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작전은?
“그렇게 좋아?”
도은이 클레어를 향해 물었다.
도은은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표정에 클레어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내쪽이 연상인데.
“…딱히.”
이제 와서 젠체해 봤자였다.
품에는 여전히 도율이 선물했다던 빗이 고이 감싸 안고 있었으니까.
“드디어…….”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클레어가 훨씬 아깝지 않느냐는 불만은 있었지만.
“프러포즈 선물로 준 게 빗? 어휴, 무슨 틀딱도 아니고. 확 차 버리지 그랬어, 언니. 명품 빽 사 오기 전엔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로 비싸고 유명한 가방 같은 걸 산다 해도, 클레어는 딱히 기뻐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고.
빗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고른 물건이라는 티가 났다. 그 무신경한 오빠치고는 그나마 봐줄 만했다.
‘뭐, 됐나.’
이렇게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리 친오빠라고는 하여도.
‘허튼짓하다가 걸리면 바로 죽여 버릴 거지만.’
두 사람이 갈라졌을 때, 누구의 편을 들어주게 될지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쨌거나 도은은 10년이나 말도 없이 사라졌던 혈육보다는, 적지 않은 세월 함께 성장해 온 클레어가 더 소중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생각난 것처럼 클레어가 물었다.
“도율 씨가, 어릴 때 네 머리를 빗겨 주곤 했다는데.”
“켁.”
도은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뭔. 무슨 얘기를 하고 다니는 건데, 그 인간? 쪽팔리게…….”
“어쩌다 보니…….”
어쩌다가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빗을 선물했다면,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됐을 만도 했다. 연인이 된 두 사람이 어릴 때 이야기 정도는 할 수도 있는 거고.
다만 그 추억 속에 자신이 끼어 있는 게 못 견디게 부끄러울 뿐.
“뭐……. 그랬지.”
도은이 옛 기억을 되새겼다.
어릴 때, 아버지는 고된 요리사 생활을 하시느라 시간이 모자라셨고. 아직 홀로 스스로를 챙기기엔 너무 어린 도은을 돌봤던 건 오빠인 도율의 몫이었다.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그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도은의 집에는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우리 집 말이야. 엄마가 없거든.”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다 들은 것도 있었고. 오랜 기간 어울리며 눈치껏 알게 된 것도 있었다.
도은의 아버지는 자주 보았고. 실종되었다던 오빠도 작년에 돌아왔지만. 어머니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클레어가 물었다.
“자세히 물어봐도 돼?”
민감한 주제였지만, 클레어 역시 궁금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전 우연히 들었던 도율과 아버님과의 대화 사이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율이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로도 꼽을 수 있었다.
‘괜찮겠지.’
가족의 이야기지만. 클레어는 이제 더는 남이 아니었다.
단순히 친하게 지내는 언니 동생 사이를 넘어서. 이제는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한 단계를 밟을 수 있었다.
그 점 하나는 오빠에게 감사해도 좋을지도 모른다.
“나한테는 뭐,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었는데…….”
도은은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어릴 때 헤어졌다.
덕분에 딱히 그립다거나 하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이야기일 뿐. 다른 두 사람은 빈 자리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우리 엄마, 나랑 같은 헌터 매니저였대.”
지금 자신이 헌터 매니저를 하고 있고, 이 일이 제법 적성에 잘 맞는 건 모두 물려받은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께 듣기로는 어머니 역시 몹시 유능한 헌터 매니저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유능함이 독이 되었다.
“근데 일 하는 게 너무 좋아서 계속 매달리다가, 그대로 외국으로 날라 버렸다는 거지. 내가 갓난아기일 때.”
일 때문에 아이까지 버리고 이혼을 선택한 것이었다.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자기 일이라는 자각도 없이 그 정도로 일이 좋았나 보구나, 하는 무미건조한 감상만이 있었다.
‘그 엄마에 그 딸인 모양이지.’
하지만 아버지나 오빠의 생각은 다른 듯했으니. 이 집안에선 남자들이 좀 더 감성적인 성격을 타고난 듯했다.
“…그렇구나.”
전말을 전해 들은 클레어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도율이 두려워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일을 이유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외국으로 떠났다면,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데다가 외국인인 자신도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질 법도 했다.
‘겹쳐 봤던 걸지도.’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억측에 가까웠지만, 원래 공포는 합리적인 이유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약속할게.”
도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클레어가 다짐했다.
“나는 떠나지 않겠다고.”
난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도은이 피식 웃으며 가볍게 핀잔을 줬다.
“오빠한테 말해 주셔.”
그러자 클레어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쩌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됐더라.
아, 그래. 도은이 어릴 때 오빠가 자신의 머리를 빗어 주던 얘기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어릴 때는 좀 오빠 껌딱지였지. 그래도 어릴 땐 누구나 그렇잖아. 그럴 수도 있지. 어릴 때니까, 어릴 때.”
도은이 애써 그렇게 말하며 어릴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분리했다.
오빠와 멀어진 게 언제부터더라.
사춘기 때인가? 아니, 자신은 사춘기가 별로 세게 오지 않았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름 일찍 철이 들었다고 자부했다.
아버지나 오빠를 속 썩이는 일 없이, 순탄하게 잘 자라서.
‘나름대로 자랑할 만한 딸내미 아닌가? 나 정도면.’
그런 생각을 품어도 딱히 부끄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유독 오빠란 작자는 마음에 안 들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는가 하고 따져 보면…….
계기를 떠올린 도은이 중얼거렸다.
“갑자기 사라져서 그렇구나.”
그렇게 가족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원망하던 인간이, 자기도 연락 없이 10년이나 휙 사라졌으니.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그랬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 것보다 배신감이 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그러자 클레어가 괴로운 것처럼 표정을 찌푸리고 쓰게 웃었다.
거기에 엮인 사정은 모두 자신의 탓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설명하는 건 자신이 할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이 두 사람이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렇게 응원할 뿐이었다.
* * *
“왔나.”
주대현의 저택.
약속대로 찾아와 줬지만, 목소리에는 반기는 기색이 없었다.
“늦었군.”
오히려 퉁명스럽게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손님인 나는 아랑곳 않고 혼자 고급스러운 다기에 차를 홀짝이는 모습을 보니. 여전히 심통 맞은 할아범이었다.
차라리 변함 없는 모습인 게 오히려 안심이었다.
“나름 최대한 빨리 온 건데.”
“한시가 급한 일이라고 했잖나.”
물론 나도 잘 알고 있다.
벌써 두 명이나 되는 사도와 만났다. 이쪽도 저쪽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쪽이 보다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인류 전체의 사활을 짊어지고 있다는 주대현의 입장에 따르면 당연히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하는 일이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었어.”
누구나 세상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었다.
주대현은 그런 나를 슬쩍 흘겨보더니 모두 파악했다는 듯 단정지었다.
“여자군.”
그게 또 정확했다.
“맞아.”
순순히 시인하는 내 모습에 주대현이 한층 인상을 찌푸렸다.
“충고를 잊었나? 저주를 풀기 전에는 조심하는 게 좋다고 일러뒀을 텐데.”
잊지 않았다.
“그 부분은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그보다, 말년에 애를 둘이나 본 정정하신 분께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은데.”
“…….”
세간에 손녀라고 알려져 있는 주하린과 주예린 자매.
사실 주대현의 나이를 생각하면 손녀라고 해도 제법 간격이 멀지만, 실제로는 손녀가 아니라 딸이라는 사실을 그의 입으로 직접 밝혔던 것이다.
심지어 당사자도 모르고 있는 듯한데.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지 주대현은 말없이 차를 홀짝였다.
“설명하지.”
“할 말 없으니까…….”
“입 닫고 듣기나 해라.”
주대현이 한차례 위협적으로 노려보고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사도란 존재는, 네놈도 알다시피 마계라는 지역을 지배하는 자들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 세계가 아닌 마계라는 곳이 있고, 그곳을 지배하는 자들을 사도라는 명칭으로 부른다는 사실을.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에 혼란을 느낄 법도 했지만, 애초에 게이트나 던전이라는 곳 또한 이 세상이 아닌 별개의 세상이고.
‘아예 다른 곳도 다녀와 봤으니.’
나에게 있어선 받아들이기 쉬운 내용이었다.
“이 세상에 던전과 게이트를 만들어 혼란을 야기한 것도 그들이지.”
“왜 그랬는데?”
단순히 사람들이 몬스터에 잡아먹혀 죽는 꼴을 구경하고 싶어서 벌인 일은 아닐 거다.
최초로 던전이나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아웃브레이크’ 때에는 상당히 큰 혼란이 함께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인류는 제법 잘 적응해 이를 하나의 사업으로 분류할 정도였다.
마석을 이용한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화석 연료와 달리 환경을 해치거나 지역적 제한에 따른 갈등도 없었다.
인류에게는 더없이 달콤한 과실이 되어 있었다. 마치 미끼처럼.
“사도들은 이대로는 이 세계로 넘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그 말은 마치, 이대로가 아니라면 넘어올 수 있을 거라는 것처럼 들렸다.
“균열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균열이라고 한다면, 이쪽에서 던전이나 게이트로 향하는 문을 말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계라는 곳에서도 이곳으로 넘어올 때 균열을 넘어가게 되는데. 균열이 허용하는 마력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두 세계의 균형이 점점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지.”
마력을 가지고 있던 세계이자 그를 기반으로 발전한 세계, 마계.
그리고 뒤늦게 쫓아 빠른 발전을 이룬 이곳, 인간계.
둘 사이의 간극이 좁혀질수록, 균열을 통해 넘나들 수 있는 마력의 용적이 커진다는 설명이었다.
“사도의 화신체가 이 세계로 넘어오거나. 던전이나 게이트 같은 차원에서 사도 그 자체가 현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머지 않아 사도들이 이쪽 세계로 올 수 있게 되면.”
주대현이 컵을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끝장이다.”
시간 제한이 있다는 말이군.
나 역시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싸움 장소는 중요하다. 이쪽 세계에서 싸우게 된다면, 재산이나 인명 피해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런 걸 일일이 배려하면서 상대할 놈들이 아니었고.
“네놈의 탓도 있다.”
“나?”
주대현이 갑자기 날 탓했다.
“네놈이 거대한 힘을 무분별하게 휘두른 탓에 그 심지가 한층 더 빠르게 타들어 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사용하는 힘은 마력과는 다르지만, 세상을 불안정하게 흔드는 결과를 만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는 내 책임도 있다는 말.
물론 그렇게 몰아세우지 않아도, 나는 이 일을 내팽개칠 생각이 없다.
“작전은?”
거기부터가 본론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사도란 놈들이 넘어와서 전 인류를 먹어치울 테니 손가락 빨고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라는 말 따윌 하려고 부른 게 아닐 테니까.
역시나 준비된 게 있다는 듯, 주대현은 고민 없이 답했다.
“뻔하잖느냐.”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역습이다.”
역습(逆襲).
내가 생각한 대로의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