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93
093화
“쓰읍, 쿨럭, 쿨럭.”
담배 연기가 목에 걸리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켠 이정이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아 진짜 느낌 별로라니까.”
송 감독이 잘 부탁한다며 건네준 담배는 그나마 순하다 알려진 종류였지만, 담배가 생전 처음인 이정에게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안 피웠던 담배를 이렇게 피워보게 되네.’
회귀 전 사고 이후 이정은 술독에 빠져 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술에 미쳐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화상과 술의 상성이 최악이라는 걸 알면서도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 몇 달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민혁과 지원이 번갈아 가며 말려도 소용없을 정도로 술을 달고 살았지만, 어째서인지 담배를 피운 적은 없었다.
‘그냥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서 손이 안 갔던 건가.’
사고 직후 약 일 년 동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보니 행동에 이유가 없었다. 그냥 아예 이성을 잃게 해 주는 술이 더 좋은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뿐이었다.
“그래서 주량도 잘 몰랐지.”
회귀 전 이정의 인생에 적당한 음주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극과 극. 사고 후 한 번 병을 들면 꼭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던 때와 민혁의 매니저 일을 맡으며 아예 멀리하던 때.
“어쨌든, 촬영 끝나면 바로 끊어야지.”
씻어도 몸에 남아있는 듯한 담배 냄새가 썩 유쾌하지 않았다.
* * *
송 감독과 흡연씬 논의를 한 지 일주일. 이정이 이젠 제법 익숙하게 담배를 잡은 채 주석과 이야기를 나눴다.
최대한 빠르게 일정을 잡긴 했지만, 이정 역시 익숙해지기 위해 제법 많은 양을 피울 수밖에 없었다.
“으…. 여전히 별로예요.”
“아직도? 나도 처음엔 그랬었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나네.”
평생 담배와는 거리가 멀었던 이정과 달리 술, 담배 모두를 즐기는 주석은 그런 그를 보며 킬킬거렸고, 스태프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이 재미있는 듯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뭐, 독한 담배는 아니어도 깊게 배워서 좋을 건 아니니까. 적당히 하자고 적당히.”
“송 감독 덕분에 현장에서 담배를 다 피워 보네.”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야 일일이 세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많았지만, 공교롭게도 주연인 이정과 훈진 둘 모두가 비흡연자였다.
“어차피 좋지도 않은 거 끊으세요. 선생님. 술도 좀 줄이시고.”
“인생의 낙을 빼버리면 남는 게 뭐가 있나? 소소하게 즐기기엔 이보다 좋은 게 없어.”
주석은 상황에 맞게 조절하는 편이라 그들과 함께 있을 때면 흡연을 하지 않았는데, 촬영을 이유로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니 세상 개운하다는 얼굴이었다.
‘소소하지 않으니까 문제죠….’
주석이 음주운전으로 은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정이 살짝 그를 말려봤지만, 그는 아직 둘 다 줄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선생님은 ‘적당히’가 아니시잖아요. 특히 술은.”
“아이고, 둘이서 오늘 날 잡았어?”
“서장님 걱정돼서 그러는 후배의 마음이라 생각해 주세요.”
훈진도 조용히 말을 거들자 주석이 적당히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도 이정과 훈진이 그를 걱정한다는 것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 둘은 몸 아껴서 오래오래 연기해.”
어딘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주석이 이정과 훈진의 등을 두드렸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탠바이 해 주세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세 사람이 모두 움직였다.
“와….”
가짜 장례식장은 정말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었는데, 그 분향소 위에 해맑게 웃고 있는 지원의 사진이 더해지자 기분이 묘했다.
“아, 솔이 역 맡은 친구가 네 친구라고 했었지?”
“네. 멀쩡한 거 알면서도 이렇게 보니까 순간 섬뜩하네요.”
“아직 젊으니까 그럴만하지.”
주석은 이정이 느끼는 이질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채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꼭 젊다고 나중에 가는 건 아니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그렇게 어색한 장소가 아니라서.”
분명 지원이 아닌 솔이의 장례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죽일 때는 이런 느낌 없었는데 되게 묘해요.”
“딱 그 감정 가지고 연기하면 될 거 같은데요?”
이정이 정작 그녀를 죽이는 씬을 찍을 때보다 지금의 이질감이 더 심하다 말하자 송 감독은 그 감정이 딱 적당하다 말했다.
“세세한 감정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런 느낌을 살려주면 돼요. 시작할까요?”
간단하게 디렉션을 내린 송 감독이 그들을 향해 물었다.
“넵.”
“네.”
북적북적 엑스트라를 비롯한 조연들이 몰려있는 장례식장 안에서 씬 전체의 주역이 되는 이정과 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슛 들어갑니다. 레디, 액션!”
* * *
“아이고, 내 딸! 내 딸 불쌍해서 어떡해!”
“어머님, 이러다 쓰러지세요. 진정하시고 뭐라도….”
솔이의 장례식. 아직 정식으로 그녀의 팀이 옮겨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솔이의 소속은 여전히 전담 A팀 막내였다.
“시체 발견도 못 했다며?”
“혈흔만 발견됐다는데…. 알잖아. 그 정도 양이면 이미….”
“전에 이수한 팀장 납치했던 그쪽이랑 같은 조직이라는 말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해?”
“모르지. 전담 A팀 해체하려고 하니까 일이 이렇게 연달아 터져서 서장님도 꽤 골치 아프실걸?”
빈소 안에서 울부짖는 솔이의 어머님과 그녀의 옆을 지키는 전담 A팀 멤버들, 그리고 조문 온 동료 형사들.
겉돌던 전담 A팀 소속이었던 탓에 장례식장에는 그녀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보다 죽음의 방식과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해 떠드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야, 야. 쉿.”
그들은 이를 악물고 살벌한 얼굴로 빈소를 향해 쿵쿵거리며 걸어오는 재한을 발견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야 얼굴 살벌한 거 봐라.”
“전담 A팀 좀 더 빨리 해체할 수 있었는데 백 팀장, 아니지 백재한 형사가 끝까지 잡을 수 있다고 난리 쳐서 연장된 거라며.”
재한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이야기하던 그들은 안에서 들려오는 고성에 빈소 안으로 눈을 돌렸다.
“네가, 네가 죽인 거잖아. 이 수한 이 개새끼야!”
며칠째 씻기기는커녕 옷조차 갈아입지 않은 듯 꼬질꼬질한 행색의 재한이 빈소에 들어오자마자 수한의 멱살을 잡았다.
“백 형사님, 대체 왜 그래요! 이 팀장님이 최초 발견자이신데!”
“이 팀장님 여태 한숨도 안 주무시고 빈소에 계셨단 말이에요!”
전담 A팀 동료들이 수한의 멱살을 잡은 재한에게 달려들어 그를 말렸지만, 핏발 선 눈을 한 재한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너…! 다른 새끼들은 몰라도 나는 알아. 네가 죽인 거라는 거.”
상주를 맡을 사람이 없는 솔이네의 상주를 맡은 수한은 꼬질꼬질한 재한과 상반되는 깨끗한 정장 차림이었다.
재한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수한의 셔츠도 구겨졌지만, 수한은 어딘가 혼이 나간 듯한 얼굴로 그가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그래…. 내가 죽였지….”
“이 팀장님은 또 왜 그래요? 야야, 이리 좀 와봐!”
“솔이 시체 어디 있어 이 새끼야. 시체라도 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백 재한!! 빈소 앞에서 뭐 하는 짓이야!”
뒤늦게 도착한 서장이 빈소 앞에서 상주의 멱살을 잡은 재한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서장님!”
“너 이 새끼 콜 할 때는 안 나타나더니 발인 날 돼서 겨우 나타나서는 깽판 질이야?”
옆 빈소에서 힐끗거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크게 소리친 서장은 넋이 나간 수한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저 새끼 미쳤다, 미쳤다 했더니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미치려면 곱게 미치던가….”
수한의 정체가 A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재한으로선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동료들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재한이 미친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후우….”
수한을 데리고 아예 장례식장 밖으로 나온 서장은 아예 넋이 나간 듯한 그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피나?”
“오늘은요.”
수한은 서장이 건네는 담배를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였다.
“사직 앞두고 이런 큰일이 터져서 심란할 거 아는데….”
똑같이 담배에 불을 붙인 서장이 무어라 수한을 위로했지만, 그저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후우우….”
그저 텅 빈 눈을 한 채 기계적으로 담배를 빨아들이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어휴, 됐다. 됐어. 이거 줄 테니까 잠깐이라도 마음 추스르고 들어와라.”
서장 역시 그의 위로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지자 말을 멈추고 가지고 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그의 손에 쥐여준 채 다시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쥐여준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한은 그 안에서 담배 하나를 꺼냈다.
‘중요한 건 여기부터인데.’
송 감독이 앵글 안에 잡힌 이정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그녀가 흡연을 해 본 적도 없는 배우에게 흡연을 부탁해 가면서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림. 급하게 추가한 씬이라 상세한 디렉션도, 대사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정이라면 넘치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내심 조바심이 드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는 없었다.
“…….”
담배를 꺼낸 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 한참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이정의 모습에 송 감독이 의아해하며 컷을 외치려는 순간, 그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