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그녀의 말에 율리시스는 숨을 참았다.
“제가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떨리는 물음에 요이델은 빠르게 고개만 주억거렸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보고 싶어서 온 거잖아요. 저는 율리시스 님을 기억도 못 하는데,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근데 그렇다고, 흑, 으아앙, 이, 이렇게 다쳐서…….”
요이델의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다쳤던 것은 그인데, 그녀가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요이델은 이미 새살이 돋은 상처 자리를 부여잡고 울었다.
“어떡해, 어쩌다가 뜯기고 찢기고 흑, 아, 아프고…… 왜 그랬어요, 대체 어떡하려고요?! 속상하게 이게 뭐예요, 왜, 정말로 왜요, 율리시스 님…… 이렇게 다쳐서…….”
“…….”
“많이 아파요? 부, 분명히 아팠을 텐데, 흑, 흐윽. 미안해요, 얼마나 혼자 있었어요?”
모든 게 기억났다.
그와 헤어지던 때와, 그 순간에 희미하게 들리던 목소리들까지도.
미안함에 차마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그의 품으로 무너졌다.
찢긴 옷 사이로 호흡이 가까이 닿고, 자신의 무게가 혹시라도 그의 상처를 들쑤실까 두려웠다.
철컹.
열쇠를 가져온 요이델이 그의 구속을 풀어 주었다. 그답지 않게 살이 빨갰다.
요이델은 훌쩍이는 숨을 꾹 참았다.
“허세가, 흑, 성하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진짜 성하면 어떡해요…….”
“울지 마십시오.”
“그치만요…….”
“조금도 아프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이델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누가 지금 저를 죽인다고 해도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듯합니다.”
“목숨이 위험할 뻔한 거예요?!”
“그만큼 다시 뵙게 되어 기쁘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왜 꼭 말을…… 흐윽.”
요이델이 그를 째려보자 율리시스가 어르고 달래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대가 저를 기억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삭막했던 그의 마음이 봄처럼 녹았다. 충분한 행복감에 젖어 온 마음이 무력해졌다.
그에게는 요이델이 그런 존재였다.
자신을 끌어안은 작은 품이 세상의 전부 같았다.
비록 지금 얼굴은 꽤 뾰족해 보이지만.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시선을 어쩔 줄 몰랐다.
“……제가 밉지도 않았어요?”
“무엇이 말입니까.”
“그동안 저는 율리시스 님도 잊고 자,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잘했어요. 율리시스 님 생각은 하나도 못 했어요. 잘 놀고, 잘 쉬었다고요! 아픈 곳도 하나도 없었고요.”
“그보다 좋은 일이 없군요.”
피식 웃는 말에 요이델의 울음이 줄어 갔다.
“이상해요, 율리시스 님은 정말 이상해졌어요. 기억도 못 했는데 다 좋다고 하고, 아파 보이는데 안 아프다고 하고…….”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그의 이념과 이성에 하나도 맞는 것이 없었다.
온통 제멋대로고 엉망진창인데, 그게 좋았다.
“……저, 이제 알겠어요.”
훌쩍임이 잦아든 요이델의 목소리가 묘하게 차가워졌다.
“우리 부모님이 그런 거죠?”
명확한 대상을 꼽는 물음에 율리시스는 당황했다. 그는 곤란한 듯 그녀를 마주 봤다.
“아닙니다.”
“그럼 가족들이 전부요?”
“둘 다 아닙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째릿 노려봤다. 그의 멱살을 잡은 요이델이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율리시스는 오랜만에 느끼는 요이델의 박력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더 힘이 넘치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왜 다쳤는데요?!”
율리시스는 잠시 고민했다.
과거의 사정을 얘기하자면 단순했지만, 그녀가 믿을 것 같지는 않았으므로.
‘도착은 하였으나 후원으로 잘못 떨어졌고, 침입 경보가 울리더니 괴수들이 난입하더라. 당신의 데뷔탕트에 소동을 일으키느니 얌전히 잡혀서 성 안쪽에 들어가는 것이 여러모로 타당할 듯했다.’
그리 솔직하게 고하면 요이델이 “와! 정말요? 너무 똑똑하다. 아주 잘했어요!” 하면서 칭찬해 줄 것인가?
아니, 그런 아름다운 가능성 따위는 아예 없었다. 지금도 심기를 건드린 것 같은데, 더 날카로운 시선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특별한 피면 어쩌라고요! 살이 괴수의 철갑 비늘 정도 돼요? 그래서 안 아파요?”
일부러 당했으니까.
율리시스는 솔직히 대답을 못 했다.
“내가 모르는 데에서 잔뜩 다쳐 놓고, 그래서 엉망진창으로 나타나 놓고 괜찮다고 하면 어떻게 믿어요. 율리시스 님은 제가 그렇게 말하면 납득할 것 같아요?”
“저라면 절대 넘어가 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나한테는 하라고 그래요!”
역정을 부리는 햇병아리는 더 이상 연약하지 않았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화난 얼굴을 가만히 보다가 미소 지었다.
역시 너무 보고 싶던 얼굴이었다. 화를 내도, 그에게 소리를 질러도.
“지금 웃을 일이 아니에요! 누가 이런 모습으로 만든 거예요? 저희 성 경비 괴수가 이 정도로 강했어요?”
“풋.”
더 성을 내도 율리시스의 만면에서 미소가 거두어지지 않았다.
요이델은 뾰로통해져서 입술을 깨물었지만 점차 얼굴을 씰룩거렸다.
“웃, 웃지 마요…….”
하지만 그가 웃자 점점 요이델도 따라 웃게 됐다.
“율리시스 님이 웃으니까 도저히 화를 낼 수 없, 없잖…… 풉.”
“그대도 웃으시는군요.”
“어쩔 수 없어서예요. 절대로, 하나도! 웃기지 않다고요.”
그가 웃으며 미안한 얼굴을 하자 요이델의 화가 스르륵 풀렸다. 사실 화보다도 안타까운 마음이 컸으니까. 오로지 그가 걱정될 뿐이었다.
“이제 다치지 않기로 약속해요.”
“네.”
그가 미소 짓자 요이델이 이마를 콩 가져다 댔다.
“지금도 제가 누구신지 아시겠습니까? 다시 잊어버리시진 않으셨습니까.”
“알아요. 율리시스 님이요. 엄청 상냥한 사람이요.”
“음…….”
“제대로 기억한다고요. 율리시스 님은, 항상 그렇게 절 보셨으니까요. 율리시스 님은 모르겠지만 저는 알아요.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그가 자신을 보는 눈빛과 행동에 모든 추억이 녹아 있었다.
“전부 저한테만 보여 주시는 모습이잖아요.”
“…….”
“처음에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쪽은 거짓 한 톨 없는 진심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티가 나요?”
둘만 아는 농담에 마음이 편해졌다.
요이델이 그의 심장에 손을 대자 율리시스가 숨을 크게 쉬고 짙은 눈빛으로 웃었다. 둘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런데 머리는 왜 잘랐어요?”
“안 어울립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한 번도 자르지 않았었잖아요. 어렸을 때도 그렇고…….”
“일종의 뇌물 공여라고 하겠습니다.”
“머리카락이 어떻게 뇌물이 돼요?”
토끼처럼 눈을 뜬 요이델이 묻자 율리시스는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쓸었다.
“제 머리카락에는 신성력이 담겨 있습니다.”
“전에는 없다고 했잖아요?”
요이델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퉁명스럽던 시절의 그는 분명히 아니라고 했었는데.
“있습니다.”
“왜 아니라고 했어요?”
“그때는…….”
타인에게 이토록 깊은 마음을 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으므로.
율리시스도 제 차가운 과거를 알았기에 시선을 돌렸다. 요이델에게 야박하게 군 게 사실이었으니까.
“제 손목이 많이 다쳤습니다.”
변명거리를 찾던 그의 눈에 손목이 들어왔다.
“정말요?!”
반사적으로 바라본 요이델의 눈이 커졌다. 정말로 손목 피부가 까였다.
“사실은 쓰라리고 아팠습니다.”
“그것 봐요! 빨갛게 자국이 남았네요……. 어떡해. 감각은 있어요? 혹시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그래요?”
“통증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요이델이 걱정하자 율리시스는 뭔가를 느끼고 계속 말했다.
“그대가 숨을 불어 주시면 나을 듯도 한데.”
“어서 가서 하일 님에게 연락을 해 볼게요!”
“아니요.”
그가 눈을 살짝 찌푸리자 율리시스가 그녀를 확 당겨 품에 안았다.
그의 몸 위에 얹혀진 요이델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역시 그는 웃고 있었다.
“……거짓말이죠?”
“저희가 함께 있는데 외부인이 왜 필요합니까.”
“하지만…….”
“당신을 다른 사람과 나눌 생각 없습니다.”
그가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자 요이델이 아차, 싶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율리시스는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제발 잡배들 없이 저희 둘만 행복했으면 좋겠군요. 조금만 더 안게 해 주십시오.”
그렇지만 요이델은 어디엔가 그의 상처가 더 남아 있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는 한편 올려다본 그의 이마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각인이 없어 깨끗했다.
“율리시스 님.”
작은 소리로 그를 부르기도 전에, 율리시스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네.”
“율리시스 님.”
“네, 요이델.”
머뭇거리는 요이델을 본 율리시스가 그녀의 눈물 자국을 완전히 훔쳐 주었다.
제 품에 안겨서 그를 바라봐 주는 눈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언제까지 제 위에 앉아 계실 겁니까.”
율리시스는 곤란한 듯 짓궂게 말했다.
“앗! 아, 어! 율리시스 님이 당겼잖아요!”
“그렇다고 때리시면 곤란합니다.”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 휘두르는 요이델의 손목을 율리시스가 잡았다.
내려간 손은 깍지가 되었고 서로에게 얽은 시선은 깊어져 갔다.
오랫동안 대화 대신 조용한 숨소리가 들렸다. 요이델의 숨이 들썩이고 율리시스 역시 같았다.
가벼운 대화로 환기하려고 해도 울컥하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요이델이 몸을 기울인 순간 분홍색 머리카락이 등을 타고 흘렀다.
둘은 서로의 눈을 마주했다.
요이델의 떨리는 입술이 그의 숨을 찾아들었다.
그들이 얽히기 직전, 닿을 듯 말 듯 아직 멀리 머물러 있던 입술 사이로 율리시스가 참아 왔던 진심을 내뱉었다.
“사랑합니다.”
그의 고백에 놀란 요이델이 볼을 붉게 물들이며 행복하게 웃었다.
“사랑해요.”
툭, 저도 모르게 나온 한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술이 닿은 순간.
연회장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마저 거대한 각인의 파동을 느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힘이었다.
“……결국 그렇게 됐군.”
“섭섭해?”
샨의 물음에 라히에가 아리송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로 필사적이면 어쩔 수가 없지. 사위로서는 마음에 들어.”
그에게는 부채감도 갖고 있고.
고고함으로는 따라갈 자가 없던 그가 사랑에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딸과 헤어진 이후 그 본 적이 있었는데, 겉으로는 여전해 보였지만 눈빛은 부랑자가 따로 없었다.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못 볼 꼴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잖아.”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둘의 미소가 아름다웠다.
“샨. 미래의 사위를 위해 준비했던 그거. 이제 딸 때가 됐지?”
“아! 음…… 정말로?”
주인 없는 데뷔탕트 연회 홀 안.
사람들은 잔을 부딪쳤다.
다시 만난 연인의 축복을 비는 잔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