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율리시스가 다가가도 요이델은 눈을 떠 주지 않았다.
그는 홀린 듯 얼음 수정에 가까이 다가갔다.
신체 보존 마법, 테레오.
대상을 급속으로 냉각시켜 손상을 최소화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최후의 보루 같은 마법이었다.
이 정도 거대 빙벽이면 성수를 쏟아부어도 모자랐을 것이다.
‘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릿속을 누군가 쥐고 흔든 것처럼, 바보가 된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는데.
“……왜 내게 보여 주는 겁니까.”
율리시스의 말뜻은 보기 싫다는 게 아니었다. 당신의 여동생인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동생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사실까지 안다는 뜻은 아니었다.
“역시 크게 놀라거나 누구인지 묻지도 않으시는군요.”
휘르무트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었다.
“성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성수는 마법의 난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성공 확률을 극대화시켜 줍니다.”
“성수 전량을 메디아에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쉽게?”
“원한다면 지금 당장 재가동시켜서 가져오겠습니다.”
당황한 휘르무트는 딱딱한 얼굴로 율리시스를 응시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쉬웠다. 그들로서도 매년 막대한 돈을 지불하는 성수인데, 무슨 바닷물 퍼부어 주는 것처럼 말한다.
휘르무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우선 물음에 대한 답은, 성하께서 모르실 리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성하께서 친히 편지를 보내셨던 것, 기억합니다.”
[……메디아의 차기 수장님을 직접 만나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휘르무트가 손수건의 분석을 끝내기 직전, 율리시스에게서 편지를 한통 받았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메디아와 화친의 증표로 받았던 신수가 태어났으니 꼭 보러 오라. 관리자는 학술원을 만드는 등 당신이 관심 보이는 일을 한 사람이니 만나 봤으면 한다.’
휘르무트는 타 대륙으로 나가지 않았지만 모든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학술원에 흥미가 생겨 올가를 보낸 것도 맞고.
사실 율리시스는 당시 요이델과 메디아 수장 일가의 혈연 관계를 생각하고 편지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요이델이 흥미를 보이니 와 보라고 했을 뿐. 뜻한 바는 아니나 굳이 정정할 필요는 없었다.
“성궁을 귀빈실로 내어 준 것부터가 이례적이더군요. 이제 와 그 호의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
“올가에게도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토록 오래 기다린 아이가 사실은 멀지 않은 곳에서 혹독한 날을 보내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니…….”
금방이라도 브리칼트를 짓뭉갤 듯 흉악한 얼굴을 하던 휘르무트는 이를 꽉 물더니 곧 쓸쓸한 얼굴로 빙벽을 쳐다보았다. 늘 한 자리에 서서 이곳을 지켜봤을 듯한 느낌으로, 잠든 여동생을 자연스럽게 바라봤다.
“제 동생은 어린 시절 갑작스럽게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문을 닫던 시기 말입니까.”
“네. 늘 한결같던 이 아이는 1년쯤 전부터 서서히 지금 모습처럼 성장했습니다. 저희는 기뻤습니다. 영혼이 돌아오는구나, 곧 깨어나겠구나.”
하지만 지금까지 깨지 못했다.
말하지 않아도 짙은 좌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굳건하고 단호하게 느껴지는 의지가 먼저였다.
“그래서 성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아신 겁니까.”
“메디아가 문을 닫은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
“그렇게 추측한 이가 있었습니다.”
율리시스는 휘르무트를 쳐다봤다.
“누굽니까.”
“이분입니다.”
율리시스의 눈이 침착하고 낮게 가라앉았다. 그는 빙벽 속 여성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생명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율리시스는 자신이 아는 진짜 요이델이 보고 싶었다.
외형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숨을 쉬고, 반짝이는 새빨간 눈으로 자신을 봐 주는 그녀가.
그녀의 오라비와의 대화라 할지라도 어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지금 당장 살아 숨 쉬는 요이델을 만나고 싶다. 확인하고 싶다.
“……그러니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요이델 님 본인의 의사를 전달해 주는 것이 전부였으니.”
“그 아이가.”
휘르무트의 말문이 막혔다.
찾아내 주지도 못했는데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짐까지 얹어 준 건가. 그는 괴로움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당신을 반대할 겁니다.”
“그러십시오.”
율리시스의 무심한 말에 휘르무트가 하,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눈썹이 팍 일그러졌다.
“퍽도 자신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분께서는 저를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착각이죠. 혼란에 빠져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도 없을 나이 아닙니까? 자신의 감정마저 착각하는 시기에 멋모르는 어린아이 하나 갖고 놀지 마십시오.”
“그렇다기엔 그분의 나이가 성년을 넘었는지라.”
곤란한 척 나긋나긋하게 웃는 꼴을 보자 목에 핏대가 바짝 섰다.
“제 눈에 흙이 들어간다 해도 불가합니다.”
“흙이라, 괜찮으시겠습니까.”
율리시스는 그거면 되겠냐는 듯 나른한 눈짓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휘르무트는 입을 벌렸다. 그가 아는 성황은 이런 자가 아니었다.
원래 미친 자인가? 아니면 진짜 돌아 버린 것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율리시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대화 대신 꽤 긴 마법 수식을 입으로 내뱉었다.
팟! 눈이 멀 만큼 거대한 빛이 오래도록 번쩍거리며 보호막을 만들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최고의 결계 마법을 힘으로 다시 한번 덧씌웠다.
웬만한 마법사들이 소국 단위로 모여도 하기 힘든 일을 저 혼자 쉽게 해냈다.
그를 바라본 휘르무트는 전율이 오른 피부를 문지른 후 눈을 감았다.
“우리의 평화는 공동의 적을 물리치는 순간까지입니다, 성황 성하.”
“브리칼트, 그다음은 요이델 님께 모든 것을 되찾아 드린 후에.”
휘르무트가 악수를 권유하며 말했다. 잠시 가면을 거두었던 율리시스는 다시 천사처럼 미소 지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율리시스의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는 휘르무트가 가진, 요이델이 본래 휘스테론에게 주었던 손수건을 비뚤게 내려다보다가 다시 휘르무트를 응시하며 눈빛으로 종용했다.
“손수건은 돌려주십시오.”
“……?”
“그 자수는 원래 저를 위해 배웠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제 것입니다.”
맡겨 놓은 듯한 요구에 입이 벌어졌다. 휘르무트는 직감했다. 이 평화, 오래 못 간다.
━━━━⊱⋆⊰━━━━
요이델이 들어간 곳은 볕이 잘 드는 아름다운 방이었다.
“어……?”
감탄이 나올 만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한데 모아 놓은 것 같은 방.
싱싱한 생화가 놓인 모양, 이불에 놓인 베갯잇 같은 소품들 중 어느 하나 어느 것도 보기 싫은 게 없었다. 입을 벌리고 쳐다보던 요이델은 낯선 방에 침입했음을 깨닫고 사과했다.
“앗, 죄송합니다!”
……빈 방인가?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네. 과연 들어가도 될지 고민하며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정성껏 꾸며져 있으나 신기할 만큼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방.
그런데 어딘지 익숙한 방.
요이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작은 목소리를 냈다.
“아무도 안 계세요?”
조용했다.
“저기, 혹시 옷을 갈아입고 계시나요? 아니면…… 저, 오해하실까 봐 그러는데요, 일부러 들어온 건 아니에요. 실수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역시 조용했다.
요이델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조금씩 발을 뗐다.
그러다 사그락 밟히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래를 바라보았다.
“꺄악! 어…… 종이?”
그런데 발 밑의 종이가 나뒹굴지 않았다. 잠깐만, 이 방. 왜 이렇게 생겼지?
요이델은 이상함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이가 움직이지 않아. 땅에 붙어 있어. 저 침대도 그래, 아주 오래전 유행했던 침대의 모양 그대로야. 저 액자, 모두.’
심지어 먼지 한 톨 없다.
마치 사건 현장 같은 방이었다.
흘러내린 종이 하나, 벗어 놓은 듯한 보닛이나 옷가지. 모두 그대로였지만 다 구시대적인 물건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메디아에서 잃어버린, 그 소중한 사람의 방이구나.’
이렇게 보존된 거였어.
이곳만이 유일하게 조용한 공간이었다. 메디아의 다른 곳들은 시끄러울 정도로 북적거렸기에 더 대비되었다.
‘왜 메디아의 본성이나 다른 곳은 바람이 사시사철 부는 것처럼 역동적일까.’
성하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나를 말없이 안아 주었다.
그래서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묘하게 슬퍼 보여서.
“휘르무트 님의 말이 사실이었구나.”
요이델은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곳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멋대로 들어와서 죄송해요. 조금만 단서를 찾아볼게요.
요이델은 마르셀리나와 했던 대화를 기억했다. 금술은 여러 종류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막대한 제물을 바친 것으로 보아 최고난도 마법인 ‘영혼 교환 마법’인 게 분명하다.
‘영혼 마법은 서로의 영혼이 상충하거나 담는 그릇의 나이가 어릴 때 실패 확률이 올라간답니다.’
언젠가 마르셀리나는 그렇게 말하며 요이델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입으로는 쿠키를 먹이면서.
‘왜 어릴수록 실패 확률이 높은가요?’
‘그건, 어린 영혼들은 주신의 보호를 가장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그렇게 답해 주었다. 요이델은 방을 훑어보았다. 특별히 사건의 흔적이 남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럼 이곳에서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는 뜻. 성 밖이었을까? 아니면 바깥 대륙? 아니야, 어려서 외부에 자주 나가지 않았다고 했어.
애초에 왜 메디아의 왕녀여야 했을까?
‘세상에! 이 개구리는 누가 들여왔니?’
‘제가 했어요, 엄마! 마법에 성공했어요! 귀엽죠?’
‘요 장난 꾸러기. ……엘, 벌써 소환 마법을 익힌 거야?’
들리는 목소리에 휙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방금, 누구?
━━━━⊱⋆⊰━━━━
“성하!”
요이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율리시스에게 다가가 안겼다.
쾅!
방문을 열어젖히고 와락 안긴 그녀를 본 율리시스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쿵쿵.
요이델의 심장이 전력 질주라도 하고 온 듯 거세게 뛰었다.
그녀의 심장이 가쁘게 뛰는 건,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도 알고 있었다. 상태를 공유하니까.
그래서 그녀를 만나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요이델은 겁에 질린 얼굴로 나타나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저, 어느 방에 갔어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율리시스는 요이델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품 안의 그녀를 어루만지듯 천천히 달래 안심시켰다.
그녀만이 안정을 취하는 건 아니었다. 그 역시 요이델에게서만 안정을 취했다. 빙벽이 아니라, 지금 제 곁에 있는 그녀에게서.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요이델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천천히 말씀해 주십시오.”
“기분이 이상해요.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데, 성하를 만날 때의 느낌은 전혀 아니에요. 그런데 진정이 안 돼요.”
율리시스는 당황에 덜덜 떠는 요이델을 눈치채고 그녀를 깊이 안아 주었다.
작은 몸이 절벽 끝에 매달린 가엾은 풀잎처럼 덜덜 떨고 있었다.
“성하, 제가 요보힐데 가문의 친자가 아니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럼 친가족은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까요?”
율리시스는 그녀의 물음에 눈을 찡그렸다.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데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다.
“……아니면.”
그 순간 요이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혹시 이미 찾은 걸까요?”
요이델이 혼란스러움으로 점철된 눈을 들고 말했다. 눈매에 그렁그렁 가득 찬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울음에 율리시스도 똑같이 얼굴을 찡그렸다. 하얀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으나, 계속 울고 마는 모습에 심장이 미어질 듯 아팠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품에 안고 볼록한 뒷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닳기라도 할까 아쉬워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였으나, 홀로 떠는 모습을 차마 두고 볼 수는 없어서.
“제게 부모님이 있는 거죠? 저도 낳아 주신 분이 분명히 있는 거죠? 저를 찾고 있겠죠?”
“물론 존재합니다. 당신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사실은, 정말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어요.”
그의 옷을 갈퀴처럼 사납게 움켜쥔 요이델이 우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니면, 제가…… 이곳 사람인가요?”
“……!”
“성하가 제게 이곳에 있겠냐고 물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왜냐면 성하는, 제가 라보르비치로 가는 것도 싫어하셨잖아요. 하지만 제게…… 여기서 머물러도 좋다고 하셨어요.”
요이델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떨궜다.
“대답해 주세요.”
“…….”
“아니면 두 번이나 버려져서, 제가 안쓰러워서 말을 못 해 주시는 건가요? 성하는 답을 알고 계시나요?”
“요이델 님, 당신은 사실.”
쾅!
문을 젖히고 다급히 성국 측 기사가 들어왔다. 허락하지 않은 무례였지만 창백하게 질린 표정이, 심상치 않은 일임을 말해 주었다.
“브리칼트 측에서 금술을 행한 죄를 시인했다고 합니다!”
시인이라면 황제가 직접 전말을 밝혔다는 뜻인가. 율리시스와 요이델이 동시에 시선을 교환한 순간.
다시 한번 기사가 소리쳤다.
“범인이 잡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