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깽값?’
깜짝 놀랄 만큼 걸걸한 말투였다.
그런데 저게 뭘까. 새빨갛기만 한 눈이 아니었다. 저건 분명…… 보라색?
휘스랑 라이처럼 눈동자 색이 두 개야!
“신기한가 보네.”
자신의 시선을 읽은 남자는 아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정말 눈동자가 그들과 똑같다.
혹시 메디아 출신의 사람일까?
“유리 조각이 혈관을 타고 들어갔나, 아파서 눈물이 찔끔 다 나오잖아.”
금발의 남자는 진심으로 따갑긴 한 듯 빈정거렸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해진 요이델을 본 남자는 그녀를 토닥거리며 느긋하게 말했다.
“도련님.”
그 순간 그와 비슷한 차림의 기사들이 들어와 상황을 본 뒤 요보힐데 공작 부부에게 짧게 묵례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장갑을 벗어 뺨을 문질러 닦았다.
“하인 하나를 쥐 잡듯이 때려잡는 게 이곳에서 인기 있는 쇼인 줄은 몰랐군.”
“……죄송합니다.”
공작의 입에서 사과가 나왔다. 요이델은 믿을 수 없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공작이 수그러든다는 건, 저쪽의 신분이 더 높다는 뜻인데.
“시간이 흘러도 나오지 않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직접 와 보았더니, 공들이 나를 여러모로 실망시킬 모양이야.”
그의 싸늘한 말에 공작은 반론할 듯 입을 달싹이다가 하인들에게 뒤처리를 맡겼다.
“말씀하신 시일보다 앞서 오실 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서두를 일이 생겨서.”
그는 눈을 아름답게 접으며 대답했다.
“뭐, 하인을 앞에 두고 말을 나누는 것도 좋으나, 너무 격의 없지 않은가.”
그는 요이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저 남자는 자신의 후줄근한 모습을 보고 하인으로 오해한 듯했다.
“내 심신이 급히 미약해져서 이곳에 오래 있을 수 있는지 장담하기도 어려워졌고 말이야.”
상처를 보란 듯이 내밀며 말하자 공작의 안색에 큰 그늘이 졌다.
“공의 생각도 같을 것이라 믿어.”
“……너는 이만 들어가 있거라.”
“아니. 감히 내게 유리잔을 얻어맞게 했으니 처분은 이쪽이 내리고 싶은데.”
그는 요이델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얻어맞게 한 게 아니라 그쪽이 대신 맞아 주신 거 아니었나요?’
멍해진 얼굴을 보던 그는 씩 웃고 처분은커녕, 그녀를 보호하듯 자신의 너른 등 뒤에 놓았다.
요이델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왜 여기가 안전할 것 같을까.
처음 본 낯선 타인에게서 이상할 만큼의 안도를 느꼈다.
그는 그런 요이델을 보고 얼굴을 일순간 굳히더니 다시 공작 부부를 차갑게 쳐다봤다.
“설마 하인 하나 따위 내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할 건 아니라고 믿네. 유리 조각이 내 뺨을 파고든 건 사고이지 않은가? 요보힐데 공작의 격노 탓이 아니라, 이 하인의 부주의 탓.”
네 탓으로 할래, 하인 탓으로 무마할까? 라는 뜻으로 협박하자 공작 부부의 목에 핏대가 솟았다.
하지만 입만 달싹일 뿐, 그들은 요이델이 이곳에 있는 상황이 불편한 듯했다.
‘깽값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자진해서 다쳤으나 상대에게 책임을 물려서 배상을 요구하는 것.
자신을 두둔하는 이 이상한 사람의 등이 묘하게 따뜻해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
그 정체 모를 남자의 기사들은 요이델을 그녀가 요청한 국경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공작 부부는 끝까지 자신이 그들의 자식이라고 밝히지 않았다.
‘나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아직도 많이 창피한 존재인가 봐.’
그런데 국경이 왜 이렇게 밝지?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휘스, 라이!”
“어?”
여러 개의 횃불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밤이구나.
울음을 터뜨릴 듯 머리칼을 휘날리며 다가온 그들은 포박당한 누군가를 짐짝처럼 내동댕이쳤다. 소피아였다.
“이럴 줄 알았어! 이런 미친! 델! 브리칼트 놈들 가만 안 둬!”
휘스테론은 이를 악물고 뛰어왔다.
“여긴 어떻게 왔어?”
“그렇게 태평한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 델!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있어? 멀쩡한 거야? 보기엔 멀쩡한데 안은? 혹시 독 먹었어?”
“괜찮으십니까, 신관님!”
미친 듯이 붙잡고 쏘아 대는 휘스테론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야가 어지럽고 앞이 팽팽 도는 것 같았지만, 그 와중에도 걱정 가득한 여러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나 걱정시켰구나.
‘그런데 마음이 두근두근 거려.’
미안함과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 사람들의 따스한 걱정에 몸에 힘이 탁 풀리던 그때.
“요이델 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로브를 입은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안았다.
그는 요이델의 기척을 추적해 국경까지 따라왔다.
“성하께서 여기까지 오시면 어떡해요? 국경을 멋대로 침범했다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가 덜덜 떨며 요이델의 몸을 꽉 끌어안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통이 조였다가 풀려난 사람처럼 절박한 숨이 귓가에 닿았다.
그는 요이델의 목덜미에 얼굴을 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요이델은 알았다. 그가 극도로 긴장한 상태라는 걸.
그의 진심을 느낀 요이델은 똑같이 있는 힘껏 율리시스를 껴안았다.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그래도 품을 조인 힘이 약해지지 않았다. 가득 느껴지는 그의 뜨거운 체온에 요이델의 심장 박동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요이델도 율리시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런데 성하, 저 숨이 약간 막혀서…….”
탁.
그 한마디에 바로 풀려났다. 제대로 마주한 그의 얼굴은 상상 이상으로 처참했다.
싸늘한 분노를 감출 수 없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비칠 듯 눈가가 일그러져 있었다.
생애 처음 느낀 극도의 분노에 자제가 어려운 듯, 그는 요이델의 손을 모아 잡고 입을 맞췄다.
“이렇듯 무사하시니 아무래도 좋습니다.”
반쯤 잠긴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나들이가 길었죠.”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싫은 기억은 떠올리지 마시고 우선 쉬십시오.”
“좋아요, 그럴게요. 그런데 성하, 좋은 소식도 같이 갖고 왔는데 지금 봐 주시면 안 되나요?”
입이 근질근질한 듯 웃은 요이델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파랗게 빛나는 돌.
“짠, 공작 부인의 마정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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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아인으로 추측되는 남자에게 도움을 받은 이후 저택을 나오기 직전, 요이델은 시간을 빌려 잠시 숨어들었다.
‘하인들도 정신없이 움직이는 지금이 적기야.’
어렸을 때도 반쯤 갇혀 살아서 저택 구조를 모두 알지는 않았지만, 그곳이라면 가 본 적이 있었다.
공작 부인의 연구실.
‘시엔델이랑 갔다가 사고가 난 곳이었으니까.’
머리보다 본능이 이끌 듯 저절로 발이 움직였다.
요보힐데 공작 부인의 연구실은 의외로 지상에 있었다. 음습한 지하 동굴 따위는 질색하는 그녀의 취향 때문이었다.
‘이거야.’
온실 안에 있는 나무 화분을 옆으로 돌리면 연구실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침입자가 들어왔단 걸 단번에 눈치채겠지.
요이델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바로 이 돌.
‘역시 마정석이 맞았어. 온실 안의 수석들 전부 그래!’
요보힐데 공작 부인은 과시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온실 내부에 장식용 수석 대신 자신의 마력을 응축한 마정석을 가득 채워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요이델은 그것들을 빼앗아 왔다.
“그런데 친우님, 보통 마정석은 본인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을 텐데. 에너지 응축원이라 큰 쓸모는 없어.”
“응, 맞아.”
연구원들의 희망찬 얼굴이 순간 주춤했다. 하지만 방법이 있지.
“그러니까 부탁드려요, 성하.”
요이델은 당당하게 율리시스의 손에 마정석을 쥐여 주었다.
“원래의 주인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정석이어도 사용할 수 있게 깰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힘을 꺼내면 될 것 같아요.”
“금술을 역으로 쓰려는 거군요!”
옆에서 흥미롭게 보던 올가가 답을 내놓았다.
“맞아요. 브리칼트에서 행한 금술 마법사의 시전자가 공작 부인이 맞다면, 분명히 반응할 거예요. 그리고 여기…….”
요이델은 연구 마법사 중 한 명을 끌어왔다. 그 얼굴을 본 율리시스의 표정이 순간 미묘해졌다.
“진짜 아키스는 마르셀리나 님과 비슷한 분야에 능통한 마법사거든요. 조금의 힌트만 있으면 신원을 분석해 줄 수 있을 거예요.”
“도, 콜록,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 좋아요, 신관님.”
아카코스의 여동생인 아키스는 놀랄 만큼 그와 똑같이 생겼다. 부끄러움 많은 편이라 성격은 아주 달랐지만.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부탁대로 마정석을 부숴 주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금술을 역으로 돌리는 건 좋은 생각이나, 그만큼 커다란 힘이 소모됩니다.”
“생체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이면 돼요.”
“역으로 거스르는 힘은 쉽지 않을 겁니다.”
미약하더라도 금술을 반대로 돌린다는 건, 사실상 금술을 쓰는 거나 다름없었다.
금술이 금술이라 불리는 이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신의 권능에 준하는 마법이기 때문에.
“성하, 제 체력이 다 떨어지면 힘을 채워 주셔야 해요. 알았죠?”
“솔직한 마음으로는 처음부터 말리고 싶습니다.”
“저는 성하가 있어서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율리시스는 입을 가리고 한숨을 깊이 쉬었다. 어느샌가 요이델이 자신을 다루는 법을 알아 버린 것 같다.
곤란하다. 이러다 아무것도 말리지 못하게 되면 어쩌려고.
“알겠습니다.”
“그럼, 할게요!”
준비를 끝낸 마법진에 요이델이 힘을 불어넣자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하아, 휴우…….”
“돌아왔어! 마, 맙소사. 머리카락이 생겨났다고. 이제 생체를 분석할 수 있어!”
금술은 창조와 한 끗 차이였다.
모두 신원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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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르비치인이 가장 많고, 합병된 모소코 왕국이 그다음, 리얀 소왕국 그리고 과카사 왕국, 소수 부족인도 꽤 있어.”
“그런데 왜 가까이서 말해요?”
“하하.”
왕궁 응접실 안.
세례를 받고 나온 아카코스가 요이델에게 은밀하게 속삭였다.
한숨 쉬며 왕관을 벗은 그는 어딘지 만신창이가 된 듯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궁금할까 봐 말해 봤어, 친우님. 내가 이렇게 친절해. 그런데 친우님은 나를 배신해서 참 슬퍼.”
“폐하? 무슨 말씀이세요?”
“뭐긴, 내가 세례를 요청한 건 친우님인데 미치도록 영광스러운 성황 성하에게 세례를 받아 버렸잖아.”
모두의 앞에서 공식적으로 요이델 대신 자신이 아카코스에게 세례를 내려 주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사실상 무한한 영광이었으니 거절할 명분이 없다.
결국 아카코스는 자칭 참담한 꼴이 되었다.
“더럽게 신나 죽겠네…….”
“하지만 성하께서 정식 세례식 외에 개인적으로 세례를 내려 주신 건 저 외에 폐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기운 내요.”
“그거 더 기운 빠지네……. 자기 여자의 손길이 닿는 걸 방지하자고 나한테 그렇게까지 해 줬다는 거잖아. 지독하다 지독해……. 치댈 틈을 조금도 안 주네.”
아카코스는 요이델을 안타깝게 바라보다가 매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그래도 역시 친우님이랑 결혼하고 싶어. 나 쓰레기야.”
“농담하지 마세요.”
“하지만 잘 봐. 이렇게 절박할 때마다 나를 도와주는데, 어떻게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않고 배겨?”
“폐하를 위해서는 아닌걸요.”
“아, 너무해.”
요이델은 단호하게 그의 이마를 쭉 밀어냈다.
결국 시전자는 공작 부인이 맞았다. 그런데 영혼 마법 같은 금술을 어디에…….
자신의 기억 속 또래의 아이는 시엔델 외에 없었다. 하인들도 그랬다.
분명히 빼앗아 온 거겠지. 수장의 가족을. 그런데 어디에 담아 놨을까.
메디아가 찾고 있는 수장의 가족이 설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