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요이델의 머리카락이 침대 위에 흩어졌다.
“저를 대단히 잘 아시는군요.”
“이럴 줄 알았어요, 어쩐지 이상했다고요! 언제부터예요?!”
“독한 술이기에 처음부터 신성력을 끌어서 방어했습니다.”
“거짓말쟁이!”
그녀의 힐난에 율리시스가 피식 웃었다.
“그 거짓말쟁이가 그대의 앞에서는 어떤 거짓도 고할 수 없어서 곤란하군요.”
“정말 율리시스 님은…….”
“그러나 경이로울 만큼 좋습니다.”
율리시스의 짙은 웃음에 요이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 그런 말로 넘어가려고 하지 말아요.”
“잘못했습니다.”
“…….”
“용서를 구해도 되겠습니까.”
“……안 해 줄 거예요.”
“큰일이군요.”
나긋한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율리시스는 누운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요이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리던 꿈이 이루어졌다.
“제 유일한 반려시여.”
율리시스는 요이델의 이마를 집착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 숨이 천천히 크게 오르내렸다.
긴장에 눈시울이 붉어진 요이델이 그의 이마에 손을 댔다.
“다시 예쁘게 피었네요.”
둘의 이마에 똑같은 연분홍색 꽃잎이 피었다. 아주 예쁘고 선명한 반려자의 각인.
율리시스의 눈에도 그녀의 각인이 보였다.
요이델은 얼굴을 쓸던 손가락을 귓가로 올려 그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빨간 귓가를 본 그녀의 표정이 짓궂게 변했다.
“여기도 문양이랑 색이 똑같아요. 어떻게 된 거예요?”
“저도 사랑하는 이 앞에서는 설렐 줄 압니다.”
조용히 속삭이던 그가 요이델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매혹적인 웃음에 위험한 기색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분홍색 머리카락에 보란 듯이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이 귓가로 내려갔다.
“……!”
요이델은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유, 율리시스 님, 왜, 왜 그래요? 혹시 하일 님의 불온서적을 봤어요?!”
“저는 안 봤습니다만.”
율리시스가 피식 웃었다.
“바로 연상하시는 것을 보니, 그대는 시시때때로 탐독하셨나 봅니다.”
“아니에요!”
허를 찔린 요이델이 그의 몸을 가볍게 쳤다.
“아얏.”
그때 옆구리에 순간적인 고통이 느껴졌다. 요이델은 눈을 찌푸리고 제 몸을 더듬었다.
‘나한텐 상처가 없는데?’
그럼 설마.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당장 밀치고 그의 옷을 빨래 널듯 훌렁 들었다. 짐작대로 크게 멍든 피부가 보였다.
“역시 아직 다친 곳이 있었네요!”
분노한 요이델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역시 이쪽에 치료하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어쩐지 걸을 때 이상하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어.
그녀의 째림을 받은 율리시스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멍입니다.”
“하지만 아프죠?”
“윽.”
멍을 꾹 누르자 율리시스가 기침을 토했다.
“다 알아요. 나도 똑같으니까요!”
요이델은 율리시스와 똑같이 생긴 자신의 상처를 보여 주었다.
율리시스는 느닷없이 목격한 하얀 피부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파악하지 못한 요이델이 화난 얼굴로 쏘아 댔다.
“저희는 뭐든 공유하는 사이잖아요. 그러니까 혼자 아프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인정이 빠르네요?”
요이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불현듯 상황을 깨닫고 어색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봤어요?”
“아니요, 못 봤습니다.”
“뭐를 못 봤는데요?”
눈을 가늘게 좁힌 요이델이 그에게 다가갔다.
“봤네요.”
재촉하며 묻자 율리시스의 목과 귀가 믿기 힘들 만큼 빨개졌다. 그는 여전히 요이델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저도 봤죠.”
가까워진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
왜인지 분위기가 조용했다.
마침 시간은 늦었고, 방해꾼의 허락마저 떨어진 완벽한 밤. 둘의 입술이 가볍게 포개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운 입맞춤이었다. 둘만이 남은 방 안의 공기가 사람의 열기로 무르익기 시작했다.
숨이 깊어지고 요이델은 그의 목에 손을 둘렀다.
상대의 눈빛과 두근두근 뛰는 소리가 그들의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서로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더 가까이, 이전보다 더 강한 설렘으로 곁에 있음을 확인하고 안주하려는 것처럼 정신없이 몰아쳤다.
요이델의 손이 그의 셔츠 단추에 닿았을 때.
“잠시만.”
율리시스가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멈췄다.
“……안 되나요?”
얼굴이 발그스레해진 요이델이 부끄러움을 꾹 참은 입술로 말했다.
“율리시스 님이 준비가 안 되셨으면, 기다려 드릴 수 있어요…….”
풀 죽은 목소리가 쪼그라들었다.
그에게서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요이델이 민망한 상황을 무마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심장이 쿵 떨어졌다.
“아.”
그의 표정이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르게 무시무시했다.
율리시스는 모든 인내심을 다하는 듯 어두워진 눈빛으로 요이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요이델의 손을 모아 잡고 자신의 옷에서 떼어 냈지만, 그렇다고 놓지도 않았다.
그가 탁하게 한숨 쉬었다.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뺨을 쓰는 손길은 다정했다. 비스듬히 응시하는 시선도 상냥하기 그지없었으나 묘한 선이 있었다. 요이델은 그의 변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역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가요?”
“아내가 되실 이에게 청혼부터 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네?”
요이델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처, 청혼이요?”
아, 맞다.
‘율리시스 님은 성국의 왕이었지.’
그는 어쨌든 직업상 성직자이고, 의외로 대신전 내 규율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성국은 기본적으로 혼전 순결의 풍토가 굳건한 나라였다.
그는 요이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진심을 곱씹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첫날밤을 맞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까 지하에서 사랑한다고 한 건요?”
“미흡합니다.”
“네?”
“더군다나 침실에서의 청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율리시스의 얼굴에 농담기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진심이다.
“제 욕심이 과도하였음을 인정합니다.”
율리시스가 요이델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때로는 개가 된 것 같습니다.”
덤덤하게 읊조리는 말에서 진심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투정을 부리려던 것도 사실이고, 그대와 함께 있고 싶던 것 역시 진심입니다. 언제 또 당신을 못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초조한 것도 사실입니다.”
“…….”
“그러나 욕심이 앞서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율리시스의 고백에 요이델도 생각에 잠겼다.
“……저는 그런 율리시스 님도 좋아요.”
요이델은 진지하게 그를 직시했다.
“하지만 더 솔직하게 말하면요, 저는 지금 그런 인내를 원하지 않아요.”
“…….”
“우리 둘의 일이에요.”
두근두근하고 떨렸지만 요이델은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전달했다. 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저는 다시 만나게 된 오늘이 너무 좋고, 그래서 같이 있고 싶어요. 그래도 율리시스 님이 생각을 말해 준 건 고마워요. 이건 우리끼리 대화를 해야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말을 멈춘 요이델이 율리시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거 알아요? 사실 율리시스 님은 옛날부터 위험했어요.”
“……제가 말입니까?”
“저는 솔직히 언젠가 제가 율리시스 님을 잡아먹어 버리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같이 있으면 심장이 쿵쿵 뛰고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몰랐죠?”
요이델이 희한하게 늠름한 얼굴로 말했다.
“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요. 율리시스 님을 너무 사랑하니까요. 계속 같이 있고 싶고 안 아프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계속 보고 싶고.”
“요이델 님…….”
요이델이 말끝을 흐리고 고개를 떨궜다. 그녀의 몸이 흐느끼듯 떨리자, 율리시스는 어쩔 줄 모르고 가녀린 어깨를 감쌌다.
“그런데 저랑 결혼 늦게 할 거예요? 우린 이미 반려인데요?!”
그때 요이델이 대뜸 울컥해서 외쳤다. 율리시스는 당황스러워 그녀를 보았다.
요이델은 슬픈 게 아니라 화난 거였다.
“반지 내놔요! 있잖아요!”
“그것은…….”
“뭐예요. 정말로 만들어 놓은 거예요?”
요이델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프로포즈 링을 수십 개 맞춰 두었으니까.
“왜 아무 말 안 했어요?”
“대뜸 나타나 청혼부터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와서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
율리시스는 대답을 못 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당신을 갖고 싶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제 욕심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고.
말 없는 그를 오해한 요이델이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율리시스 님을 계속 기억 못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요? 그래도 괜찮았을 거예요? 앞에 딱 나타나서 나랑 결혼합시다! 이러면 뭔가 아! 맞다, 율리시스 님! 이랬을지도 모르잖아요?!”
“다른 사람?”
율리시스의 눈빛이 단번에 흉흉해졌다.
“그것 봐요.”
“반지는 오래전 준비해 놓았습니다. 다만 그대가 저를 다시 사랑해 주실 가능성이 적었고, 무리를 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먼저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가능성이 이루어졌네요.”
잔뜩 토해 낸 요이델이 안쓰러운 얼굴로 웃었다.
“율리시스 님을 만나게 된 건 최고의 행운 같아요.”
요이델이 그를 껴안았다.
자신을 품는 그녀의 향기에 실낱만 겨우 남은 인내심의 끈이 끝끝내 끊어질 것 같았다.
“저는 우리 마음이 이어진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율리시스 님을 다시 만나게 된 지금, 모든 순간이 다 꿈만 같아요. 그래서…….”
“…….”
“오늘 율리시스 님과 함께 있고 싶어요.”
요이델이 바르르 떨며 율리시스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이 맑았다.
“이 마음은 안 되나요?”
“……불가합니다.”
율리시스가 조금은 굳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당신의 말은 거역이 불가합니다.”
그는 마법으로 무언가를 가져와서 살피고는 긴장한 듯 한숨 쉬었다. 그의 모습에 요이델도 동화됐다. 둘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율리시스는 마침내 그녀를 바라보았다.
“계획했던 대단한 청혼도 아니고, 오늘 저는 당신이 보신 모습 중 가장 볼품없는 꼴을 하고 있을 겁니다.”
율리시스가 진심을 담아 읊조렸다.
“오래도록 쓰고 고친 청혼서의 내용도 생각이 나지 않고, 다만 당신을 바라는 마음만은 다름이 없으니.”
그가 요이델의 손을 잡고서 눈부시게 빛나는 분홍색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 주었다.
“이 마음 하나를 믿고 그대에게 청혼해도 되겠습니까.”
그답지 않게 긴장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떨리는 숨과 시선이 교류했다.
청명한 파란 눈이 요이델을 바라봤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요이델 님.”