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129
제129화
샤이아는 가족이 있다면 얼씨구나 하면서 인질로 삼을 거고, 내가 죽더라도 인간성 따위 개나 줘버리고 온갖 짓거리를 다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난 왜 데리고 가려는 건데?”
“네 능력이 필요해. 너한테 미안해. 하지만 맡길 사람이 없어.”
강화된 대전차총을 어렵게 마련했는데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지 않나.
이 일에 특화된 이자벨도 있는데 안 쓸 수 없고.
“후우, 알았어.”
힘들게 이자벨을 설득하고 나니 다음은 레아였고, 그 다음은 아나이스였다.
두 사람이 왜 이자벨만 데리고 가냐고 따지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진짜 고민했다.
“이자벨이 손이 좀 빨라. 옆에서 날 보조해줄 사람이 있어야 해서 그래.”
설명했지만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한참이나 얘기하고, 또 얘기하고, 얘기하고…
‘젠장. 전투보다 이게 더 힘든 거 같아.’
대화하면서 살이 몇 킬로는 빠진 거 같았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네. 나중엔 아내들만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설득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딸이 없는 게 감사했다.
그런데!
“아, 아기가 생겼다고? 전부? 셋 다?”
떠나기 전날 셋이 함께 찾아왔는데 하나 같이 살짝 배가 나와 있었다.
심지어 이자벨도.
불과 며칠 전에 논쟁할 때만 해도 말이 없었는데.
‘하! 미치겠다.’
아들이 생겼을 때는 기뻤다.
이 세계에서 아이를 가져도 되는 건지 고민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기뻤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키우려고.’
키우는 게 제일 먼저 걱정이었다.
다음은 안전.
전과 달리 난 공국의 주인이 되었다.
당장 샤이아도 죽이려고 오고 있지 않나.
마지막은 상속.
나눠줘야 할 자식들이 늘어나는 데 어떻게 줘야 불만들이 없을까.
자식들이 서로 더 갖겠다고 싸우는 꼴을 어떤 부모가 보고 싶겠나.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도 시퍼렇게 눈 뜨고 나눠지는 재산을 바라볼 거다.
아! 하나 더 있다.
개인의 능력.
내 자식이지만 능력은 다 다를 거다.
나는 플레이어지만 자식들은 아니다.
때문에 어떻게 능력을 키워줄 건지가 문제였다.
지휘관 성장 주문서란 치트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과연 좋은 걸까?’
개개인마다 재능이 있는 건데.
더불어 각자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있을 테고.
그런데 내가 하는 건 재능이나 관심은 무시하고 무작정 올리기만 하는 거였다.
복잡한 심정으로 세 아내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자벨은 나중에 따로 만나 며칠 전에는 왜 말을 안했는지 물어보니 원래는 끝까지 숨기려고 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레아랑 아나이스가 당신에게 임신 얘기를 하겠다고 하잖아. 그래서 나도 숨기지 않기로 한 거야.”
“그럼 당신은 여기에 남아.”
임산부를 어떻게 전쟁터에 데리고 가겠나.
“싫어. 또 싸우고 싶어?”
이자벨의 이 한 마디에 설득의 의욕이 다 사라졌다.
“끄응. 알아서 해라.”
기력이 없어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런데 문득 머리를 스치는 서늘함.
아니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차가운 한기.
‘서, 설마 셋 다 딸인 건 아니겠지?’
다가올 미래에 아내 셋과 딸 셋이 함께 몰려와 종알종알하며 시시콜콜 따지면 난!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제발 자녀는 여기까지만.’
아무튼 샤이아를 반드시 이겨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
아라가 환상으로 본 전장은 지난번 드레이크와 싸웠던 바로 그 장소였다.
제국에서 공국으로 오는 길이 세 개인데 하나는 너무 북쪽이라 사냥꾼들이나 다니는 길이었고, 다음이 지금 이곳.
마지막은 제국의 수도에서 오려면 한참 돌아오는 길이라 경로가 너무 길었다.
‘흑마법사들이 미리 준비를 해놨겠지?’
마법진 자체는 크지 않지만 영향력은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그런 거.
그래서 수만 명에 달하는 병사를 제물로 삼아 악마를 소환하는 거다.
모라크스를 소환하지 못하도록 전장의 위치를 바꿔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는데 샤이아는 어떤 식으로든 수만 명을 제물로 모라크스를 불러낼 텐데 내가 모르는 장소, 모르는 시간이면 오히려 대비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해서였다.
매도 일찍 맞는다는 것처럼 차라리 아라가 환상을 본 곳, 본 시간에 끝을 내기로 했다.
한편, 베르게르 공국군을 본 샤이아.
“크크. 더 많이 왔으면 했는데. 아쉽네.”
눈에 들어온 적병의 숫자는 대략 만여 명.
아군의 병사들을 제물로 삼아 소환하는 악마는 계속 지상에 머무르게 할 수 없었다.
피의 대가만큼 유지되는 것.
자신의 예상으로 소환이 유지되는 건 하루나 이틀이 최고일 거라 생각했다.
때문에 더 많은 적이 몰려와서 악마에게 죽기를 바랬다.
“공작 전하. 저들이 숫자는 적어도 강합니다.”
“겁이 나나?”
샤이아는 긴장한 게 역력한 알비온 제2기사단의 단장을 쳐다보았다.
“네.”
“오호, 인정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기사들은 무서워도 무섭지 않다고 해야 하지 않나?”
“전 아닙니다. 그리고 드레이크 공작께서도 당한 적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시하겠습니까.”
“크크. 그래. 솔직한 게 좋지.”
어차피 곧 죽을 거니까 하는 뒷말은 속으로만 했다.
처억.
단장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전하? 저기…”
“응?”
“안 보이십니까? 저자가 여기 지휘관인 듯합니다.”
단장은 말 탄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스타크라는 말은 안 했는데 현재 제국군은 스타크가 쓰러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샤이아는 스타크의 회복 소식을 비밀로 했다.
“뭘 근거로 저자가 지휘관이라 말하나?”
“강자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스타크 외에 저렇게 강한 자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요.”
찔끔.
“에이, 스타크 만큼 강한 자가 또 있겠나?
스타크는 샤이아가 맡아서 해결해주기로 했기에 단장이 스타크를 언급하자 비밀이 들통날까봐 살짝 불안해졌다.
“그런데 거리가 이렇게 먼데 어떻게 저자가 강자라는 걸 아는 거지?”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마 저자도 저를 느꼈을 겁니다.”
“기감이 아주 좋군. 기사들이 많은데 강약이 구분되나?”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은 질문이었다.
자신은 7서클 흑마법사가 되었지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만 느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래. 각자 장점이 있겠지. 서로 잘 하는 걸 하자고.”
“전하. 적 병사들의 모습이 너무 온전한데요? 진짜 아픈 거 맞습니까?”
유제프와 했던 맹세에서 샤이아는 스타크 및 그의 병사 2만 명을 맡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여기 오기 전에 적병들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단장이 질문했었다.
“공작 전하께서 병사들을 죽여주시기로 한 거 아닙니까?”
“걱정마라. 저들은 내 마법 때문에 다들 약해져 있다.”
“…그래요? 그래도 약한 거와 죽은 거는 다른 데요?”
“가서 툭 치기만 해도 쓰러질 적들이다. 죽은 거나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진짭니까?”
단장은 의심의 눈초리로 샤이아를 바라보았다.
“하! 난 유제프 폐하께 맹세했다. 만일 맹세를 어긴다면 난 죽는다. 그런데 설마 내가 거짓을 말하겠나?”
“…믿겠습니다.”
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적을 만나면 단장이나 휘하의 기사들은 의심할게 분명했다.
때문에 샤이아는 며칠 전부터 저들의 식사에 몰래 약물을 풀어 넣었다.
뿐만 아니라 기사들이 잘 때에 저들의 천막 주위를 돌며 흑마법도 몰래 시전을 해두었으며, 부두인형까지 만들었다.
‘끄응. 여기까지다. 더는 못 속이겠네. 주문을 써야겠어.’
타고 있는 말 뒤편에서 커다란 자루의 입구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입으로는 주문을 외웠다.
중얼중얼…
“흡!”
방금 전까지 적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던 단장이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풀어지는 눈.
마치 뭔가에 잔뜩 취한 듯 멍한 표정이 되었다.
이건 단장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부단장도, 제2기사단에 속한 기사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단장?”
“…네.”
샤이아의 부름에 단장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단장?”
“…네.”
단장 옆에 있던 부단장도 음색만 달랐지 거의 같은 패턴의 목소리였다.
“단장은 적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게. 그리고 기사들은 혹시라도 물러나거나, 도망가려는 자들을 감시하고 제압하도록.”
“…네.”
단장, 부단장 그리고 기사들은 똑같이 영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샤이아는 다시 주문을 외웠고, 이번에는 단장의 입에서 거칠고, 큰 음성이 터져 나왔다.
“돌격!”
***
전장에 도착해 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상당히 착잡했다.
적병들의 모습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에 의해 아무 것도 모른 채 끌려가는 어린 아이들처럼 보였으니까.
저 앞에 절벽이 있든, 바다가 있든 맹목적으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존재.
‘불나방 같군.’
마음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내렸다.
“1열! 적을 향해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이미 자세를 잡고 총을 들고 조준하고 있던 1열 병사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탕! 탕탕탕! 탕탕…
뿌연 연기가 전장을 덮었다.
아라 덕분에 적이 올 곳을 미리 알았기에 바람의 방향까지 고려해 진영을 세워서 바람은 등 뒤에서 불어왔다.
때문에 연기를 모두 적을 향해 몰려갔고, 병사들의 시야를 가리는 일은 없었다.
“1열은 뒤로! 2열 앞으로! 2열은 조준 후에 쏴라!”
1열 다음은 2열, 2열 다음은 3열, 그 후에 4열, 5열.
이후엔 다시 순서를 바꿔서 1열부터 5열까지.
한 번에 2천 명씩 쏘아대는 총질에 적들은 우수수 쓰러졌다.
“도, 도망쳐!”
“이건 못 이겨!”
“으으. 피해!”
기사들이야 샤이아의 마법에 걸려 인형처럼 시키는 대로 한다지만 병사들은 그게 아니었다.
돌격을 하면 뭘 하나.
나가는 대로 죽어나가는데.
기사들처럼 말이라도 타고 있으면 빠르게 접근하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무의미한 죽음에 적병들은 후퇴하고자 했다.
하지만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검을 든 기사들.
저들은 뒷걸음치는 이들에겐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이러니 적병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계속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검과 검으로 싸우는 근접전이었다면 전투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총은 생명을 앗아가는 게 빨라도 너무 빨랐다.
3만 명이란 숫자가 무의미할 정도로.
3만 명의 적병들이 순차적으로 스러졌고, 전장에는 비명과 고통의 울부짖음이 가득했다.
총을 맞아서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맞고도 죽지 못한 자들은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끝났나?’
총병들은 잠시 멈추며 전장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적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뒤에서 감시하며 병사들을 도망치지 못하게 하던 기사들이 단장과 부단장을 선두로 해서 마지막으로 몰려왔다.
당연하지만 저들도 쏟아지는 수천 개의 탄환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한편 이러는 중에도 내 목표는 단 하나였다.
바로 샤이아!
‘어디 숨었냐? 어디!’
적병들이 돌격해 오기 전에 단장 옆에 있던 그가 금세 사라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후우, 놓쳤어. 연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