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94
094화
담배를 쥔 손목에 걸려있는 것은 솔이의 팔찌.
담배와 팔찌 그 사이 어딘가를 멍하게 쳐다보던 수한이 툭 하고 말을 내뱉었다.
“죽이지 말 걸 그랬나.”
대본에 없는 대사였지만 송 감독은 잠자코 그의 연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 드르륵 틱, 드르륵 틱.
그가 손에 힘을 빼고 싸구려 라이터의 쇠바퀴를 굴렸다. 아주 작게 바퀴가 부싯돌에 맞닿아 긁히는 소리가 났지만, 너무 힘을 뺀 탓인지 불은 올라오지 않았다.
“쓰읍….”
이내 한 번 더 힘을 주어 담배에 불을 붙인 수한은 철야에도 옷을 깨끗하게 유지하던 그답지 않게 아스팔트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한솔.”
후, 하고 짧게 내뱉어진 담배 연기 사이로 초점 없는 눈이 시선을 끌었다.
얼핏, 아끼던 막내가 살해당했음에도 시체도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으로 보이는 행동으로 보일 법했지만, 솔을 죽인 범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수한임을 생각해 보면 소름이 끼치는 모습이었다.
“한 번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이용하고, 죽이는 것에 전혀 거리낌 없었던 그에게 처음으로 찾아왔던 망설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는데.”
수한이 팔을 들어 제 손바닥으로 해를 가렸다.
차고 있던 팔찌가 소매 밖으로 빠져나와 덜렁거렸다. 하얀 실 팔찌는 제 주인의 피를 듬뿍 먹고 얼룩덜룩 검붉은 팔찌가 되었다.
“후회가 되네.”
그때 수한의 시선이 좀 더 먼 곳을 향했다. 장례식장을 오가기 바쁜 사람들 사이 어딘가로.
“넌 어떻게 생각해?”
그가 질문을 던진 그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수한은 마치 누군가가 보이는 것처럼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나라면, 넌 날 죽였을까?”
마치 이미 죽은 솔이가 보이는 것처럼 태연하게 묻는 그.
“아니면, 죽이지 않았을까?”
송 감독이 이정에게 요구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죽은 솔이의 환상을 보는 것처럼 연기할 것.
그리고 둘째, 단순한 후회가 아닌 그 이상의 감정을 담아 연기할 것.
우선 첫 번째 요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환상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이정의 눈에는 실제로 피투성이가 된 솔이가 보였으니까.
그렇기에 초점이 흔들리는 일도, 어설프게 방황하는 일도 없이 깔끔하게 시선 처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두 번째였다. 솔이를 죽일 때도 그랬지만, 범죄와 살인에 더없이 익숙한 수한이 유독 그녀에게만은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수한은 대체 후회 말고 또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사실, 이정은 오늘 촬영 직전까지 그 감정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그냥 사이코패스 같잖아.’
자신이 죽여놓고 죽이지 말 걸 그랬다며 아련하게 후회하는 모습이라니. 정상적인 사람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한은 대형 범죄조직을 이끄는 인물로 절대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관객들이 그를 완전히 타인으로 인식하는 것은 송 감독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송 감독은 수한이 관객들에게 있어 꺼림칙함과 애처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인물이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수한은 마냥 사이코처럼 표현돼서도, 또 마냥 인간적으로 표현돼서도 안 되었다.
“한솔.”
솔이의 이름을 부른 수한은 어느새 다 닳아 필터만 남은 담배를 꺼버리고선 다른 한 개비를 다시 입에 물었다.
“솔아.”
이번에는 괜히 쇠바퀴를 굴리지 않고 한 번에 불을 붙인 그의 입에서 아주 작은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미안해.”
흔한 세 글자. 하지만 수한은 제가 내뱉은 말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안…해?”
조금 전과는 다른 뉘앙스. 수한은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말인 것처럼 말끝을 올렸다.
애초에 경찰이 된 이유도 자신을 추적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던 만큼 그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다름 아닌 A의 안위.
“미안한 건가? 이게?”
그러므로 A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솔이의 죽음은 그에게 있어 전혀 후회할 대상도, 미안해할 대상도 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왜?”
공허했던 수한의 얼굴은 혼란스럽게 변해갔다.
― 틱
이해할 수 없는 그 감정에 수한이 다시 한번 담배를 빼 물었다. 하얗게 번지는 연기가 그의 마음을 정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뭐가?”
재한에게 정체를 드러낸 것은 그가 의도한 것이었고, 그가 작정하고 덤빈다 한들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솔이에게 들킨 것은 계산 밖의 일이었다.
수한은 자칫 빠져나올 수 없는 증거를 가진 그녀를 그냥 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결국 그녀를 죽이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다름 아닌 ‘미안하다.’였다.
“미안해? 정말로?”
여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인생을 망치면서도 미안하기는커녕 후회조차 해 본 적 없는 수한에게는 낯설기 짝이 없는 감정들.
그 낯섦과 생소한 감정이 수한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마치 억지로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다 고장 난 로봇같이 섬뜩한 표정. 그런 수한의 표정에 스태프들이 저도 모르게 팔을 쓸어내렸다.
“와, 씨. 소름 끼쳐.”
사람이 아닌 듯한 이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누군가는 그 사이에서 언뜻 처량함을 느꼈다.
“그런데 좀… 불쌍하지 않아?”
“뭐가?”
“아니 좀, 뭐라고 해야 하지….”
정작 그 스태프 역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여놓고 미안하다 중얼거리는 사이코에게서 왜 처량함을 느끼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지만.
“비에 쫄딱 젖은 사람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비는커녕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었지만 그는 수한이 비를 잔뜩 맞은 채 울부짖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미안해.”
그사이 또다시 허공으로 향한 수한의 눈이 누군가에게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안해.”
이정은 수한이 아마 태어나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미안해.”
그래서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감정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감정도 모두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면?
“솔아.”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한들, 처음으로 자신이 죽인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라면?
“솔아.”
자식을 잃은 어미의 울부짖음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면? 죽음이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해도 살아 숨 쉬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면?
“미안해.”
대부분 학습하지 않아도 자연히 습득하는 이 모든 것들, 이 모든 감정을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비척비척 일어선 그가 또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서장이 건네주었을 때부터 그리 많지 않던 담배는 이제 딱 두 개비.
“만약.”
두 개비 모두에 불을 붙인 수한이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한 개비를 세웠다.
“다음 생에 날 만나게 된다면.”
후읍. 담배 연기를 몸 안 가득 빨아들인 그가 숨을 내뱉자, 길게 내뿜어지던 하얀 연기가 공기의 움직임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날 죽여.”
투둑, 투두둑. 묵념하듯 고개 숙인 수한의 발아래, 마치 향처럼 세워진 담배가 떨어진 물방울에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땐 꼭 네가 날 죽여.”
으레 한 반쯤은 해 봤을 법한 사과. 그조차도 처음 해 본 수한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과였다.
“……오케이, 컷이요.”
수한의 감정 전부를 온전히 이정에게 맡겼던 송 감독이 한참 동안 침묵하다 마침내 컷을 끊었다.
“컷입니다. 세트장에 계신 분들 나오세요!”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컷 내내 빈소 세트장 안에서 있다. 안내를 듣고 나온 주석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싸해진 분위기를 보고 송 감독에게 눈을 돌렸다.
“컷이라는 거 보면 촬영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진 않고….”
주석의 시선은 아직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정에게 향했다.
“이정이가 또 뭔 일 쳤구나?”
사고라도 친 것 같이 말하는 주석의 말투와 다르게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훈진아, 모니터링하러 가자!”
“지금요? 이정이는….”
“쟨 지금 제 감정 추스르는 중이니까 건드리지 말고.”
이정에게 가려는 훈진의 목덜미를 낚아챈 주석이 그를 끌고 송 감독에게로 향했다.
“빈소 들어가지 말고 옆으로 빠질 걸 그랬나. 더워서 들어갔더니 볼거리를 놓쳤네.”
더운 날씨에 유일하게 에어컨이 돌아가는 빈소 세트장. 열사병 조심해야 하는 날씨라고 괜히 앓는 소리를 냈던 게 살짝 아쉬웠다.
“송 감독, 방금 찍은 것 좀 보여줘 봐.”
주석과 훈진이 방금 찍은 컷을 모니터링하는 동안 이정은 주석의 말대로 감정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였다.
‘만약….’
컷 소리가 난지 오 분은 족히 흘렀음에도 그 자세 그대로였던 이정의 속내가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