는 했어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아, 물론 그냥 드리는 건 아니에요. 이거 만드느라 저도 온 힘을 다 갈아 넣은 터라. 홍보 정도는 해주셔야 합니다?”
“……그, 그래요.”
얼마나 당황했는지, 말도 더듬어서 나온다.
하지만, 놀람은 이제 시작이었다.
[띠링!]그녀의 시야에 아이템의 정보가 떠올랐다.
[아이템 : 암살자를 위한 단검] [등급 : S] [종류 : 단검] [설명 : 전설의 대장장이 드미르와 그의 주인이 한 암살자를 떠올리며 만든 무기! 놀라운 집중력과 열정으로 설계를 초월하는 성능을 자랑합니다.] [효과1 : 민첩 50 증가.] [효과2 : 공격 속도 200% 증가.] [효과3 : 은신 후, 첫 타격 시 피해량 500% 증가.] [효과4 : 빙계 마법에 대한 저항력 30% 증가.]“미, 미친!”
기소율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S급 아이템이 어떻게?”
S급 아이템이 어떤 존재던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것.
굉장히 희소하기에 성능에 따라 가치에 천장이 없다.
정말 좋은 건,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성능도 말도 안 되잖아!’
단언컨대.
본인이 쓰고 있던 단검보다 훨씬 효과가 뛰어났다.
사내가 뿌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죠?”
“이건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에요!”
도대체 매개체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 달도 안 돼서 S급 아이템을 뽑아낼 수 있단 말인가.
믿을 수 없었다.
물론, 그것보다.
[설명 : 전설의 대장장이 드미르와 그의 주인이 한 암살자를 떠올리며 만든 무기!]이 설명 부분이 더 신경 쓰였다.
‘한 암살자’가 본인을 칭하는 것임을 잘 알기에.
분명 단검에는 자신의 향이 배어 있었다.
사내는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
그 뭉클한 느낌에 기소율은 뭐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마운데, 고맙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표현해 본 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소중히 사용할게요.”
그저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또한 그녀는 문득 알 수 있었다.
심란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네, 잘 써줘야 해요. 우리 드미르 공방의 첫 한정판 무기 1호니까.”
“……1호요?”
맥이 빠졌다.
1호라는 건, 이 정도의 S급 아이템을 또 만들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더 놀랄 힘도 없었다.
‘역시.’
노인과 합세했을 때부터.
아니, 노인을 만나기 전부터.
이 사내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자신은 그것을 알아본 것뿐이다.
그렇게 기소율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단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
공방 문에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실례합니다. 혹시 계십니까?”
“네, 있는데요, 누구시죠?”
주동훈이 답하자, 바깥에서 말을 이었다.
“오성 공방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비서팀 소속 류진호라고 하는데요. 혹시 건물 점유 문제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오성 공방?
기소율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