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진짜 비밀
“집합!”
도은이가 손뼉을 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클레어의 집. 도은이의 부름에 클레어와 내가 한자리에 모였다.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번 집합의 이유를 미리 전해 들은 후였으니까. 이번에 하는 건 대책 회의였다.
무엇에 대한 대책 회의인가.
도은이가 그 주제에 대해서 화두를 꺼냈다.
“이거 봐.”
테이블 위에 핸드폰이 올라왔다. 화면 위에는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사 사이트가 띄워져 있었다.
그 아래로 기사의 제목과 내용이 이어졌다.
“동물 학대?”
기사는 일부 사이트에서 클레어가 키우는 동물을 학대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해당 사이트의 캡처 이미지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서 떠드는 사이트였지만, 그곳엔 전문가를 자처하는 누군가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자기가 수의사인데, 강아지한테 고양이용 습식 사료를 먹이고 있다나.”
“…….”
고양이용 습식 사료. 그러니까 츄르라고 부르는, 동물들이 환장하는 간식을 말하는 거였다.
그걸 강아지한테 먹이면 안 되는 거였나? 아니면 강아지용이랑 고양이용이 따로 구분되는 거였나?
진지하게 고민해도 크게 소용은 없었다. 애초에 저 녀석은 우리가 평범하게 아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었으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
흰돌이가 힐끗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러게 내가 너 그거 적당히 처먹으랬지.」
「아니, 따지고 보면 호랑이는 원래 고양잇과…….」
「호랑이였나?」
「호랑이는 맞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도은이에게 물었다.
“잘 먹으니까 된 거 아냐?”
“그런 댓글도 있긴 했는데…….”
내가 하는 말과 비슷한 소리의 댓글이 달려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반박인지 조롱인지 모를 내용의 답글이 달려 있었다.
[자기가 뭘 먹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거잖아 ㅠ] [그게 학대인 거야. 모르면 공부 좀 해.]뭐지.
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빡침은.
그렇게 틀린 말을 하는 것 같진 않은데, 왠지 곱씹어 볼수록 열받는 말투였다.
“내가 보기에도 여태까지 문제없었다면 상관없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래 봤던 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거지.”
“그럼 어쩌냐?”
“동물 병원이라도 데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클레어의 물음에 나와 백호가 눈을 마주쳤다.
이 녀석을 동물 병원에 데려간다고?
애초에 백호는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단순히 털색이 하얀 호랑이가 아니라, 사신수의 모습을 한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작아진 지금이나 강아지나 고양이라고 얼렁뚱땅 넘길 수 있는 거지, 원래 모습은 누가 봐도 평범한 호랑이와도 거리가 멀었다.
그런 녀석이 전문적인 동물 병원에 가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녀석도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일만 키울 것 같은데요, 대협.」
녀석의 말대로였다. 알고 보니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애완동물이 아니라 몬스터를 키우고 있었다는 논란이 점화될지도 모른다.
“그건 좀…….”
“기각.”
다행히도 내가 변명하기도 전에 도은이가 나서서 반대했다.
“왜?”
“괜히 나서서 해명하려 했다가 스케일만 커지니까. 몰랐던 사람들도 그런 일이 있었냐고 다 알게 되는 거라서.”
도은이의 말을 가만히 듣던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겠어. 근데 방송에 내보내려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라도 데려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야.”
“그건 괜찮아.”
대중 앞에 공개하는 게 아니라면 그나마 나았다. 병원에서 이상한 말을 하더라도 돌팔이 의사라고 둘러대면 그만이고.
결론적으로,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뭔가를 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하. 이럴 땐 길드 방패 있는 놈들이 부럽긴 하다니까. 우린 여론전 대신해 줄 따까리들 없나?”
길드를 따까리라고 부르는 매니저는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다.
“미안…….”
“응? 아니, 언니가 미안할 일은 아니지. 언니가 길드에 들어가 있었으면 나 같은 무소속 프리랜서 매니저가 어떻게 비벼 봤겠어?”
그때 내 핸드폰으로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내용을 읽어 내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알바.”
그러자 도은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놈의 알바 아직도 해?”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그리고 내가 없다고 뭐 못 하는 게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건 맞아.”
도은이가 팔짱을 끼고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나 하나 정도는 있든 말든 상관없다는 말투였다.
빈말도 못 하나, 이 녀석.
내가 어딜 가려는 건지 알고 있는 클레어만이 눈짓으로 나를 배웅했다.
“다녀올게요.”
퇴직금을 두둑하게 뜯으러 가 보실까.
* * *
“…일이 바쁘다면서?”
긴 잠에서 깨어난 주예린의 곁을 지키고 있는 건 포멀 한 양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남성이었다. 깨어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다리를 꼰 채로 오래 앉아 있었다는 느낌이 풍겼다.
그녀의 배우자인 임지훈이었다.
“밖에 기자들이라도 와 있는 거야?”
쇼윈도 부부.
서로 사적인 시간은 거의 챙기지 않는 사이였다. 결혼도 집안 간의 정략으로 한 거였고, 그나마 함께 보낸 시간은 그녀의 SNS 채널에 업로드하기 위한 보여 주기식 이벤트들이었다.
그런데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맞이하는 사람이 이 남자일 거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임지훈이 발치에 놓여 있던 서류 봉투를 주예린에게 건넸다. 그녀가 의아하게 봉투를 받아들어 내용물을 꺼내 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젠 바쁠 필요가 없어서.”
“뭔데, 이게? 이혼이라도 하자고?”
주예린이 봉투 속에서 꺼낸 자료엔 대현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다국적 기업, 대현. 그런 만큼 대현에 대한 정보는 어딜 가도 널려 있었다. 동네 꼬마나 외국인에게 물어봐도 대답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임지훈이 긁어 모은 정보는 그렇게, 아무에게나 열려 있는 값싼 정보가 아니었다.
대현의 장손녀로 태어나 자라 온 주예린의 눈엔 보였다, 이 정보의 가치와 목적이. 이건 모두 대현 그룹을 찌를 칼날들이었다.
“이런 건 왜…….”
“그거라도 있으면 널 지킬 수 있을 줄 알았어.”
그가 몸을 숙이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이렇게 늦어 버리고 나서야 모두 소용없는 일인 줄 알았지.”
“…….”
주예린이 시선을 돌려 고개를 떨군 임지훈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런 걸 모아서, 그룹을 공격하겠단 말로 협박해 자신을 지키기라도 하겠다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밤낮 없이 일에 빠져 있었던 거고?
바보 같은 남자가 따로 없었다.
주예린은 알고 있었다. 그런 자료를 아무리 모아 봤자, 일개 검사가 대현 그룹을 상대로 협박 따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건 고작해야 쥐새끼의 발악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걸, 같은 재벌가에서 태어난 임지훈 역시 모르진 않을 텐데. 알면서도 무의미한 발버둥을 계속해 왔다는 이 남자가.
주예린은 너무나도 가련해 보여서, 반대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거 모은다고 꿈쩍이나 하겠어? 바보.”
“…그렇겠지.”
임지훈이 고개를 들고 지친 얼굴로 마주 웃음을 지어 보였다.
똑똑.
병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후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안내했다.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들여보내 줘요.”
드르륵.
문이 열리고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입장했다.
* *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헌터 님.”
주예린이 깨어났다는 연락에 그녀가 입원해 있다는 병원을 방문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기에.
마지막이라고 해서 딱히 죽거나 먼 외국으로 떠나는 건 아니었다. 단지, 멋대로 불러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의미였다.
마지막 정도는 어울려 주지.
병원은 제법 익숙한 곳이었다. 도은이가 오랜 기간 입원해 있던 바로 그 병원이었다. 시설이 꽤 괜찮다 싶더라니, 대현 그룹에서 관리하는 곳이었나. 어쩌면 그 부분도 주하린이 마음 써 준 걸지도 몰랐다.
“여깁니다.”
안내를 받으며 주예린의 병실에 도착하자, 그곳엔 이미 선객이 있었다. 방송 촬영으로 몇 번 얼굴을 익힌 주예린의 남편, 임지훈이었다.
남들 앞에선 아닌 척하지만 두 사람 사이는 그렇게 가깝지 않았다.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도 않는다는 건, 그간 주예린의 호위 임무를 해 온 덕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평일 낮부터 병실에 와 있을 줄이야. 의외였다.
“슬슬 가 보지.”
내 도착에 맞춰 임지훈이 자리에서 비켜 줬다.
“…고맙습니다.”
스쳐 지나가며 임지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게 한 말이 맞나 싶었지만, 근처엔 나밖에 없었다.
내심 놀란 내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주예린이 의아하게 쳐다봤다.
“왜 그래요?”
“…아니.”
나는 임지훈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왜 불렀지?”
“반말? 아, 괜찮아요. 뭐, 그냥. 이런저런 일이 많았는데, 그쪽이 많이 도와줬다고 하니까. 감사 인사나 할 겸 싶어서요.”
“당신이?”
“나도 염치 정도는… 아.”
주예린은 지금까지 자기가 해 온 짓을 떠올린 듯 내 반응을 모두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음, 그럼 지금까지 해 온 일들에 대한 사과도 겸해서.”
주예린이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미안해요. 고맙고. 받아 주겠어요?”
처음으로 보는 주예린의 꾸밈없는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가면을 쓴 나보다 더 속내를 숨기고 표리부동하던 그녀였다. 모처럼 시원한 얼굴을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앞으로 하는 거 보고.”
“그래요.”
병실을 둘러보던 내가 물었다.
주하린이 들렀던 흔적이 없었다.
“동생과는 화해했나?”
주예린이 쓴웃음을 지었다.
“화해라기보다는, 용서를 구해야겠죠.”
“잘 아는군.”
주예린이 지쳤다는 듯이 물었다.
“되게 까칠하네. 나한테만 그런 거죠?”
“당연하지.”
“아하. 그럼 다른 여자한텐 상냥하시다?”
“…….”
스스로가 생각해 봐도 감히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나도 부탁이 있는데.”
“부탁? 좋아요. 기브 앤 테이크. 갚을 일이 있으면 나도 마음 편하죠.”
주예린과 대현 그룹을 보니 문득 떠올랐다.
‘길드 같은 빽이 있다면…….’이라는 도은이의 말이.
막상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귀찮게 간섭하는 게 싫다나.
하지만 지금은 커다란 집단의 힘이 필요할 때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딘가 소속되긴 어려웠고, 그렇다면 잠깐 힘만 빌려 쓰고 싶은데.
주예린이나 주하린이 가진 대현 그룹에게 부탁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
클레어의 사정을 요약해 전달하자, 주예린은 눈매를 날카롭게 가다듬으며 웃었다.
“나 병원에서 자는 동안 누가 그런 깜찍한 짓을 다 했대?”
“…….”
이야기를 들은 주예린도 조용히 분개하고 있었다. 평소에 클레어랑 친하게 지냈으니.
“이런 상황에선 보통 어떻게 하지? 어떻게 반박 자료를 준비해야 하나?”
“그렇게 어렵게 돌아갈 필요가 있나요?”
왜 그런 성가신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주예린이 가볍게 툭 던졌다.
“여론 팀 돌릴게요.”
“뭐?”
“내가 보기엔 그거 백 퍼센트 어디서 작업 친 건데, 싹 다 잡아서 족칠게요.”
주예린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자기 손톱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역시 이런 일은 주하린이 아니라 주예린에게 물어보길 잘한 것 같기도.
“그런데 되게 신경 쓰네요. 그러고 보니 처음 소개도 클레어 씨를 통해 받았다고 들었고…….”
그랬었다.
내가 주예린 호위 임무의 소개를 중개받은 건, 다름 아닌 클레어였다. 주하린이 먼저 클레어에게 연락을 했던 거니까.
주예린이 히죽 웃었다.
“임자 있는 여자 좋아하면 괴로울 텐데.”
주예린은 클레어의 남편인 이도율을 두고 한 말일 테지만, 그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라고 해서 진짜 클레어의 남편이 아니라, 위장 부부인 상태니까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이 참 복잡하네.
“내가 좋은 애 소개시켜 줄까요?”
“필요 없어.”
“가슴 왕 큰데.”
“…….”
내가 노려보자 주예린이 와하하 하고 웃어 젖혔다.
“농담이에요, 농담.”
그때 ‘드르륵!’ 하고 병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언니! 나 왔어!”
주하린이 뛰어 들어온 건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손에 커다란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그러자 주예린이 내게 속삭였다.
“왔다. 가슴 왕 큰 애.”
“…….”
“뭐야? 둘이 무슨 얘기해?”
“비밀.”
주하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게 화살을 돌렸다.
“무슨 얘기했어요?”
“…….”
나도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결국 주예린의 대답을 베낄 수밖에 없었다.
“진짜 비밀.”
“…나만 왕따 시키는 거야?”
주하린이 울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