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쾅!
휘르무트는 수장들의 집무실에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니! 아버지!”
“그래, 휘르무트. 어서 오렴.”
그들은 팔을 벌려 자신의 아들과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조금 못 봤다고 많이 야위었구나.”
“갑자기 왜 안으시…… 아, 어머니. 말로 해 주셔도 알아듣습니다.”
“대화 좋지. 이제 우리 아들이 한 미친 일에 대해 들어 볼까?”
굽실대는 금발을 나부끼는 아름다운 여자는 휘르무트와 꼭 닮은 얼굴로 그를 부서지게 안았다.
정말로 부서뜨릴 것처럼 목을 휘감아 제압한 그녀는 이를 으득 갈았다.
“사고 치지 말랬지. 어디 감히 삼대륙 회의를 마음대로 열어? 어?”
“여, 여보! 애 질식해요!”
“얘가 진짜, 어쩐지 요즘 잠잠한 것 같더라니. 차분해졌길래 정신 좀 차렸나 기대해서 믿고 맡겼더니, 너 진짜!”
“푸하!”
눈동자 색마저 똑같은 빨간색이었다. 그녀를 말리는 남편의 분홍색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찾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수장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자세하게 말해 봐.”
그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 한번 묻는 말에 실낱같은 기대가 엮였다.
바닥으로 툭 떨어져 풀려난 휘르무트는 얼굴을 울 것처럼 찌푸렸다가 씩 웃었다.
“그 애가 제 발로 우리에게 나타나 줬습니다. 확인을 마쳤습니다. 동생이 맞아요.”
“아, 아아…….”
수장들은 말을 잊은 채 과거를 하나씩 되짚었다. 이 감격스러운 마음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
충격받은 듯 입만 달싹이던 수장 내외의 입가가 서서히 움직였다.
“……건강하니?”
━━━━⊱⋆⊰━━━━
요이델은 소파 주위를 분주하게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심장이 콩닥콩닥 가쁘게 뛰어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성하, 저 어떡하죠?”
요이델은 가만히 앉아 있던 율리시스에게 재빠르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리고 다시 우왕좌왕 걸으며 초조함에 양손을 맞잡았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요?”
요이델은 이번에도 질문만 남기고 돌아다녔다.
율리시스는 지금 그녀의 행동이 긴장감을 덜어 내기 위한 단순한 혼잣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끼고 요이델을 찾아 정원으로 갔을 때.
그는 울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요이델이 결국 스스로 해낼 줄 알았다. 그가 아는 요이델은 그렇게 지극히 멋진 사람이었으므로.
“요이델 님, 돌아다니시는 것도 건강에 좋으나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불안을 더하기에 가만히 앉아 계시는 게 더 좋습니다. 원하신다면 더 나은 방도로 진정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정말요?”
요이델이 쪼르르 다가가자 율리시스는 묘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그녀를 당겨 안았다.
“포옹은 심신 안정에 무엇보다도 효능이 좋습니다.”
“후우, 그런 것 같아요. 정말 조금 진정됐어요. 고마워요!”
흑심 가득한 대답에 긍정적으로 답해 주는 것은 조금 곤란하지만.
율리시스는 가르침을 받는 듯 품에 안겨 진지하게 경청하는 요이델을 보고 피식 웃었다.
“호흡은 천천히. 조금 더 깊이 들이마시고, 느리게 내쉬시면 됩니다.”
그녀는 그와의 스킨십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떨고 있었다. 이토록 긴장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래서 가엾고, 제 일보다 기뻤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진정시키고자 안은 것인데 왜 더 껴안고 싶어지는가. 진정해야 할 건 짐승 같은 본인의 마음이었다.
“잠깐 도와주세요, 율리시스 님.”
그때 요이델이 그의 턱을 감싸고 제게로 끌어당겨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한 경계에서 속삭였다.
“지금은 제게 확실한 응원이 필요해요.”
은근하게 속삭인 요이델이 그에게 깊게 입 맞췄다. 그가 기운을 받아 갔듯이, 이번에는 그녀의 차례였다.
눈도 감지 못한 율리시스가 어느새 자신을 휘두르게 된 반려를 바라보았다.
열렬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그를 훑었다.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게 요이델은 그를 마구 가지고 놀았다.
언제 이렇게 되었나.
생각을 쏟다가 감각에 집중하며 그녀를 당기려는 순간, 요이델이 아직 한참 아쉬운 단맛을 거두어 갔다.
이제 와서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힌 요이델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율리시스 님의 말이 맞았어요. 쓰러졌을 때보다 훨씬 기운이 생기네요.”
“그리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면…….”
율리시스는 가시지 않은 당혹감으로 옆으로 반쯤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했다. 영혼을 빼앗긴 듯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가 힘을 가져간 걸로 비척거리는 게 아니었다. 좋았으나 고문당한 듯한 이 감질나는 아픔은 무엇인지.
율리시스는 몇 대는 얻어맞은 듯 손쓸 수 없는 충격을 느꼈다.
그러다 뭔가를 느끼고 다시 상체를 일으켰다.
“커다란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그는 문을 바라보았다.
“가족과는 가족의 시간답게 온전히 보내시기를.”
축복하듯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춘 그는 자진해서 물러나 줬다.
방금의 일을 들켰다가는 아무리 그여도 살아남지 못한다. 율리시스는 시의적절한 때를 파악할 줄 아는 남자였다.
그가 나간 후 이어서 들리는 발소리.
요이델은 그들이 온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녀도 나가지 못했고, 저쪽에서 들어오지도 못했다. 오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문 뒤에 멈춰 서서 문을 열지도 못하고 주저하며, 차마 부르지도 못하는 이름을 달싹이는 듯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요이델이 용기를 내어 문에 다가갔다.
그 순간 문이 양쪽에서 동시에 당겨졌다.
덜컹.
똑같이 문을 열어 버려서 오히려 문이 열리지 않았다. 긴장감에 얼어 있던 요이델은 그만…….
“풋.”
웃음을 터뜨렸다.
이 긴장 가득한 상황에서 웃음이 나왔다. 유독 밝고 기쁜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건 마침내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가족.
진짜 가짜를 따질 필요 없는, 오로지 유일한 가족.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지자 그들은 거리를 두고 섰다. 수장들이 먼저 다가와 몸을 숙였다.
태양 같은 금색 머리에 빨간 눈, 그리고 언젠가 휘스가 말한 대로 근육 가득한 분홍 머리 아저씨. 고아한 외관이 그들의 위상을 알려 주었다.
그들은 울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말을 꺼내기 주저하다가,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소개를 해도 될까? 나는 라히에휘엘. 저 아저씨는 샨하르야.”
“내 기회를 빼앗지 마, 여보.”
요이델은 기쁜 마음과 다르게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분홍색 머리가 예뻐요…….”
그 작은 한마디에 부부는 이를 꽉 물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눈은 나를 닮았어. 생김새도 너는 나를 더 많이 닮았지. 엘, 릴리메이엘, 우리 딸…….”
“많이 힘들진 않았니?”
“정말, 너를 뭐라고 불러 주면 좋겠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우리한테 엄마 아빠라고 하기는 빠른가? 알아보겠니? 배는 안 고파? 잠은, 키는 많이 컸구나. 언제 이렇게…… 아가…….”
다정한 엄마 아빠의 목소리에 지난날이 눈처럼 녹아내렸다. 비로소 봄이었다.
“기다리게 해서 엄마 아빠가 미안해……. 너무 미안해.”
그들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날, 본성을 가득 울리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정을 아는 극히 일부 사람들은 모두 눈과 귀를 감고 마음 깊이 행복을 빌었다.
━━━━⊱⋆⊰━━━━
‘이미 예상한 바 아닌가.’
율리시스는 요이델 몫으로 배정되었던 텅 빈 귀빈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청소를 얼마나 잘했는지 분홍색 머리카락 한 올조차 베갯잇에 남아 있지 않았다.
벌써 못 본 지 하루나 되었다. 공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의 소유는 아니었으나, 요이델이 타인에게 나눠 줄 사랑에 분명한 제 몫이 있기를 바랐다.
‘이제 그녀의 신변 위협은 적어질 테니 다행이군.’
철저한 보호를 받을 테니까.
성국 하나만 있을 때보다 더.
그러나 모두가 신관으로, 요보힐데 공작가의 아이로 알고 있는 그녀가 사실은 메디아의 왕녀였다는 사실을 공표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는 요이델이 누웠던 침대에 머리를 대고 얕은 수면에 잠겼다.
“하…….”
율리시스는 꿈 자체를 거의 꾸지 않았지만, 요이델을 만나고 난 뒤로 때때로 그녀의 생각에 잠을 설치긴 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약한 구석이었다.
오늘도 역시 그의 꿈에 요이델이 나왔다. 그러나 자신을 떠나는 꿈이었다.
“제가 가야 할 곳을 찾았어요.”
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내친 요이델이 그를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모님의 곁에 있고 싶어요. 엄마랑 아빠랑, 오빠랑. 저는 원래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인 것 같아요. 성하도 좋아해요. 하지만…… 스무 해 만에 겨우 만난 가족과 다시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
이게 꿈속인 걸 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잡지 못한다. 가슴이 썩어 들어가는 게 이런 건가.
떠나간 따스함 대신 표출 못 한 불안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요이델!”
그녀와 헤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가 뒷모습에 외쳤으나 요이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영영…….
“어떡하지? 이럴 게 아니라 의원을, 아니 제가 마법을……. 정신이 들어요? 아파요? 괜찮아요?”
그때 덜덜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
“율리시스 님, 제발 일어나요!”
환상이 아닌 그녀가 그를 보며 주륵 울고 있었다.
조금 전 이상함을 느낀 요이델은 겨우 그를 찾아냈다. 자신이 쓰던 침대에 누워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요이델은 떨리는 손으로 율리시스의 뺨을 쓸었다.
아직 잠기운에 취한 그가 미적지근한 시선을 두다가 그녀를 당겨 품에 안았다. 그를 꽉 채우는 현실의 온기였다.
“많이 아팠어요?”
걱정하며 재잘재잘 자신을 쪼는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율리시스는 겨우 숨 쉴 곳을 찾은 사람처럼 낮게 호흡을 내쉬었다.
“진짜 당신인가.”
“악몽을 꾼 거예요? 저는 성하가…… 많이 아픈 줄 알고.”
“나도 당신을 좋아해.”
“네? 앗…… 알아요. 으음, 그, 그리고 저도요.”
“저도요, 라는 말보다 더 확실하게 해 줘.”
“좋아해요, 율리시스 님.”
율리시스가 피식 웃자 요이델은 매우 엄한 얼굴로 그의 콧대를 살짝 꼬집었다.
“하지만 반말하면 나도 율리야, 라고 말해버릴 거예요. 그건 어린 성하거나, 엄청 취했을 때만 봐준다고요.”
“가혹하시긴…….”
같이 누워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은 웃음을 흘렸다.
몸을 일으킨 요이델은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너른 등이 땀에 젖은 데다 그의 심장이 아직도 조금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성하의 악몽은 나 때문이었구나.’
이제 그녀는 알았다. 율리시스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가족을 만난 뒤 요이델은 고민했다. 아직은 ‘엄마, 아빠’라고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어색했지만, 소중한 가족이다.
그들 역시 요이델을 조심스럽게 대했다. 잃어버린 세월을 채우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 과분한 사랑을 느꼈다.
그러니까,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율리시스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다.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뺨에 가볍게 뽀뽀한 후 그를 바라봤다.
“율리시스 님, 오늘 저녁 자리에 함께해 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