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요이델.”
목소리가 차가워. 누구지? 아는 사람?
아니야, 알아……. 너무 잘 알고 있어. 분명히 이 목소리는.
휙―!
눈을 뜬 순간, 날카로운 손이 요이델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들은 요이델의 뺨을 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위협하듯 손을 조금 띄어 놓고는 서늘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깨어났구나.”
“요보…… 힐데…….”
그들은 요보힐데 공작 부부였다.
우욱.
요이델은 말과 함께 왈칵 빈속을 게워 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흐린 시야를 바로 뜨고 앞을 똑바로 바라봤다. 점차 그들의 악마 같은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했잖나, 요이델 요보힐데.”
“윽.”
몸이 욱신욱신 아파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아.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고 몸이 떨려.’
실제 포박된 게 아닌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요이델은 공작의 옆에 선 공작 부인을 쳐다보았다.
이건 분명히 마법이겠지. 물리적으로 생채기를 내면 성하에게도 고통이 갈 테니까.
“네가 성황과 연결되어 있는 몸이라 특별히 극진한 취급을 해 줬단다.”
그들은 요이델을 두고 픽 비웃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평범하기 그지없는 방이었다.
고급스러운 테이블과 소파, 풍광을 묘사한 한가로운 그림이 걸려 있는 액자와 반질거리는 바닥.
납치 따위의 험악한 일을 행할 리 없어 보이는 우아한 귀족 저택이었다.
‘백치가 태어났어!’
그 순간 두통이 일었다.
요이델은 눈을 질끈 감고 이곳의 위치를 떠올렸다.
잘 아는 장소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전의 요이델이 절대 잊을 수 없는 곳.
‘요이델! 너는 왜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니! 번번이 부모를 실망시킬 셈이야!’
그런 목소리가 자신의 몸 안에 남아 있었다. 절대 씻을 수 없는 기억으로.
그들의 표독스러운 눈빛과 목소리도 같이.
엄연한 학대의 흔적이었다.
‘여긴 요보힐데 공작 저택이야.’
━━━━⊱⋆⊰━━━━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델은 왜 아직까지 안 오는 거지? 너무 늦는데.’
호위기사로서 주인의 사랑놀음까지 알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말 한마디 없이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됐다.
“라이, 델 봤어?”
“나는 성하와 있었지 않나. 신관님의 보호를 소홀히 했나? 휘스테론.”
“아니, 사정이 있어서 잠깐. 그럼 델이 어딜 간 거지……. 성하는? 성하를 찾으면 분명 같이 있겠지.”
그런데 보좌신관을 찾아 물어본 결과, 거기에도 없었다.
“오늘 반려님께서는 성하와 만나신 적이 없습니다.”
“뭐라고?”
휘스테론의 눈이 잘게 떨렸다.
“하지만 나간 게 아까 점심 무렵인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이 땅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럼 누구에게 간 거야?”
그는 곧장 라보르비치의 국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성국의 성기사님 아니십니까.”
그를 알아본 라보르비치 측 기사들이 예를 표했다. 다행히 딱 타이밍이 좋았다. 그들은 아카코스의 근위기사들이었으니까.
“저희 측 신관님 못 보셨습니까? 세례를 요청하여 온…….”
“아, 요이델 신관님을 말하시는군요.”
“맞습니다!”
휘스테론의 반색에 근위기사들은 약간 놀란 듯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만.”
“……말도 안 돼.”
휘스테론이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쿵.
마침 이곳을 향하던 율리시스 일행과 몸이 부딪쳤다. 거기엔 당연히 율리시스도 있었다.
“성하!”
“무슨 일이십니까, 경.”
“델 못 봤어?”
그 물음에 율리시스의 안색이 일순간 차갑게 굳었다.
“요이델 님이 보이지 않는 겁니까?”
“맞아, 델은?”
“그건 제가 그대들에게 물을 말입니다. 요이델 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뭐? 성하 못 만났어? 아, 이런 미친.”
휘스테론이 드물게 당황스러워했다. 그의 입에서 욕이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그 순간 율리시스 역시 이상한 기색을 느꼈다. 휘스테론이 이렇게까지 요이델을 간절히 찾아 헤매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제게 물었다는 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뜻.
“요이델 님께서 어디로 향하셨습니까.”
“델은 성하한테 할 말이 있다고, 꼭 가 봐야 한다고 나갔어!”
“제게…….”
율리시스는 휘스테론을 바라봤다.
“혼자 어디론가 향했습니까?”
“젠장, 내 잘못이야. 아무리 따라오지 말라고 했어도 이 낯선 땅에서 혼자 보내는 게 아닌데……!”
탕, 휘스테론이 분한 듯 땅을 두드렸다.
“설마 신관님께서…….”
“주위에 기사들을 포진시켜서 숲, 경계, 그 너머까지 샅샅이 찾아!”
곧이어 횃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이리저리 사방으로 움직였다.
그때 모두들 깨달았다. 뭔가가 크게 잘못됐다고.
━━━━⊱⋆⊰━━━━
요이델은 마음속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마가 화끈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메디아의 마법서까지 찾아봤지 뭐니. 이 엄마를 수고롭게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우리 아이.”
평범하게 식사를 하는 클레멘타인 요보힐데는 요이델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베어지는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꼭 아무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그녀와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그건 요보힐데 공작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수고를 많이 했지.”
“다 우리를 위해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의 격려에 요보힐데 공작 부인은 당연한 듯 웃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영 그렇지 않나 봐…….”
“성황과의 연결을 차단해 놓은 건 확실하겠지?”
“저 이마의 문양에 제약을 걸면 가능해요.”
“없애 버릴 수는 없는지, 아쉽군.”
요보힐데 공작은 금방이라도 요이델의 이마를 지질 것처럼 말했다.
요이델은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사실은 풀려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요보힐데 공작 부인이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틀리지 않은 말인지, 어떻게 제약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건지, 그것부터가 믿기지 않았다.
‘이 특별한 반려 관계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더더욱 그녀가 라보르비치 사건의 진범이라는 가설에 힘이 실렸다. 이런 짓을 알고, 굳이 실천할 사람은 몇 되지 않기에.
게다가 요보힐데 공작 부인은 사실상 마탑의 주인이다.
“자, 요이델.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왔니?”
식사를 마치고 다가온 요보힐데 공작 부인의 눈이 아름답게 휘어졌다.
“옛적부터 예쁨을 받고 싶어 했잖니, 엄마 아빠에게. 예전의 실수는 이해해. 한창 반항하고 싶은 나이지.”
“그렇지. 우리는 너를 이해한다.”
그들은 요이델을 정말 아끼던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했다. 이상한 사술을 이용해 요이델의 행동을 제약시킨 것만 아니라면.
“자, 이제 말해 주겠니?”
그들은 천천히 요이델에게 다가왔다.
“우리도 너와 척을 지고 싶지 않아. 우리의 유전자로 태어난 소중한 아이인데 어떻게 그래. 다만 그때는 엄마 아빠도 어리고 서툴러서 잘 몰랐을 뿐이야. 용서해 줄 수 있지?”
그녀는 요이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야말로 소름 끼쳤다.
“듣자 하니 고통도 공유하고 마음도 공유할 수 있다던데…… 그럼 기억도 공유할 수 있을까?”
공작 부인은 장갑을 벗고 손을 내밀었다. 마치 노인의 손 같았다. 금술을 많이 행해서 신체 일부에 빠른 노화가 진행된 것이다.
“아뇨.”
탁!
바로 그때 요이델이 요보힐데 공작 부인의 마법을 풀고 그녀를 확 밀쳐 냈다.
예상치도 못한 반격에 공작 부인의 몸이 공작에게로 밀렸다.
“너, 너……!”
격노한 요보힐데 공작이 유리잔을 요이델에게 던진 순간.
퍽!
유리잔이 사람의 살결을 퍽 치고 산산조각 나 카펫에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나 잔에 베이고 맞은 건 요이델이 아니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새빨간 핏방울. 그리고 베인 아픔 따위보다 더 독한 눈빛.
눈빛으로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을 듯 사납고도 아름다운 모습의 남자가 요이델을 내려다봤다.
“아, 쓰리네…….”
자신을 감싼 낯선 남자의 화려한 금발이 흐트러졌다.
“괘, 괜찮으세요? 피가…… 피, 피가……! 제가 치료할 줄 알아요. 기다려 보세요.”
“놀라긴.”
마법을 쓰려는 요이델의 손을 그가 끌어 내려 제재했다.
남자의 얼굴을 본 요보힐데 공작 부부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괜찮아.”
그는 요이델에게서 시선을 떼고 요보힐데 공작 부부를 쳐다봤다.
선혈처럼 맑고 빨간 눈을 가진 남자는 손가락으로 피를 문지르곤 씩 웃었다.
“이래야 깽값을 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