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이미 엎드려 쓰러진 아카코스와, 무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율리시스.
“요이델 님.”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발견하자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배시시 웃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요이델의 허리를 껴안고 칭얼거렸다.
성하가 왜 이러지? 성하 맞아? 빙의된 거 아니야?
얼굴이 새빨개진 요이델은 어쩔 줄 모르고 어정쩡하게 팔을 벌렸다. 잠깐, 이건 알콜 냄새잖아?
테이블에 병들이 굴러다니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중간에 치운 것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하겠지.
정말 정신력으로 여기까지 버텼구나. 요이델은 그의 의지에 감탄…… 하지 않았다. 미쳤어.
“성하, 술을 얼마나 드신 거예요?”
“아주 조금…….”
조금일 리가 없지. 당황한 요이델은 일단 주위부터 수습했다.
“성하는 저희가 데려다드릴게요. 폐하만 데리고 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라보르비치 측이 아카코스를 데려가고, 성국 측 기사들은 잠시 만찬장에서 내보냈다. 율리시스는 어느새 얼굴을 식탁에 옆으로 누이고 자고 있었다.
‘정말 아카코스를 이길 때까지만 버틴 거구나.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 거지? 뭔가 심기를 건드릴 만한 게 있었던 걸까?’
요이델은 그의 체면을 생각해 깨우려다가 알아서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깨어날 줄 모르고 오히려 편한 듯 쌔근쌔근 더 깊은 잠에 빠졌다. 원래도 천사같이 생겼지만 조용하니까 정말 요정 같네. 요이델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이상하네, 성하가 왜 오늘따라 귀여워 보일까? 내 눈이 이상해졌나 봐.
‘이 얼굴을 보니까 왠지…….’
정말 하면 안 되겠지만.
술 취해서 몸을 못 가누는 사람에게 이런 장난을 치면 안 되겠지만.
‘양 갈래!’
요이델은 그의 은발을 쥐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신경을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늘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카락이 예뻐서 꼭 한번 만져 보고 싶었다. 당연히 거절할 테니까 욕심내지 않았는데, 이번 딱 한 번만. 이런 기회니까!
그런데 너무 잘 어울리는 거 아니야? 양 갈래를 한 성하는 꼭 꼬리가 두 개인 새침한 은색 여우 같았다.
‘우와, 어떡해! 진짜 재밌어.’
엉킨 곳 하나 없이 좋은 향기마저 폴폴 풍겼다. 하지만 들키면 화내겠…….
“……어.”
“…….”
“깨, 깨셨어요?”
어느 순간 깨어난 율리시스가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머리카락에 벌레가 붙어서, 어, 양쪽에 붙어서요! 그래서 잡아 드리려고……. 네, 맞아요. 변명이에요.”
엎드려 있던 율리시스는 새초롬하게 시선만 위로 들었다.
“즐거우셨습니까.”
“네? 아, 아뇨. 절대 재미있어서 머리카락으로 양 갈래를 만든 건 아니에요!”
“재미있었군요.”
“……네.”
“그럼 됐습니다.”
그는 어지러운 듯 한숨을 쉬고 요이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기분 좋습니다.”
“……성하? 아직 덜 깨셨어요?”
졸린 듯 목소리가 낮게 잠겼고 말투도 평소보다 느릿했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분홍빛이 된 뺨에 푸스스 웃는 모습까지 더해져 오늘의 성하는 정말 낯설었다.
“대체 왜 이렇게 드신 거예요?”
“라보르비치의 국왕이 헛소리를 하더군요.”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그녀의 손을 끌어 자신의 뺨에 얹어 놓았다.
“방금 전 그 말은, 제 편을 좀 들어달라고 일러바친 겁니다.”
“아카코스는 원래 이상한 말을 많이 해요.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카코스라…….”
율리시스는 뾰로통하게 요이델의 팔목을 슬슬 쓰다듬었다. 성하는 취하면 투정이 많아지는구나.
“그자는 분에 넘치게 이름으로 불리고, 저는 그냥 성하군요.”
“율리시스 님!”
요이델은 바로 고쳐 부르며 그를 달랬다. 제 부탁을 다 들어주며 방긋 웃는 요이델을 보자, 율리시스는 더 이상 아무 투정도 할 수 없었다.
“피곤해 보이시니까 오늘은 이름으로 불러 드릴게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못 하겠지만요.”
“…….”
“내일 일어나셔서 엄청 쑥스러워하실지도 모르는데, 어떡하죠? 일단 저는 모른 척해 드릴게요.”
요이델은 진심으로 그의 미래를 걱정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될 텐데.
“율리시스 님, 앞으로 모든 술은 제가 대신 마셔 드릴게요! 어디 가서 절대 취하시면 안 돼요!”
쾅. 탁자를 친 요이델이 심각한 얼굴로 선언했다. 그러나 그녀를 본 율리시스의 표정이 어딘지 미심쩍어졌다.
“왜 그러세요?”
“저를 위하여 대신 마셔 주겠다 하시는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뱉는 포부 가득한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 파악 중입니다. 전자이기를 바라나, 후자 같기에.”
“당연히 율리시스 님을 위해서죠!”
“음…….”
“정말이에요! 전 술 그렇게 안…… 좋아해요!”
“입맛을 다셔 놓고 잘도 아니시라고. 이전 연회에서도 한도 이상으로 드셔서 주정하지 않으셨습니까.”
요이델은 소매로 슥 입가를 훔쳤다. 들켰나? 아니, 아니, 진짜 아닌데.
“아, 안 다셨어요! 율리시스 님은 체통을 지키셔야 하고 저는 잘 안 취하는 체질이니까 얼마든지 대신해 드릴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저희 이제, 대신 마셔 줘도 이상하지 않을 사…….”
“사?”
“사이 아닐까요? 공식적으로는요.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세요!”
얼굴이 벌게지며 당차게 외친 요이델은 아주 어색하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풋.”
그때 가만히 있던 율리시스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는 얼굴로.
“어, 웃으시네요? 저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저 또한 농이나 치지 않습니다.”
단둘이 남았을 때, 아카코스는 율리시스를 끊임없이 도발했다.
이전 대원로의 종손처럼 거슬리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아카코스와 카렐로는 상황이 다르다. 카렐로를 해하면 요이델이 슬퍼할 수 있으니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으나, 아카코스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어느 쪽이든 건드렸단 것 자체로 미움받겠지.
요이델이 싫어할 일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속이 뒤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얘기를 듣는다면.
‘저도 너무 경계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성하. 반려님께서도 친우로서의 저는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건 여자일 때의 아카코스를 칭한 거였지만 그 사실은 쏙 뺐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그 말에 시선을 서늘히 굳혔다.
‘왜 그러십니까, 성하. 반려 관계이신 분한테 제대로 좋아한다는 이야기 한 번 들으신 적 없는 것처럼.’
없다.
술기운을 빌려 할 말 못 할 말 다 해 버린 아카코스는 먼저 뻗어 버렸다. 남은 율리시스는 그 말을 되뇌었다.
율리시스는 아쉬운 마음에 요이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렇다고 지금 자신을 좋아하냐 아니냐 물을 수도 없다. 그의 고백에 당황한 요이델을 일단 보내 준 것도 자신이었다.
‘오늘의 태도를 보면 역시 유약한 쪽을 좋아하나.’
술에서 깨어난 지는 사실 꽤 되었다. 요이델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순간, 모든 감각이 뚜렷해졌으므로.
그렇다고 술기운에 응석 부린 자신의 꼴을 후회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어떠한가. 좋아하는 여자가 자신을 아껴 주는데. 어떤 방식이든 기껍지 않을 리가 있나.
“율리시스 님? 피곤하시면 이만 방에 데려다드릴까요?”
역시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그러나 요이델은 눈을 가물가물 뜬 율리시스를 보며 걱정만 했다. 이만 들여보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쩌지?
또다, 심장이 또 쿵쿵 뛰어. 이건 아무래도 두근거림 같아. 이상하고 싫은 게 아니야. 나는 설마…….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곁에서 떼어 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술에 취한 사람한테 왜 두근두근하는 거야? 몸도 못 가누는 연약한 사람인데. 정신 차려, 요이델. 그건 실례야.
그보다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온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뭐였지? 뭐더라, 뭐…….
“율리시스 님! 저, 사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일 얘기입니까.”
“네!”
율리시스는 잠시 이게 어떻게 되어 가는 건가, 자신의 말을 들어 준 건 맞나 싶어 시름에 빠졌다가 엎드린 몸을 일으켰다.
혹시 요이델의 눈에는 자신이 갯지렁이라든가 미생물로 보이는 게 아닐까.
자랑한 적은 없지만 율리시스도 본인의 외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름의 유혹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상한 양 갈래나 당하고.
열심히 사는 요이델도 좋아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이상했다.
‘이 또한 미래를 위한 초석이겠지.’
율리시스는 좋을 대로 해석하는 데 통달했다. 그는 씁쓸함을 감추고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말씀하십시오.”
“혹시 올가 님을 불러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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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는 흔쾌히 요청에 응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는데.’
올가는 자신을 향해 방긋 미소 짓는 얼굴에 흐린 기억을 대입해 보았다. 왜 익숙한 느낌일까.
“올가 님, 피곤하세요?”
“아니요, 날이 따뜻해서 졸았군요. 그보다 이 금술 마법은…….”
“역시 아시나요?”
요이델은 반짝반짝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런 건 아니지만, 힘이 꽤나 강력해 보여서 놀랍네요.”
“그렇군요…….”
“실망시켜서 미안해요, 요이델 신관님. 외부에 도움을 청해 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아녜요! 멀리 와 주신 것만으로도 기뻐요. 피곤하실 테니까 가서 쉬세요.”
방으로 돌아온 올가는 고민했다.
아까는 말하지 못했지만, 올가는 그 마법을 언뜻 본 적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펜을 들었다.
[도련님께.]메디아에 있을 적 방대한 마법 도서관에서 봤다. 그리고 수장님들의 방에서.
[……한 마법에 대해서예요. 혹시 알고 계신다면 답을 주시길 바라요. 짜증 내지 마시고 최대한 빨리요. 전에 관심을 보이셨던 라보르비치 금술 사건에 관한 거예요.]올가는 잠시 고민하다가 뒷이야기를 마저 적었다.
[그런데 왜 이 땅에서 익숙함을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과거 라보르비치에 살았던 사람인 걸까요?]올가는 도착하자마자 과거 시체를 묻은 구덩이가 있던 땅으로 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어딘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왕궁이나 다른 곳은 그렇지 않은데, 그곳만 그런 이유가 뭘까…….’
자신이 기억을 잃은 이유는 마법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충격에 의해서라고 진단받은 적이 있다.
그 와중에도 생각나는 그 얼굴.
‘아가씨.’
아가씨? 올가는 순간 머리를 스친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무슨 기억이지?
아가씨, 하고 부르던 자신의 목소리. 그리고…….
‘유모.’
아가씨의 빨간 눈과 머리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