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모기가 물었나
‘용의 둥지…라고?’
도율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용과 관련된 것은 없어 보였다. 황량하고 삭막한 분위기. 벌레 한 마리 지나가지 않고,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적막한 장소였다.
있는 것은 오로지 두 사람. 도율과 누란주 그레고르뿐이었다.
“네가 용이란 거냐?”
그레고르는 사도치고는 상당히 왜소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도들이라고 해서 모두 덩치가 크거나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겉모습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다들 만만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는 있었다.
그러나 도율의 눈앞에 선 사내는 피로에 절어 있는 것처럼 신경질적인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로 용의 이름을 자처할 수는 없었다. 조룡주 라크자르를 상대했던 도율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그레고르가 머리를 가볍게 긁고는 대답했다.
“이곳이 제 거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
“단순히 양도받은 겁니다, 주인이 없는 보물 창고를.”
그레고르의 말에 도율이 중얼거렸다.
“설마…….”
그레고르가 둥지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둥지의 위치를 알려 준 것도 모두 라크자르였다.
라크자르는 누란주가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걸작품을 파괴해 달라고 도율에게 부탁했지만.
조룡주 라크자르가 평생에 걸쳐 만들어 온 육신은 그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긴…….’
도율이 기감을 펼쳐 넓게 주변을 탐사했다. 그러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형들이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라크자르가 곧잘 애용하던 소년 형태의 인형들이었다.
이곳은 용의 둥지. 라크자르가 만들어 둔 육신들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그리고 그레고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이것들을 훔치기 위해서였나.”
도율의 말에 그레고르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조룡(彫龍)이라고 합니다.”
“조룡?”
그레고르는 라크자르가 빚은 육신들을 조룡이라고 불렀다. 힘으로 깎아 내 만든 용의 조각들.
괴도는 값어치가 없는 물건은 훔치지 않는다. 그레고르에게 있어 라크자르가 남기고 간 유산은 기꺼이 훔칠 만한 값어치가 있는 보물이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은 무지몽매한 맹인들이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물건이라도 단순히 전시하기만 할 뿐이라면 박물관에 널린 구닥다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녕 대단한 물건이라면, 바른 쓰임새로 사용할 때에 그 진가가 발휘되는 법입니다.”
설교하듯 말하는 그레고르를 향해 도율이 일침을 가했다.
“말은 장황하게 하는데, 결국 도둑질하러 왔다는 뜻이잖아.”
평소에도 라크자르의 조각들을 호시탐탐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주인이 죽은 김에 모조리 훔치러 왔다는 뜻.
쓸 사람이 없는데 자기가 가지는 게 무슨 문제냔 말이었다.
도율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법도 상도도 없는 놈들이구만.’
그레고르는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이해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살고 있었다.
“라크자르가 왜 널 싫어했는지 알 것 같군.”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를 굉장히 높게 샀지만 말입니다.”
라크자르가 만들어 내는 조룡들을 무척 탐냈다. 의식이 없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텅 빈 신체였지만, 그 어떠한 마물보다도 튼튼하고 강력했다.
그걸 손에 넣고 싶어 그레고르는 몇 번이나 조룡주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라크자르는 자신의 조각에 그레고르의 손때가 타는 걸 지극히 꺼려했다.
“알고 계십니까? 일방통행은 꽤 사무칩니다.”
“소름이 끼친다.”
도율은 왜 라크자르가 자신의 육체를 부수라고 했는지 십분 이해하고 말았다.
“가능하면 그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레고르의 등 뒤에서 외골격을 가진 팔들이 솟아났다.
“당신 같은 방해꾼이 나타났으니, 작업은 중단입니다.”
그레고르가 혈귀공을 풀었던 것은 인간 세력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레고르의 위치를 라크자르에게 들어 알고 있는 도율의 발목을 잡기 위한 시간 끌기였다.
“리허설로는 딱 좋습니다.”
그러나 그레고르 본인은 나서지 않았다. 도율이 상대해야 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레고르의 등 뒤로 솟아난 팔에 달린 손가락들은 실이 달린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 손가락을 잡아당기니, 실에 연결된 무언가가 움직였다.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의식이 없는 꼭두각시 인형이 걸어 나왔다.
그레고르는 라크자르가 만든 인형을 조종하고 있었다.
라크자르가 가진 힘은 단순히 육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 신체에 깃든 라크자르 역시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라크자르가 까다로운 상대였던 건, 그 두 가지 이유가 합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라크자르의 의식조차 들어 있지 않은 껍데기를 상대하는 건 훨씬 간단한 일이었다.
하나.
“…진짜냐.”
나타나는 인형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거대한 동굴을 에워싸듯 소년의 형태를 한 인형들이 발걸음을 울리며 다가왔다.
어느새 도율의 주위는 라크자르를 닮은 소년들로 가득 찼다.
“공연, 개막.”
그레고르가 실에 마력을 불어넣자, 인형들이 눈을 떴다.
* * *
‘드디어.’
그레고르가 감격에 떨었다.
수십, 수백 개체의 조룡들을 조종하는 지금이 그레고르에게 있어서는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
그레고르는 기생과 장악, 조종에 특화된 능력을 가져 다른 마족들을 마음대로 수족으로 부릴 수 있었지만.
‘그들로는 부족했습니다.’
정작 조종하는 마족들이 약해빠진 탓에 시시하기 짝이 없었다.
금방 망가지는 장난감은 있으나 마나였다. 최고의 품질을 지닌 물건을 손에 넣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완벽에 가까운 신체를 빚어내는 자, 조룡주를 알게 됐다.
그러나 조룡주는 그레고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 몸에 손대면, 죽여 버린다.
조룡주가 그레고르를 볼 때마다 밥 먹듯이 일삼던 말이었다.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는지, 수십 년 전에 한 번 ‘실험’을 한 이후로 조룡주는 그레고르를 죽이기 위해 찾고 있었다.
덕분에 사도 회의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숨어 다녀야만 했다.
그레고르로서는 그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능력은 인정하지만…….’
모처럼 만들어 놓은 조룡들을, 조룡주는 동시에 조종할 수 없었다. 보다 좋은 조각을 만들기 위해 몰두했지만, 생산적으로 조각을 늘리려고 들지는 않았다.
걸작 따윈 필요 없다. 적당히 좋은 품질을 지닌 조룡들을 효율적으로 양산하고, 수많은 조룡들을 누란주의 능력으로 제어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마계 최강의 군단을 형성할 수도 있었는데.
‘생각이 낡아 빠졌습니다.’
요즘 시대에 장인 정신이라니.
조룡주. 그가 만든 물건에 어울리는 주인은 그 제작자가 아니라 그걸 보다 잘 다룰 수 있는 자신이라는 생각을 품었다.
‘보십시오! 이 압도적인 광경을……!’
수십 체의 조룡들이 도율에게 달라붙어 연격을 가하고 있었다.
고작 한 명, 라크자르와의 싸움에서도 상당히 체력을 소모했으니. 이렇게 수십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몇 명의 사도를 쓰러뜨렸다곤 하지만. 그건 모두 연식이 오래된 고물들이었다.
새로운 시대는 효율과 전략을 중요시하는 자신과 같은 사도가 지배할 전망이었다.
‘…그래야 할 터인데.’
콰직!
도율은 지친 기색 없이 무표정하게 또다시 한 체의 조룡을 부쉈다. 감상에 빠지지도 않고 곧바로 다른 개체들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도율이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알려 줄까.”
“뭘 말입니까?”
“날 이기지 못하는 이유.”
“큭……!”
그레고르가 도율의 건방진 입을 틀어막기 위해 더 많은 조룡들을 동원했지만, 그 탓에 동선이 꼬여 몇몇 공격이 허공을 휘저었다.
한결 여유롭게 대처하며 도율이 말했다.
“첫째. 난 일 대 다수 싸움이라면 이골이 났단 거고.”
도율이 귀환하기 전에 가장 많이 겪었던 상황 중 하나였다.
무림의 공적이었던 도율에게 다수의 적이 동시에 덤벼드는 건 치졸한 짓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둘째. 이런 허수아비들은 한 트럭을 갖다 놔도 소용없어.”
결국 그레고르가 조종하는 조룡은 라크자르가 가지고 있던 진정한 힘을 끌어내지 못했다.
대규모 전쟁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겠지만. 도율 한 사람을 쓰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조룡이……!’
그레고르의 실이 허공을 짚었다.
라크자르가 만들어 놓은 조룡들도 그 수에 한계가 있었다. 오랜 세월 살아온 라크자르가 만들었던 조룡들의 수는 무한할 정도로 많다고 느껴졌었지만.
모두 도율의 손에 의해 차례차례 박살나고 있었다.
“좋습니다.”
조룡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그레고르가 조종을 그만뒀기 때문이었다.
“인정하겠습니다, 내가 안일했다는 걸.”
“인정하면?”
“지금부터는.”
그레고르의 등 뒤에 달린 수많은 외골격의 팔들. 그 팔들이 우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모양을 바꿨다. 말단에 달려 있던 인간의 손들이 각자 필요한 모습을 갖췄다.
“전력으로 당신을 배제하겠습니다.”
휙!
그레고르의 팔 중 하나가 갈고리로 변해 있었다. 총처럼 쏘아 낸 갈고리가 꼬리를 남기며 벽에 걸렸다.
갈고리에 달린 줄이 줄어들며 그레고르의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도망치는 건 줄 알았더니, 그레고르의 또다른 손에서 반짝거리는 구슬들을 토해 냈다.
‘이건……?’
오래 관찰할 틈도 없이, 바닥에 닿은 구슬들이 폭발했다.
도율은 폭발로부터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연기가 눈을 가리고 있었다. 시야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 여겼지만, 사실은 그 자체가 독성을 가진 안개였다.
“귀찮게 하는군.”
흑응공(黑凝工). 검은 점이 독 안개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거기냐.”
도율이 그레고르의 위치를 포착해 달려들었다.
그레고르가 다시 한번 갈고리를 발사해 도망치려 했지만, 도율의 출수가 훨씬 빨랐다.
콱!
도율의 손날이 그레고르의 몸통을 꿰뚫었다. 그러나 피 대신 체액과 껍질들이 도율의 손을 적셨다.
그레고르의 형체를 이루고 있던 것이 수많은 벌레들이 되어 흩어졌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바꿔치기를 할 틈은 없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벌레로 만든 대역을 세운 거였나?
‘…아니.’
도율이 흩어지는 벌레들을 노려봤다.
“이 자체가 진짜인 거군.”
“크크큭…….”
그레고르는 본디, 작디작은 벌레였다.
같은 크기의 벌레들을 하나씩 조종하고. 조금씩 커다란 벌레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하며. 점점 더 강한 마수와 마족들을 감염시켜서 여기까지 도달했다.
벌레의 군체. 하나가 모여 그레고르이고, 그레고르가 곧 전체인 것이었다.
“정답입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이 모든 나를 제거하는 게.”
단 하나만 살아남아도 그레고르라는 사도는 소멸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금 그 수를 불려 원래의 힘을 되찾는다.
가장 죽이기 어려운, 끈질긴 목숨의 소유자였다.
화륵.
도율이 검은 불꽃을 피워올렸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벌레들을 향해 쏘아졌다.
츠츠츳!
벌레들이 더욱 재빠르게 서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만. 단 하나만 살아남으면……!’
불꽃은 재빠르고 집요하게 벌레들을 태워 죽이고 있었지만, 그레고르가 가진 벌레들은 불꽃이 번지는 것보다 빠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이걸 놓치지 않고 모두 제거하는 건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도율이 공격에 정신이 팔린 사이.
‘지금……!’
그레고르가 도율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강한 존재도… 내 앞에선 결국 먹잇감에 불과한 법입니다.’
그레고르를 상대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단숨에 해치우는 것이 아니었다. 방심하다가 그레고르의 침투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도들이라면 몰라도. 그레고르를 처음 맞닥뜨린 인간이라면 놓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자, 그럼…….’
그 어떤 존재라도 그레고르의 마력이 한 번 침투하기 시작하면, 정체성을 잃고 군체의 일부가 되고 만다.
그러나 도율의 피부에 달라붙은 그레고르가 몰래 주입한 마력은 모두 순식간에 불살라 사라졌다.
도율이 그레고르에 대해 모르는 게 있는 만큼, 그레고르 역시 도율에 대해 알지 못하는 점이 있었다.
“모기가 물었나.”
도율의 몸에 흐르는 내공이 모든 마력을 지워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