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범인의 이름이 프란츠 카터라고.”
비스듬히 턱을 괸 율리시스는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가 범인일 리 없다. 그러나 예상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자가 언급되어 오히려 흥미롭다.
휘르무트는 회의장 맞은편에 앉은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성하께서는 그자를 아십니까.”
“지난 라보르비치에서의 사건 당시 브리칼트의 마탑을 조사하던 중 발견한, 눈에 띄는 인물이었습니다.”
성국과 메디아 측 사람들이 한데 모인 회의장 내부.
율리시스는 요이델 없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건강 상태가 나빠 보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이야기 와중에도 한마디를 뗄 때마다 그녀가 걱정됐다. 그래서 그는 말을 서둘렀다.
“프란츠 카터는 브리칼트 내 수많은 마탑을 총망라하는 실권자로서, 내부에서 2인자의 위치에 있는 자입니다.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이며, 그를 바탕으로 한미했던 남작가를 기반이 단단한 신흥 가문으로 키워 낸, 상당한 능력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 수상하다는 뜻이다.
율리시스의 숨은 말뜻을 이 자리의 모두가 알아들었다. 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를 가지고 들어온 기사는 문서를 확인했다.
“범인이 시인한 금술의 이름은 쿠르바틸라로, 마탑에서 대규모 실험을 행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건 수명을 강제로 늘리는 마법 아닙니까? 분명 그만큼의 제물이 필요한 금술인 건 맞지만 그자가 20년씩이나 전에 그런 일을 행한 이유가 뭘까요. 아직 청년이었을 때인데.”
“자백하기로는 그 무렵 돌아가신 어머니의 병환 치유를 위함이었다는데, 글쎄. 브리칼트에 눈물겨운 효심이 있는 줄 몰랐군요.”
참석자들 모두가 의문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이 하지 않았다기에는, 당시를 재현한 방법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상세하며 진술이 일관됐습니다.”
“프란츠 카터라는 인물은 황제의 측근도, 방계 혈족도 아닌데 거짓된 진술로 얻을 것이 뭐가 있을까요? 죽을 게 분명한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브리칼트 황제의 명을 따를 자도 아닌 듯한데…….”
그들이 소리 높여 회의하는 사이, 율리시스는 무심히 앉아 논의를 들었다. 그러다 차분히 입을 열었다.
“페리트 경께서는 그자를 아실 겁니다.”
“네? 제가…… 말입니까?”
메디아 내 마법 양성 학교에서 오랜 시간 교육자로서 일한 페리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사래 쳤다.
“클레멘타인 라일렌과 프란츠 카터. 오래전 유망하기로 소문났던 두 인재의 이름. 기억하십니까.”
“아아! 그 아이들, 맞습니다! 성하께서도 어찌……. 아, 그 프란츠 카터가 그, 그……?”
페리트의 동요에 모두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클레멘타인이라는 이름 역시 한때 요보힐데 공작가보다 유명했다. 그동안 왜 잊고 있었나.
설마…….
모두가 머릿속에서 공작 부인과 프란츠 카터의 관계에 대해 추측할 때, 파란을 퍼뜨린 율리시스는 여상히 웃는 얼굴로 휘르무트를 바라봤다.
‘의도적으로 제대로 된 정리를 하지 않았군. 성황은 생각보다 더 교활하다.’
휘르무트는 안색 하나 변화 없는 그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바로 그때 보좌관 하나가 다급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귀엣말을 들은 휘르무트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그걸 왜 지금 보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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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왔다고 따뜻하게 느껴지네…….’
모두가 회의를 들어간 사이.
요이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탁탁 두드려 진정시킨 후 하얀 방문을 열었다.
아까 들렀던 그곳. 수장의 딸이 사용했을 듯한 그 방이었다. 이곳에 다시 와 보고 싶었다. 왜 숨이 막히는지, 이유가 뭔지 제대로 알고 싶어서.
그런데 왜 이 삼엄한 곳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걸까? 사뭇 의문을 느끼며 이번에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방 안쪽에 또 방이 있어.”
사용인들에게 주는 작은 방인 줄 알았더니, 옷 방이었다.
너무 작아서 사람이 입을 수 있는 걸까 궁금한 아기 옷.
나풀나풀 짜인 레이스 장식이 달린 부드러운 옷감은 모두 요이델의 반절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이건 찢어졌네? 마음에 든 옷이었는데.”
저걸 입고 넘어졌었나? 그래도 오라버니가 선물해 준 드레스라 소중하게 아꼈던 것 같은데.
요이델은 아쉬움에 예쁜 하늘색 드레스를 만지작거렸다. 그 옆에는 어딘지 엉성한, 더 작은 아기 옷이 있었다. 어쩐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것 봐, 바느질 실력 같은 손재주는 유전이라니까! 성하한테 알려 줘야지…… 어?”
그런데 이 방에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뒷걸음질 치던 요이델이 책장에 머리를 박았다. 그 순간 마법이 탁 풀리듯 묶어 놨던 책과 종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얼굴을 구분하기 힘든 갓난아기의 그림이었다. 분홍색 머리칼에, 엄마의 손가락을 다섯 손가락으로 움켜쥐고 우는 새빨간 아기.
[겨우 이름을 정했다. 못난이들이 자기들이 지은 이름을 붙이자고 해서 떼어 내느라 힘들었다.] [둘째 아이의 이름은 릴리메이엘.] [유모 대신 휘르무트가 동생을 돌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맡겨 놓고 외출했다가 다녀오니…… 후후, 2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안겨 준 그대로 서서 동생을 돌본 바보가 우리 아들일 줄이야.휘르무트는 본인의 두 팔에 감각이 사라졌다고 울었다. 팔이 잘리면 어떡하냐고 묻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라고 답했더니 더 크게 울었다.
그래도 엘이 한 번도 깨지 않고 편안하게 잤다길래 좋은 오빠구나, 라고 칭찬해 줬더니 뚝 그쳤다. 단순한 게 남편을 닮았는지도.]
펼쳐진 일기장을 읽던 요이델의 심장이 쾅쾅쾅 요동쳤다. 구역질이 올라올 듯 맥박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엘.”
달칵.
그 순간 바깥쪽 방문이 열렸다. 요이델은 작은방의 문을 닫은 뒤 반사적으로 기척을 숨기고 웅크려 앉았다.
“엘?”
기분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또렷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둡고 좁은 곳에 몸을 숨겼지만 그것 때문에 심장이 뛰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 목소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똑같은 목소리.
“방금 여기 우리 아이가 있었어! 그렇지 않아? 샨, 너도 봤지? 당신도 봤잖아?”
“라히에…….”
“당신 못 봤어? 방금 있었잖아. 왜 못 봐, 어떻게 몰라! 어? 어어, 방금, 부, 분명히 있었는데……. 여기 있었는데…… 내 딸이, 내, 내 아가.”
새처럼 지저귄 목소리가 까마귀의 고성처럼 높다랗게 치고 올랐다.
내 딸.
그건 저들이 메디아의 수장이라는 얘기였다.
여자는 그녀를 끌어안고 진정시키는 남자의 팔을 힘없이 마구 쳤다.
“라히에, 나도 늘 그 애가 보고 싶어.”
“정말 있었다니까! 왜 못 보는 거야, 왜!”
비명을 지른 그녀는 방을 뒤질 듯이 손을 올렸다가 곧 툭, 떨구었다.
“미안…… 미안해, 샨. 내가 어떻게 됐나 봐.”
“이곳이 힘들면 다시 휴양이라도 다녀오자. 이제 휘르무트도 어엿한 차기 수장이니까.”
마른 손부채질을 한 그녀는 고개를 들며 입술을 깨물었다. 남자의 음성은 꾸민 곳 하나 없이 다정했다. 그러나 둘 다 지칠 대로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안 돼. 휘르무트에게 너무 많은 걸 맡겼어.”
“……응.”
“우리가 그 애에게 무리를 시키면 안 돼. 이미 부족하지만 부모인걸.”
“라히에, 알고 있었네.”
“오자마자 또 싸우고 싶어?”
여자의 목소리가 장난스럽고 날카롭게 올라가자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느껴지는 뭔가가 있었다. 그들이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을 거라는 걸. 적당한 타협점이 지금처럼 웃음으로 무마시키는 지점이라는 것도.
“왜 이제 울음이 나오지 않는 걸까. 예전에는 그렇게 눈이 붓도록 울었는데, 부모로서 자격이 없는 거겠지?”
“엘도 늘 우는 엄마 아빠는 바보 같다고 싫어할걸.”
“……지금 나보고 바보라고 한 거지? 말 다 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놀라긴, 나도 농담이었어. 알아. 무슨 뜻인지. 다 알아.”
그들은 서로를 다독여 줬다. 요이델은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하나만은 분명했다.
서로를 아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기억 속에 그들이 있다는 것.
“휘르무트한테 말도 안 하고 왔네. 보고 싶어, 얼른 가자.”
두 사람이 나간 뒤, 요이델은 작은방 문을 열고 나왔다.
힘이 빠진 요이델은 겨우 비척대며 걸었다.
이 복도를 안다. 여기를 알아.
어릴 적 몇 번이고 넘어진 곳. 본성의 바닥에 온통 솜뭉치를 깔아 놓아 구름처럼 만들어 모두를 곤란하게 했던 부모님.
예쁘고 신기해서 그 솜을 뜯고 놀던 나.
나야.
나였어.
그들이 찾는 딸이 바로…….
‘나.’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우리 엄마 아빠야.”
금술의 흔적을 공작가 내부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도, 요보힐데 공작 일가가 자신을 핍박한 것도 모두 설명이 됐다.
요보힐데 공작가가 숨긴 비밀이 나 자체였으니까! 답은 내 안에 있다.
당장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델! 우리…….”
휘스테론과 라이오스의 들뜬 부름에도 대답 없이 뛰어갔다. 뒤에 남은 이들은 당황한 듯 외쳤다.
“델! 데엘! 무슨 일 있어?!”
“신관님!”
쾅!
요이델은 급히 뛰어 정원으로 뛰쳐 달려 나갔다. 여기를 알아. 이곳을 알아.
다시 한번 다른 쪽 문.
여기엔 복도가 있지. 정원의 나무에는…….
촤아아.
나무가 거센 바람을 타고 나뭇잎을 촤르르 흩날렸다. 돌풍처럼 불어닥친 바람에 요이델의 분홍색 머리가 넘실거렸다.
“내가 자란 흔적…….”
어릴 적 가족들과 같이 심었던 나무 묘목. 너무 작아서 과연 커질까 싶던 나무는 훌쩍 자라 있었다.
정원의 문틀에는 일자로 그려진 줄이 몇 개나 있었다. 자그마해서 잴 것도 없던 키를 해마다 쟀던 흔적.
참고 참아 흐느끼던 울음이 마침내 터졌다.
쿠르릉.
쏟아지는 세찬 비를 맞던 요이델이 나무에 손을 대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메디아가 온난한 만큼, 감기는 지독하게 오래가는 편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신관님.”
어느덧 나타난 휘르무트가 손으로 그늘막을 만들어 요이델에게 떨궈지는 빗물을 가려 주었다. 그는 흠씬 젖은 채.
요이델은 그를 물끄러미 보며 피식 웃었다. 휘르무트는 눈썹을 치켜올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장난 같겠지만, 여름 감기는 특히 지독해서―”
“쓴 약초를 먹어야만 낫는다는 무서운 얘기 하려고요? 아니면 무시무시한 감기 요정이 나타나서 잡아먹을 거라고요? 이제 그런 말은 무섭지 않아요.”
“……뭐?”
휘르무트가 내려다보자 요이델은 분명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웃었다. 아니, 울었다.
자신의 동생이 운다. 누가 그의 목을 콱 조르는 듯했다.
심장에 가득 들어찬 옛 기억이 둑이 터지듯 위로 올라왔다. 자신을 보는 그 아이의 눈빛이 예전과 똑같음을 깨달은 휘르무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 기억이 맞나요?”
요이델은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며 꿋꿋하게 미소 지었다.
“오라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