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꺄아악! 어, 언제부터 깨어 있던 거예요? 그런데 왜 가만히 있었어요?”
요이델은 뒤로 재빠르게 물러나 주저앉았다.
다 봤을까? 내가 바보같이 고민하던 것도?
벌렁거리는 심장은 둘째 치고 볼이 다 화끈거렸다.
그런데 놀란 자신과 다르게 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요한 태도로 자신을 주시할 뿐이었다.
“저 혹시…… 소리 내기 어렵나요?”
어두운 감옥에서 느껴지는 서로의 숨소리에 솜털이 쭈뼛 곤두섰다.
‘눈을 뜨니까 더 예뻐.’
요이델은 흠칫하며 고개를 저었다. 자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여기 있는 것 자체가 수상하잖아. 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저기…….”
요이델이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더 가까이서 보니까 눈빛도 조금 날카롭고, 어쩐지 불량해 보이는데…….
“혹시 극악무도한 범죄자세요?”
“그걸 제게 여쭈시는 겁니까.”
“우와, 목소리도 좋네요…….”
요이델은 제 입을 합! 막아 버렸다. 그 소리가 여기서 왜 나와?
“그, 그게요. 당사자에게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보통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갇히거나 묶이더라고요…… 하핫. 그런데 저도 여기 있네요?”
“…….”
“장난인데. 재미없었죠? 그냥 왠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 같아서 궁금했어요.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 어쩌다 여기에 갇혔는지요. 혹시 흉악한 일을 저지른 건지…….”
스스로 말하고도 어이가 없던 요이델이 머쓱하게 웃으며 그를 응시했다. 파란 눈이 극도로 차분했다.
“그런 걸 당사자에게 묻는 건 위험하지 않습니까. 흉흉한 범죄자를 자극시켜 좋을 게 없을 텐데요.”
“아, 그렇죠.”
요이델은 맞다는 듯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이 그래서 제가 더 셀 것 같아요.”
위로 모아져 묶여 있는 그의 손목을 가리켰다. 방긋 웃는 웃음에 남자는 조금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혹시, 저희 만난 적이 있나요?”
“…….”
“저는 왜 그쪽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지 모르겠어요. 정말 혹시, 스쳐 지나가면서 본 사이도 아닌 건가요? 이름은…… 알려 줄 수 있나요?”
요이델의 물음에도 그는 그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휴…….”
긴장되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당장 이 감옥에서 나가야 한다는 건 안다. 상식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이 사람을 치료해 주길 바랐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데 스스로 납득되지도 않았다.
이 사람이 뭐길래, 대체 뭐길래.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치료 마법이 다 끝나지 않았어요. 상처가 심하니까 잠깐 손 좀 댈게요. 그쪽을 해치려는 건 아니에요.”
그에게 한 발씩 다가가 거리를 좁혔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쿵쿵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잘그락.
남자의 손목과 발목이 묶인 묵직한 쇠사슬이 발에 채였다. 가까이서 보니 꼴이 꽤 엉망이었다. 입술은 부르트고 메말라 피가 고여서 보기만 해도 쓰렸다.
‘엄청 아플 거야…….’
요이델은 제가 더 아픈 듯 눈썹을 아래로 축 일그러뜨렸다.
그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그는 의외로 자신을 거부하지 않았다.
“제가 치료해 줬다고 말하면 안 돼요.”
“…….”
“대답은 안 해 줘도 괜찮아요. 안 하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을게요.”
예민해 보이는 남자는 가만히 앉아 치료를 받았다.
다만 상처 부위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사선에서 올라오는 시선이 따가웠다.
거리도 너무 긴밀했다.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입술이 맞닿을 만큼.
온기는 이미 닿았다.
그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 금방이라도 둘 사이의 경계선이 꺾여 버릴 듯 조마조마했다.
그의 숨이 요이델의 손가락에 느껴지고 남자는 알면서도 입술을 달싹거렸다.
요이델의 얼굴이 발그스름해지고, 그녀를 보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감옥에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요이델은 떨리는 시선으로 그를 마주 봤다.
“당신도 위험한 사람인가요?”
━━━━⊱⋆⊰━━━━
율리시스는 지금 그녀의 모습이 환영 같기도 하고, 인식하면 사라져 버릴 꿈 같기도 해서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반려였다.
마음의 반쪽을 이곳에 놓았다.
그게 아니라면 지난날 동안 품고 산 텅 빈 심장은 설명이 안 됐다.
“안녕하세요?”
그녀다운 첫인사에 율리시스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이곳까지 찾아와 무엇을 어쩌려던 건 아니었다. 뭘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못 하는 이에게 ‘나와 같이 가겠느냐’고 물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 눈길 하나가 미치도록 그리운 건 왜인지.
이성으로 통제 불가능한 정상 범주 너머의 일렁임이었다.
“성하의 부탁대로 동생의 데뷔탕트는 가장 성대하게 개최할 예정입니다.”
“들었습니다. 오늘이라고.”
휘르무트는 이른 새벽 성국을 직접 찾아와 그를 알현했다. 진행 과정은 율리시스도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지난 상점 거리에서 요이델이 무엇을 부러워했는지 알았으니까.
그녀의 데뷔탕트 드레스부터 모든 계획의 초안을 작성하여 보낸 이가 바로 율리시스였다.
다만 그 연회는 어디에도 갈 수 있는 그가 절대로 참석할 수 없는 자리였다.
“당신이 그런 일에 부탁이라는 말까지 사용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고개 숙이는 것도 마다않는 모습이시라니. 제가 당신의 부하였다면 걱정을 했겠지만……. 그 아이의 오빠로서는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휘르무트는 빛나는 작은 결정 하나를 내려놓았다.
“단 한 번, 일회성으로 사용 가능한 직통 워프게이트입니다.”
그 말에는 율리시스조차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성하께서 게이트 재개에 대한 안건을 꺼내시지 않았습니까. 아직 시험 단계지만 저도 이걸로 왔으니 잘못될 위험은 없을 겁니다. 운이 나쁘면 잘못 떨어지겠지만.”
“…….”
“전 분명히 전달드렸습니다.”
얼굴에 나름의 근심이 있던 휘르무트가 속이 시원한 듯 웃었다.
“오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하십시오. 오실 거면 그 날카로워진 기색은 누그러뜨리길 추천드립니다. 이전의 당신이 도저히 연상되지 않아서, 오던 기억도 도망가겠습니다.”
그러나 휘르무트는 초대장은 주지 않았다.
그래서 무단 침입했다.
약간의 곤란은 있었지만, 그쯤이야.
그는 서늘해진 목덜미를 상기했다.
‘머리가 짧아지긴 했군.’
사실 몸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다만 이 꼴로 있으면 마음 약한 그녀가 자신을 가엾이 여겨 줄 걸 알았다.
메디아의 성에서 가장 먼저 그를 맞닥뜨린 휘르무트조차 황당함에 멍해진 기색이었다. 아무리 로브를 뒤집어써서 알아볼 수 없었다 한들, 감히 성황을 잡아 온 경비병들을 다그치지도 못했다.
율리시스는 지척에서 눈을 깜빡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위험하냐고 물으셨습니까.”
여기 있는 동안 그런 상상을 했다.
그녀가 자신을 알아봐 주는, 기억해 내 주는, 찾아와 주는 상상을.
그런데 요이델이 눈앞에 있다.
위험으로 따지자면 지금의 자신은 터지기 직전인 구제 불능한 쓰레기였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보며 낮게 신음했다.
“아주 많이.”
“……그렇게 보이진 않아요.”
순진한 말에 율리시스는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맑고 아름답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보다, 어쩌면 더더욱.
요이델은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개화하리라. 그가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할 곳에서.
언젠가 자신이 아닌 누군가와 정상적이고 평범한, 동화 같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
아마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좋은 사람이니 많은 사랑을 받을 거고, 머잖아 구혼장이 물밀 듯이 쏟아지겠지. 그럼 그중 괜찮은 어떤 남자와…….
‘결혼도 할 수 있겠군.’
자신과 함께할 때와 다르게 고생하지 않고 울 일도 없이 솔직하고 다정한 부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면서 평범하게 사랑하고 사랑받고, 계속 즐거이.
머잖은 미래에 요이델을 닮은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다. 그가 아닌 다른 이와 맺게 될 사랑의 결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또 다른 행복을 그리며 설핏 미소 지었다.
……그딴 꼴 눈 뜨고 볼 생각 없다.
율리시스는 숨길 수 없는 짙은 눈빛으로 요이델을 바라봤다.
“선을 넘어오시면 위험해질 겁니다.”
그 말에 요이델이 겁먹은 눈빛으로 치료를 멈췄다.
뒤틀린 소유욕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는 그녀가 자신만을 사랑해 주길 원했다.
행복을 빌어 주겠다는 빌어먹게 멍청한 소리도 할 생각 없다.
안녕 따위나 빌어 주자고 온 게 아니다.
그딴 걸 빌 틈이 있다면 훗날 그녀와 사랑에 빠질 남자의 명복이나 빌어 주겠다.
‘추악하다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나를 봐 줘.’
그게 거짓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흔들리던 율리시스의 마음이 썩어 문드러져 혼탁한 방향으로 바로잡혔다.
“얼굴이 찡그려졌어요. 많이 아파요?”
그가 자신의 욕망과 요이델을 위하는 온전한 마음을 저울질하던 그때, 뺨에 따스한 손길이 닿았다.
‘젠장.’
요이델의 말에 정신이 바로 들었다.
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쩌면 기다리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저도 요즘 두통이 심해서 아프면 얼마나 힘든지 알거든요. 지금도 막 지끈지끈해요.”
요이델의 말에 율리시스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건 본성의 후원에 핀 식인 꽃에게 쓸린 상처네요. 맞죠?”
“…….”
“어쩌다 이렇게 많이 긁힌 거예요. 혹시 경비용 괴수에게 물린 건가요?”
와중에도 여전히 다정하고 상냥한 그녀를 보며 마음이 씁쓸해졌다.
“아프지 않습니다.”
“거짓말. 피부가 철도 아니고 안 아플 리 없잖아요.”
“제 피가 특별해서.”
“뭐, 성하라도 돼요?”
율리시스는 순간 쿨럭거렸다. 요이델은 한숨 쉬며 그의 입가까지 말끔히 치료해 주었다.
“허세가 대단하시네요. 구속구는 못 풀어 주지만, 그래도 흐르는 피는 멎게 해야죠. 뭐가 안 아파요?”
“…….”
“이 감옥에는 아무도 없네요. 저도 이런 데에 갇혀 봐서 아는데, 정말 무섭고 고립된 느낌이거든요. 점점 더 조마조마해질걸요?”
요이델은 그의 곁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쫑알거렸다.
“그렇군요.”
피식 웃은 율리시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춥고 쓸쓸한 곳일 줄 알았다면, 두 번씩이나 당신을 홀로 있게 두진 않았을 텐데.”
그의 입가에 자조하듯 쓴웃음이 번졌다.
지상에 절반 정도 걸친 위쪽 창에서 달빛이 쏟아졌다.
요이델의 눈에 그의 옅은 미소가 보였다. 그 순간 심장이 찌르르 아팠다.
‘아, 또 머리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남자의 목소리가 멀어지듯 들리더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
“그 두 번 모두 제 손으로 보낸 거나 다름없군요.”
율리시스의 말에 대답이 없던 요이델이 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구 얘기를 하는 거예요? 잘 안 들려요.”
“헛소리입니다.”
과거를 돌이킨 그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율리시스는 말이 없어진 요이델을 응시했다. 그녀가 어둠을 좋아하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이만 가 보십시오. 연회가 열리는 듯하던데.”
“제가 연회에 참석하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옷차림이 그렇습니다.”
“아…….”
자그맣게 감탄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가 걱정되었으나 그는 그녀를 잡아 줄 수 없었다.
자리에 잠시 서있던 요이델이 그를 돌아보았다.
“저 옷 어때요. 잘 어울려요?”
요이델의 물음에 율리시스는 쓴웃음을 삼켰다.
“제가 보는 눈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봐 줘요. 구겨졌어요? 아니면 예쁘게 펼쳐져 있나요?”
율리시스는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요이델은 그가 본 중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마치 만개한 꽃의 요정처럼 서 있었다.
어떤 표현을 끌어다 써도 감당하지 못할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답습니다.”
“정말요?”
“네. 태어나 본 것 중에 가장.”
그의 칭찬에 요이델이 쑥스럽게 웃었다.
“저도 이게 제일 좋았어요. 그때 본 드레스들 중에서 이런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고마워요.”
율리시스는 이제 그를 등지고 나가려는 요이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마도 이게 마지막 모습일 터.’
장담하건대, 자신은 이 순간의 결정을 사는 내내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저 행복한 모습을 보니 감히 기억해 달라고 매달릴 수 없었다. 그녀의 무구한 일상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요, 하나만 더 물어도 될까요?”
그때 그를 떠나던 요이델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철컹.
말없이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근 요이델이 망설이지 않고 그를 향해 몸을 틀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녀는 율리시스의 앞에 주저앉았다.
율리시스가 여린 어깨의 떨림을 인식한 순간, 요이델이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읏, 흐윽…….”
그녀는 빨개진 눈가를 감추지도 못하고 엉엉 울며 그의 옷깃을 거머쥐었다. 고통스럽게 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요이델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떨어졌다.
“왜 나한테 같이 가자고 말 안 해요?”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름답고 맑은 붉은 눈이 요이델의 마음을 투영했다.
그건 그리움이었다.
“나 보러 온 거잖아요. 그런데 왜 모르는 척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