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요이델은 자신의 접시에 먹기 좋게 발라져 가지런히 놓인 게 다리를 바라보았다.
벌써 다섯 번째다. 가득 쌓아 주고, 다 먹으면 또 주고, 또또 주고.
“정말 고마운데요, 제게 양보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런가……. 먹기 불편할 것 같아서 편안하게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부담이었을 수도 있겠군요…….”
그의 축 처진 모습에 움찔 당황했다. 그러려던 건 아닌데! 어쩌지? 애써 준 건데 괜히 거절했나?
잠시 고민하다가 허겁지겁 먹고 빈 접시를 내밀었다.
“아, 아니에요! 알았어요! 좀만 더 주세요!”
“역시!”
활짝 웃는 휘르무트를 보며 요이델은 곤란함에 살짝 포크를 물었다. 꿈에 다리 없는 게 귀신이 나와서 다리를 돌려 달라고 엉엉 울지도 몰라.
앗, 저쪽 게랑 눈 마주쳤다.
메디아에서는 무려 3일 연속으로 해산물 요리가 제공됐다. 사건의 시작은 사흘 전.
‘우와, 바다 음식은 처음 먹어 봐요. 이름이 뭐예요? 진짜 맛있어요!’
식사 자리에서 무심코 감탄했던 게 실수였을까?
이후 사흘 내리 세끼와 간식, 간단한 정찬 등에 온통 해산물 요리가 등장했다.
그럴 때마다 차기 수장님은 갑각류나 생선 뼈를 검기를 이용해 싹 발라줬다. 검술 실력을 이런 데에 낭비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한테도 이렇게 잘해 주는데, 친동생을 찾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얼른 도와줘야겠어.’
조금은 그가 짠하게 느껴졌다. 점점 배가 불러서 게살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맛있어!’
역시 해산물은 맛있다. 성국은 바다가 없어서 싱싱한 바다 요리가 없으니까.
접시에 놓인 따끈한 게살은 입안에 넣자마자 사르륵 녹아내렸다. 포슬포슬 부드럽게 씹히는 고소한 맛. 너무 좋아.
식사의 마지막에는 바닐라 향이 나는 탱글탱글한 우유 푸딩이 등장했다. 위에 올려진 싱싱한 과일과 함께 한 입 찐득하게 떠서 입에 넣으려는 순간.
휘르무트가 요이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왜, 왜 저러지?
“드릴…… 까요?”
“어? 아, 아하하! 아니요, 아닙니다! 신관님이라 그런지 축복이 내린 듯 맛있게 잘 드시는군요. 혹시 양이 부족하진 않습니까?”
“으응, 아니에요. 배가 터질 것 같아요.”
“뼈밖에 없는데…….”
그는 무례할 만큼 진심으로 탄식했다. 어린 손주라도 보는 이 눈빛은 뭘까? 요이델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이 단란한 분위기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한 사람.
율리시스.
둘만의 다정한 세계에 그의 눈썹이 조금 치켜 올라갔다. 휘르무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격의 없지 않을 만큼만 교묘히 율리시스를 등졌다.
저건 즉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시선을 계속 받는 율리시스는 알았다.
‘타인의 적의가 이토록 신경 쓰이는 날이 올 줄 몰랐군.’
어느 정도 이해한다.
아이를 가질 생각은 결코 없으나 만에 하나 아주 먼 훗날…… 요이델을 쏙 빼닮은 아이들이 결혼 상대를 데려온다면 성별을 막론하고 평판 조사와 심사를 5차 정도는 실시할 테니까. 변변찮은 놈이 못 헤어진다고 버티면 몰래 제거해 후환을 없앨 것이다.
그러니 이런 냉대쯤이야.
“메디아의 차기 수장님.”
“……예, 성하.”
율리시스의 부름에 휘르무트의 유들유들한 미소가 더 짙어졌다. 눈빛은 꺼져라, 라는 말을 하고선.
하지만 율리시스는 여상히 미소 지었다. 확실히 말을 해야 한다. 요이델을 위하여.
“예정되어 있던 대담 외에 긴히 의견을 나누고 싶은 사안이 있습니다.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율리시스 님은 메디아랑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단둘이 담소도 나누러 갈 정도면 은근히 잘 맞는 거 아니야?’
성하도 딱히 곁에 두는 친구가 없으니까, 이 기회에 둘이 친해지면 좋을 텐데.
요이델은 홀로 뽈뽈 돌아다니며 메디아 성을 구경했다.
휘르무트의 안내로 성내 이곳저곳을 누볐지만 반의반도 다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뜻밖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여기는 엄청 화려하구나…….’
아름다운 환상 속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아서 입이 안 다물어졌다. 이래서 메디아를 대륙의 절경이라고 하는구나.
“델, 우리는 위에서 불러서 잠깐 좀 가 봐야 되는데, 정말 혼자 있어도 괜찮아?”
“어린애가 아닌걸, 당연히 괜찮지!”
걱정하는 두 호위기사를 보며 요이델이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 델!”
요이델은 손을 흔들어 주다가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리고 몰래 씩 웃었다.
‘사실 두 사람이 있으면 행동 범위가 제약되는걸.’
소중한 친구들이었지만 너무 보호가 과했다. 메디아에는 벌집도 많다면서 이상한 전신 그물 로브를 선물해 주지를 않나.
“좋은 아침입니다, 신관님.”
“네에, 좋은 아침이에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요이델은 본성의 복도를 걸으며 주위 사람들을 둘러봤다.
메디아 성의 사람들은 직위도 직책도 직업도 다양했다. 대신전 내의 사람들은 대부분 신관이었으니까, 이런 차이가 소소하게 즐거웠다.
“응? 막다른 길이네?”
룰루랄라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본성 내부의 작은 정원이 예쁘다고 해서 보고 싶었는데, 길이 막혔다.
하지만 괜찮다. 3층에 있는 다리로 건너가서 역으로 내려오면 되니까.
요이델은 왼쪽 끄트머리의 작은 문을 열었다. 거기엔 협소한 계단이 있었다.
‘이런 곳에는 비상용 계단이 있으니까.’
산책에 기분이 좋아진 요이델은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멈칫했다.
그런데 요보힐데 공작가에도 이런 계단이 있었나? 방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때가…… 있었던 걸까.
문득 이질감이 들었다. 성하는 내가 친자가 아니라고 했으니까, 어쩌면 더 어릴 적 진짜 부모님의 집에는 이런 게 있었을지도 모르지.
“말도 안 돼! 그런 걸 어떻게 기억하겠어.”
웃음이 나왔다. 기억조차 없을 어린 시절이니까. 나를 왜 입양 보냈는지조차 모르는 부모님이고.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싶다.
잠깐.
내가 친자가 아니라면, 요보힐데 공작 부부는 왜 나를 입양했을까?
‘그들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하고 말 사람들이지만 발목을 잡힐 거짓말은 굳이 하지 않았을 거야.’
허락 없이 방을 나서면 혼냈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성국으로 보내 버렸다.
마치 처치 곤란한 물건을 버리는 것처럼. 그들은 어린 요이델에게 말했다. 쓸모없다고.
심장이 두근두근 빨리 뛰었다. 요이델은 계단의 난간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시엔델은 공작 부부의 친자식이 맞았을 거야. 아끼고 사랑했으니까. 그럼 더욱 날 입양할 필요가 없어. 게다가 시엔델을…… 오빠라고 불렀잖아.’
만약 쌍둥이면 비슷하지만 먼저 태어난 것이니 그 호칭이 맞다. 하지만 한쪽이 입양된 거라면 시엔델이 먼저 집안에 있었거나 나이가 많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 나는…….
‘백치가 태어났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공작 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기억 밖으로 올라왔다.
‘콜록, 엄마 말은 기억하지 마. 요이델, 내가 약한 건 요이델의 잘못이 아니야.’
‘아파? 시시, 피, 콜록콜록해?’
‘아니아니, 딸기를 많이 먹었어. 이거 먹어, 요이델. 몰래 가져왔어. 대신 우리 비밀이야. 약속.’
똑같이 어리지만 의젓했던 녹색 눈의 남자애. 공작 부인의 외관을 많이 닮았지만 성정은 하나도 닮지 않았던 쌍둥이 오빠. 늘 침대에만 앉아 있던 아이. 시엔델.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었다.
‘위험해!’
‘시, 시시!’
우르릉, 천둥이 치던 밤. 벼락처럼 환한 빛이 내리치고 모든 게 폭발했다.
‘이제…… 나 때문에 널 괴롭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미안해…….’
그게 마지막 목소리였다.
쏟아지던 돌 더미. 피가 묻은지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빨갛던 머리카락. 내 머리는 빨간색이었다.
‘저 껍데기가 내 자식이라고?!’
자신을 보며 경멸하던 요보힐데 공작의 손가락.
‘여보…… 빨간 머리는 흔해요. 그게 아니면 저 애의 태생 탓이겠죠! 게다가 당신의 어머니도 빨간 머리잖아요.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아예 의심을 못 할 일도 아니지.’
‘하지만 우리 시엔델을 봐요. 당신과 똑같은 갈색 머리잖아요. 우리를 닮은 녹색 눈이에요.’
‘금발에 가깝지 않나? 당신의 머리 색인 것을!’
‘오, 예민하게 굴지 말아요. 빛에 따라 금색과 갈색, 우리 둘을 반씩 닮은 거죠. 분명한 당신의 친자예요. 이 결과지를 보고도 못 믿겠어요? 어떻게 나를 의심할 수가 있죠!’
쾅.
미친 것처럼 빨리 걷던 요이델은 마침내 위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숨이 가쁘고 눈물이 들어찼다.
“이 기억은 뭐야. 대, 대체 내가 왜…….”
머리를 감싼 요이델이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던 순간.
어떤 새하얀 문이 눈에 들어왔다.
토끼 무늬가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어린아이의 것 같은 방문.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대자 문이 서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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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대화를 원했지만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율리시스와 휘르무트 둘 중 누구도 가볍게 운을 뗄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벽에 서 있는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아이입니다.”
휘르무트는 율리시스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역시나 알고 계셨군요.”
“…….”
“……감사합니다.”
휘르무트는 뜻밖의 말을 했다. 일순간 율리시스조차 반응을 보일 정도로.
“그 아이가 지금처럼 밝게 지내는 데에 당신의 영향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있는 게 당연해서 화가 나고 다행스럽습니다.”
“…….”
“성하께서 가지고 계신 것들은 그 애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외적으로 특히.”
휘르무트는 율리시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웃음이 씁쓸했다.
의자에 앉아 앞으로 몸을 기울여 손깍지를 낀 휘르무트의 모습은 진중하고 차가웠다.
그의 핏빛 눈동자가 율리시스를 향했다.
“사실 화가 나서 당신을 때려눕힐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도 않고. 그 아이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싫습니다. 그 애가 많은 것을 모르는 상황에서 물고 뜯는 것도 어정쩡하지 않습니까?”
“이후에 받아들이겠습니다.”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휘르무트가 동생에 대해 말할 때에는 표정부터 확연히 차이가 났다. 반면 율리시스를 보는 눈빛은, 마치 역적을 보는 듯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그 아이의 짝으로 인정받길 원하신다면 저를 죽여야 할 겁니다.”
“……간단하군요.”
“네. 하지만 성하께서 결코 하지 못하시리라는 사실도 압니다.”
팽팽한 신경전에 둘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휘르무트의 말은 사실이다. 소중한 그녀의 가족이니 반대도 받아들이고, 그들을 건드릴 생각 없다.
아직은.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늦었지만 저 두 녀석을 성국에 보내 놓은 의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율리시스의 물음에 휘르무트가 웃었다. 그러나 점차 그의 얼굴이 굳어갔다.
“삼대륙 회의의 주인공들이 곧 옵니다. 하여, 성하께 청을 드립니다. 재생 마법 반지의 제작을 요청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율리시스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치료 마법 반지 말입니까.”
“네, 다친 자리가 금방 재생되도록. 어렵습니까?”
“당신이 다치면 그분이 슬퍼하실 겁니다.”
“당연히 제가 쓸 일은 없습니다. 상처의 회복은 여러 용도로 쓸모가 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율리시스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율리시스는 그와 동행했다.
“성하께 신중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본성의 어둡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상당히 잘 설계된 마법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성하께서 잘 아시다시피 메디아는 전 대륙에서 성수를 가장 많이 사들이고 있습니다. 그에 의구심을 가지신 적은 없습니까?”
없다. 관심 없었으니까.
하지만 율리시스는 그의 말뜻을 눈치챘다. 성수는, 궁극 마법을 사용할 때 효과가 크다.
끼이익.
덜컹, 쿵. 드르륵.
문이 열리고 어디선가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왔다. 족히 한 방의 두께는 될 법한 벽이 열리고 은밀한 방이 드러났다.
“당연히 여기서 보신 모든 것을 함구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걸음을 안쪽으로 옮기자 거대한 얼음 수정들이 보였다.
점차 미끄러지는 걸음과 뼈를 얼릴 듯한 추위. 이윽고 드러난 모습은…….
차가운 얼음 속, 바깥일은 모르고 편안히 잠에 빠진 듯한 모습.
또 하나의 요이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