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ake over the male lord RAW novel - Chapter 65
65
무더위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여행을 갔을 때는 따뜻한 봄이었고 여행 중에 여름을 맞이했다. 그리고 수도로 돌아왔을 때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의 정원엔 오늘도 꽃들이 만발했다. 오랜만에 황태자의 초대를 받아 도착해 정원을 바라보던 아리스는 치맛단을 잡고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그녀의 마차 앞에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그녀를 차 마실 곳으로 안내했다.
오늘도 일행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리몬트리와 비올레가 먼저 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머.”
그들이 아리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왔다고 했지만 이렇게 빨라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언제 돌아왔어요?”
비올레가 물었다. 아리스는 자리에 앉으면서 대답했다.
“어제요.”
“피곤하시겠다.”
“아, 어제 푹 쉬었어요.”
여행 때 종일 마차에 앉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체력이 고갈되었다. 때문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올라가 종일 잤다. 자신을 따라다닌 루진에게도 휴가를 주었다. 루진도 종일 잔 것으로 알고 있다.
“루진이 없어 불편하긴 하네요.”
“어디 갔어요?”
“아니, 휴가 중이에요.”
다른 시녀가 꾸며 주긴 했지만 루진이 해 준 것에 비하면 떨어졌다. 하지만 아리스는 불평하지 않고 그대로 입고 왔다. 그래도 격식을 갖춰 꾸몄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루진이 안 꾸며 준 건가요?”
“루진이라면 아마도 머리 장식부터 찾았겠지요.”
그러고 보니 머리 장식이 없었다. 아리스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시종이 가져온 차를 마셨다. 향이 좋았다.
“언니, 만났어요?”
비올레가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러자 아리스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네.”
“어머.”
“생일 선물도 받았어요.”
잘된 일이었다. 비올레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뭐 받으셨어요?”
“발찌.”
“어머.”
“지금 착용하고 있어요.”
치마에 가려져 안타깝게도 보이지 않았다. 아리스가 자랑하자 비올레는 부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리몬트리가 차를 마시더니 아리스에게 물었다.
“또 못 만나지 않습니까?”
“그렇죠.”
“안 섭섭합니까?”
연인이 되었다 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전쟁터이기에 여자가 만나러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쟁이 끝났다 해도 당장 만나기 힘들 텐데.”
“아아, 괜찮아요.”
아리스는 리몬트리가 걱정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멀리 떨어진 연인과 지내는 건 힘든 일이다. 당장 보고 싶을 때 만날 수 없는 게 얼마나 슬플까. 그런데도 아리스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함께 있을 수 있어요.”
아리스의 말에 리몬트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요?”
“그야.”
아리스가 차를 한 잔 마셨다.
“결혼할 거니까요.”
“누구 맘대로!”
이엘이 나타났다. 시종이 얼른 차를 가지고 왔다.
“이야기 듣고 계셨어요?”
“들려서 어쩔 수 없이 들었어.”
이엘은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윽한 향이 입에 감돌았다.
“그놈하고 결혼하겠다고?”
“네.”
아리스가 막힘없이 대답했다.
“열아홉 살이 되면 로이의 아내가 되는 게 소원이에요.”
성년이 되면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 아리스의 말에 이엘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열아홉 살도 어리다. 그리고 누구 마음대로 결혼!
“내가 반대야.”
“왜요?”
“작위도 없고! 영지도 없고! 그냥 평범한 남자잖아.”
“곧 생길 건데.”
“미래는 모르는 법이라고.”
이엘은 씩씩거리며 반대했다. 자신의 친구가 한미한 집안에 시집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같이 있을 수 있어요. 그리고 로이가 얼마나 공을 많이 세웠는데요.”
그리고 로이는 작위가 없을지라도 영지를 받아 부자가 된다. 그러니 괜찮았다. 작위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이엘에게 말하면 화를 낼 게 뻔하니 가만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회의 때 받을 보상을 논의한다고 하더군요.”
전쟁에서 이겼으니 보상금을 얼마나 받아낼 것인지. 포로 교환으로 얼마나 받아낼 것인지 조율하는 논의였다.
“항복을 했으니까.”
이엘이 그리 말하며 차를 마셨다.
그의 목에 가죽 끈으로 만든 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리스는 그것을 보더니 이엘에게 물었다.
“목걸이 어디에서 산 거예요?”
“마음에 들어?”
“네.”
“내 정부가 선물해 준 거야. 나도 몰라.”
정부가 선물을 해 주다니? 아리스는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정부가 있어. 나한테 선물 주는.”
아아, 새로 들인 정부가 이엘에게 선물을 준 것 같았다.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하다가 만났어.”
“봉사 활동요?”
“아, 그냥 비정기적으로 가. 아버지가 가라고 했거든. 그 덕분에 우리나라 복지 정책이 얼마나 형평성이 없는지 잘 알게 되었지.”
제논 제국은 신분제 사회지만 백성의 복지를 위해 이것저것 마련하는 게 있었다.
“아무튼 거기서 만난 여자야. 내가 귀족이란 것만 알아.”
“황태자 전하의 얼굴을 몰라요?”
“가발을 쓰고 가거든.”
황태자의 얼굴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냥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여자는 귀족인가요?”
“하급 귀족이야.”
“정부라고 이야기했어요?”
아리스가 물었다. 그러자 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정부 할 거냐고 제안했어.”
“아.”
“지금은 좀 아깝더군.”
“왜요?”
이엘이 여자를 두고 아깝다고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리스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없는 친구거든.”
“아.”
“친구로 둘 걸 그랬어.”
이엘은 욕심이 없는 사람을 좋아했다. 애인보다 친구를 챙길 남자였다. 아니, 애인을 애당초 두지 않은 남자이기도 했다.
“전하는 정말 나쁜 남자예요.”
“왜.”
“사실이잖아요.”
여자에게 진심을 주지 않고 가까이한다. 만약 자신이 황태자를 사랑했으면 말라 죽었을 것이다. 남자 주인공을 사랑해서 다행이었다.
“난 그래도 정부에게 잘 대해 줘.”
“수가 많잖아요.”
“아니야. 정리했어.”
“네?”
의외의 말이 나왔다. 아리스는 리몬트리를 보았다.
“정말입니다. 정리하셨습니다. 지금은 한 분만 만나고 있습니다.”
“나에게 선물을 해 주는 게 신선했어. 그래서 다른 여자는 싫증이 나더군.”
싫증이 나서 정부를 다 갈아 치웠다.
“애인으로 사귀는 건 어때요?”
“귀찮아.”
“하지만 그 여자분 욕심이 없다면서요.”
“그건 그래.”
“애인으로 사귀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분수를 넘으면?”
“그때는 이별을 고하면 되죠.”
아리스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러자 이엘이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태도를 보면서 아리스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빠진 것 같은데.’
이엘이 여자에 대해 진지하지 않다는 건 안다. 그런데 이번 여자는 좀 다른 것 같았다.
“아무튼 그녀에게 물어서 목걸이 어디서 샀는지 알아볼게.”
“네, 감사해요.”
곧 있으면 로이의 생일이다. 로이에게 예쁜 목걸이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 * *
오란 제국이 항복을 했다. 휴전을 제의하더니 항복하는 걸로 최종 결정한 것 같았다. 로이가 총사령관을 사로잡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리삭의 보고를 꼼꼼히 읽은 주셀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고민했다.
로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여론은 이미 로이의 활약을 자세히 다루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다시 한 번 신문 한 면을 차지했다. 그의 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설명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오란 제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이를 좋아했다. 평민이기에 더욱더 열광하고 있었다.
“으흠.”
고민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오란 제국과 관련된 회의가 있었다. 회의에는 귀족들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호리슨 영애.”
로이를 사랑한다고 했지. 그리고 언젠가 자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을 예상한 것인가.’
그는 천천히 걸어 회의실에 도착했다. 회의실에는 이안과 루이슨, 그리고 다른 자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폐하를 뵈옵니다.”
다들 주셀을 보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주셀이 자리에 앉았다.
“배상금 논의를 하겠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미 전쟁에 들어간 비용이 얼마니 그보다 많이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호리슨 후작.”
“네, 폐하.”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말에 이안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