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며칠 전 산책 때 들었는데요, 올가 님께서 이곳에 와 보신 적이 있는 것 같대요.”
요이델과 율리시스는 여전히 방안을 찾아 의논했다.
“많이 친해지셨군요.”
“헤헷, 그런데 사실…… 생각을 해 봤거든요. 혹시 제물로 희생되실 뻔했던 게 아닐까 하고요.”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풍경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드신다는데, 라보르비치 궁은 아니고 좀 더 멀리였어요. 저쪽 구덩이가 있던 경계쯤이요.”
율리시스는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지도를 보여 줬다.
“그 근방은 국경 지역이고 꽤 많은 나라와 맞닿아 있습니다. 대부분 브리칼트의 우방국들입니다.”
“그럼 올가 님께서 꼭 이곳의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는 거네요?”
“큰 의미가 있는 땅은 아니지만, 그 근방에서 삼 대륙 회의가 열린 적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관련자일 수 있을 겁니다. 말투나 사소한 습관이 잘 교육된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뭔가 증거를 찾은 줄 알았는데. 요이델은 골머리를 앓으며 율리시스를 바라보다…… 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얼굴이 너무 가깝잖아.
“저, 성하 급한 일이 생각나서 먼저 가 볼게요!”
쾅, 문을 닫고 들어온 요이델은 침대 위로 몸을 날렸다.
요즘 들어서 그의 옆에 있으면 예전보다 더 긴장이 되고 괜히 떨렸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요이델은 다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속이 쿵쿵 뛰고 입맛도 없다.
요이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무리 뺨을 만져도 열이 식지 않았다.
그녀는 메모장을 펼치고 자신의 감정을 적었다. 시험을 준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냥 생각만 해서는 정리가 잘되지 않아서, 수기로 적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요이델은 차근차근 자신의 마음과 외부 상태를 정리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뭔가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거랬어.’
시종들이 그렇게 말해 줬다. 그런데 적고 보니 이상했다. 성하가 귀엽게 생겼나?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잘 생각해 보니까 귀여운 면이 많아. 엄청 다정하고, 상냥해. 취할 때도 귀여웠고 어릴 때도 그랬고, 평소에도 그래.
‘심장이 이상해서가 아니야.’
이전부터 이상했던 심장,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 연인의 날 이후부터, 요이델은 이상하게 뛰는 심장을 느꼈다. 그때는 단순히 이상 징후라고 생각했다.
어디가 아프다거나 초조하다든가.
하지만 이제 알겠다. 이건 이상한 감각이 아니야.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표정으로 인사할까, 어떤 상태가 더 눈에 띄어 보일까 고민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를 만나러 가는 일이 매일매일 두근거렸다. 얼굴을 직접 마주하면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다.
‘이건 설렘이야.’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어떡해! 인식하자 비명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하는 거였어.’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휘스테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델? 어디 아파?”
“휘스…… 있잖아, 성하가 귀엽게 생긴 편이야?”
“하하, 뭐야, 델. 시력 테스트야?”
휘스테론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대단하게 생겼지만 귀여운 거랑은 결이 너무 다르다, 델. 그건 진짜 아니야. 웬만해선 동의하겠는데 귀여운 건 보통…… 너, 설마.”
휘스테론은 히죽 웃었다.
“심각해졌구나, 델.”
“휘스는 알고 있었어?”
“사실 둘이 반려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그렇게 좋아하나? 의아했거든. 우리 추측은 다 틀린 것 같고. 근데 요즘의 둘을 보면…… 크흡.”
휘스테론은 감동받아 우는 척 과장했다.
“좋아서 미치겠지? 어서 만나러 가. 나랑 시간 낭비하지 말고. 성하는 그 쩍 벌려 앉는 왕이랑 같이 있어.”
“고마워, 휘스!”
“둘이 잘 좀 지내. 성하랑 델 사이 틀어지면, 어으, 그 친절한 얼굴에 찬바람이 쌩쌩 불어서…… 나 극기 훈련 보낸 거 성하야.”
“왜?”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하일 할아범이 성하에게 꽃잎 점을 알려 줬대. 내가 그 점을 망쳤나 봐. 하여튼…… 사랑싸움은 조금만 해 줘. 부탁해.”
민망한 듯 웃은 요이델은 로브를 손에 걸쳐 들고 문을 열었다.
“따라가면 실례겠지?”
능청스러운 질문에 요이델의 시선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응. 미안해.”
“좋아, 델. 어서 가.”
“다녀올게!”
탁. 문이 닫히고 휘스테론은 피식 웃으며 눈을 감고 턱을 괴었다.
“델은 돌진하는 타입이구나.”
고집도 실행력도 소 떼 같은 게 수장님이랑 닮았다. 휘스테론의 마음속에는 이미 확신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그건 그거대로 문제인데?’
훈훈한 미소를 짓던 휘스테론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차기 수장과 성하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아니, 그 수장님들과…….
아무래도 휴가를 쓰거나 먼 나라로 도망쳐 있다가 나오는 게 좋겠다.
━━━━⊱⋆⊰━━━━
요이델은 빠른 걸음으로 궁을 걸었다.
“신관님!”
“꺄아악!”
“아이고,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아! 그때 그!”
요이델을 불러 세운 사람은 라보르비치의 연구원 소피아였다.
백골의 신원을 찾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그 사람.
“저, 소피아 님. 급히 가던 곳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아…… 그러셨군요, 급하시다면 가야죠.”
그러자 소피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 있나요?”
“사실은 백골이 된 시체들에 대해 좀 알아보다가, 구덩이에서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알리긴 좀 뭐해서 요이델 신관님을 찾아오게 됐습니다.”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모습에 괜한 동정심이 들었다.
“그럼 말씀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정말입니까?”
눈에 띄게 반색한 그녀는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급하게 가던 곳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시간을 빼앗아도 괜찮으실지…….”
“그럼 죄송하지만 다음에 얘기해도 될까요?”
“저에게는 중요한 일이지만…….”
성하도 다른 사람들과 회담 중일 테니까. 어차피 지금 가도 기다리는 건 똑같을 거다.
고민하던 요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시간일 거예요. 오래는 얘기하기 어려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곳으로.”
소피아는 요이델을 이끌고 그녀의 개인 연구실로 데려왔다. 왕궁 내에서도 본궁과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요이델이 신기함에 주위를 바라보던 그때, 정원의 한구석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저 꽃들의 이름은 뭔가요?”
“그건 카타차라는 풀인데 라보르비치의 자생 식물은 아니지만, 여기서 잘 자라는 꽃입니다.”
“아, 그럼 원산지는 다른 대륙인가 봐요.”
“메디아라는 곳인데, 라보르비치와 기후가 비슷합니다.”
“아하…….”
어쩐지 시선이 한 번 더 가는 꽃이었다.
이유 모를 기시감을 느끼던 그때, 불현듯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금술과 브리칼트, 그리고 거대한 희생을 치른 마법.’
그때 마르셀리나 님과 대화할 때 뭐라고 했었지?
‘큰 마법일수록 커다란 제물이 필요하지요. 그중 가장 순도 높고 성공률이 높은 제물은 산 제물. 즉, 살아 있는 사람이랍니다.’
그리고 가장 고난이도인 궁극 마법은 사람의 생명, 영혼을 다루는 것이다. 브리칼트는 왜 그런 마법을 썼을까?
메디아가 잃어버린 건 수장의 가족, 그리고 성하는 수장에게 어린 딸이 있다고 했어. 휘스와 라이가 밖에 나와 있는 것도…… 그래서겠지.
지오르베니가 성수를 착취한 것도 궁극 마법을 쓰기 위해서임이 분명하다.
브리칼트는, 즉 마탑의 수장인 요보힐데 공작 부인은 메디아 수장의 딸에게 그 마법을 쓴 것이다.
‘아직도 찾지 못한 건 수장의 딸의 영혼이 다른 몸에 들어가 있기 때문일 거야.’
요이델의 어릴 적 기억 속 공작 부인은 이상한 마법들을 많이 연구했었다.
그런데 자신과 시엔델 외의 자식은 없었다.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도 없는데, 그렇다면 그 마법은 어떻게 된 걸까?
실패? 그래서 금술 마법 자체를 묻어 버리려고 했던 걸까?
요이델의 몸이 혼란에 굳어 버렸다.
아니면, 설마…….
“무슨 일이십니까, 요이델 신관님?”
“…….”
“꼭 큰일이라도 생긴 듯한 표정인데 뭔가…… 생각나는 게 있습니까?”
그때 소피아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엄청난 사실을 깨달아서일까.
그녀의 목소리가 괜히 소름 끼치게 들렸다.
“자, 잠시만요. 저 급히 가 볼 곳이 있어서요.”
탁!
본능적인 소름에 요이델은 그녀를 밀치고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소피아는 위협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이 들려 있었다.
“아…… 죄송해요.”
“아녜요, 다치면 안 되니까 가만히 계세요.”
그냥 차였잖아. 과민해져서 별걸 다 이상하게 느낀 듯했다. 요이델은 친절하게 이해해 주는 소피아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정말…… 가만히 계시래도요.”
텁.
바로 그때 소피아가 등 뒤에서 요이델의 코와 입을 막았다.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켠 순간, 요이델의 팔다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소피아는 골치 아프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에게서 피가 나면 안 돼요. 이러다 성황이 오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요, 아가씨.”
그녀는 실눈을 소름 끼치게 휘며 요이델을 조심조심 안아 들었다. 주위의 흔적은 물론, 찻잔까지 말끔히 소각했다.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이제 착한 아이는 집으로 돌아갈까요?”
짐들 사이에 요이델을 안전하게 태운 소피아는 마법을 쓰지 않고 유유자적하되 빠르게 왕궁을 나섰다.
생긋 웃은 소피아는 브리칼트와 라보르비치의 경계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달라진 로브에는 브리칼트 마탑의 문양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부모님이 기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