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
1화 프롤로그
고깃집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가게는 딱 적당히 떠들썩했다. 소란스럽지도, 적막이 흐르지도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열 수 있는 분위기였다.
맞은편에 앉은 진호가 잔을 채우며 물었다.
“10년 만인가? 난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야.”
“좀 바빴어.”
“그러게 무슨 연락도 안 되는 오지에 가고 그러냐. 어디 싸돌아다닐 성격도 아닌 놈이. 나 애 아빠 된 것도 몰랐지?”
“소식은 들었어. 좋아 보이더라.”
“좋기는.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다, 아주.”
진호는 입으론 넋두리를 내뱉었지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녀석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기 가족 얘길 꺼내 늘어놓기 시작했다. 와이프가 어쨌다는 둥, 애가 저쨌다는 둥. 얼마 전에 애가 혼자 두 다리로 일어서는 모습을 촬영해 놓은 게 있다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래 놓고 마지막에 한다는 말은 결국 이거였다.
“그래도 도율이 넌 결혼 최대한 늦게 해라. 아니, 그냥 하지 마라.”
“…왜?”
“그냥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이 새끼야.”
진호는 다짐을 받아 내려는 것처럼 잔을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잔을 부딪쳤다.
소주를 한 잔씩 털어 넣은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티브이로 향했다. 가게 한구석에 걸려 있는 듯 없는 듯 소리를 내고 있는 녀석이었다.
화면에선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주말 저녁의 토크 쇼인지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고급 가구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게스트는 금빛 머리를 우아하게 땋아 올린 여성이었다.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그럴싸하게 꾸며 놓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건 원래 갑옷을 입고 칼을 들어 올리는 사람의 몸이다.
“클레어네.”
“누군지 알아?”
“당연히 알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헌터잖아. 아, 하긴. 너 외국에 있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를라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게 사실이었다.
“원래 외국의 S급 헌터였는데 한국이 좋아서 귀화했다고 했나? 아닌가? 귀화는 아직인가? 하긴. 어차피 고랭크 각성자는 어느 나라에서든 모셔 가려고 혈안인데 국적이 대수겠어?”
“김치도 물에 씻어 먹으면서 무슨…….”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쇼 호스트는 한창 게스트의 사생활에 대해서 캐묻는 중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녀가 최근 결혼을 했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동안 열애설 하나 없다가 덜컥 결혼을 때려 버리네. 어떤 도둑놈 새끼일까? 부러워 죽겠네.”
“부럽다고?”
“그럼, 부럽지. S급 헌터면 던전 한 탕만 뛰어도 억 소리 나게 벌어들일 텐데, 남편은 그냥 S급 셔터맨 된 거지. 그렇다고 얼굴이 빠져, 몸매가 빠져?”
“혹시 성격이라도 더러우면 어떡하게.”
“그래도 절하고 산다.”
“절은 제수씨한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나야 우리 미애가 최고지, 당연히.”
결혼하지 말라고 욕할 땐 언제고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모습을 보니 입꼬리가 느슨해졌다.
[지금 방송을 보고 계실 남편분을 위해 한마디 남겨 주세요!] [네……?]티브이 속 주인공은 그 말에 당황해 우물쭈물하더니 주변의 압력을 못 이기고 양손으로 어설픈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쥐어짜 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 사랑해. 자기야…….] [꺄아악!] [으핫핫!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장면을 다 보네!]그녀는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쓴 걸 삼켰으니 표정이 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취기가 돌아 슬슬 말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진호야.”
“왜?”
“나 도둑놈이다.”
그러자 진호의 단추만 한 눈이 동전만 해졌다.
“야, 이. 너 감빵에 가 있느라 연락 안 된 거였냐? 대체 뭘 훔쳤길래 10년이나……. 장발장이야?”
“그건 아니고.”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진호야, 나 결혼한다.”
“뭐?”
“아니…….”
정정했다. 보통은 결혼을 앞두고 얘기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내 경우엔 조금 달랐다.
“나 결혼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뭐, 결혼한……. 아니, 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인마? 갑자기? 축하… 그런데 누구랑?”
나는 손가락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검지 손가락은 어깨 뒤의 티비 화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한 여자의 얼굴이 쭉 비치고 있었다.
내 말뜻을 이해한 진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달리 해명하지 않고 조용히 소주를 홀짝였다. 이해한다. 나도 처음엔 믿기 어려웠으니까.
10년 만에 귀환한 나는,
S급 헌터를 아내로 두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