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put it in, I'll be SSS class RAW novel - Chapter 238
〈 238화 〉 첫날의 마무리, 다음 날의 준비
‘린린 쪽에서 먼저 아이를 만들자고……?!’
나는 몹시 당황했다. 설마 린린이 이렇게 먼저 선수를 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야 린린도 강한 후손을 만들어야 한다고 의식하고는 있겠지만, 설마 이렇게 나올 줄이야.’
린린도 마력도 실력도 뛰어난 것으로 보이는 나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들이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선택권이 이쪽에 오는 건 성가신데…….’
거기에 이렇게 먼저 물어버리는 것으로 린린은 선택과 거부를 나에게 떠넘겼다.
거절했다간 섹스할 수 있는 좋은 각이 없던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승낙했다간 정말 당장 아이를 만들어야 할 참이다.
솔직히 싫지는 않지만, 지금 나에게는 임신의 예약이 잔뜩 잡혀있다. 최소한 루시아와 아비, 루시아 엄마까지 벌써 셋이다. 그걸 뛰어넘어서 만들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상상만 해도 두렵다.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렸네. 하지만 이쪽도 다 방법이 있어.’
그렇다고 해도, 이쪽에는 이 있다.
아무리 섹스를 해도 임신시키지 않을 수 있다. 실컷 질내사정을 하고 이 정도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섹스한다고 반드시 애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특이할 것도 아니다. 인간과 요호족 사이라서 잘 안 된다느니 하는 핑계도 얼마든지 통하리라.
‘임신은 안 시키고 맛만 실컷 봐주마. 제 꾀에 자기가 넘어갔군.’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다. 그건 바로 나를 말하는 것이다.
“대충 사정은 듣긴 했어요. 그게 진담으로 하시는 말이라면, 저는…….”
하지만,
“아뇨. 농담이에요.”
린린은 신속하게 말을 취소해버렸다.
“네?”
“농담이라고요. 설마 진지하게 생각하셨던 건가요?”
먼저 던져놓고 도망쳤다. 그것도 도리어 필사적으로 계산하며 자화자찬하던 나를 바보 취급하며.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순식간에 나는 야한 농담에 진지하게 반응한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에이. 바로 옆에 네자까지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리가 없잖아요?”
린린이 손을 내저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의 네자가 무표정하게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미 비어있는 데다가 손이 떨리고 있다. 짜증 나니까 웃기면 그냥 웃었으면 한다.
“죄송해요. 너무 놀렸네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우셔서.”
“……아뇨. 뭐. 네.”
당황과 약간의 빡침에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네자가 없었으면 장난하는 거냐, 하고 자빠뜨렸을 참이다. 지금쯤 바지 내렸다.
“그나저나 제법 경험이 있긴 있으신가 봐요?”
간신히 감정을 추스르며 약간 남은 차라도 마시려는 나에게 린린이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평범한 동정이라면 좀 더 당황하면서 버벅댈 것 같은데, 바로 진지하게 진담이라 물어오셨잖아요. 범상치 않은 대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듣고 보니 그렇다 싶어 할 말이 없어졌다. 그보다 너무 뒤도 없이 막 묻는 거 아닌가. 오늘 초면인데 잘도 저런 질문을 마구 한다. 나도 루시아에게 막 들이대긴 했지만 최소한 하루는 지난 뒤였다.
“……린린. 너무 괴롭히지 말아라.”
“앗. 죄송해요. 전부터 만나고 싶었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만 주체를 못 했네요. 사과드립니다.”
네자가 너무한다고 생각한 듯 린린에게 말하자 린린이 너무 나갔다는 것을 깨달은 듯, 아니면 깨달은 척을 하며 말했다. 미안하다는 듯 축 처진 귀가 귀여우면서도 잔망스럽다. 화난다.
“무례한 질문을 너무 해서 죄송해요. 레온 씨에게 관심이 많다 보니. 다음에는 둘만 만나서 이야기해도 좋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린린에게 끓는 속내를 삼키며 대답했다. 완전히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목소리가 영 좋게 나오질 않는다.
‘이 여우년, 진짜 열 받네……. 나중에 그만하라고 애원할 때까지 따먹어주겠어.’
나는 나중에 꼭, 이제 더는 무리라고 할 때까지 따먹어주기로 진심으로 결심했다. 무투대회가 끝나기 전에 꼭 따먹겠다. 이 빡침은 갚아주지 않고선 참을 수 없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좀 더 나눈 뒤, 나는 둘의 특실에서 나갔다.
동방연맹의 정세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몇 개(진 가문의 지지도라든지, 평민의 여론 같은) 건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린린에게 놀림당한 게 자꾸 생각나 크게 집중은 하지 못했다.
최근 하고 싶은 대로 전부 다 하며 살았기 때문일까, 내 뜻대로 조금만 되지 않아도 확 열이 받게 된 것 같다.
뭐, 열 받게 한 사람이 나쁜 거다. 물론 화나게 한 대가는 몇 배로 지독하게 갚아줄 생각이고.
“교수, 엄청 무서운 얼굴이야.”
“아. 모리건?”
계단을 내려오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옆에서 모리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이쪽으로 왔다고 들어서 기다렸어. 동방연맹 귀빈을 뵙고 온 거야?”
“그래. 잘 찾아왔네.”
“어차피 갈 곳도 없는걸. 알리와 루시아도 다음 일 준비하느라 바쁜 것 같고.”
오늘 쭉 어울려주겠다고 하고 막상 여기저기 사람 만나고 하다 보니 그리 상대해주지 못했다 싶어서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조금 있다가 저녁 정도는 같이 먹어도 좋을까.
“그래서, 어땠어? 린린이라고 했던가, 상냥해 보이던데.”
“하나도 안 상냥해. 아주 여우야, 여우. 울프힐데가 10배는 착해.”
“그, 그래?”
내가 살짝 빡친 표정으로 말하자 모리건이 당황했다.
“……솔직히 말해서 농락당했어. 옆에 네자가 없었으면 열 받아서 자빠뜨리고 따먹었어.”
“교수를 농락하다니, 그런 게 되는 사람이 있구나. 괜히 귀빈이 아니긴 한가 보네.”
모리건은 무섭다는 표정으로 계단 위쪽의 특실을 바라보았다. 딱히 밖으로 나오거나 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굉장히 신경이 쓰이지만, 당장 확인하기에는 모리건이 있으니 참기로 했다.
“교수. 같이 아비 보러 안 갈래?”
“아비?”
“응. 의무실에서 고생하고 있을 테니까. 고생한다고 응원 정도는 해주고 싶어.”
“그거 좋네. 나도 찾아가야겠다 생각해놓고 잊고 있었네.”
나는 모리건의 제안을 승낙했다. 마침 기분전환을 하기에는 딱 좋을 것이다.
의무실은 경기장 입구 근처에 작게 지어진 임시 천막이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다.
“아. 교수님, 모리건! 찾아와주셨군요.”
천막을 열고 들어가자 카르테를 안고 있는 아비가 우리를 반겼다. 평소의 수녀복 위에 의사의 하얀 가운을 걸친 모습은 제법 인상 깊다.
“응. 좀 더 빨리 와야 했는데 미안. 고생이 많아.”
“그렇지만도 않아요. 원래 해야 할 임무이고, 딱히 심각한 환자는 없으니까요.”
아비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리건은 주변을 힐끔힐끔 둘러보며 살폈다. 다른 의무담당, 대부분 교단 소속인 학생들이 마족인 모리건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자고 한 건 나지만, 내가 들어와도 괜찮은 장소일지 모르겠네.”
“그런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기는 성당도 아닌걸요.”
아비가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하며 주변을 슥 둘러보자 모리건을 쳐다보던 교단 소속 학생들이 허겁지겁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는 큰 언니인가 봐?”
“치유술 능력만으로 줄을 세우면 그렇게 되네요.”
교단 내의 군기는 제법 단단하게 잡은 걸지도 모르겠다. 겉으론 나긋나긋하고 착하지만, 알고 보면 무서운 구석이 있는 아비니까 충분히 잘 잡을 것 같다. 웃으면서 화내는 아비의 얼굴을 상상하면 나도 괜히 전립선이 오싹한다.
“그래서, 치료받는 애들 상태는 어때? 아서랑 소피아라든지.”
“아서와 소피아는 처치를 받고 돌아갔어요. 의식은 잃었지만 애초에 심한 상처는 아니었으니까요.”
아쉽게도 둘은 이미 돌아간 뒤였다. 소피아라면 몰라도 아서는 제법 다쳤을 것 같은데 의외다.
“심한 상처가 아니라. 그래도 아서는 갈비뼈 몇 개는 부러졌을 것 같은데. 높은 곳에서 쿵 떨어지기도 했잖아?”
“에이. 금이 간 것 정도야 간단하죠. 치료 과정이 맞을 때보다 아프긴 하지만요.”
아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무섭다. 튼튼해서 다치는 일은 없지만 더욱 다치고 싶지 않아졌다.
“하지만 니우로와 미엔 씨는, 그게…….”
아비가 말을 흐렸다. 니우로미엔 팀의 니우로와 미엔도 제법 다친 걸까.
아서와 소피아가 금방 퇴원했는데도 입원 중이라는 것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 둘, 많이 다쳤어? 어떻게 된 거야?”
“부상의 정도는 별 것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신적인 충격이 크네요.”
내가 묻자 아비가 난처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정신적인 충격?”
“네. 경기 내용이 내용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요.”
무슨 PTSD 같은 것이라도 겪고 있는 것일까. 짧은 경기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건……. 그렇겠네. 나라고 해도 정신을 다잡지 못했을 거야.”
모리건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르반테스가 뭘 했는지 신경 쓰여서 죽겠다. 그냥 볼 걸 그랬다.
“금방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풀이 많이 죽어서 그런 것뿐이니까요. 한동안 트라우마가 되어서 고생하긴 할 것 같지만요.”
“잘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네. 나는 둘의 경기를 못 봐서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러셨군요. 그러면 텟, 아니. 아즈레랑 유에는 봤나요? 조만간 상대할 팀이니까 알아두는 게 좋을 텐데.”
아즈레와 유에 이야기가 나오자 신경이 쓰이는 듯 아비가 물었다.
물론 둘은 경기가 한창일 때 나와 섹스하고 쉬느라 못 봤다. 엄청 기분 좋았으니 후회는 전혀 없지만.
“음……. 나랑 만나고 있었지. 잠시 가볍게 코치를 해줬거든.”
나는 적당히 돌려 대답했다. 하지만 아비는 코치라는 단어에 숨은 뉘앙스를 듣자마자 빠르게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랬군요. 무투대회 중에는 좀 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요.”
“하하하하.”
“얼버무리지 마세요. 조금은 자제하세요. 실수로 들키거나 했다간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요. 뭣하면……. 아니, 아무튼 자제하세요.”
“그래, 그래. 자제할게.”
물론 자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뭣하면, 다음에 뭐라 말하려고 했던 거야?”
“알아차렸으면서 굳이 묻는 거, 그리 좋은 버릇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알아차리라는 전제로 말을 멈췄던 걸까. 은근히 약삭빠른 구석이 있다.
“그러면, 니우로랑 미엔의 병문안이라도 하실래요?”
“그건……. 딱히 친한 사이도 아니니까 봐도 뭐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 경기를 본 것도 아니니까. 아서랑 소피아라면 봤을 텐데.”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뒤쪽에서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와 돌아보자 허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아서가 서 있었다.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가지러 왔습니다.”
“저도 실례합니다…….”
아서의 뒤에서 소피아가 고개를 기울이며 인사했다. 경기에 임할 때의 독기가 빠진 소피아는 살짝 유약해 보이는 상이었다. 아직 패배의 충격에서 개운하게 벗어나지 못한 듯싶다.
“그래서, 레온 교수님이죠? 저에게 볼일이 있으십니까?”
“뭐, 볼 수 있으면 보고 싶다는 정도일까. 내 이름, 알고 있구나.”
“학교에 소문이 자자하니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소문인지 추궁하진 않기로 했다. 들어봐야 쓴웃음만 나올 뿐이리라.
“그래. 아즈레와 경기의 감상은 어땠어? 불편하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답을 피할 것까진 없습니다. 그냥, 감탄했습니다.”
아서는 태연하게 말했다.
“처음에는 스테이시아 황녀님과 닮았다고도 생각했습니다만……. 제 기억 속의 황녀님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기합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그거로 어떻게 되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기합이라는 것은 고유 패시브 스킬 을 말하는 것이리라. 덕분에 능력치는 따라잡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스킬 등급의 차이는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존재를…… 그냥 두어도 괜찮을지 불안해질 정도로.”
“불안해?”
아서의 말에 나는 되물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반역자의 자손, 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제국에 칼을 겨누지 않겠습니까.”
“아아. 그런 건가……. 안심해. 아즈레는 제국의 적이 될 생각은 없으니까.”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아즈레, 지난 이교도 토벌 미션에서 만났다고 했잖아? 지금의 상황을 제안한 것도 사실은 나야.”
날조와 진실이 섞어서 적당히 말했다. 아서는 그랬던 건가, 하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사항은 이야기해줄 수 없지만, 아즈레는 제국에 딱히 원한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 안심해. 오히려 제국의 편에 가깝고.”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괜한 걱정을 했군요.”
내 대답에 아서는 안심했다. 아서는 잠시 두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가겠다며 내 뒤로 지나갔고, 소피아도 그 뒤를 따랐다.
“소피아지?”
“아, 네.”
나는 소피아를 불러 멈췄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서보단 소피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