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63
제63화
이자벨이 자기에게 뭘 시킨 게 처음이라 살짝 당황했지만 레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둘만 남은 상황.
취조의 시간?
솔직히 너무 불편했다.
“…실력을 숨기셨네요?”
“아! 그, 그게요…….”
뭐라고 해야 하나?
입술이 마르고 말은 더듬고. 미치겠다.
다시 복수하겠다고 하는 거 아닐까?
“말해 보세요.”
“이, 이거…….”
팔찌를 풀러 건넸다.
진실 하나 정도는 밝혀야 넘어가지, 그냥은 어떻게도 설명이 안 되니까.
“이게 뭐죠?”
“빅자이언트를 잡고 얻은 겁니다.”
“그래요? 현장에선 못 봤던 것 같은데요?”
역시 눈썰미가 대단하다.
그 혼란 속에서도 상세하게 다 봤다는 거잖아.
“빅자이언트를 잡은 다음 날 새벽에 강가로 갔는데 물밑에 뭐가 반짝거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옷을 벗고 들어가서 꺼냈죠.”
“겨울에 그 강을요?”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미친 짓이란 거 알아요. 하지만 너무 궁금해서.”
“하! 어이가 없네요.”
“팔찌를 차면 빅자이언트의 힘을 쓸 수가 있는데…….”
팔찌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현재는 힘을 쓴 후라 마력이 충전돼야 한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흐음, 그런데 이게 있더라도 당신이 상대를 이겼다는 건 좀 믿기지가 않는데요?”
“실수였습니다.”
“네?”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이었다.
“제이콘 기사는 적당히 절 상대하려 했는데 제가 긴장하고, 큰 힘까지 얻어서 그만…….”
이건 거짓말이었다.
“제가 볼 땐 그런 것 같지 않았는데요?”
“어떻게 보셨는데요?”
“자세히 잘 봤죠. 둘 다 전력을 다해서 싸우는 것 같았어요. 제이콘 기사가 영주님을 봐주는 모습은 전혀 없었어요.”
“글쎄요. 마주한 제가 그렇게 느꼈는데요? 옆에서 볼 때는 달랐나 보죠.”
“…….”
본인이 직접 상대한 것도 아니니 이자벨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내가 극구 아니라고 하면 믿어야지 어쩌겠어?
“마지막의 움직임은 눈으로 좇아갈 수도 없을 정도였어요. 그건 어떻게 하신 거죠?”
본인의 특성인 치명적인 일격 얘기였다.
당신에게 얻었어요.
이게 정답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글쎄요. 긴장해서 저도 모르는 힘이 나왔나 보죠.”
“모르는 힘이라…….”
이자벨은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납득하기도 했다.
무슨 말이냐고?
본인이 치명적인 일격이란 특성을 얻었을 때를 기억하는 거였다.
그 당시에 이자벨을 지도하던 여기사가 그녀를 검으로 몰아붙였고, 이자벨은 자신도 모르는 괴력을 사용했다.
그게 치명적인 일격이란 특성을 얻게 된 계기였다.
본인도 치명적인 일격을 얻게 된 이유를 남에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특성이란 그런 거니까.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건데 발견은 아주 어릴 때 할 수도 있고, 커 가면서 우연히 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제이콘과의 대련 중에 얻은 걸로 짐작되는 것.
‘하지만 나와 똑같은 거라니… 운명인가?’
그동안 나와 결혼까지 결심하긴 했지만 운명의 상대란 생각은 1도 없었다.
혼자 살 수는 없고, 갈 곳도 없고, 어차피 결혼은 해야 하고, 원수의 자식이라 여겼지만 지내보니 불쌍한 과거도 있고, 본인도 약속으로 용서하기로 했고.
여러 이유들이 겹치며 결혼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명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거 아닌가?
이자벨의 속마음도 모른 채 나는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납득이 되려나? 이 정도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때마침 레아가 따뜻한 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자벨과의 대화는 끝이 났다.
이자벨은 내 손을 닦은 천을 물에 적셔 상처 주위를 닦아 주었다.
한참 후에 아나이스가 의사를 데리고 왔고, 그는 비싼 거라면서 포션을 꺼냈다.
“흠흠, 20골드는 주셔야 합니다.”
딱 봐도 하급.
하지만 지켜보는 눈들이 있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지불하고 포션을 상처에 부었다.
한꺼번에 확 들이부은 게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상처에서 하얀 연기 같은 게 계속 올라왔고, 손바닥은 시원했다.
나중에 붕대로 손을 감싸는 데까지 치료는 이어졌다.
좀 쉬려나 했는데, 도든이 방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영주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급한 일?”
“황태자께서 마차를 보내오셨습니다.”
하! 어이가 없네.
보고 싶다고 해 놓고 계속 미뤄 두더니 결투의 결과를 보고 날 부른 것.
“끄응, 알았다. 옷을 새로 갈아입고 나가겠다.”
황태자가 부르는데 아프다고 안 갈 수는 없지 않나.
“저기…….”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도든이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왜?”
“황태자 전하께서 세 분 아가씨들도 함께 보시겠다고 합니다.”
갸우뚱.
“왜?”
솔직히 궁금했다.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을 왜 보려고 하는데?
“저도 정확하게는 이유를 모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인이라고 소문이 크게 퍼져서 황태자가 궁금해했던 것.
하여튼 당장은 이유를 모르지만 황태자가 불렀으니 어쩔 수 없이 셋도 동행했다.
손에 붕대를 감은 채로 황태자가 머무는 궁으로 갔으며, 간단한 신원 조사 후에 알현할 수 있었다.
뚜벅뚜벅.
자신 있는 발걸음.
황제의 첫 번째 아들로 태어나 20살이 넘는 나이까지 아버지 외에는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었던 사내.
기품이 흐르는 고고한 외모는 전형적인 제국 황태자의 모습이었다.
2황자가 없었다면 평범하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을 테고, 무난한 삶을 살았겠지.
특출난 건 없지만 모자란 것도 없는 평균.
딱 그거였다.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숙였다.
“손을 다쳤나?”
황태자 버나드가 붕대를 감은 내 손을 주목하며 물었다.
“대련 중에 하도 검을 세게 부여잡았더니 손바닥 피부가 벗겨졌습니다.”
“하! 그럴 수도 있나?”
버나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나도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믿기 어려웠을 테니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세 미녀에 대한 이야기도 자자하더니 진짜 미녀들이군.”
속으로 ‘네놈도 유제프처럼 양보하라고 할 거냐?’ 이렇게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황태자도 내 적이다.
유제프는 진즉에 적이 되었고.
설사 내가 아니라도 그는 날 적으로 여길 거다.
‘제국에서 살려면 황태자에게 줄을 서야 해.’
영지를 떠날 때만 하더라도 수도행이 이렇게 어려운 길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셋 다 그대의 약혼녀라면서?”
“네.”
“부럽군.”
“…….”
어쩌라고.
“흠흠, 유제프는 그대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부끄러움을 당했다지?”
“부끄러움은 아니고요. 대결은 정당했습니다.”
“흐흐, 어찌 되었든 유제프가 스스로 자신의 검이라 부르던 제이콘이 죽었으니 엄청난 사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처음에는 그대의 소문을 듣고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폐하께 그대를 불러 작위를 주시라 간청했지.”
“네.”
“그랬는데 직접 보니 자네는 진짜 물건이군.”
전 물건이 아니라 사람인데요?
“세 미녀 중에 한 사람도 양보는 못하겠다고 했다던데, 나한테도 마찬가지인가?”
“네!”
주저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이건 고민의 대상이 전혀 아니었으니까.
내가 왜 2황자에게 맞섰는데!
“하하, 단호하군.”
“…….”
왜 웃는 거냐?
나는 속에서 불이 나는데 말이다.
특히나 사건이 오늘 벌어졌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고!
‘이러면 3황자가 내 선택이 되는 건가?’
설마 3황자까지 내 여자를 내놓으라고 하진 않겠지?
젠장, 망명 각인가?
“미녀는 언제든,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양보하란 소리인가?
“제 여자는 아닙니다.”
“하하, 알겠다. 약혼녀들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대의 약혼녀들이 아니라도 난 황제가 되면 얼마든지 미녀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네.”
“내 사람이 되어 주겠나?”
돌리지 않은 직진의 질문이었다.
‘끄응,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상대가 황태자인데 왜?
2황자는 황후라는 대단한 지지 기반이 있다.
황후만 아니라 그녀의 가문도 대단했다.
아롱드 후작가.
기사단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단한 재력과 위세를 가졌기에 귀족층의 절반 이상이 아롱드 가문을 따르고 있다.
이에 반해서 황태자의 기반이라 할 죽은 황후의 가문은 크사이드 백작가.
귀족층의 20퍼센트 정도가 따르고 있다.
하지만 황태자는 무엇보다 정통성이 있으며, 황제에 속한 기사단이 셋이나 되었다.
하지만 황제의 기사단은 공식적으로 황위 다툼에는 나서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도 힘겨루기를 하면 2황자에게 밀리지.’
제이콘이 죽은 지금 상황에 내가 황태자에게 붙으면 힘의 기울기가 어찌 되려나?
고인물인 나도 잘 모르겠다.
제이콘을 죽이는 상황 따위는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
피식.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버나드가 가볍게 웃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 아니면 유제프 때문인가? 그대가 보기엔 내가 밀릴 것 같나?”
“…….”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버나드는 바로 말을 이었다.
“반다이크 남작의 뒤를 이어서 영주가 되었다지? 그리고 두 번의 영지전에서도 승리하고.”
“네.”
“수도는 처음일 테고, 파티도 처음이었는데 그 난리가 났고. 정치적인 건 하나도 모를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황태자가 내 사람이 되어 달라고 하면 덥석 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그대는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지 않나.”
“흠흠,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요.”
거짓말이었다.
“흠흠,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 달라? 그건 좀 너무한데? 아무래도 나와 유제프를 두고서 간을 보는 것 같으니 시간을 주겠다.”
황태자는 자신과 유제프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난 3황자도 생각하고 있었다.
“영지로 돌아가라. 그리고 생각이 바뀐다면 언제든 사람을 보내라.”
나를 잡으려고 애를 쓸 줄 알았는데 자존심 때문인가?
유제프의 검을 죽였으니 내가 절대 그쪽에 붙지 않으리란 자신감인가?
아니면 유제프의 검이 사라졌기에 여유가 생겼나?
버나드는 축객령을 내렸다.
쳇, 내가 나서지 않으면 넌 황제에 못 올라.
알기나 하냐?
***
난 청개구리가 아니다.
하지만 영지로 돌아가라는 황태자의 명령은 따를 수 없었다.
생사의 결투가 끝난 후에 몰려온 피로감 때문에 당장은 무조건 쉬어야 했다.
‘인재도 찾아야 하는데…….’
찾아야 할 인재가 어디 있는지는 안다.
하지만 지금은 움직일 수 없었다.
피곤해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지금 나는 뜻하지 않게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 감시하는 눈들이 수십은 될 듯.
여관을 한 발자국 나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흠흠, 온 김에 3황자도 만났으면 좋겠는데.’
게임으로 이미 알기도 하지만 실물을 보고 싶었다.
우선 앞으로 황위를 이을 가능성이 있는 세 명 중의 하나니까.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살아 있는 다비드 상.
대륙 최고의 미남.
이게 3황자였다.
전에 말한 것처럼 3황자의 어머니는 엄청난 미녀였고, 그 피를 그대로 이어받아 더할 수 없는 최고의 미남이 태어났으니 그게 바로 3황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