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하늘의 작품 활동은 계속되었다.
뒷배도, 경력도 없는 화가가 이렇게까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는 주변의 반응과, ‘얼굴로 먹고산다.’라는 악평을 비웃듯 한 달에 한 점에서 두 점씩, 매번 최고를 갱신하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렇게 기현이 친구 하늘의 갤러리에 방문한 지 1년. 화가 ‘김하늘’이 데뷔한 지 약 2년쯤 되었을 때, 화가 ‘김하늘’은 돌연 모든 갤러리를 닫고 저택에서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슬럼프? 혹은 오만? 천재 풍경화가 김하늘 갤러리 내달 내로 영업 종료] [천재 화가 김하늘 갤러리 오픈 않는 이유는?]하늘이 활동을 시작한 시기에 이미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활발하던 화가가 모습을 감췄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재 화가 김하늘 얼굴마담 논란?] [갤러리 ‘하늘’ 측 얼굴마담 논란에 강경 고소]그중 몇몇은 악의적인 소문을 터뜨리기도 하고,
[김하늘 저택에 드나드는 여인…. 잠적 이유는 결혼이었나] [천재 화가 김하늘 한지오 병원에서 목격…. 건강 이상설 사실로 드러나나] [[갤러리 하늘 공식 입장] 애인 아닌 제자. 지나친 억측 불쾌해] [단순 건강검진일 뿐…. 갤러리 ‘하늘’ 측 건강 이상설 일축]몇몇은 어설프게 그의 뒤를 파보다 헛다리를 짚기도, 혹은 운 좋게 맞추기도 했다.
“제발 좀 쉬라니까!”
“내가 갤러리를 닫았지 작품 활동을 멈춘 건 아니잖아.”
“너는 지금 작품 활동을 할 몸이 아니잖아.”
“팔다리 달려있고 잘 움직이는데 뭐 어때.”
그러나 하늘을 볼 수 없는 그들과 다르게 하루가 멀다고 그의 상태를 확인하는 기현은 정말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김하늘!!”
“어후, 귀 따가워. 해리 씨. 나 귀마개 좀 가져다줘요. 이기현 쟤는 나이 먹으면서 스피커도 같이 먹었나 봐. 시끄러워 죽겠어. 목소리가 점점 커져.”
“저놈의 입 진짜….”
눈에 띄게 말라가고 있으면서도 입 하나만큼은 절대 죽지 않는 하늘이 열 받아 뒷목을 주무르는 기현의 앞에서 깐족거렸다.
“진짜 입만 보면 절대 아픈 놈이 아닌데….”
기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좋으니 모든 게 다 거짓말이라고 하면 좋으련만. 거뭇해지는 눈가나 말라가는 몸은 하늘의 병이 진짜라고 말하고 있었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어?”
“그럼! 어제도…!”
“아뇨. 어제도 죽 한 그릇 겨우 먹고 아무것도 안 드셨어요. 더 먹으면 토할 것 같다고 하시는 게 울렁거림이나 어지럼증이 심해지는 거 같아요.”
해리가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려던 하늘의 말을 자르고 기현에게 보고했다.
간호사이자 임시 보호자인 그녀는 제 환자의 상태를 가감 없이 주치의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었다.
“악! 해리 씨!”
“너 자꾸 구라 칠래!”
“약 먹으면 졸리단 말이야! 자꾸 자느라 그림 못 그리잖아!”
“그거 그렇게 졸린 약 아니거든! 네 몸이 잠을 필요로 하는 건데 어떡하라고!”
하늘과 기현이 서로를 향해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중간에 낀 해리가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너는 곧 죽을 애가 왜 그렇게 열심인데? 꼬박꼬박 팔아먹기까지 하더만! 뭐 죽어서 재산을 싸 들고 가기라도 할 거야? 오래 살고 싶으면 좀 쉬라고!”
“오래 살아봤자 앞으로 일이 년밖에 더 돼? 돈이라도 벌어야지!”
“그러니까 그 돈을 어디다 쓸 건데 네가!!”
“너 병원 차려주고 뒤지려 그런다 왜!!!”
왜!! 왜! 왜….
넓은 저택에 메아리가 울렸다. 막상 말하고 나니 아차 싶은 하늘과 제가 뭘 들었는지 귀를 의심하는 기현의 정적이 이어지고, 해리는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야.”
험악한 얼굴의 기현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누가 너보고 그딴 거 차려달래?”
“아니…!”
“너 그딴 생각으로 작업하는 거면 당장 때려쳐. 병원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하늘이 뭐라 더 말할 새도 없이 짐을 챙긴 기현이 저택을 나섰다.
“하늘 씨가 잘못한 건 알죠?”
“으으음….”
하늘이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욱하는 마음에 끝까지 비밀로 하려 했던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 기현이 화를 낼 거란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내가 돈 벌어서 이기현 말고 줄 사람도 없고….”
“네네. 처지 바꿔 생각해 봐도 빡칠 만한 일이라는 거 아니까 변명하는 거잖아요. 지금.”
“해리 씨 너무해….”
― 약은 퀵으로 보낼 테니까 그거라도 먹여줘요. 미안해요. 해리 씨.
그사이 해리의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이 날라왔다. 참 솔직하지 못한 친구 사이였다.
“기현 씨가 친구 목숨값으로 차린 병원을 좋아하겠어요? 당연히 싫지.”
“목숨값이 아니라….”
“알아요. 그렇게 느껴질 거라는 거지.”
해리가 주저앉은 하늘을 부축해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
보통 저 정도로 병이 진행되면 소리 지를 힘은커녕 말하는 것도 힘겨워하는데 하늘은 유독 병세가 좋았다.
작년에 비하면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작품 활동도 하고 있고, 기현이 올 때면 시끄럽게 소리도 지른다.
“그래도 이번엔 하늘 씨가 잘못했어요.”
“내가 뭘요.”
아이처럼 뾰루퉁한 얼굴의 하늘이 괜히 알면서도 툴툴거렸다.
“오늘도 작업할 거예요? 약 투여받았으니까 오늘은 좀 쉬시지.”
“오늘 안 하면 내일도 못 해요.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야지.”
소파에서 잠시 숨을 고른 하늘이 해리의 부축을 받고 작업실로 향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점, 많게는 서너 점 정도 꾸준히 작품을 내던 그가 벌써 몇 개월째 작품을 내지 않자 무성한 소문이 돌았다.
하늘은 몇몇 악질적인 소문에 대해서만 대응할 뿐,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 끼익.
오래된 저택 특유의 듣기 싫은 문소리가 나며 작업실 문이 열렸다.
작업실 내부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찾는 천재 화가 김하늘의 신작들이 발에 챌 정도로 가득했다.
“작업실 사진 찍어다가 기자한테 팔면 얼마 받을 수 있을까요?”
“해리 씨 한 달 월급만도 못할 거란 것 정도는 알죠.”
“음. 그건 그래요.”
해리가 피식 웃으며 긍정했다. 간호사라는 사실을 숨기고 하늘의 제자가 되어 그를 돌보는 대가로 그녀는 이런 농담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꽤 많은 돈을 받고 있었다.
하늘이 캔버스 앞에 앉았다. 며칠 전부터 시작한 다른 작품이었다.
“하늘 씨의 풍경화는 참 독특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 거겠죠?”
아직 겨우 스케치에 불과한 작품이지만 하늘의 작품은 묘한 구석이 있었다. 극사실주의 같으면서도 초현실주의 같은 특이한 그림체.
어떤 평론가가 평가했듯, ‘배우지 않았기에’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사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왜 사람들이 나를 천재라고 치켜세우는지.”
일여 년 만에 평생 일해도 사기 힘든 저택을 사고, 그것도 모자라 24시간 간호사를 고용할 정도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작 하늘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아는 사람 눈에는 보이는 게 있나 보죠. 하늘 씨는 그림을 잘 ‘그리는’ 거지, 잘 ‘보는’ 게 아니니까.”
“그런 걸까요.”
“어쨌든 저녁 시간 되면 부를게요. 기현 씨가 굶지 말라고 한 거 들었죠?”
“으윽.”
하늘이 인상을 찌푸렸다. 요즘 들어 쉽게 체하고 속이 거북해져 식사량이 많이 줄어든 탓이었다.
“이번에 처방받은 약은 빈속에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라 어쩔 수 없어요. 그럼, 열심히 일하세요.”
해리가 파이팅 자세를 취해 보이더니 작업실을 나섰다.
“그래…. 일이나 하자.”
한숨을 푹 쉰 하늘이 붓을 쥐었다. 아직까지는 제 뜻대로 움직여주는 몸뚱이가 고마웠다.
“오늘은….”
하늘이 물감을 쭉 훑어보더니 파란색과 하얀색 물감을 섞어 하늘색보다는 진하고, 파란색보다는 연한 푸른색을 만들어 냈다.
“하늘을 그려볼까.”
하늘. 야외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푸르르고 넓은 공간, 혹은 그의 이름.
한 번, 두 번, 붓칠이 계속되자, 붓질 한 번에 하늘이 칠해지고, 그 주위로 산과 나무, 새들이 내려앉았다.
[언젠가 내가 김하늘에게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본 적 있었다.]하늘은 약해져 떨리는 붓질마저도 자연스럽게 제 것으로 만들었다.
[김하늘의 대답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였다.]작은 붓, 큰 붓, 중간 붓, 두꺼운 붓, 얇은 붓. 하늘이 양손에 붓을 들고 정신없이 그림을 그렸다.
[의외의 대답이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냐고 물어보자, 그는 그리고 싶은 대로, 몸이 이끄는 대로 그린다고 했다.]물을 자주 갈지 못한 것을 대비해 해리가 미리 떠 놓은 여러 개의 물통들이 금방 뿌옇게 변했다.
[여기엔 나무를 그려야지, 저기엔 꽃을 그려야지. 하는 생각 따위가 아니라, 어딘가의 풍경을 그대로 베껴오는 것처럼 머리를 비우고, 몸이 시키는 대로.]하늘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마치 호수 속에 비친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풍경. 거울처럼 비치는 것 같으면서도 약간의 푸른 기가 도는 숲속의 호수와 호수에 비치는 하늘이었다.
* * *
└ BEST: 1화 마지막에 나온 호수에 비친 하늘 그림 있잖아요 기현이랑 하늘이 뜻하는 거 아니에요?
└ re: 하늘이는 그렇다 치고 기현이는 왜요?
└ (작성자) re:re: 한자 사전 돌려보니까 물 이름 기沂, 물이 깊고 맑을 현灦 자가 있던데 이게 호수를 뜻하는 말이 될 수 있지 않나 싶어서요. (죽어서) 하늘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하늘+하늘을 그리고 (죽은 하늘을) 가슴에 품은 기현 이거 아닌가…?
└ 윗댓 소름…. 근데 이정이 왤케 말랐냐 하늘땜에 살 뺐나? 그리고 처음부터 하늘이 죽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복선을 깐다고? 아니지 이건 복선도 아님 ㅠㅠ 2화에서 얼마나 즙을 짜게 하려고ㅠㅠㅠ
└ re: 님 2화 아직 안 봤어요? 그럼 그냥 내일 눈 부을 각오 하세요…. 그리고 이이정 지금은 통통한 거예요^^ 나오자마자 정주행하고 앓느라 댓창 못 나가는 내 인생…. 내일 출근 어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