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데뷔탕트가 금방 끝나서 아쉬우시죠?”
“아쉽겠나요. 흐흐흣…….”
요이델은 옷을 갈아입혀 주는 시종들의 음흉한 눈을 피했다.
“성하를 만나서 좋으셨어요? 아이고, 더 빨개지신 것 좀 봐요. 오랜만에 만나셔서 뭘 하셨을까나―”
“아무 일도 없었어. 왜 음흉하게 웃는 거야…….”
“에이, 어디선가 막 아찔아찔한 큰 기운이 느껴지던데요?”
“연회장의 모두가 주인 없는 데뷔탕트에서 축배를 들었지요. 모르는 이가 있으려나요. 한창 좋을 때죠, 흐흥.”
시종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얼굴이 빨개진 요이델을 놀렸다.
“성하는 오늘 어디서 주무시려나, 역시 귀빈실이려나요?”
“새벽에 몰래 창문이나 방문을 열어 놓을까요? 호홋.”
“아, 그러고 보니 성하는 수장님들과 이야기하시느라 밤을 지새우실 것 같던데요?”
한 시종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부모님이? 왜?!”
“주방의 시종이 안주 요리를 잔뜩 만들었다고 했어요. 성하를 초대할 거라고 수장님들께서 말씀하셨대요.”
“가 봐야겠어!”
요이델은 당장 방을 박차고 나가 왕성을 가로질렀다.
“어, 요이델―”
“저리 비켜요!”
“응? 나?”
바닥에 퍽 내동댕이쳐진 휘르무트가 허망한 얼굴로 요이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방금 내 동생이 버린 게, 혹시 나인가?”
“푸흡! 풉, 푸후훕.”
그의 옆에 있던 휘스테론이 웃음을 참았다.
요이델은 이미 멀어진 뒤였다.
“율리시스 님!”
쾅!
요이델이 힘차게 식사 홀의 문을 열어젖혔다.
데구르르―
그때 잔이 도르르 굴러 요이델의 발치에 다다랐다. 그 잔의 주인은 놀랍게도 샨이었다.
요이델이 걱정한 율리시스는 맞은편의 남자를 보고 요사스럽게 웃었다.
“제가 이긴 겁니다, 아버님.”
쿵.
그와 동시에 요이델의 아버지가 식탁에 이마를 박았다. 율리시스가 잠든 것은 그 직후였다.
상황 파악이 안 된 요이델이 멍하게 서 있던 그때, 뒤에서 불쑥 나온 라히에가 혀를 찼다.
“이런. 이이마저 쓰러질 줄이야.”
“엄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뭐긴, 네 반려자에게 나쁜 주사가 있는지 아닌지 시험해 본 거지.”
“네?! 그걸 왜! 그런데, 설마 그걸 유, 율리시스 님이 이긴 거예요?”
“보기 좋게 완승했구나.”
종류별로 따 놓은 술병이 하나, 둘, 일곱, 열…….
몇 병이야?
“성하의 정신력이 대단하셔. 이 정도면 독살의 위험도 뱉어 내겠는데…….”
엄마에게서 처음 듣는 율리시스의 칭찬이지만 기뻐하기도 모호했다.
화를 내야 맞는데 말문이 막혔다. 요이델은 눈을 찌푸리고 율리시스를 보호하듯 안았다.
이 복잡하고 미묘한 기분은 뭐지?
그때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웃으며 머리를 기댔다.
“저런. 저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건 안 될 일이겠구나.”
“율리시스 님? 왜 그래요?”
그는 차가운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발갛게 물든 얼굴로 요이델의 옷자락을 쥐었다.
“아무리 그래도 성하인데 체통은 있어야지 않겠니. 다른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은 아니니……. 그런 모습을 봐도 되는 건 너뿐이잖니?”
요이델이 그의 이름을 작은 목소리로 불렀지만 율리시스는 졸린 듯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를 수습해서 데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라히에는 조용히 눈을 좁혔다.
“어머니!”
잠시 후 휘르무트가 들어왔다.
“너도 왔니.”
“그 반응은 뭡니까? 방금 요이델이 이곳으로…….”
“반지나 내놓으렴.”
라히에가 휘르무트에게서 한 쌍의 반지를 전달받았다. 라히에의 정령들이 도망갈 정도로 강한 힘을 발하는 신성 마법 반지였다.
“성하께서 큰 희생을 치르고 만들어 주셨다는 게 이거로구나.”
그건 재생 마법 반지였다.
휘르무트가 잡혀 온 율리시스를 만났을 때. 그는 스스로 머리를 잘라 휘르무트가 이전에 부탁했던 반지를 만들어 주었다. 보다 더 특수하고 강력하게.
“고통은 보존되고 표면만 치료되는 반지라는 거지. 아주 마음에 들어.”
라히에의 빨간 눈이 피처럼 번뜩였다.
“요보힐데 공작 부부의 숨통이 아직 붙어 있지?”
“북쪽 폐광산 감옥에 숨만 보존시켜 놨습니다.”
“아주 유용하겠어.”
휘르무트의 답에 라히에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아까 보았던 율리시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선물도 마음에 들고, 딸에게만 급변하는 태도 역시 후한 점수를 줄 만했다.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굴더라니……. 순 여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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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무거워.’
요이델은 율리시스를 그의 손님방이 아닌 제 방으로 데리고 왔다.
아까 오라버니를 밀어 버려서, 어쩌면 복수의 불똥이 이쪽으로 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응, 오라버니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지.
요이델은 잠든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내일까지는 숨겨 놓는 게 좋겠어.’
살이 너무 많이 빠졌다. 요이델은 더 날렵해진 그의 옆모습을 보며 눈물을 참았다.
‘머리는 또 왜 이렇게 엉망으로 잘린 거고. 모양을 보니 본인이 자른 것 같은데…….’
요이델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그래도 그를 만나니 마음이 편했다.
둘만 남은 방. 예전이라면 상상만 해도 어색하고 숨 막혔겠지만 지금은 이게 자연스러웠다.
“율리시스 님.”
자는 사람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듯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를 알아보는 눈빛이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앗, 깨우려던 건 아닌데…… 다시 자요.”
요이델이 속삭여도 율리시스는 눈을 감지 않았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음.”
“졸려요?”
“…….”
“잠이 안 와요?”
요이델이 토닥이자 율리시스가 기분이 좋은 듯 물끄러미 그녀를 올려다봤다.
“안 졸리면 얘기를 조금 더 할까요?”
“…….”
“아니면, 저도 가서 잘게요. 여기서 푹 쉬세요.”
요이델이 자리를 뜨려는 순간 율리시스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가지 말라는 거예요?”
놀라서 묻자 그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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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 됐어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요이델은 이전의 실력을 발휘해 율리시스의 머리카락을 말끔히 다듬어 주었다.
정돈된 모습이 훨씬 더 그다웠다.
요이델은 남몰래 율리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아직 술기운에 취한 듯했다.
“앞으로 누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꼭 거절해요. 알았죠?”
“……알겠습니다.”
율리시스는 순순히 끄덕였다.
볼이 발그스름하고 눈빛이 가엾은 그가 낯설고 귀여웠다.
“머리카락은 절대 안 돼요.”
“네.”
“그리고 술도요. 절대 마시지 말아요.”
“지키겠습니다,”
요이델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따라 왜 모든 말을 다 들어주지?
“……일을 무리해서 하는 것도 안 돼요.”
“원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진짜 이상한데?
요이델은 지금 그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얌전히 누워서 자요.”
그녀의 말에 율리시스는 침대에 누웠다.
“역시. 그럼 약속해요! 힘든 일도 하지 않겠다고요.”
“네.”
“솔직하게 말해 봐요. 왜 다친 거예요?”
“당신의 경비견들의 이빨이 날카로워서…….”
그는 졸린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거기로 왔는데요?”
“워프게이트의 단발성 발동으로 왔습니다.”
“어떻게요?”
“당신의 가족이 주고 갔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요이델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왜 그랬어요?”
“보고 싶으니까.”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요이델도 배시시 웃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요이델은 그의 눈빛을 빤히 바라봤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되는 대로 살았습니다.”
“율리시스 님이요? 거짓말.”
상상도 안 되는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그가 지난 몇 달 동안 서슬 퍼런 냉기를 흘리는 통에 대신전의 신관들이 오들오들 떨며 살았다는 걸 요이델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신이 모르셔서 다행입니다.”
중얼거리듯 말한 율리시스가 가지 말라는 듯 요이델의 손을 잡았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은 요이델의 무릎에 얼굴을 올리고 지그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대에게 괜찮은 모습만 보여 드리고 싶은 제 마음 역시 모르시는 것이 좋으나…….”
“…….”
“이리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처음입니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손에 입을 맞췄다. 솔직한 투정이 느껴지는 애정 표현에 요이델도 어쩔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율리시스 님은 내일 일어나셔서 어제 왜 그랬지, 하고 자책하게 될지도 몰라요.”
“왜?”
“지금 한 말들 대부분은 기억 못 하실 거 아니에요. 기억나도 창피해지거나.”
“후회 같은 것 안 합니다.”
깊게 잠긴 목소리로 말한 율리시스가 요이델을 응시했다.
“정말로 단 한 번도요?”
“내일은 한 번쯤 하게 될 수도 있겠군요.”
“그것 봐요. 그렇다니까요.”
“지금 당신에게 입 맞췄어야 했다고 후회할 겁니다.”
부드러운 입술이 요이델의 손등에 닿았다. 요이델의 볼이 저도 모르게 상기됐다.
‘설마…….’
요이델은 천천히 눈을 좁혔다.
“율리시스 님, 사실은…… 이미 술기운에서 회복되신 거죠?”
그녀의 작은 손에 얼굴을 비비던 그가 피식 웃었다.
놀랍도록 생기 넘치는 파란 눈이 매혹적으로 휘었다.
“네.”
순식간에 둘의 위치가 뒤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