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32
032화
‘ 우성연, 절친 백주린과의 촬영 즐거워’
‘이수희 작가가 언급한 기대되는 배우는 누구?’
‘ 연기력 구멍 없는 탄탄함’
‘이수희 작가. , 기존과는 다른 드라마 될 것’
드라마 방영 첫 주, 1화 시청률은 3.8%, 2화 시청률은 4.2% 압도적인 성적은 아니지만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정 씨 기사 봤어요?”
“네, 분위기 괜찮더라고요.”
순조로운 출발 덕분인지 계속되는 촬영에 지쳐있던 스태프들의 얼굴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다.
“어젠 누구랑 봤어요?”
“친구들이 집으로 와서 같이 봤어요.”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민혁이 얼마나 놀려대는지. 오늘 아침 촬영을 하러 나오는 그 순간까지도 정말 꾸준한 모습이었다.
‘자기 데뷔했을 때 우리가 놀려댔다고 계속 이를 갈더니 신났었지 아주.’
민혁의 데뷔 당시 회사에서 그를 ‘귀여운 막내’의 이미지로 민 탓에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애교를 부리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짜증 나는 혀짧은 소리도 그때 터득한 것이었다.
“친구들은 놀리느라 신났죠? 대사 따라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리고 16살의 지원과 이정이 그런 좋은 흑역사를 놓칠 리가 없었다. 종종 그 영상들을 따라 하며 민혁을 놀리곤 했었다.
‘인과응보… 라고 생각하긴 싫다 진짜.’
“맞아요. 오늘도 얼마나 놀려대는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싶더라니까요.”
“우리 멤버 언니들도 그래요. 뭘 하던 꼭 놀려서 이젠 안 그러면 섭섭하더라고요.”
성연은 알 만하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이정 씨는 일반인 친구들이 있어서 좋겠어요. 저는 학교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어서.”
“저도 제일 친한 친구 둘 빼고는….”
심지어 그나마 둘 있는 학교 친구도 결국엔 연예인이었다. 이정은 새삼스레 제게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이 정말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명인 게 뭐가 중요해요. 변하지 않으면 된 거지. 앞으로 점점 더 사람을 깊게 사귀기 어려워질 테니까요.”
그녀의 조언에 이미 겪은 바 있는 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촬영도 파이팅?”
“화이팅.”
“오늘 강현 오빠랑 같이 찍죠?”
“네. 그때 이후론 처음이네요.”
촬영을 몇 번이나 미루고 겨우 찍은 후 이정의 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까지 강현과 함께 찍는 장면이 없었던 터라 꽤 오랜만이었다.
“아까 스태프들이 그 오빠 오늘 상태 안 좋다고 하던데. 조심해요.”
아직 직접 부딪힌 적은 없었지만, 강현이 대놓고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당장 이정이 그를 이길 힘이 없었다.
“별일 있을까요. 싸우는 씬도 아니고 그냥 말다툼인데.”
“혹시나 하는 거죠. 저 성질머리는 예상이 안 되니까.”
이정이 걱정하는 성연을 안심시켰다.
“기껏해야 리테이크 아닐까요. 그렇다고 몇십 테이크까지 갈 씬도 아니고 심하면 감독님이 중간에서 잘라주시겠죠.”
“그건 그렇지만.”
예림의 약혼자임에도 수현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영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재민이 영호와 마주쳐 말다툼하고 그 모습을 본 수현이 말리는 장면.
전부 공원에서 찍는 장면이니 안전사고가 날 만한 것도 없었다.
“슬슬 준비 다 된 거 같은데요? 가시죠. 수현 씨.”
“네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생각이 맞았는지 스태프가 촬영 재개를 알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미리 표시해 놓은 자리에 서자 예의 껄렁한 낯을 한 강현이 설렁설렁 다가왔다.
책 잡히기 싫어 먼저 인사를 건네자 돌아오는 것은 차라리 무시가 낫겠다 싶은 한 음절뿐이었다.
“레디.”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이었다면 꽤 서러워했을지도 몰랐겠지만, 그에 해당 사항이 없는 이정은 그냥 강현이 연기라도 잘해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액션!”
결국, 드라마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은 본인이 아닌 배역일 뿐이니까.
“최영호 씨.”
“누구…? 아, 수현 씨네 회사 대표님이시구나.”
재민은 회사 앞 공원에서 수현과 영호를 만난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말과는 달리 둘은 누가 봐도 데이트 중인 커플의 모습이었다.
“예림이에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수현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가 영호에게 말을 걸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제 결혼 신경 쓰실 필요 없다고. 한예림 씨랑도, 수현 씨랑도 아무 사이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재민은 수현과 예림의 사생활에 끼어들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한예림 씨의 전 약혼자이신 거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한예림 씨가 걱정되시면 둘이서 결혼하시죠?”
영호의 비웃음에 이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의도로 말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서로에 대한 예의를….”
“이쪽 바닥에 사랑 없이 결혼하는 사람 한둘도 아니고. 그냥 결혼만 한예림 씨랑 하면 문제없는 거 아닙니까?”
열이 올랐다. 영호의 행동은 수현과 예림 둘 모두를 기만하는 행동이었다.
“후우….”
단순히 화를 내는 것만으로는 영호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재민이 심호흡을 했다.
“그럼 연애는 수현 씨랑 하고, 결혼은 예림이랑 하겠다는 겁니까 지금?”
“뭐, 꼭 그렇다기보단 그쪽이 자꾸 한예림 씨와의 약혼을 걸고넘어지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럼 최영호 씨의 그 마음, 그대로 수현 씨에게 전해도 될까요?”
재민이 보기엔 수현 역시 영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뿐 그에게 마음이 있어 보였다.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함부로 전해?”
강현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폭력적인 애드리브에 이정이 순간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대사를 쳤다.
“왜, 그건 또 싫습니까?”
그냥 순간적인 애드리브였던 건지 잡은 멱살을 떼어내자 강현은 순순히 물러났다.
“오지랖도 정도껏 부려. 추해 보이니까.”
아니, 순순히 물러났다고 생각했다.
“윽.”
다음 대사를 내뱉던 강현이 순식간에 그에게 주먹질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방심한 채로 뺨을 제대로 얻어맞은 이정이 뒤로 넘어졌다.
“야, 컷! 컷!”
“오빠 미쳤어?”
갑작스러운 난동에 스태프들이 환상을 지나쳐 코앞까지 다가와 이정을 둘러쌌다.
저 멀리 있던 강현의 매니저도 놀라 달려왔지만 정작 사고를 친 강현의 얼굴은 태연했다.
“아. 순간 너무 욱해서. 미안.”
너무 욱해서 주먹질까지 한 사람이라고 보이지 않는 즉답이었다.
“이정 씨, 아 소리 내봐요.”
“아―”
입을 벌리자 안쪽까지 찢어졌는지 피 맛과 함께 아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를 둘러싼 스태프들의 얼굴이 울상인 것을 보니 보지 않아도 겉까지 엉망일 게 뻔했다.
“헐. 어떡해. 이거 멍 올라올 거 같은데요?”
아무리 화가 나도 부상의 위험이 있는 주먹질은 어느 정도 힘을 빼고 치기 마련인데, 강현은 의도적으로 전혀 힘을 빼지 않았다.
“강현 씨! 그 정도로 욱할 장면도 아니었잖아!”
“아 그냥 갑자기 확 화가 났다니까요? 이정 씨가 아주 화나게 연기를 잘하나 보지.”
박 감독이 강현에게 화를 냈지만, 강현의 태도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애꿎은 강현의 매니저가 이정에게 사과를 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 역시 내내 불량했던 태도가 이렇게 터질 줄은 몰랐는지 사색이 된 얼굴이었다.
“이정 씨 일단 저희 차 타고 병원으로 가시죠. 현장에 있는 약으로는….”
“난 내 차에 누구 안 태워.”
“강현 씨!”
“아 그냥 택시 타~ 요즘은 부르면 오 분 안에 오는 게 택시인데 굳이 내 차까지 태워줘야 돼?”
강현의 매니저가 최대한 상황을 수습했지만 그럴 마음이 전혀 없는 강현이 대놓고 찬물을 끼얹었다.
“사람을 때려놓고….”
“아니 대체 뭐가 저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데?”
이유 모를 불만을 숨기지도 않는 강현 탓에 이정을 둘러싸고 있던 스태프들이 고스란히 그 대화를 들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됐어! 이정 씨 일단 우리 차로 가자. 오빠! 여기서 제일 가까운 병원이 어디지?”
“어? 여기 그, 사거리에, 그러니까.”
“뭐해 이정 씨? 일단 출발해!”
강현의 매니저만큼이나 사색이 된 얼굴이었던 성연이 이젠 당황을 넘어 분노에 찬 얼굴로 제 매니저에게 지시했다.
“잠시만요.”
그 난장판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정이 슬며시 말을 꺼냈다.
“지금 응급실 가면 기사 뜰 게 뻔해요. 첫 방송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면 에 좋을 거 없잖아요.”
“지금 그게 중요해?”
“이정 씨가 그런 거 생각할 때야 지금?”
박 감독과 성연이 불같이 화를 냈지만, 오히려 이정의 머릿속은 차분했다.
‘생각 없는 것처럼 굴어도 절대 생각이 짧은 사람이 아니야. 그냥 한 대 때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이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어,’
당황스러운 건 이정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강현의 태도가 지나치게 뻔뻔스러운 감이 있었다.
‘아무리 VK가 대단해도 스태프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까진 못 막을 텐데?’
적어도 미안한 척이라도 했다면 오히려 받아들이기 쉬웠을 거다. 하지만 강현은 주변 평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굴었다.
“일단은 드라마가 우선이니까요.”
이건, 단순히 이정 한 명만 엿먹이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적어도 드라마 전체를 망치겠다는 아주 확고한 의사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