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신관님, 보셨어요? 메디아의 차기 수장님이요! 얼굴이 진짜 미쳤어요!”
“휘르무트 님?”
“꺄악! 이름이 그러시구나. 어쩜!”
머리를 빗겨 주던 어린 시종들이 까르륵대며 얼굴을 붉혔다.
“어허, 로아. 경거망동은 금물이란다.”
“하지만 시종장님, 대신전에서는 다들 그 얘기뿐이라고요. 신관님께서는 대화해 보셨어요? 어때요? 성격은요?”
시종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돌아온 게 실감 났다.
친자든 아니든 상관없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니까. 요이델은 그들을 보며 즐겁게 웃었다.
“아이고…… 이 짐들을 정리하는 데만 일주일은 걸리겠군요. 오호호.”
“많은 힘을 쓰셨다고 들었어요! 벌써 소문이 자자한 거 있죠.”
돌아올 때 도움을 받은 각국에서 요이델에게 보내온 선물이 너무 많아 창고가 터질 지경이었다.
“신관님은 여독이 덜 풀리셔서 피곤하신 상태이니 신경 쓰이게 만들지 말렴.”
“맞다 맞다, 신관님, 성하와의 여행은 어떠셨어요? 출장이시지만 그래도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니까 두 분께서 혹시…….”
“커흠! 신관님, 그럴 것 같아서 저희가 여기 다시 새 잠옷을 준비해 놨답니다.”
시종들은 기어코 또 만들어 온 희한한 잠옷을 슬쩍 내밀었다.
거의 드레스나 다름없는, 이 요란하고 예쁜데 요사스러운 옷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시종들의 실력에 슬슬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이게 필요할 만한 그런 일이…… 어떡해! 있으셨겠죠? 네? 말씀해 주세요!”
“얘는, 이미 연인의 날을 보내셨잖니.”
“아무 일도 없었어요!”
“으잉?”
요이델의 선언에 심지어 라나까지 실망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왜, 왜들 그래요? 당연하잖아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과거에도 현재에도 전부요!”
“……쓰읍, 하아아. 오, 맙소사.”
“주신이시여!”
시종들은 갑자기 신을 찾았다. 다들 왜 저렇게 하늘이 무너진 표정이지? 기절할 듯 이마를 짚은 그들은 곧 결연하게 눈빛을 다잡았다.
“보좌 신관님들께도 알려서 협업해야 해요. 원로 예하들께 뭐라고 보고를 하죠?”
“당장 신전 내 최다 연애 경험자를 물색해서 로사리움으로 데려오렴.”
그들은 요이델을 빼놓고 모의하기 시작했다.
“이건 우리의 사명이야!”
━━━━⊱⋆⊰━━━━
시종들에 의해 로사리움에서 쫓겨난 요이델은 대신전을 청소했다.
“제에발 성후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희의 일을 빼앗지 말아 주시옵소서!”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성하를 만나서 데이트하기 전까지는 로사리움의 담을 넘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시종들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물론 그때 얘기를 못 하긴 했지만…….’
느닷없이 요보힐데 공작가로 끌려갔을 때 요이델은 율리시스에게 가려고 했던 길이었다.
그런데 다시 진심을 전하려고 마음먹으니 타이밍이 안 맞고, 또 그때처럼 무한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꾸웅.”
“응, 플로.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우잉냐.”
“아니야?”
“웅!”
늦은 저녁 성궁, 율리시스의 집무실 안.
요이델은 외부 인사를 맞이한 후 오도카니 홀로 남은 플로테스와 재회했다.
이제 제법 자란 아기 신수는 혼자서도 꿋꿋하게 잘 지냈다. 타국 사람들과 만나도 훌륭하게 신수로서 역할을 해내고. 겉모습은 아직 봉제 인형 같은 느낌이었지만.
‘부쩍 커 버린 것 같아서 왠지 아쉬워.’
그런 요이델의 마음을 아는지 플로테스는 날개를 퐁 꺼내서 파닥파닥 쇼를 보여 주었다.
“귀여워, 플로! 일부러 보여 준 거야? 못 본 사이에 날개도 우와, 한 뼘이나 커졌어!”
“꾸웅!”
요이델이 좋아하자 의기양양하게 뽐내던 플로테스는 문득 창문 밖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메디아의 차기 수장, 휘르무트가 성하와 함께 있었다.
저 멀리 있는데, 순간 차기 수장과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인가?
“플로도 봤지? 곧 메디아의 수장이 되실 분이래. 플로테스는 역시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구나.”
“으음마. 움마.”
“나?”
플로테스는 요이델의 옷을 쭉쭉 잡아당기며 보채듯이 파닥거렸다.
“친해지면 좋겠다고? 맞아, 좋은 분이었어. 유리잔을 대신 맞아 줬거든.”
“꾸우?!”
저 멀리 있는 휘르무트의 뺨을 확인한 듯 플로테스는 요이델의 뺨에 바람을 호호 불어 주었다.
“아하하, 나는 안 다쳤어. 고마워 플로.”
“꾸잉!”
요이델은 창밖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휘르무트.
저 사람의 여동생이 실종된 상태라는 거겠지. 범인은 공작 부인…… 그녀뿐일 리가 없다. 황제의 승인이 있었을 게 분명한데.
그렇지만 황제는 그걸로 메디아에 협박을 한 것도 아니다. 브리칼트는 오히려 메디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왜?
그리고 어쩜 그렇게 뻔뻔하지? 메디아의 소중한 사람을 훔친 걸 들킬 일이 절대 없다고 생각했을까?
요이델은 플로테스를 안고 토닥이며 곰곰이 생각했다.
요보힐데가 얼마 전 위협을 가한 걸 가만히 놔둔 건 용서해서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빠져나갈 기회를 보여 주면 아예 혐의를 벗어 버릴 궁리를 모색할 테니까.
못 나가게 한꺼번에 터뜨리는 게 좋다.
‘그런데 요보힐데 공작가는 어릴 적에 나를 대신전으로 보내 버렸으면서, 왜 이제 와 다시 데려가려고 할까? 꼭 성하의 옆에서 떼어 놓으려는 것처럼. 이마의 증표까지 공부했어.’
단순히 거슬려서? 글쎄. 신체에 위협을 가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들도 성하를 두려워하니까.
그때 플로테스가 그녀의 어깨를 뭉툭한 발바닥으로 폭 끌어안았다.
“뀨으. 후아암.”
플로테스의 잠투정에 요이델의 긴장도 한층 누그러졌다.
“응, 플로. 푹 자자. 오늘은 나도 파멜라의 집에서 잘까 봐. 집이 없어졌거든.”
요이델은 졸린 듯한 플로테스를 안고 소파에서 자장가를 속삭였다.
달칵.
그때 일정을 마친 율리시스가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그는 안에 있는 요이델을 보고 약간 놀란 듯했다.
“앗, 성하! 오셨어요?”
“음.”
하지만 율리시스는 들어오지 않고 문가에 느긋한 기색으로 서서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었나요?”
“기분이 이상합니다.”
그가 고개를 기울이자 은빛 실타래처럼 아름답고 긴 은발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율리시스는 농담기 하나 없는 집요한 눈빛으로 요이델을 응시했다.
“당신이 제 공간에서 저를 맞이해 주시니 저희가 부부라도 된 듯하여.”
“아…….”
“그 자장가도 저를 위한 것이면 좋겠습니다만.”
요이델이 긴장하자 율리시스는 옅게 미소 지으며 투정을 부렸다.
“……불러 드릴까요? 자장가는 잘 불러요.”
율리시스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요이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을 느낀 요이델은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노래 실력이나 자랑할 때가 아니었다.
“글쎄요.”
율리시스는 플로테스를 소파에 눕히고 담요를 덮어 준 후 요이델에게 다가갔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마주 앉자 요이델의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어쩐지 위험한 기색이었다.
‘그때 아카코스 폐하의 말 때문에 아직 기분이 안 좋았던 거야.’
율리시스가 그렇게 불쾌한 티를 낸 건 처음이었다. 요이델은 문득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간을 의식했다. 집무실이 유독 어두컴컴했다.
“요이델 님의 자장가는 제게 너무나 이로울 것 같습니다만.”
“…….”
“어두운 밤에, 이 방에, 당신과 단둘이 남은 제 마음이 어떨지…….”
율리시스는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절제하듯이 감미롭게 말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탁한 기운이 가득했다.
“아십니까. 저는 당신이 기대하는 믿음직스러운 연인은 아닐 겁니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파랗고 맑았지만 열망이 가득했다. 눈을 몇 번 깜빡여도 여전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까지 침착한 사람은 못 되는 터라.”
끼익.
소파가 그들 쪽으로 기울어졌다. 요이델은 어쩐지 목이 말라 침을 꼴깍 삼켰다. 너무 가까운 것 같은데…….
율리시스는 어느덧 요이델의 가장 가까이에 느슨하게 앉아 있었다. 그는 답답한 듯 겉옷을 소파에 걸쳐 두었다.
“보고 싶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보면 닿고 싶고.”
그가 손목의 툭 튀어나온 뼈를 쓸었다. 요이델은 간지러워서 저절로 손을 당겼다. 하지만 율리시스는 제 손안의 하얀 손목을 빼앗기는 것을 두고 보진 않았다.
오히려 더 굳건한 힘으로 붙잡힌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눈을 마주하게 됐다. 점점 공기가 더워졌다.
“요이델 님이 머리맡에서 자장가를 불러 주시면, 저는 과연 거기까지만 바랄까요.”
“…….”
“아마 손을 잡고 싶어질 겁니다.”
율리시스의 손이 스륵 내려가 요이델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그의 한 손 안에 모두 들어오는 자그맣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검을 쥐어 거친 손이 손바닥을 부드럽게 쓸자 간지러워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저를 내려다보는 당신의 시선이 좋아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어질 거고.”
몸을 낮춘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올려다보며 고혹할 만한 미소를 짓자 요이델의 얼굴이 빨개졌다.
“달빛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유독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
“제 손을 잡아 주시는 당신이 있고, 따스한 당신의 눈길이 있고, 당신을 더 원하게 되겠죠.”
지분거리듯 집요하고 느릿한 말에 요이델의 심장이 터질 듯 쿵쿵 뛰었다.
“저는 요이델 님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
“연인의 차이란, 이런 겁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요이델에게서 완전히 물러났다.
“제가 미흡하여 연인이 되지도 못했지만.”
재촉하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녀를 보면 제어가 불가능해서, 제게서 멀리 떨어져 달라고 경고할 필요는 있었다. 경고가 아니라 애걸인가.
라보르비치 개의 헥헥거림에 자신까지 동요하고 말았다.
율리시스는 고개 숙인 요이델을 보며 조금 후회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요이델 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는 당신의 믿음만큼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
“당신에게는 차분할 수 없으니 부디 참고 부탁드립니다.”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율리시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할 때쯤.
“성하.”
요이델이 그에게 다가왔다.
올려다본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들떴고 시선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결심하듯 말아쥔 작은 주먹도 똑같았다.
요이델은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맞췄다. 그리고 율리시스가 인식할 틈 없이 셔츠를 끌어당겼다.
쪽.
입술에 가볍게 소리 내어 입 맞춘 요이델은 바르르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심장이 폭발해 버릴 것처럼 둥둥 뛰었다. 하지만 기분은 구름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탄 것 같았다.
요이델의 눈빛도 율리시스만큼 흔들렸다. 하얀 손이 그의 은발을 어색하게 쓸다가 어깨를 살짝 뒤로 밀었다.
율리시스의 몸이 작은 힘에 뒤로 밀려나서 의자에 통, 부딪쳤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반려를 바라봤다.
“……저도 알아요.”
요이델의 목소리가 염소처럼 떨렸다. 그녀는 그와의 간격을 좁히며 다시 말했다.
“저도 똑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