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그날이라면, 아마도 금술이 행해지기 전이었겠지.’
농담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키시아는 올가를 구해 줬던 사람이다. 믿을 만하다는 얘기다.
“그때도 이곳을 지키셨나요?”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린 기사단장을 했던 시기가 아가씨를 잃어버렸을 때쯤이었죠.”
“혹시 제가 기사님과 있었나요?”
“항상 함께였습니다.”
요이델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가씨 주위로 어두운 구름과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빛이 탁, 퍼지더니…….”
그녀는 기억을 회상하며 눈을 찡그렸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어요. 어느새 다친 건지는 몰라도 침상 위에서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영영 눈을 뜨지 못하셨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요이델은 초록색이 가득한 주변을 바라보았다. 청명한 기운이 흘러넘치는 왕가의 무덤.
조각 장식물로 보이는 비석들을 보니 뭔가가 떠오를 듯도 했다.
조각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이곳을…….
분명히 좋아했다. 나는 특히 이곳에 있었던 아주 오래된 장식을 좋아했어.
여기에 몰래 숨어 있으면 오라버니와 부모님의 과도한 관심을 피할 수도 있고. 나비처럼 작고 예쁜 정령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다.
“혹시 이곳에 뭔가가 있었나요?”
묘비가 즐비한 가운데, 뭔가가 있다가 없어진 흔적이 그대로 남은 곳이 있었다.
“먼 옛날, 메디아에 축복을 내려 줬다고 전해지는 신수가 잠든 곳이었습니다. 아득하게 오래된 얘기지만요.”
“이곳에 잠든 신수가 있었나요?”
“네, 아주 희귀한 일입니다. 오래전 파손되어서 흔적을 찾기 힘들어졌습니다만.”
신수들이 잠드는 성국이 아니라, 이곳에도 흔적이 있다니.
그러고 보니 플로도 메디아에서 발견되어 화친의 증표로 줬다고 했지.
요이델은 조금은 납득했다. 그때 뜨거운 시선으로 자신을 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기사는 불탈 것 같은 눈빛으로 요이델을 응시했다.
그녀는 손짓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요만하실 때에는 키샤! 하면서 뽀짝뽀짝 돌아다니셨는데, 기억하십니까?”
“앗, 저…….”
“키시아예요. 키시아라고 불러 주세요, 아가씨.”
“죄송해요. 또렷하게 기억은 나지 않아요. 저, 하지만…… 휘스랑 똑같이 생기셔서 놀랍고 기뻤어요!”
“제가 아가씨를 좀 더 제대로 보호했더라면…….”
키시아는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눈이 마주치면 곧장 시선을 떨구는게, 아직 그날의 일에 대한 미안함이 큰 듯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결국 돌아왔으니 괜찮았다. 그녀의 잘못이 있다더라도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요이델은 키시아를 제대로 보기 위해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녀는 눈을 피했다. 결국 손을 잡고 나서야 키시아는 동그란 사슴 같은 눈빛으로 요이델을 마주 봤다.
“저는 라이랑 휘스가 있어서 무척 잘 지냈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키시아.”
“그 애들이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그녀는 금방 또 밝게 웃었다. 아무래도 휘스테론의 그런 면은 어머니를 닮은 듯했다.
“그런데 예전부터 궁금했어요. 휘스랑 라이는 왜 교역로 바깥에 나간 건가요?”
“그건 제가 그 애들을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직접이요? 하지만…… 그럼 떨어져서 지내야 하잖아요.”
“아가씨를 그렇게 잃어버리고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쾅! 키시아가 내리쳐서 테이블이 우르릉 떨렸다.
“앗! 깜짝 놀랐어요.”
“흐어억, 죄송합니다! 제가 또!”
“괜찮아요. 키시아는 유쾌한 분이네요.”
웃으며 말하자 키시아는 기쁜 듯 같이 웃었다. 그녀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기사단장을 사임하고 이곳에서 왕가의 무덤을 지키며, 혹시나 아가씨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시지 않을까, 뿅 나타나시지 않을까, 기다렸습니다.”
“혹시 벌을 받으신 건가요?”
“아닙니다. 수장님들께서는 이런 저를 용서해 주셨지만 저는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요이델이 오해할까 봐 바로 덧붙였다.
“다만 저는 이곳을 비울 수 없으니, 제 아들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아가씨를 찾아오라고 했지요. 비교적 우호적인 성국에 보내어 아가씨를 찾게 했더니…… 이렇게!”
그녀는 울먹임을 참지 못했다. 키시아는 휘스테론과 똑같이 생겼지만, 마음은 훨씬 여린 것 같았다.
그러나 곧장 제 코를 팍팍 두드려서 눈물을 참았다. 여리다는 말은 취소. 엄청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 분명히 여기였어. 우르릉 치던 천둥소리와…… 나는 뭘 필사적으로 붙잡았었어. 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분명히 기억했다.
그러다 문득 키시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키시아는 눈동자 색도 휘스랑 똑같군요? 보라색 눈에 파랑이 있어요.”
“아, 맞습니다. 그 애는 저랑 특성이 비슷해서 민첩도가 높지요.”
“눈 색과 관련이 있나요?”
“그럼요! 아가씨께서는 라히에 님과 똑같이 빨간 눈에 아름다운 금빛을 띤 눈을 지니셨지요. 라히에 님을 닮아 영특하기로 유명하셨습니다.”
그녀는 반가운 듯 웃으며 얘기했다. 그런 것과 관련이 있었구나. 엄마와 닮았다니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특성이 비슷하다는 건 어떤 뜻이에요?”
“말 그대로 능력치가 닮았다는 것이지요. 라히에 님의 능력은 특히 대단해서 꼬마 아가씨께서 눈을 뜨셨을 때 모두가 탄성을 질렀답니다.”
“하지만 오라버니도 빨간 눈인걸요?”
“휘르무트 님께서는 보랏빛을 공존색으로 지니고 계셔서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하하.”
그런 차이가 있는 줄은 몰랐다.
“혹시 그 얘기가 메디아 안에서만 돌았나요?”
“아니요, 수장님들께서는 아가씨를 자랑하기 위해 배까지 띄우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셨지요.”
“……혹시 브리칼트도 알았을까요?”
“물론입니다! 대륙 회의가 있을 때마다 자랑을 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삼대륙 회의가…….”
요이델은 키시아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황제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삼대륙 회의에도 거의 나타나지 않고, 항상 대리인을 참석시켰어.’
무례한 일이었지만 국력이 막강하여 문제를 삼지 못했었다.
성하는 그들의 무례에는 관심이 없고, 부모님도 신경 쓸 분들이 아니었다. 그럼 설마.
“그래서 그때 꼬마 아가씨께서 예쁜 드레스를 입으셨는데―”
“키시아, 말하는데 미안해요. 하지만 하나 물어볼 게 있어요.”
“네! 아가씨. 명만 내려 주십시오!”
“혹시 삼대륙 회의 때 참석하셨나요?”
요이델의 물음에 키시아는 번뜩 생각했다.
“아아! 애들 아빠가 한때 수장님들의 보좌관 노릇을 해서 저와 그이가 다 따라갔습니다.”
“그럼 브리칼트의 대리자로 누가 왔었는지 기억하나요?”
“물론입니다! 썩을 놈들이었죠!”
키시아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요보힐데라는 공작가였습니다. 본인들이 황제인 줄 알고 오만이 하늘을 찌를 듯 굴었죠.”
“고마워요!”
요이델은 키시아를 덥석 껴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요이델을 안고 붕붕 돌렸다.
“꺄아악!”
“꼬마 아가씨께서 이렇게 크시다니. 믿기지가 않는군요.”
아련하게 말한 키시아는 요이델을 안전하게 내려 주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키시아는 좋은 사람 같은데…….
“이제 제가 돌아왔으니까 키시아도 다시 기사단으로 복귀하면 좋지 않을까요? 여기도 좋지만, 쓸쓸할 것 같아요.”
“……그게, 실은.”
키시아는 머뭇거리다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이 생활이 너무 편해요!”
“네?”
“험난하게 구르는 기사단장 노릇을 하다가 여기서 자연과 함께 노닥거리니 너무 좋습니다. 크흡, 왕녀님이신 아가씨에게 드릴 말은 아니지만 여기가 너무 좋습니다!”
“……아!”
예상 밖이었지만 요이델도 그녀의 뜻에 동의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곳에서 사는 게 맞다.
“저 먼저 가 볼게요! 고마워요, 키시아! 나중에 또 만나러 올게요!”
요이델은 본성으로 뛰어갔다. 키시아 덕분에 과거의 일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요보힐데 공작가는 이미 나를 알고 있었어. 일부러 데려간 거야.’
아마도 친자식이었던 시엔델을 위하여. 처음부터 그랬겠지. 그들은 완벽한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자신의 명예에 잡음이 생기지 않는 건강하고 튼튼하고 똑똑한.
하지만 이상했다. 금술로 지식을 뺏는 마법이 가능하다지만, 시엔델이 영리하게 태어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기억 속 시엔델은 따스하고 똑똑했다.
시기상 금술이 행해진 건 공작가의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전이고.
그럼 그들은 시엔델이 아플 걸 미리 알았을까? 어떻게?
‘……머리가 어지러워. 게다가 그날 나는, 혼자 있던 게 아니었어. 뭐였을까, 뭔가가 내게 말을 걸었어. 그게 뭐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이럴 게 아니라 기억을 좀 더 자세히 봐야겠다.
그리고 그걸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 있었다.
성하.
요이델은 염치와 진실 사이에서 고뇌했다.
‘스킨십 하지 말자고 했으면서, 번복하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율리시스의 능력은 기억을 읽는 것. 페어링을 활용하면 상대의 힘을 전달받는 것의 일환으로, 더 나아가 그 능력도 일시적으로 취득할 수 있다.
물론 상호 동의를 전제로.
지금은 속마음도 전달할 수 있을 만큼 깊어졌으니까 시도해도 성공 확률이 높겠지.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혼자서 기억을 살피고 싶었다. 그가 보기에 좋은 기억도 아닐 테고 자신의 일이었으니까.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방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쾅―!
“율리시스 님, 혹시 지금 입 좀 맞추실 수 있으신가요?!”
그의 개인 공간 안에 있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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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 안 했어요…….”
절망하는 요이델을 보며 율리시스는 인내심을 다하여 웃음을 참았다.
여기서 웃어 버리면 화가 잔뜩 난 그의 병아리가 자신을 쪼아 버리겠지.
“다들 제가, 흑, 변태인 줄 알 거 아니에요?!”
“괜찮을 겁니다.”
율리시스는 방 귀퉁이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푹 숙인 요이델을 안아 들었다.
입을 우물거리던 요이델은 울먹이는 눈으로 율리시스를 올려다봤다.
“정말 괜찮을까요?”
“진실을 듣길 원하십니까, 당신을 생각하는 위로를 듣고 싶으십니까.”
“……후자요.”
“적어도 저는 괜찮습니다. 요이델 님께서는 원래 음흉하십니다. 모르셨습니까? 그런 모습도 오히려 저로서는 환영할 일입니다만.”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어느 쪽이에요?! 위로예요, 진실이에요? 놀리는 거죠?”
요이델은 그의 가슴을 팍팍 두드리고 버둥거렸다. 율리시스는 여전히 상냥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절망도 몸 편한 곳에서 하십시오. 차가운 바닥 말고.”
그는 요이델을 소파에 내려 주었다.
“……방에서 모임이라도 가졌던 거예요?”
“그것은 아니지만 요이델 님의 오라버니와 긴한 말을 할 예정은 있었습니다.”
“그럼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율리시스는 옆에 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시려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아! 그게, 실은 그날의 사건을 알 수 있는 단서를 더 발견했어요. 대륙 회의 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좋은 일이군요.”
“네, 그래서 제가 더 자세히 직접 보고 싶어서 성하의 그…… 염치는 정말 없지만 페어링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그걸 하기 위해서는 페어링이 필요하다. 요이델은 버들보다 더 격렬히 떨었다.
“그러니까, 기억을 읽는 능력을 잠깐 빌리려고…… 크흠, 그랬어요.”
이리저리 휘날리는 갈대도 지금 요이델의 몸보다는 단단할 듯했다.
“그래서, 제 능력을 어떻게 가져가실 계획이십니까?”
“그…… 그러니까 말씀드린 대로 그걸 좀 해야 돼요. 아주 잠깐만요.”
“무엇을?”
“아시면서…….”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입 밖으로 내 주셔야 알 듯도 한데.”
율리시스의 눈이 짓궂게 휘어졌다.
요이델은 먼 곳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언제는 스킨십을 하지 말자 하시더니.”
“맞아요. 제가 그랬죠…… 그럼 읽어 주실 수 있나요? 귀찮으실 거고 좋은 기억도 아닐 것 같아서…….”
“스스로 성장하시려는 시도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 것 같은 기분이라.”
율리시스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갑자기 기억이 잘 안 나는 듯합니다.”
“손 좀 빌려주세요.”
“들리지 않습니다.”
“키, 키스요.”
“왜?”
“율리시스 님!”
발끈해 외쳤지만 그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맡겨 놓으셨습니까?”
“……그, 그건 아니지만.”
“당당하게 대담한 요구를 하십니다. 태양이 찬란히 떠 있는 와중에 들어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요구라니.”
그가 말도 안 되게 부끄러운 척을 하며 입가를 가렸다. 그는 살짝 힐난하듯 요이델을 곁눈질했다.
“제 반려님의 머릿속은 믿기 힘들만큼 새카맣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