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카터 남작 저택 침실 안, 금발을 늘어뜨린 녹색 눈의 여자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일어났어? 클렘.”
새빨간 머리의 남자는 쟁반을 가져와 자신의 무릎에 놓고 팬케이크를 갈랐다.
버터나이프로 고소한 버터를 으깬 그는 따끈따끈한 빵에 버터를 얇게 발라 여자의 입에 넣어 주며 행복한 듯 웃었다.
모든 게 아주 익숙한 절차였다.
“그런데, 클렘.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만나야 해?”
“이렇게?”
여자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자 남자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렇게가 어떤 뜻의 ‘이렇게’일까?”
“……클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뭘 바라길래 되지도 않는 말을 하는 거지?”
“하지만 이전에는 네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해서…….”
“그러니까!”
쨍그랑!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팔을 홱 뿌리쳐 쟁반을 엎었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때도 가만히 있었으면 지금도 입 다물고 얌전히 있어야지. 가뜩이나 신경질 나 죽겠는데 너까지 왜 그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오, 오늘은 늦게까지 있겠다고 약속했잖아.”
“내가 널 어떻게 믿고 여기 있지? 네 태도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클렘! 가지 마!”
“클레멘타인 요보힐데 공작 부인!”
분노가 방 안을 울렸다.
그녀의 긴 손톱이 프란츠 카터의 이마에 툭 얹어졌다. 그 가벼운 제재에 프란츠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공작 부인이라고 해야지, 카터 남작.”
클레멘타인은 프란츠 카터의 외모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프란츠 카터를 닮길 바라진 않았다. 나의 아이. 똑똑하고 명석하고 완벽해야 마땅할 아이.
클레멘타인은 그의 새빨간 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프란츠가 마탑에서 실권을 차지한 것은 모두 클레멘타인이 손을 쓴 덕이었다.
클레멘타인은 그의 셔츠 깃을 내려 주며 아슬아슬하게 웃었다.
“지금까지처럼 행복하게 지내면 서로 좋잖아.”
그녀의 시선이 날카롭게 올라갔다.
“얌전하게. 응?”
“…….”
“그렇지, 카터 남작.”
시간을 확인한 클레멘타인은 그가 남긴 모든 흔적을 없앴다.
“잠깐만, 클렘.”
“……용건만 간단히 말해.”
“이제 아이에 대해 말해 줘.”
그의 말에 그녀가 동요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프란츠는 절절하게 외쳤다.
“빨간 머리였다고 했잖아. 지난 수십 년간 생각했어. 나를 마구 대하는 건 괜찮아. 그런데 우리 아이한테는? 잘 살고 있다고 했잖아. 의심해서 미안한데 이상한 얘기를 들었어. 네, 네가…… 나를 속일 리가 없는데.”
“무슨 아이?”
“네가 나를 원망했던 것도 빨간 머리여서였잖아. 멍, 멍청할까 봐 무섭다고.”
그 말에 클레멘타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 보았다.
“금발도 자라고 나면 탁한 갈색 머리가 되기도 하는 법이야. 지금 그 애의 머리카락은 다행히도 빨강이 아니지. 네 그 허우적거리는 말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을 겪었는지 알고 하는 말이니?”
“하, 하지만……!”
“공작가의 자제야.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란 거지.”
“거짓말!”
남자는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공작의 아이가 아니잖아. 우리 아이잖아, 클렘.”
그 순간 클레멘타인의 무감정한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내가 너랑 묶이기라도 하는 듯 구네. 프란츠, 너는 내 흉이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내 열띤 과거의 흔적으로서 너를 아끼고 사랑해. 하지만 흉을 드러내고 다니길 선호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녀의 눈길은 얼음보다도 차가웠다.
“그러니까 프란츠, 너를 가릴 많은 것들을 해 줬잖아. 그렇다면 얌전히 있어야지.”
“하지만 클렘, 내 말 좀 들어 줘. 나는 이제…….”
“그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프란츠 카터의 입을 막아 버렸다.
“네가 보채지 않아도 충분히 피곤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거지같이 굴지?”
“……클렘, 나를 사랑하긴 했어?”
“사랑?”
클레멘타인은 프란츠 카터를 사랑했다. 그러나 전부를 사랑하진 않았다.
동시에 요보힐데 공작도 사랑한다. 그러나 역시 공작의 모든 걸 사랑하지는 않았다.
둘 모두에게 괜찮은 게 있으니 각각 취한다. 그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당연히 사랑해.”
기분이 한결 누그러진 클레멘타인은 그의 뺨에 가볍게 입 맞췄다.
“또 봐.”
“……다음 주에는 만나지 못할 거야.”
“그래?”
그녀의 되물음에 프란츠 카터는 시선을 돌렸다.
“왜냐하면…….”
“그렇군, 알았어.”
“…….”
“미리 말해 줘서 좋네. 시간 낭비할 일은 없겠어. 마침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거든.”
“저, 클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부르자 클레멘타인은 짜증 가득한 안색을 드러냈다.
“……아니야.”
클레멘타인 요보힐데가 떠난 남작 저택. 홀로 있던 프란츠 카터는 힘없이 몸을 벽에 기댔다.
“쿨럭.”
머리칼만큼이나 새빨간 피가 역류했다.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을 줘 벽을 밀었다.
드르륵. 벽 뒤에는 숨겨진 서랍장이 있었다.
클렘의 변화를 느낀 건 오래되었다. 그녀는 이제 완벽한 클레멘타인 요보힐데였다. 그리고 얼마 전 그를 찾아온 묘한 남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프란츠는 어린 시절의 두 사람이 같이 담긴 초상화를 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많은 게 변했다. 그녀도, 그도.
그는 슬프고도 덤덤한 눈으로 수많은 녹음용 마도구를 확인했다.
“나는 네 말대로 멍청해, 클렘.”
그러니까 미움받을 짓 한 번은 용서해 줘.
━━━━⊱⋆⊰━━━━
라보르비치 왕궁 내 연구실은 많은 마법사들과 요이델을 비롯한 신관들로 북적였다.
마법사 중 하나가 요이델에게 물었다.
“신관님, 이건 세례 마법을 이용하면 된다고 하셨죠?”
“맞아요. 세례를 받은 백골이 있는지, 그들이 살아 있을 때 누구에게서 세례를 받았는지 찾아서 분류하는 게 우선이에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까요?”
그게 문제였다. 일단 1차 분류는 할 수 있지만 한 명의 세례 신관이 많은 사람을 맡다 보니, 그 안에서 또 추려야 할 텐데…….
절반가량을 분류했지만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많아서, 아직도 절반의 백골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마법의 시전자를 알면 좀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들었어요. 희생된 제물들은 자신을 희생시킨 사람에게는 반응한다더라고요.”
그때 왕국의 연구 마법사인 소피아가 요이델에게 말했다.
요이델은 그 말을 흥미롭게 들었다. 올가조차 모르던 사실인데, 똑똑한 사람이 많구나.
그런데 그 반응을 어떻게 불러올 수 있는 거지? 만일 요보힐데 공작 부인의 주도가 확실하다면. 내 피 같은 걸로 알아볼 수 있는 걸까?
그런데 친자 검사 결과는 언제 나오는 거지?
방으로 돌아온 요이델은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친자식이 맞다면 마법의 시전자를 당장 확인 가능할지도 몰라. 피가 섞였으니까. 하지만 친자가 아니라면 확인은 불가능하겠지.
“많이 고되어 보이시는군요.”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율리시스가 침대에 앉아 있던 요이델의 손을 잡고 힘을 나눠 주었다. 시원한 기분이 금세 몸을 채웠다.
“성하? 일은 다 끝나셨어요?”
“음…….”
그 말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잠깐 들렀다는 말이 된다. 미소로 무마하려는 그를 본 요이델은 다시 쿵쿵 뛰는 심장을 느꼈다.
‘내 심장 정말 이상해.’
“으앗.”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보다 이 손 좀…… 너무 덥네요!”
그와 시선이 딱 마주치자 괴상한 비명이 저절로 나왔다. 요이델은 고개를 홱 돌리고 손을 뿌리쳤다.
아니, 뿌리쳤지만 율리시스가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어딘지 불만스러운 마음을 묵묵히 참는 듯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성하? 소, 손 좀 놔주세요. 더워요.”
“요즘 왜 그러십니까.”
“제, 제가 뭘요?”
“아프신 것처럼 떨고, 희게 질리고, 또 빨개지고. 이렇게 열이 나는데 기운을 나눠 드리는 것조차 하지 말라 하시면…….”
문득 의아한 듯 말끝을 흐린 그가 요이델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빤히 봤다. 어딘지 울먹울먹한 얼굴이 이상한데.
“저를 의식하십니까?”
“……네?”
한껏 빨개진 요이델이 그를 쳐다보자 오히려 율리시스가 굳어 버렸다.
“맞군요.”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찌푸려졌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손등에 입 맞추며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더 많이 생각해 주십시오.”
“성하, 그 손 좀…….”
“원래 기회는 왔을 때 밀어붙여야 하는 법입니다.”
“…….”
“농담입니다.”
그는 그녀의 손으로 제 뺨을 감싸듯 쓸고 이만 놓아 주었다. 더 했다가는 역효과만 날지도 모르니.
평생의 반려이니 천천히 완벽하게 포용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주위의 여러 해충 때문에 판단이 흐려졌다. 이전의 그로서는 믿지 못했을 변화였다.
율리시스는 곤란한 표정의 요이델을 보며 다정한 미소로 안심시켰다.
그리고 줄곧 생각했던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녀의 추측대로 수장이 잃어버린 게 사람이라면, 가능성은 하나였다. 수장의 딸.
그러나 브리칼트의 황제가 고작 공작 부부의 소원 하나 들어주기 위해 금술을 허락하는 위험을 감수할 인간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므로.
그는 의심하지 않았던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마지막 삼 대륙 회의 당시, 공작 부인이 정말 임신 중이었던 것은 맞는가.’
━━━━⊱⋆⊰━━━━
“……하여 브리칼트의 입지가 점차 줄고 소왕국이 커지며 제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등, 지상 대륙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성국의 학술원도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고, 세례식에서 문제를 일으키려던 최근의 계획도 실패한 듯하여 심한 망신을 당한 후 황제의 열이 단단히 올랐다는 소식입니다.”
“그래?”
메디아의 중심부, 그 아름다운 성에 20대로 보이는 화려한 외모의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성을 장식한 모든 것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창밖의 폭포도, 시계도, 강박이라 칭할 만큼 모든 것들이 생동감 넘치는 것투성이였다. 정지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브리칼트 측에서 메디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는 듯합니다. 답신은 당연히 거절로 작성해 놓았습니다.”
“…….”
“저, 도련님.”
호위가 그를 불렀으나 남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수를 수놓은 걸 왜 보냈나 했더니…….’
휘스테론이 보내온 손수건. 그에 묻은 힘의 분석이 끝났다.
우드득, 그는 작은 손수건을 찢을 듯 꽉 쥐어 잡았다가 찢어질세라 놀라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펼쳤다.
‘그 애가 맞다면.’
까드득, 저도 모르게 이를 세게 갈았다.
그동안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던 적은 많았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였고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어떤 기대와 절망을 했는지 익히 안다. 그리고 자신도.
“제 말은 들으셨습니까? 브리칼트 측에서 혹시 만나 뵐 수 있겠냐 물음을 전해 왔는데…… 거절할까요?”
“아니.”
이번엔 알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 동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니.
마침 올가도 지상 대륙에 있다고 했지. 쌍둥이들도 그곳에 있다. 어쩌면 그들이 찾은 힘의 주인도.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붉은 눈이 기대로 번뜩였다.
“이번엔 내가 직접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