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신성력 측정이요?”
“저는 당신과 어쩔 수 없이 묶인 몸으로서, 기본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힘이 어느 정도인지, 요이델 님이 제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말입니다.”
신성력을 따로 측정할 수 있는 마법 도구가 있구나. 내 신성력은 얼마나 될까?
요이델은 하얀 빛 가루가 떠다니는 유리 구체를 보다가 궁금증에 눈을 굴렸다. 왜 여태 몰랐지?
그리고 깨달았다.
‘원작은 남자주인공인 율리시스의 위주로 짜여 있었고, 그는 성력 측정 따위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의 이름 뒤에 성이 붙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존재만으로 완벽하니까.
그는 가문과 역사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난 아니지.’
그러고 보니 자신의 성도 얼마 전, 율리시스가 호명할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대신전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성황인 그의 아래로 귀속된다.
따라서 신관으로서 들어옴과 동시에 가문의 이름은 전부 떼어 내야만 한다.
‘요이델 요보힐데라고 했지? 그런데 요보힐데라는 성…… 어디서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고민을 하던 찰나,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뺨을 한 손으로 쥐고 자신을 향해 틀었다.
요이델은 붕어처럼 입술이 뿍 내민 채 눈을 다급히 깜빡였다.
“집중하십시오.”
“으븝, 네?”
“당신은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생각보다 영리하시고, 소심하지만 크게 바보는 아니시고.”
율리시스는 덤덤히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한 가지 말을 삼켰다.
‘나조차 뚫지 못한 신수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
내색하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요이델이 보여 준 능력은 가히 놀라웠다.
그러니 기대해 봐도 좋다.
율리시스는 이미 요이델의 기록을 훑어봤으나 어찌 된 일인지 명확한 수치가 적혀 있지 않았다.
요이델은 쫓겨난 게르암 신관의 먼 친척이니, 어쩌면 능력치 미달임에도 불구하고 뒤로 힘을 써서 가문의 권세를 믿고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요보힐데 공작가.’
제국에서 날고뛰는 귀족들도 맥을 못 추는 대귀족이었다.
황제의 최측근이고 먼 조상이 황가의 혈통이었다던가.
그렇지만 요보힐데 공작가가 악명을 떨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황제와 결탁하여 온갖 더러운 수를 쓰기 때문에.
의구심이 가득한 율리시스와 달리 요이델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성하처럼 멋진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까? 거리에 시찰을 나갈 때마다 몰려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흩날려 줬지. 아주 멋있다고 했어.’
두근거림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율리시스의 신성 마법은 따라올 자가 없다.
“혹시 저한테 신성력이 있다면 저도 신성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예요?”
보통의 신관들이 하는 것 같은, 그런 환상적인 걸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요이델은 기쁜 마음에 율리시스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그는 깔끔히 무시하며 손짓했다.
“자, 손을 내미십시오.”
얼마나 될까? 많을까? 엄청 많으면 좋겠는데. 요이델은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을 안고서 구체를 바라보았다.
“신성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네?”
율리시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몇 번이고 요이델의 신성력을 측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매번 같았다. 실패, 또 실패.
‘측정이 불가할 정도로 형편없다.’
힘을 쥐어짜 내서 가까스로 발현해도, 대신전에 겨우 턱걸이로 들어올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나 없을 수는 없었다. 정말로 게르암이 뒤를 봐줬던 건가?
그렇다면 요이델은 자신의 부정이 들킬 것을 감수하고도, 진실을 위해 그를 고발한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손과 발을 모두 그 구체에 가져다 대게 했다. 그래도 바닥을 찍은 신성력은 똑같았다.
“신성 마법 중 사용하실 줄 아는 게 있습니까?”
“음…….”
요이델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요보힐데 가문이 어딘지, 여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대부분 떠오르지 않는데.
율리시스는 눈만 굴리는 요이델을 보다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당신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열심히…… 해 볼까요?”
“요이델 님, 특훈입니다.”
“트, 특훈이요?”
요이델의 목소리가 어린 양처럼 떨렸다.
“이대로라면 시험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시겠군요. 체력 시험도 무리인데, 그나마 보완할 만한 마법조차 쓰지 못하시다니. 첫 번째 친구를 잃으셔도 좋습니까?”
“네?”
“시험 도중에 신성 마법을 써서 일을 쉽게 하거나 체력을 회복시킬 수 없을 테니, 능력을 키우시는 수밖에요.”
율리시스는 미동도 없는 측정기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고요한 상태는 두 가지를 의미했다.
‘저 측정기로 잴 수 없을 정도로 신성력이 많거나, 신성력이 극도로 미미하거나.’
당연히 전자일 리는 없었다.
그건 율리시스급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역사상 성국에 그런 신관은 없었다.
하지만 예지 능력과 신수 친화도를 떠올리면 희망을 놓기엔 일렀다.
그럴 일은 없어야 하지만, 이 소년이 자신의 반려인 게 알려진다면 큰 문제가 된다. 외적으로도, 그의 체면에 있어서도.
“당신에게 힘을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네?”
“방법을 말씀해 보십시오. 이전처럼 입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행위입니까?”
요이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제안을 해 주다니.
요이델은 한참 동안 옷을 만지작거리다가 의지를 다졌다.
“아뇨. 안 할래요.”
그에게 돌아간 답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그건 제 힘이 아니니까요. 살기 위해서 그랬지만 힘을 빼앗고 싶진 않았어요. 변명같이 들릴 건 알지만요.”
그 말에 율리시스는 고개를 돌리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울렁울렁하기만 했던 둥근 눈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에 율리시스도 마냥 방종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자세를 고쳐서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대신에 성하,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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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이 금세 어수선해졌다. 신수의 관리자를 뽑는다는 선언이 공표되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듣기로는 요이델이 신수의 알을…….”
“깼다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거야?”
“깬 게 아니라, 깨웠대.”
“뭐?!”
“쉿, 아무도 몰라 아직. 나도 방금 들은 건데, 우리끼리 비밀이야.”
그러나 비밀은 건너고 건너 모두가 아는 사실이 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태어나지 않았던 신수가 깨어난다. 그렇다면 신수 관리자는 고위신관이 된다.
모두가 눈을 빛냈다.
그러나 가장 형형하게 눈을 빛내는 이는 따로 있었으니.
‘저 햇병아리인 자가 시험을 통과할 리는 없다. 난이도를 최상으로 높일 테니 도전하고 좌절해 보시게. 세상의 쓴맛이란 이런 거라네, 소년이여.’
하일은 스스로의 사악함에 감탄하며 몰래 요이델을 지켜보았다.
“크흐흐…… 나도 참 못돼졌군.”
원래도 사람을 좋아해 대신전을 안 누비는 곳 없던 하일이었으나, 이제 요이델의 뒤만 졸졸 쫓아다녔다.
그가 조사한바, 요이델은 그 긴 수련신관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일반 신관으로 승격하지 못했다.
게다가 평판은 최악, 그만큼 성적도 최악, 품위 최악, 모든 게 다 조악한 인물이었다.
‘성하께서 저 햇병아리의 어떤 가능성을 보셨는지 몰라도, 이 하일은 다르지. 성하는 다 좋으시지만 너무 관대하셔서 탈일세. 어쩜 저 악한 자에게서도 굳이 선한 면을 찾으시려 하는가?’
신수 관리 시험은 표면적으로는 이 대신전 내의 모든 신관에게 참가 기회가 부여됐다.
그러나 세 번의 시험, 그 첫 관문에서 일반 신관은 물론 중급신관조차도 우수수 떨어질 게 뻔했다.
하일은 생존한 ‘최상급 인재’만 마구 예뻐해 주면 되는 것이다.
‘어어? 저건 그리니스 식물의 열매인데. 먹으려는 건가? 저런 햇병아리한테는 치명적인 배탈을 일으킬 텐데.’
그때 요이델이 대신전 뒤쪽 작은 숲에서 열매를 한 소쿠리 가득 따서는 품에 안고 위태위태하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저렇게 많은 열매를 어디에 쓰려고!
‘뭘 모르는 햇병아리라 저러는군.’
냄새도 고약할뿐더러 레몬보다도 시큼하고 익으면 익을수록 맛이 떫어서 향신료로나 조금 쓰이는 열매인데, 저걸 왜?
게다가 채 익지도 않은 열매다.
익기 전에 먹으면 큰 배탈을 일으킬 수 있는데, 역시 햇병아리라 뭘 모르는군. 이것 참…….
도와줘야 하나?
하일이 갈등하는 사이, 요이델은 신전 구석에 들어갔다 나왔다.
열매를 따끈하게 쪄서 소쿠리에 담아 온 듯했다.
“이제 먹어도 돼.”
그리고 냄새를 맡고 몰려든 숲의 작은 동물들에게 식사 그릇을 나누어 주었다.
‘배탈, 배탈이 나면 어쩌려고!’
나무 뒤에 숨은 하일은 초조함에 나무를 뜯으며 지켜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분명히. 아니, 시간이 지났는데 왜?
‘모두 멀쩡히 식사를 마쳤다!’
하일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배탈이 난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배가 볼록해진 동물들은 요이델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듯 몸을 비볐다.
하일은 그 광경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모두가 사라진 후에야 슬그머니 나와 동물들이 흘린 열매를 주워 먹었다.
‘허! 그렇군. 열매를 증기로 쪄서 독소를 없앤 거였어.’
분명히 극악무도한 자였지만 영민하다.
듣자 하니 안토니오라는 신관을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살려 줬다던데. 그렇다면 이번 시험의 총괄 감독으로서 실력을 확인해 볼만은 하다.
‘절대로 내가 궁금해져서가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학자로서의 피가, 저 신관을 향해 기쁨과 설렘으로 들끓기 시작했다.
하일의 눈이 오랜만에 초롱초롱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