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227
제227화
젠장. 안 하면 현실로 돌아가야 하고, 세 아내와 자녀들, 손자손녀들과 헤어져야 하니까 나도 억지로 하는 거라고!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 꾹꾹 참아야 했다.
“그만 두세요.”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하실 필요 없고요. 그냥 쉬세요.”
“야! 나 이제 갓 40대야. 내가 뭔 늙은이라도 되냐? 얼굴만 봐선 너랑 친구야! 아니, 내가 니 동생이라도 믿는다.”
실제로 세 아들은 점점 노안이 되어 제 나이처럼 보이는데 나는 여전히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얼굴이었다.
세 아내는 역사에 남을 만큼 뛰어난 세기의 미녀라 나만큼이나 어려 보였다.
“이런 내가 남은 인생을 얼마나 쉬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죠. 배 타고 어디로 가실 건데요?”
“흠흠. 정해놓은 목적지는 없다.”
“그게 무슨 말이세요?”
“모험이라고 했잖니.”
“모험을 얼마나 하시려고요?”
“…5년.”
“하아.”
다시 에이츠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반대하는 에이츠였지만 잘 마른 목재를 구해놓으라는 지시는 따르겠다고 했다.
다음은 하인리히 제국으로 가서 아리아를 만나 오브랑 잘 지내는지 확인했다.
여기서도 하인리히를 만나 잘 마른 목재를 최대한 구해놓으라고 했다.
하인리히는 왜 이런 지시를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어쩔 수 없이 항해에 대해 말을 해야 했는데 하인리히도 에이츠랑 같은 반응을 보이며 내 여행(?)을 격렬히 반대했다.
심지어 이자벨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음에도 고자질을 해서 날 곤란하게 했다.
***
버럭.
“야!”
얘기를 듣고 온 이자벨이 대뜸 날 향해 외쳤다.
“이자벨. 야라니? 좀 심한 거 아니야?”
“드래곤이 너무 쉽게 죽으니까 심심해? 한 번 죽은 걸로 모자라? 부활주문서 가진 거 또 있어?”
“심심하다니?”
“미쳤어? 드래곤이 마법이라도 써서 뇌를 마구 흔들어놨냐고.”
“하아… 말을 너무 심하게 하신다.”
“아니지. 심한 건 너지. 드래곤이 끝나니까 이번엔 바다? 바다?”
이자벨은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바다라고 외치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바다가 왜?”
“몰라서 물어? 그것도 5년?”
“…..”
유구무언이라더니. 진짜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작작해라. 작작!”
나도 하기 싫다고. 나도!
“뭔 모험을 할 생각인데 5년이나 배를 타겠다는 거야? 진짜로 원하는 게 이혼이야? 그래서 떠나려고 이러는 거야?”
“그럴 리가.”
“그런데 왜 이래. 나도 싫고, 레아도 싫고, 아나이스도 싫어? 그냥 다 싫어?”
“아니야.”
“아니긴? 아니라면 이런 생각 못하지. 미치거나 따로 원하는 게 있다는 거겠지.”
사실 이자벨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누구라도 내가 이런 미친 짓을 하려는 걸 세 아내에게서 마음이 떠나서라고 생각할 거다.
“원하는 여자가 있으면 후궁으로 들여. 말리지 않을 테니까.”
“으응?”
“원하는 여자가 있으면 얼마든지 후궁으로 삼으라고!”
살짝 1)으로 선택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었다.
“원하는 여자가 있을 리가 있어? 이렇게 예쁜 아내가 옆에 있는데?”
“거짓말. 그럼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이유가 뭔데?”
“순수한 모험이라고. 그리고 난 너랑 레아, 아나이스도 함께 데리고 갈 건데?”
“누가 간데?“
“어?”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5년!”
“…..”
“말만 5년이지 바다 위에서 인생 종치려고 그러는 거잖아!”
다시금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날 질타했다.
“아니야.”
“바닷가 어디든 가서 어부를 붙잡고 물어봐. 5년이나 바다에 나간다고 해보라고. 뭐라고 할까?”
“…용감하다?”
부르르르.
“장난해?”
이자벨이 두 주먹을 불끈 쥐는데 살기가 느껴졌다.
“…내 생애 마지막 모험이야. 솔직히 우리 모두 아직 젊잖아. 이대로 방에 틀어박혀 시간만 죽이다 늙고 싶어?”
“…..”
갑자기 이자벨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뭐랄까 화가 가라앉고 좀 진지해 보이는?
기회를 잡았다고 여긴 내가 말을 이었다.
“손자손녀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듣지만 솔직히 우리 몸은 말하고 있잖아.”
“무슨 말?”
“아직 젊다고. 날 써달라고. 난 모험을 원한다고. 황금으로 둘러싸인 황궁이 아니라 자연냄새 물씬 풍기는 밖으로 나가라고.”
“후우.”
이자벨의 한숨에서 난 이거다 싶었다.
아까 내쉬던 한숨과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해보자. 이거 하고 돌아와서 몇 년 쉬면 50대야. 그럼 그땐 진짜 소소한 여행이나 하며 살자.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렇게 늙기엔 우린 젊어!”
“….”
“젊다고!”
“…알아서 해.”
결국 이자벨에게서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다.
“도와줘.”
“알아서 하라니까?”
“나 혼자서는 레아랑 아나이스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하! 내가 둘을 어떻게 설득해? 나 자신도 설득이 안 되는데.”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돼.”
그리고 레아와 아나이스를 불러서 5년 간 항해에 대해 말을 꺼냈다.
“허얼.”
“또요?”
둘은 황당하단 표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말없이 옆에 서있는 이자벨을 쳐다보며 진짜냐는 듯 눈으로 물었다.
“말려보려 했지만 안 통해요. 포기했어요.”
“도와달라니까?”
“이 정도면 돕는 거예요. 반대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
“그, 그래. 그럼 앞으로 더 말은 안 하고 옆에 있기만 해줘.”
그리고 하루종일 열심히 떠들고 애쓰며 간절히 노력하며 레아와 아나이스의 설득에 들어갔다.
어차피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무릎까지 꿇으며 빌었다
두 사람은 접근 방법이 이자벨과는 좀 달랐다.
이자벨에겐 젊다는 걸 강조하며 이대로 늙기만 할 거냐 했는데 그녀 안에 잠든 혈기를 자극한 거다.
하지만 레아나 아나이스는 이런 말이 먹히지 않는다.
그럼?
“그동안 너무 적적했어요. 남자 셋만 다니는데 무슨 재미가 있었겠어요? 내가 아내가 셋이나 되는데 홀아비랑 다를 게 뭐가 있나 싶고…”
살짝 은근한 미소와 함께 레아를 바라보니 흠칫 놀란다.
“그리고 왜 호위도 하나 없이 나왔을까 후회했죠. 아무리 황제 자리에서 내려왔다지만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했죠.”
이번엔 진지한 표정으로 아나이스를 바라보았다.
끄덕끄덕.
기사로서 군주에 충성을 바친다는 개념에 남다르게 의미를 부여하는 아나이스는 격하게 공감했다.
레아의 공략은 같이 하는 시간이었고, 아니이스의 공략은 기사로서의 충성이었다.
당연히 둘 다 허락했다.
“하! 이렇게 잘 할 거면서 난 왜 옆에 세워둔 건지…”
이자벨이 툴툴거렸다.
“보험이야. 보험.”
혹시나 설득이 영 안 될 경우에 이자벨하고만 떠날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어릴 때부터 함께 해왔다고 하더라도 레아와 아나이스에게도 질투라는 감정은 분명히 있으니까.
하여튼 셋이 허락하면서 대놓고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은 뒤므리에 제국으로 가서 사브리나를 보는 거였다.
세 개 제국에 명령을 내려 미모를 갖춘 미혼의 귀족 영애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이유는 지그먼트의 짝을 찾아주기 위해서였다.
대략 한 달 가까이 파티를 열었는데 내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결국 지그먼트도 짝을 찾는데 성공했다.
‘후우, 이 정도면 챙길 만큼 챙겨준 거야.’
말리오와 지그먼트에게 말이다.
두 사람도 내 공로(?)를 인정했다.
“말리오? 쥬리 눈에 눈물나게 하지 마라.”
“알았다.”
“쳇, 사위 같지 않은 사위라서 존댓말을 하라고 하기도 그렇고.”
다음은 지그먼트였다.
내 시선을 느끼고 지그먼트는 먼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평생 혼자 살았을 텐데.”
“고맙다는 마음이 원망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 잘 살 수 있는데 왜 결혼이란 굴레를 씌웠냐는 그런 원망 말이다.
“결혼은 엄연히 니 선택이라는 거 잊지 마.”
“알았다.”
“그런데 앞으로 넌 뭐 할 거냐? 그냥 상왕 놀이? 아니지, 태황 놀이?”
피식.
“놀이는 무슨.”
“얘는 가만히 둬도 뭔가 사고를 칠 거 같은데?”
말리오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날 바라보았다.
“사고는 무슨…”
“그래서 가만히 황성에서만 살 거냐?”
“흠흠. 그건 아니고.”
“이봐, 이봐. 뭐가 있다니까? 말해봐. 뭐냐?”
“바다에 나갈 거야.”
“하하. 역시 넌 미쳤어. 바다는 왜 나가는데?”
“야! 장인에게 말버릇이 이게 뭐냐? 결혼하기 싫어?”
“말 돌리지 마라. 바다? 바다?”
“그래. 이건 나도 아니라고 본다. 바다라니? 포탈 마법진이 있는데 대륙을 굳이 배로 건너려고?”
지그먼트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대륙을 건너는 게 아니야. 난… 새로운 땅을 찾으려는 거다.”
“미친.”
결국 지그먼트의 입에서도 말리오와 같은 말이 나왔다.
두 사람이 꼬치꼬치 묻기에 5년이란 시간도 말했다.
“우와, 제대로 미쳤네.”
“그러니까. 바다에서 5년?”
두 사람은 나와 함께 바다를 건넌 경험이 있기에 그 누구보다 바다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도대체 새로운 땅을 찾는 목적이 뭔데?”
“이미 정복한 땅으로도 부족해서 그래?”
“…난 순수하게 모험을 원해.”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으니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황당해 하는 두 사람을 향해 말을 이었다.
“마법이나 검에 미쳐서 사는 거랑 모험을 좋아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난 아직 젊어. 그래서 늙기 전에 하고 싶은 걸 다 할 거야!”
“그래. 선택은 니 몫이지.”
“하고 싶다면야…”
두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항해를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바로 출발이 아니라 배부터 만들어야 했다.
그냥 배가 아니었다.
먼 바다를 항해해야 하니까 대형 범선?
물론 어느 정도 크기는 있어야 했지만 무작정 크기만 한 배는 아니었다.
물론 돛을 많이 단 대형 범선이면 바람을 받아 어떤 배보다 빠르게 갈 수 있겠지.
하지만 바람을 역행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삼각돛이 있지 않냐고 하겠지만 만일 바람이 사라져 버리는 곳이라면?
그러니까 바람이 없어서 죽음의 바다라 불리는 곳.
이런 곳에선 답이 없다. 그래서 난 범선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증기기관을 이미 만들었는데 돛으로 다니는 범선은 아니지.’
하지만 증기기관이 온전한 답이 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속도.
연료의 문제도 있기는 했지만 나에겐 아공간 주머니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문제는 있었다. 뭐냐하면 증기기관의 화로에 들어갈 적당한 크기로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건 뭐 어떻게든 준비를 하면 되는 거니 큰 문제는 아니었고, 진짜는 속도였다.
바다에서는 바람을 제대로 받기만 한다면 돛만큼 속도를 낼 수 있는 게 없었다.
저번에 바다를 건너며 확실하게 느꼈다.
이 행성의 바다는 정말정말 크다는 거.
그리고 내가 경험한 바다는 구대륙과 신대륙 사이의 바다였다.
만일 두 대륙을 벗어나 새로운 바다로 간다면 어떻게 될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지구로 치면 두 대륙 사이의 바다가 태평양일지, 대서양인지, 인도양인지 알지 못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