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매일 오후 8시, 대신전이 안식에 들면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찾아갔다.
‘종탑에서 울리는 세 번의 종소리가 멎기 전에 제 집무실로 오십시오.’
‘모, 몰래 죽이실 건가요?!’
‘원한다면 해 드리겠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대의 부탁대로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해 드리겠습니다.’
소문이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으나, 근위대의 충성심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요이델은 대신전을 찾는 숲속 동물들의 밥을 주기 위해 오늘도 밖으로 나왔다.
“엣취!”
덕분에 요이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낮에는 교육장, 밤에는 더 무서운 성하의 교육.
‘플로는 잘 있겠지?!’
그 소동 이후로 더 안전하도록 보안을 강화했다고 하니 아마 괜찮을 거다.
‘보호막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혹시 플로가 나는 들어오게 허락해 줬던 걸까?!’
요이델은 여느 날과 같이 소동물들이 먹을 만한 열매를 쪄서 그들에게 나눠 주었다.
“엣취!”
야생 동물 털 알레르기가 페어링에까지 영향을 미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성하께서 나를 가만두지 않았겠지?
요이델은 웃는 낯으로 사람을 과격하게 굴리는 그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성황으로서의 업무를 마치고도 지치지도 않는지 새벽까지 요이델을 데굴데굴 굴려 댔다. 언제나 만신창이가 되는 건 요이델이었다.
그는 말끔한 얼굴로 한 문제라도 틀리거나 체력 단련을 소홀히 하면, 가차 없이 난이도를 높여 버렸다.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가 자신을 생각해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요즘은 말을 걸어 주는 동료들이 많아서 좋아.’
더 이상 밥도 혼자 먹지 않는다. 동료들이 디저트도 많이 나눠 주었다.
물론 테오가 요주의 인물이긴 했지만……. 그는 신수의 방 이후 징계를 받았다.
재판 없이 즉결 처분할 수 있는 것도 오로지 성황의 권한. 율리시스는 그를 바로 격리시켰다.
아, 그렇지. 요즘에는 테오처럼 어마어마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더 있긴 했다.
‘원로 예하는 왜 저런 시선으로 보시는 걸까.’
최근 들어 하일의 간섭이 극심해졌다. 간섭이랄지 미행이랄지 아니면 관찰일지 모르겠지만.
특히 그는 동물들에게 열매를 줄 때면 흥미로운 듯 따라와 저 먼 나무 발치에서 자신을 지켜봤다.
눈을 옆으로 돌려 보니 역시 오늘도 있다.
처음에는 동물, 그다음엔 이상한 사람인 줄 알고 놀랐으나, 자세히 보니 원로신관 하일이었다.
“저, 원로 예하…… 제게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아니! 어떻게 알았지?! 자네는 뒤에도 눈이 달린 겐가!”
“굉장히 티가 나시는걸요.”
“여러모로 영민하군.”
부스럭.
그는 풀숲에 쭈그려 앉은 몸을 ‘끄으으―’ 하고 일으켜 날쌔게 다가왔다.
신수의 방에서의 일처럼 눈을 빛내던 그는 코앞에 다가와 한참을 노기 띤 얼굴로 바라보더니, 대뜸 삿대질을 쿡! 했다.
“나는 절대 자네가 영민해서 지켜본 게 아니네. 다만 시험 참가자의 능력치 파악을 위해 사전 조사를 했을 뿐!”
요이델은 멍한 얼굴로 하일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는 높은데 눈은 왜 저렇게 빛나고 즐거워 보일까?
“이르케 꽃의 뿌리에는 어떤 성분이 들어 있는지 아는가, 자네!”
더욱이 난데없이 문제를 내는 게 아닌가.
요이델은 원작 속 지식과 그간 지독한 훈련으로 습득한 것을 떠올리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독 성분이 들어 있어서 사람이 섭취하거나 인체에 닿을 때 뿌리를 잘 제거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흠!”
뭔가를 더 기대하는 듯한 하일의 기색에 요이델이 눈치를 보다 덧붙였다.
“담마초의 잎에 들어 있는 성분과 배합하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치료제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허어! 합격!”
그는 그 말을 남겨 놓고 도망가는 악당처럼 부리나케 사라졌다.
멀뚱히 눈만 깜빡이던 요이델은 그냥 심심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신성력이 높을수록 수명이 길고 외관도 젊어지니 외관은 실제보다 어리더라도 마음이 많이 외로웠겠지.
헛헛함에 말을 건 것일 수 있다.
요이델은 전생에서 저런 사람을 많이 봤다. 그래서 굳이 율리시스에게 보고를 하진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한 일은 다음 날에 일어났다.
“급체를 했을 때는 로니아 약초, 배탈이 났을 때는 셀룸 잎의 껍질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복용하네. 하지만 이때.”
전날처럼 또 뭔가 기대하는 기색에 요이델이 얼른 그의 말을 받아 이었다.
“셀룸 잎은 발열과 구토, 지속적인 배탈 등의 증상이 함께 나타날 때는 먹지 않는 게 좋아요. 증상에 따라 트노일라 열매를 먹는 게 나아요.”
“왜지!”
“급성 질환으로 인한 배탈일 때, 셀룸은 더 심한 복통과 부작용을 부를 수 있으니까요.”
“자, 자네가 어떻게 그걸! 내 계획을 파악한 건가!”
하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뒷걸음질을 치다 돌부리에 툭, 걸려 꽃밭으로 넘어졌다.
쾅!
꽤 큰 소리가 나서 요이델은 다급히 달려갔다.
“하일 님!”
“아, 아이고 나 죽네…….”
“괜찮으세요, 하일 님?”
“내가 언제 이름을 부르, 부르라고 허락했는가……! 이봐, 자네. 앗, 따거! 으악, 소, 소소소, 손에 가시가!”
하일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고 다급히 손을 부여잡았다.
따끔거린다고 외치는 그는 거의 졸도할 기세였다.
아무래도 가시에 박힌 듯한데, 어쩌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올게요!”
요이델은 잠시 생각하다가 열매가 심어진 옆쪽 숲으로 뛰어갔다.
“아픈 늙은이를 버리고 가는가……! 나는 이제 죽네, 손에 박힌 가시가 혈관을 타고 흘러가다 어딘가를 막으면, 이 삶도 끝나겠지. 아아, 이렇게 가는가. 가시에 찔려 가련하게 가는가.”
철퍽.
엄살이 심한 하일이 헛소리를 하던 그때, 요이델은 열매를 손에 들고 다가와 그의 손가락에 잘 펴 발라 주었다.
“뭐 하는 겐가? 자네가 젊다고는 해도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네.”
“한 시간만 지나면 가시가 쏙 빠질 거예요.”
“뭐라고? 내,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은가?”
반신반의하던 하일은 징징거림을 멈추고 일단 돌아갔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영락없이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흥! 훌륭하더군! 덕분에 살았네!”
그런 말을 선물과 함께 툭 놔두고 민망했는지 또 한 번 도망가 버렸다.
그 뒤로도 그는 꾸준히 나타나서, 답을 맞히면 정체 모를 사탕을 쥐여 주고 홀랑 가 버렸다.
“이것은 선물이네! 먹든 말든 자네 마음대로 하게!”
그런 말을 하면서.
“아참참, 정 부르고 싶다면 하일이라고 불러도 되네. 젊은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줄 수 있지!”
요이델은 하일이 자신에게 꼭 쥐여 주고 간 사탕들을 먹지 않고 모아 놓았다.
‘나, 선물받은 건가 봐.’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예쁘고 반짝반짝한 사탕 껍질을 까는 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유리병을 비워 그 안에 색색깔의 예쁜 사탕을 보관했다.
요이델은 단순한 심심풀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원로이자 치료술을 전담하는 남쪽 분관의 책임자 하일은 다르게 생각했다.
‘요이델 신관이라…….’
남관의 치료 신관들이 생각에 잠긴 그를 걱정스레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예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최근 들어 큰일이 있어 보이십니다.”
“허헛…… 아무것도 아닐세.”
하일은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여태 자신을 보좌한 신관들도 요이델처럼 어린 나이에 그 정도로 빠른 발전을 보여 주진 않았다.
‘어쩌면, 이번 시험에 큰 이변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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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델은 두근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따뜻한 차를 마셨다.
‘이제 곧 시험이 열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시험이 치러질 날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제 그녀의 집에는 제법 향기 좋은 찻잎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동료 신관들을 도와주고 답례로 받은 것들이었다.
물론 아직도 요이델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예전에 비해 의심의 눈초리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어디인가? 요이델은 충분히 뿌듯하고 행복했다.
“너무 좋아. 그런데 이렇게 즐겁기만 해도 되는 걸까?”
혼자서 베개를 놓고 대화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베개가 아니더라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요이델은 푹신한 이불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작은 독채였지만, 지금 요이델의 방 안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그녀가 유일하게 기숙사 구역에서 독채를 쓰는 이유는, 패악에서 다른 이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격리였다.
과거 요이델은 그런 의미로 유명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신수의 알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게, 요이델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슬슬 퍼졌다. 어디서 흐른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요이델을 향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져왔다.
물론 요이델을 더 싫어하게 된 사람도 있지만. 예를 들어 테오라든가.
‘그러고 보니 테오를 못 봤네.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테오는 율리시스에게 악행을 들켜서 3주 동안 근신 처분을 받았었다.
기숙사 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게.
그 이후로도 감시가 붙었다.
스스로의 충격도 컸는지, 이후 폐인처럼 몸을 수그리고 다녔다는 소식도 들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요이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이 늦은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작은 문구멍으로 밖을 살폈다.
‘테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