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좀 바빠져서
“혼자인가……?”
임수길 사장이 중얼거렸다.
사장의 말대로 은발 소년은 혼자인 듯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걸 다행으로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왔다면 혼자서 올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게다가…….’
드디어 당첨이라는 말.
자욱한 피 냄새.
이 녀석이 앞서 줄지어 있던 차량들을 모두 정리했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중간을 콕 집어서 온 거라면 드디어 당첨이라는 말 같은 걸 할 리가 없으니.
그 정도는 누구에게나 짐작 가능한 사실이었다. 사장을 제외한 대원들이 전투를 대비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 자리의 유일한 일반인인 사장은 용케도 겁먹지 않고 소리쳤다.
“누구냐! 어디서 보낸 놈이지?!”
당연하지만 은발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입을 꾹 닫고 있는 게 아니라, 애초에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듯한 인상이었다.
소년이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그러자 임수길 사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호통쳤다.
“대답 안 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사장님…….”
장유유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었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소년의 탈을 쓰고 있는 저 존재가 실제로 겉모습과 어울리는 나이를 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뭐가 들어 있는 거야, 저놈.’
내공으로 안력을 강화해 소년을 살펴보면, 그 안에는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방대한 마력이 잠들어 있었다.
‘S급 헌터라던 애들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S급이라는 등급 자체가 끝이 없는 등급이다 보니 그 안에서도 수준이 크게 갈리는 편이지만. 소년의 몸에 잠들어 있는 마력은 그에 비할 게 아니었다.
단적으로 말해, 인간이 아니었다.
“오오!”
소년이 손가락을 뻗어 나를 가리켰다.
“장난감 발견!”
“장난감?”
소년이 히죽 입가를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몹시 만족한 듯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역시. 당첨 정도 되면 갖고 놀 만한 장난감도 하나 끼워 주네. 서비스 정신이 아주 마음에 들어. 밑반찬은 너무 싱거웠단 말이지.”
소년이 내게 물었다.
“너는 좀 즐겁게 해 주겠지?”
기대의 찬 눈빛이 반짝거렸다.
생판 모르는 수상한 녀석의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의무감 따위는 전혀 들지 않았지만, 싫어도 한바탕 크게 일을 벌여야 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전에.
“놀아 주는 건 좋지만, 그 전에.”
내가 사장 일행을 가리키며 물었다.
“방해되는 것들은 좀 치워 둬도 될까.”
이 구역엔 아직 임수길 사장을 비롯한 대원들. 그리고 차량과 그 안에 보관된 에테리움 파편이 함께였다. 그걸 모두 신경 쓰면서 싸우는 건 불편했다.
애초에 난 사람이나 물건을 지키면서 싸운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자 소년이 투덜거렸다.
“뭐어? 여기에 방해가 될 만한 게 대체 어디 있다 그래. 저것들 치우는 건 한순간이지.”
“…….”
소년은 일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흐흥. 그렇구만. 너희 인간들은 꼭 그러더라. 혈족도 아니면서 남 신경 쓰기는. 그렇다고 모든 개체가 단결이 되는 것도 아니야. 정말이지 비효율적인 족속이라니까.”
소년이 조롱을 입에 담더니 눈을 감았다.
“좋아. 허락해 줄게. 난 장난감의 컨디션엔 진심인 편이거든. 저쪽으로 넘어가게 해줄게.”
그렇게 말한 소년이 영차 하고 차량의 본네트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다리를 흔들었다.
“단. 이건 안 돼.”
에테리움 파편은 들고 튀지 말라는 건가.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에테리움 파편의 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저 오만한 태도는 단순히 남이 가진 물건을 부수기 위해 온 걸로 보이지 않았다. 분명 온전히 탈환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소년은 에테리움 파편을 어디 숨기거나 보관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싸움터에 그대로 두더라도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물건이라는 뜻.
‘그럼 그쪽은 일단 안심이고.’
소년과 담판을 지은 내가 사장과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대원들이 긴장한 채로 사장을 보호하듯 둘러싸며 모여 있었다.
“들으셨죠? 뒤쪽으로 넘어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됩니다. 자존심이 높아 보이는 녀석이니,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겁니다.”
“여우 씨.”
대원 중 하나가 물었다.
“솔직히 우리가 보기엔 영락없는 소년에 불과합니다. 마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고요.”
그야 당연했다.
소년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마력을 틀어 잠그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마력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능력이 희귀한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마력을 조금이라도 흘려보냈다간 나를 제외한 모두가 패닉에 빠졌을 거다. 그랬다간 더 챙기기 힘들었겠지.
“정말로 강한 겁니까? 저 소년이…….”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겉모습인 건지. 대원들은 쉽사리 믿지 못했다.
그런 대원들을 향해 물었다.
“당신들은 이 구역을 넘어가지 못하고 같은 곳을 뱅뱅 돌았죠.”
“예, 그렇습니다만.”
“그걸 넘어온 사람은 지금까지 딱 둘밖에 못 보지 않았습니까?”
“……!”
그러자 다들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물러설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별개라는 듯, 대원들은 직업 의식이 투철했다.
“함께…….”
“거슬립니다.”
실랑이할 시간이 없었다.
저 녀석은 변덕이 심해 보였으니.
다행히 대원들도 곧바로 말을 알아들었다. 사장을 보호한 채로 이동하려는 찰나. 임수길 사장이 굳은 얼굴로 버텼다.
“에테리움 파편을 두고 가라니. 말도 안 되네! 난 반대야!”
고집스러운 얼굴. 내가 아는 임수길 사장 다운 태도였지만…….
“사장님.”
“뭔가?”
“목숨이 소중합니까, 물건이 소중합니까?”
“…….”
이지선다를 제안하자, 사장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목숨이 소중하지.”
“그렇죠?”
임수길 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능력에 자신감이 충분한 사람이니, 손해를 보더라도 목숨만 붙어 있으면 언젠가 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그럼, 이따 봅시다.”
사장 일행이 경계를 넘어 뒤쪽 구역으로 사라졌다.
* * *
“이제 됐지?”
소년이 본네트 위에서 내려와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잠깐 치워서 뭐 어쩌려고? 내가 파편만 갖고 얌전히 돌아갈 거라 생각했어? 남은 애들도 청소야, 청소. 괘씸하다 이거지.”
다른 사람들을 내보낸 도율이 뒤를 돌았다. 그 분위기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싸움을 앞두고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뭐 좀 물어보자.”
“응?”
도율이 손가락으로 차량을 가리켰다. 실제로는 그 안에 들어있을 터인 물건이 중요했다.
“너도 이게 목적이냐?”
“그래, 맞아. 이걸 회수해 오는 게 내 임무거든.”
그렇게 말한 소년이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아. 역시 가위를 낼 걸 그랬어.”
가위?
도율이 의아해 하는 사이. 소년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괜찮아. 즐길 거리를 찾았으니까.”
마력이 휘몰아쳤다.
소년이 거대한 댐의 수문을 열었다.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양이 당장은 대단하지 않더라도, 끝 모를 힘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됐다.
가늠할 수 없는 정도의 막대한 마력. 그 배후를 파악하게 된다면 누구나 위압감에 질려 후회와 절망을 맛보게 되지만.
“…….”
도율의 반응은 눈을 가늘게 뜨는 걸로 그쳤다.
새삼스레 놀랄 것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과연~”
소년이 흥미진진하다는 듯 발을 굴렀다.
“우선은 가볍게…….”
휙!
소년이 곧게 편 손바닥을 뻗었다.
“인사치레!”
그러자 몇 걸음이나 좁혀도 닿지 않을 거리를 지나, 거대한 힘의 격류가 도율을 덮쳤다.
카가각!
터널의 천장과 옆구리가 긁히는 소리. 피할 공간은 하나도 없음을 의미했다.
쾅!
마침내 공간의 경계에 다다른 힘이 부딪쳐 커다란 굉음을 냈다. 어디로도 피할 수는 없었기에 직접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공격.
하지만 도율은 그곳에 없었다.
“어라?”
도율이 나타난 건 반대 방향. 구역의 앞부분과 이어지는 경계 근처였다.
끝에서 끝으로. 구역 속에 사람을 가두기 위해 경계를 넘어가면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성질을 이용해 반대쪽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아차. 이제 그거 금지야.”
소년이 슥슥하고 손끝으로 가위표를 그렸다. 그러자 결계를 구성하는 경계면의 성질이 변했다.
“그럼 어디 한번 본격적으로 가 볼까?”
소년이 주먹을 쥐었다.
* * *
쾅!
콰쾅!
사방에서 주먹의 폭격이 쏟아졌다.
상당한 힘을 가진 무형의 충격파가 터널의 천장과 바닥, 그리고 벽을 강타했다. 그럴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커다란 굉음이 수반됐다.
그러나 맞추고자 하는 대상은 맞추지 못했다.
천장을 향해 뛰어오른 도율을 향해 아래에서부터 공격이 솟구쳤다. 산이라도 들어 올릴 듯한 기세로 천장을 두들겼다.
탁.
공격을 피한 도율이 도율이 멀리 떨어진 바닥으로 착지했다.
‘역시 안전하군.’
진짜로 터널 안에서 싸우는 거였다면 이미 무너지고도 남을 정도의 충격이 오갔다. 방금 그 공격만 하더라도 터널 위에 있는 산을 그대로 날려 햇빛을 보게 됐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만하면 슬슬 안심하고 싸워도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오……!”
소년은 열이 바짝 올랐다는 듯 주먹을 파들파들 떨었다.
이처럼 재빠르게 도망다니는 녀석을 상대로는 손바닥으로 넓게 공격하면, 이 제한된 공간에서는 반드시 공격을 맞출 수 있었지만.
‘그건 찢어 버렸지…….’
넓은 만큼 얇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웬만한 놈들을 상대로는 충분했겠지만.
-여뢰.
도율은 손끝으로 검격을 자아내 그 위력을 조각내 버렸다.
결국 비교적 좁은 범위에 더 강한 공격을 집중하는 주먹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그것대로 재빠른 도율을 맞추기에 역부족이었다.
너무 쉽게 이기면 가지고 노는 맛이 없었지만. 오히려 갖고 놀기에 어려운 상대였다.
소년이 분에 차올라 소리쳤다.
“제대로 싸우라고!”
도율이 변함 없는 무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그러지 않아도 슬슬 그럴 생각이었지만. 상대가 답답해하거나 흥분하는 걸 달래 줄 정도로 친절한 성격은 아니었다.
준비 운동으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가위를…….”
“주먹에 손바닥. 남은 게 가위냐?”
소년의 공격은 손과 관련이 있었다. 손바닥이나 주먹을 뻗으면 그것이 같은 방향으로, 그러나 전혀 다른 위력으로 재현되었다.
손바닥과 주먹은 모두 타격과 관련된 공격이었지만. 가위라고 한다면 절삭을 하는 능력인 건가.
도율의 짐작과 다르게, 소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가위바위보 얘기라고.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비교적 간단하게 두 사람이 승부를 정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소년은 아까 물건을 회수하는 게 임무라고 했다. 그리고 임무라고 한다면.
‘명령을 내리는 누군가가 따로 있다는 뜻.’
그렇다면 명령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워낙 자유분방해 보이는 성격에, 제멋대로인 행동을 하는 터라.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당장의 싸움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그저 놓치고 있던 사실을 새로 짚게 되었을 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도율의 직감은 그 사실을 파고들려 하고 있었다.
“지금쯤 저쪽은 신나게 즐기고 있겠지. 장난감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아아, 부럽다.”
소년이 중얼거렸다.
‘회수.’
소년의 임무는 에테리움 파편을 ‘회수’하는 것이라 했다.
보통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을 때, 회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 단어는 원래 그 물건의 주인이었던 자가 쓰는 말이다.
에테리움 파편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달리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그 물건을 가져간 자들을 벌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 에테리움 파편의 출처는.
-청진명이라고. 젊은 놈이 영 융통성이 없어 가지고…….
도율은 불카누스의 사장실에서 들었던 임수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렇지. 이쪽을 마무리하고 나도 그쪽에 합류하는 거야. 그럼 반 정도는 나눠 받을 수도…….”
“미안하지만.”
도율의 목소리가 소년의 귓가를 꿰뚫었다.
‘뭐야, 이 인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울리지 않게 생각이 많아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쫄랑쫄랑 도망이나 치던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흉흉한 기운을 뿜어 댔다.
인간은 급할 때 가장 익숙한 방법에 기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도율에게 가장 익숙한 방법은.
“좀 바빠져서.”
섬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